소설리스트

금단, 그 너머에는-106화 (106/140)

106화. The night (2)

“내가 왜요. 이뻐서?”

일부러 뻔뻔스레 묻자 진혁이 소리 내어 웃었다. 그리고 희나의 뺨을 꼬집으면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예뻐 죽겠네.”

“뽀뽀하니까 좋아서 미치겠어요?”

“아하하. 참, 이래도 되는 건지.”

애교 부리면서 안기는 희나를 보고 다시 낮게 웃던 진혁이 마지막 말을 흐렸다. 희나는 진혁의 목덜미를 만지작거리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왜요? 이러면 안 될까 봐 그래요? 나 이제 스물세 살인데.”

“아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어리게 느껴져.”

“이제 와서 무슨. 이미 할 거 다 했잖아요.”

“아직 반도 못 했는데.”

나직한 진혁의 대답에 희나는 한창 달아올랐다가 살짝 식은 몸 중심에 확 열기가 번지는 느낌이었다.

여기서 더 나가면 뭐가 있는 걸까? 더 하면 이 안타까움이 사라지는 건가?

희나는 발그레해진 얼굴로 살짝 입술을 깨물다가 시선을 떨궜다. 그리고 그의 목을 감았던 팔을 앞으로 모아 진혁의 셔츠 앞자락을 만지작거리면서 머뭇머뭇 물었다.

“선생님도, 막, 있잖아요. 막, 그런 생각, 막 해요?”

“뭘 막 해?”

쑥스러워서 시원스럽게 말 못 하고 ‘막, 막……’ 하는 희나의 모습에 진혁은 웃음을 터트리며 장난스레 물었다. 놀리는 말에도 ‘막’ 자를 떼어내지 못한 희나가 우물거리면서 작게 물었다.

“막, 막…… 그런 거 있잖아요.”

“막, 막 그런 게 뭔데?”

“이익! 그러니까 막…… 같이 자고 막, 막 그런 거, 그런 거 있잖아요.”

말투를 따라하며 놀리는 진혁에게 발끈했지만 마지막 말을 할 때쯤 희나의 목소리는 다시 기어들어 갔다.

홍당무가 된 채 옷자락을 만지작거리는 손가락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는 희나에게 진혁이 얼굴을 기울였다.

고개 숙인 진혁의 이마가 희나의 이마에 맞닿자 희나는 살짝 눈을 들어 그를 보았다.

진혁은 바로 눈앞에서 내리뜬 눈을 들어 희나를 지그시 보고 있었다. 그리고 곧 다정한 눈매가 부드럽게 휘면서 미소를 지었다.

“맨날 그 생각만 하는데?”

낮은 속삭임에 안 그래도 빨개져 있던 희나의 얼굴이 터질 것처럼 달아올랐다. 어찌나 얼굴에 피가 몰렸는지 코피라도 날 것 같았다.

“그게 뭐예요! 변태 아저씨네!”

자기가 물어봐 놓고 희나는 진혁을 막 때렸다. 정말 변태라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쑥스러워서, 놀라서 하는 반응에 가까웠지만.

“변태라니, 남잔 원래 그런 거야.”

“뭐야, 그게! 거짓말.”

“네가 아직 모르는 거야, 애기라서.”

“스물이 넘은 지가 몇 년인데 애기는 무슨!”

“남자들이 너 보면서 무슨 생각 하는지 모르지?”

모를 리가. 중, 고등학교 시절, 주변 남자들이 희나의 어려운 사정을 알게 되면 몹쓸 짓을 하려 든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항상 희나를 보고 몸 달아 했던 지훈과도 1년이나 사귀었다.

하지만 사귀게 되고 나서 평범하게 스킨십도 많이 했지만, 장난치던 날을 제외하면 키스보다 더 많이 터치한 적은 없었던 진혁이다.

워낙 점잖고, 고자라는 소리를 허구한 날 들을 정도로 금욕적인 이미지인데 이런 대답이 나올 줄은 생각도 못 한 희나였다.

“정말 진심으로 말한 거예요?”

“이런 거짓말을 왜 하겠어.”

진혁은 좀 쑥스러운 듯했지만 빼지 않고 솔직하게 말했다.

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희나는 자신의 심장 뛰는 소리가 너무나 크게 울려서 조용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침 삼키는 소리만 유난히 크게 울리는 가운데 앞을 바라보고 있던 진혁이 희나를 가만히 돌아보았다.

안경 속의 검은 눈동자는 언제나처럼 단정해 보였다. 방금 그런 폭탄 발언을 한 사람답지 않게.

희나는 커다란 눈을 도록 굴리면서 더듬더듬 물었다.

“어, 어떻게 하고 싶은데요?”

그러자 진혁의 눈이 의미심장하게 시선을 내렸다.

희나가 그 시선을 따라가 보니 그녀의 쇄골 근처에서 멈췄다. 그리고 진혁의 손가락이 그 부근에 위치하고 있던 희나의 토끼 모양 후드의 지퍼 고리를 잡았다.

그대로 잡은 채 살짝 입술을 깨물면서 진혁은 다시 시선을 들어서 그대로 희나와 눈을 마주쳤다.

순간적으로 희나는 진혁의 눈이 허락을 구하는 시선이라고 생각했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잘생긴 눈매가 가늘게 휜 모양새가 너무 야하다. 방금 전까지 평소처럼 사심 없어 무심해 보이기까지 하던 눈동자가 마치 유혹이라도 하는 것처럼 뜨겁게 희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홀린 듯 그 눈을 바라보던 희나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진혁의 목에 매달려버렸다.

그러자 진혁이 무릎 위의 희나를 안은 채로 소파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그대로 부드럽게 걸어가 희나를 침대에 앉혔다. 거기서 긴 팔을 뻗어 침대 옆 협탁에 놓인 스탠드를 켜고, 전등을 끄는 동작까지 마치 연습이라도 한 듯 물 흐르듯 흘러갔다.

희나가 멍하니 진혁이 하는 양을 보는 사이 방은 어두워지고 은은한 스탠드 불빛만 남았다.

불을 끈 진혁은 희나의 옆에 털썩 앉았다. 그리고 몸을 기울여 아주 가까운 곳에서 희나를 내려다보았다.

희나는 새삼스럽게 진혁을 올려보며, 그가 아주 크고 단단한 체격을 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아까부터 심하게 뛰던 심장은 도무지 가라앉을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정말 괜찮아?”

절대 그만둘 것 같은 표정도 아니면서 그렇게 묻는다. 그렇지 않아도 창피해 죽겠는데 자꾸 확인하려 드는 것이 얄미워서 희나는 새침하게 받아쳤다.

“안 괜찮으면 어쩌려고요?”

“안 괜찮으면…….”

진혁은 천장으로 눈을 돌리고 가만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휘휘 저었다.

“몰라. 그래도 할래.”

그러면서 반칙으로 보일 만큼 예쁘게 입꼬리를 올리며 쿡쿡 웃는다. 그걸 보며 ‘바보 아저씨’ 같은 말을 뱉어 내려던 희나의 입술은 곧 진혁의 입술로 덮였다.

바로 좀 전까지 긴 키스를 하며 자연스럽게 혀를 섞었던 희나였지만, 지금은 달랐다. 침대에 앉자 잔뜩 긴장해버려서 완전히 뻣뻣해진 상태로 그의 키스를 받았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키스를 반복하자 간질간질해서 몸이 녹아버릴 것 같다. 그러나 풀리던 몸은 진혁의 커다란 손이 허리를 감싸 안자 다시 힘이 들어갔다.

항상 키스를 할 때면 희나의 날씬한 허리를 기분 좋게 받치고 있긴 했지만, 평소와 뭔가 다르다. 최종 목적지가 이곳이 아닌 느낌이랄까.

그런 생각이 들자 희나는 본능적으로 양팔을 옆구리에 붙이고 잔뜩 움츠려버렸다.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다리는 어떻게 둬야 할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렇게 혼란스러운 상태에서도 키스에 점차 열중하게 되어서 그녀가 정신이 들었을 때는 침대에 푹 파묻힌 채 진혁의 아래에 누워 있었다.

상황을 깨달은 희나는 긴장해서 더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경험이 없어도 어떻게 하는지 이론적으론 알고 있다. 서로 옷을 벗게 되겠지.

벗은 몸을 보이게 될 생각을 하니 아찔하다. 그리고 그만큼 진혁의 벗은 몸을 보게 되는 것이 두렵기도 하다. 심장이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자, 잠깐만요.”

희나가 살짝 밀어내며 우물쭈물 말하자 진혁이 왜 그러냐고 묻는 듯한 눈초리를 보냈다. 그 시선조차도 똑바로 보지 못한 채 희나는 슬쩍 손가락으로 스탠드를 가리키며 말했다.

“불 완전히 꺼줘요.”

“왜?”

“그냥, 꺼줘요-.”

창피하니까 꺼달라고 말하는 것이 더 창피해서 희나는 그렇게만 말했다. 진혁은 마치 수락하듯 몸을 일으켰으나 불을 끄는 대신, 그저 안경을 벗어 탁자에 올려둘 뿐이었다.

단정한 이목구비가 그대로 드러나자 희나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평소와 다른 톤의 조명 때문인지, 이마로 살짝 내려온 희나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뺨에 입을 맞추며 속삭였다.

“나중에 꺼줄게.”

그러면서 진혁의 손가락이 희나의 옷 지퍼를 슬쩍 끌어내리기 시작했다.

희나는 뜻밖의 거절에 놀라서 황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꺼줘요. 싫어, 켜져 있는 건.”

“안 돼.”

“뭐가 안 돼요!”

킥킥거리며 재차 거절하는 진혁의 말에 희나는 몸을 일으켜 팔을 스탠드 쪽으로 뻗었다. 그러나 스위치에 닿기도 전에 진혁에 의해 다시 몸이 뉘어져버렸다.

진혁은 희나의 몸 양옆을 팔로 감싸 못 일어나게 누른 뒤 재미있다는 얼굴로 희나를 내려다보면서 웃었다.

“안 꺼줄 거야.”

평소엔 해달라는 거라면, 아니 해 달라지 않은 것까지 해주는 주제에 사소한 걸로 고집을 부린다. 그냥 해주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당황하는 희나를 보면서 재밌어하고 있다.

진혁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찡그린 희나의 뺨에 부드럽게 입을 맞추면서 다시 지퍼를 내리기 시작했다.

희나가 필사적으로 손목을 부여잡자 귓가에 낮은 목소리가 부드럽게 퍼졌다.

“괜찮아.”

괜찮긴 대체 뭐가 괜찮냐고 핀잔을 주려던 희나의 입이 딱 벌어졌다. 희나의 저지에 의해 지퍼 내리기를 포기한 손이 옷 위로 가슴을 만져왔기 때문이다.

너무 놀라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그대로 벌어진 입술 사이를 뚫고 진혁의 혀가 부드럽게 침투했다.

누구도 만진 적 없는 곳이다. 처음 손이 닿았을 때는 당황해서 몸이 딱 굳었고, 거기서 떨어져 나가는 게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기 시작했을 때는 작은 비명이 나올 뻔했다.

그러나 미약한 저항은 약해지고 키스와 함께 열기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처음 겪는 선정적인 상황에 말도 못 하게 돋워진 데다가, 몸에 주어진 자극에서 점점 쾌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가슴을 주무르는 무례한 손길이 기분 나쁘기는커녕 몸을 달아오르게 했다.

방어하듯 진혁의 팔목에 매달려 있던 손은 저도 모르게 진혁의 어깨를 짚었다.

단단하고 긴 목과 넓은 어깨를 살짝 더듬어 확인하던 희나는, 진혁의 손가락이 민감해져 있는 가슴 정점을 스치자 순간 숨을 멈췄다. 그리고 그 직후 달콤하게 “아, 응…….” 하고 작은 소리가 희나의 예쁜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그러자 진혁의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가슴을 만지던 손이 떨어져 희나의 옷 지퍼를 잡았다. 달아오른 희나가 노곤해진 사이 진혁은 빠르게 지퍼를 내리고 희나의 몸을 살짝 들어 올려 후드를 벗겨버렸다.

후드 속에는 얇은 민소매 티셔츠 한 장을 입었을 뿐이다. 그 얄팍한 민소매 티셔츠도 곧 진혁에 의해서 벗겨져 버리고 속옷 한 장만 남게 되었다.

브래지어 한 장만 남게 되자 희나는 문득, 오늘 수수한 면 소재에 토끼 그림이 그려져 있는 브라를 입었다는 것을 떠올렸다. 색기라고는 조금도 없는 속옷이다.

그것을 깨닫자 믿을 수 없을 만큼 대담해졌다. 알몸을 보이는 것보다 어린애 같은 속옷을 보이는 게 더 싫다.

희나는 저항 대신 속옷을 벗겨내려는 진혁을 돕는 것처럼 등을 들어 올려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속옷이 벗겨지고 살갗에 서늘한 공기가 닫자 소름이 돋았다. 희나는 양팔로 가슴 앞부분을 감싼 채 고개를 푹 숙여 파묻었다.

진혁이 희나의 정수리에 입을 맞추면서 팔목을 잡았다. 그대로 금방 전부 보이게 될 것 같아 희나는 황급히 말했다.

“서, 선생님도 벗어요!”

그러자 낮게 웃는 소리가 나더니 진혁이 뒤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약간 느릿하지만 망설이는 기색 없이 셔츠를 벗어버렸다. 그 나른한 몸놀림이 너무 섹시해서 희나는 몸 안이 욱신거리는 것을 느꼈다.

드러난 몸은 아름다운 골격에 보기 좋게 근육이 붙어 있었다. 희나의 시선을 느끼고 진혁도 조금 쑥스러운 듯 빠르게 몸을 겹쳐왔다.

“꺅!”

그리고 그대로 방심한 그녀의 팔을 벌리는 바람에 희나는 짧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그러나 다행히 알몸을 보이지는 않았다. 진혁이 몸을 밀착시켜 왔기 때문이다.

진혁은 숨을 고르기라도 하듯 희나를 품에 꼭 안은 채 잠시 가만히 있었다.

희나는 맨살에 가슴이 맞닿는 것이 너무 쑥스러워서 뻣뻣하게 있었으나 점점 어색함이 사라졌다. 맞닿은 가슴으로 전해지는 진혁의 심장은 희나만큼, 아니 어쩌면 훨씬 더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진혁도 동요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희나는 어쩐지 도리어 안심이 되었다. 안심이 되니 점점 기분이 편안해졌다. 따끈한 진혁의 몸은 티 하나 없는 얼굴만큼이나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슬쩍 매끈한 등에 팔을 감자 탄탄하게 잡힌 근육의 탄력이 느껴졌다. 그 느낌이 좋아서 희나는 손끝으로 훑듯이 쓸었다. 그러자 진혁의 몸이 움찔했다.

“하아…….” 하고 한숨 같은 소리가 나고, 곧 진혁의 입술이 다시 희나의 입술을 빨아올리고, 팔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쾌감을 느끼는 사이 간단하게 바지가 벗겨지고, 속옷까지 벗겨져 희나는 알몸이 되었다. 남자 앞에서 옷을 전부 벗게 된 건 처음이다.

겹쳐진 몸에 밀착해 있던 진혁의 몸이 살짝 떨어져 나갈 기미가 보이자 희나는 황급히 외치며 진혁의 목을 감싸 안았다.

“싫엇!”

격한 그녀의 반응에 진혁이 흰 얼굴을 갸웃거리며 물었다.

“뭐가 싫어?”

“떨어지면 싫어, 싫어요.”

진혁이 슬쩍 몸을 다시 뒤로 빼자 희나는 다시 필사적으로 몸을 감고 매달렸다. 진혁은 쿡쿡 웃고 희나를 더욱 세게 안았다.

따뜻한 체온에 휘감긴 채 희나는 눈을 감았다. 방 안은 열기에 휩싸이고, 두 사람의 달콤한 목소리만이 울렸다.

정신없이 뒤흔들리는 내내 진혁은 입술을 살짝 떨면서 땀에 젖은 희나의 뺨에 소중히 입을 맞췄다.

귓가에 계속 “사랑해.” 하고 속삭이는 목소리를 들으며, 희나는 그대로 늘어져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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