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파란 (3)
“아, 그리고 얘기해야 될 게 있는데 말하는 걸 까먹었네.”
“뭔데요?”
“혹시 너희 어머니와 연락하고 지냈었니?”
어머니 얘기가 나오자 희나의 심장이 다시 쿵쿵 뛰기 시작했다. 둘 다 고개를 젓자 김 형사가 턱을 긁적이더니 말을 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너희 둘 다 미성년자니까 일단 보호자가 있어야 하잖아. 그래서 어머니에 대해서 알아봤는데…….”
희나는 긴장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아버지에 대해서는 줄곧 심드렁하던 희원도 어머니의 얘기가 나오자 조금 태도가 변했다. 관심 없는 척하려는 것처럼 보였지만 김 형사의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리는 듯 건들건들 떨고 있던 다리도 멈추고 그의 입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유감스럽지만, 어머니께서도 3년 전에 돌아가신 걸로 사망 신고가 되어 있었어.”
그러나 기대는 곧 쿵쿵거리던 심장과 함께 다시 식었다.
희나는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아마 자신에게서 실망한 기색이 풍길 거라고 생각했다. 어머니에 대해 그리움도 기억도 거의 없지만 가끔씩 어머니를 만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어쩌면 서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만났을 때의 상상은 대부분 “왜 나를 버렸어요?” 하는 상투적인 장면으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대답이 뻔하기에 그런 걸 묻고 싶진 않았지만 이젠 아예 그렇게 물어볼 기회조차 없다는 것을 확인해버렸다.
어쩌면 희나는 어머니란 단어가 그녀에게 만든 공백이 언젠가 재회해서 메워지리라고 생각했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 공백은, 유감스럽지만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단다, 라는 한 줄로 끝날 모양이다.
씁쓸하고 실망감이 들었지만, 딱히 그 감정이 큰 건 아니었기에 희나는 작게 반복적으로 그냥 고개만 끄덕였다. 김 형사의 말이 이어졌다.
“대신 너희 이모와 연락이 닿았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하니까 곧 여기로 오시겠다고 하더라.”
이모란 말에 희나의 눈이 다시 번쩍 뜨였다. 그러나 이모에 대한 기억이 희나보다도 없는 희원은 관심 없는 기색이었다.
“이모가 여기로 온다고요?”
“그래. 아마 오후에 도착하실 거야. 지금 광명에 살고 계신대. 친가 쪽에는 연락이 안 돼서 아마 이모와 상의해서 앞으로 장례나 그런 절차들을 처리해야 될 거 같구나.”
그렇게 말하고 김 형사는 희원에게 손짓으로 파티션 안쪽 의자를 권하고 자신도 맞은편에 앉았다.
“이모가 도착하시면 부를 테니까 대기실에서 기다려줘. 대기실은 저 아저씨 따라가면 돼.”
김 형사가 손가락으로 희원을 데리고 들어왔던 남자를 가리켰다. 희나는 그 남자를 따라 조사실을 나와서 한 층 아래의 대기실로 갔다.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서던 희나는 흠칫 놀랐다. 안쪽에 지훈이 앉아 있었기 때문이다.
지훈도 문이 열리는 인기척을 느끼고 올려보았다가 희나를 발견하고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희나는 뭐라 할 말이 없어서 시선을 내리고 가만히 안쪽으로 들어갔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지훈이었다.
“괜찮아?”
걱정하는 듯한 말투였다. 뭐가 괜찮냐는 건지 알 수 없지만 희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대답했다.
“응, 괜찮아.”
그걸로 다시 대화가 끊기고 침묵이 흘렀다. 희나는 불편한 공기를 가르고 지훈의 맞은편에 있는 의자에 조금 떨어져서 앉았다.
“……선생님은?”
“우리 오는 거랑 엇갈려서 학교에 가셨어. 좀 있다가 다시 오신다고 하시더라.”
박 선생은 우선 학교로 돌아간 모양이었다. 그녀가 있든 없든, 아니 오히려 있는 게 더 불편했기에 희나는 마음이 놓였다.
축 처진 자세로 멍하니 시선을 떨어뜨리고 앉아 있자 지훈이 불쑥 물어 왔다.
“너…… 화요일에 어디에 있었는지 말 안 했다며?”
희나의 눈썹이 살짝 움찔했다. 어느새 지훈에게도 다른 형사가 다녀간 모양이었다.
“안 했어.”
“할 거야?”
“안 해.”
“어디 있었는데?”
희나는 대답하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지훈이 조용히 다시 물었다.
“내가 생각하는 거기야?”
역시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 침묵이 대답이 된 것 같았다. 지훈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희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 의미 있는 듯한 시선이 불편하게 느껴져 희나는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괜히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다가 아주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너 사람들한테…… 말할 거야?”
지훈의 미간이 움찔했다. 그는 시선을 거두고 한동안 바닥을 내려다보더니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형사한테는 안 해.”
중얼거리듯 말하고 지훈은 긴 팔을 구부려 턱을 괴고는 입을 다물었다. 그렇게 잠시 있다가 답답한 표정을 짓더니 대기실을 휙 나가 버렸다.
텅 빈 대기실에 홀로 남자 이런저런 생각들이 머리를 복잡하게 만들었다. 희나는 무릎을 세워 몸 앞에 모으고 거기에 턱을 괸 뒤 상념에 잠겼다. ‘이제 어쩌지’란 생각만 머릿속에 가득 떠다닐 뿐 거기서 생각이 진전되지를 않는다.
돌아가신 아버지 생각보다도 진혁의 일이 훨씬 마음이 쓰였다. 혐의 같은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이대로 돌아가지 않으면 걱정할 텐데. 그에게 연락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이 답답하고 속이 상했다. 어떻게든 이 상황을 알리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다.
누군가 둘의 편이 되어줄 사람이 있으면 좋겠는데 세상에 둘만 따로 떨어져 남은 것 같다. 아무도 둘을 이해해주지 않는 것이다.
답이 나오지 않는 생각을 계속하는 것도 피로해져 희나는 그냥 머리를 무릎에 묻은 채 멍하니 대기실에 앉아 뭔가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30분쯤 지나자 학교에 갔던 박 선생이 돌아왔다.
희나가 이모를 찾았다는 말을 전하니 자기 일처럼 기뻐했다. 그러고는 안도한 것처럼 이모를 만나고 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그건 반가운 말이었지만 옆에 앉아 계속 걱정스러운 듯 말을 걸어오는 바람에, 대화를 나눌 기분이 아니었던 희나는 곤혹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했다.
그러고 다시 30분쯤 지나자 다행히도 대기실 문이 열리고 김 형사가 희원을 데리고 들어왔다. 그는 박 선생에게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희나를 보며 말했다.
“이모한테서 30분 내로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어. 이모에게도 조금 들을 얘기가 있으니까 얼마간 더 기다려야 되는데 밥이라도 먹고 올래?”
밥 생각이 전혀 없었기에 희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러나 희원은 먹고 싶다고 말해서 의견을 조율한 결과 대기실에서 그냥 식사를 배달시켜 먹기로 했다.
박 선생도 식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서 아예 지훈까지 불러 와 다 같이 적당히 중국 요릿집에서 메뉴를 골랐다. 김 형사도 함께 식사할 생각인지 전화를 걸어 주문을 하고는 나가는 대신 대기실 의자에 걸터앉았다.
“이모님이 오시면 다시 얘기하겠지만, 부검이 오늘 중으로 끝날 거 같으니 장례 절차에 들어가도 될 거 같다. 그리고 탐문 수사 나간 쪽에서 어느 정도 성과가 있는 거 같으니까 범인이 금방 잡힐지도 모르겠어.”
음식이 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김 형사가 이런저런 수사에 관련된 이야기를 설명해주었지만 희나의 머릿속은 다른 생각으로 가득했다.
곧 식사가 도착하고 다 같이 둘러앉아 음식을 먹었다. 반쯤 먹었을 때 아까의 남자가 들어와서 김 형사를 보며 말했다.
“김 형사님, 안내 데스크에 주희나 학생을 찾는 사람이 왔는데요.”
드디어 이모가 도착한 모양이었다. 이모에 대한 기억은 흐릿했지만 오랜만에 다시 만날 생각을 하니 희나는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외할머니가 엄마와 이모가 아주 많이 닮았다고 말했기에 더욱 그랬다.
“그래? 그럼 일단 이쪽으로 모셔 와.”
김 형사가 휴지로 입을 닦으며 말하자 남자가 곧 나갔다. 콩닥콩닥 뛰는 심장을 억누르며 5분쯤 기다리자 대기실 문을 누가 노크하는 기척이 있었다. 희나는 잔뜩 긴장한 채로 침을 삼키며 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기실 문을 열고 들어선 사람을 보고 눈이 커졌다.
“선생님!”
희나는 저도 모르게 외치며 일어서 버렸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은 이모가 아니라 진혁이었다.
‘어째서 여기에? 어떻게 알고?’
놀란 눈으로 김 형사를 돌아보았지만 그 역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으로 보아 그가 부른 건 아닌 듯했다. 박 선생도 진혁의 등장에 놀란 것처럼 보였다.
희나의 시선이 그 옆에 앉아 있는 지훈에게서 멈췄다. 지훈은 희나가 쳐다보자 가만히 시선을 피했다. 그것으로 누가 진혁에게 연락했는지 알 수 있었다.
경찰에는 말 안 한다고 한 것이 이 의미였나? 선생님에게 직접 말해서 이리로 오게 하려고?
희나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지만 지금은 지훈에게 화를 내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뭔가 사태를 수습해야만 했다.
그러나 희나가 뭔가 행동을 취하기도 전에 김 형사가 의자에서 일어나 진혁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오셨죠?”
진혁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박 선생도 일어나서 동그래진 눈으로 질문을 던졌다.
“유 선생님? 여기는 어떻게 오셨어요?”
“선생님? 학교 선생님인가요?”
“네, 저희 교생 선생님이셨는데…….”
박 선생이 짧게 진혁에 대해서 설명하자 김 형사가 진혁을 잠시 보다가 희나를 돌아보았다. 희나는 그의 눈이 한순간 반짝 빛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형사의 직감으로 뭔가 눈치챈 것이 틀림없었다.
희나의 표정이 다급해졌다.
“사정을 듣고 찾아왔습니다. 유진혁이라고 합니다.”
“네. 실례지만 오신 이유가……?”
“저기, 잠깐만…….”
희나가 일어나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생각하고 자시고 할 여유가 없었다. 쓸데없는 말을 못 하게 막아야 했다.
희나가 패닉에 빠진 상태로 뭔가 말을 하려고 하는데 진혁의 커다란 손이 그녀의 어깨를 잡았다. 희나의 큰 눈이 절박하게 진혁을 올려보았다.
‘제발. 안 돼…….’
언제나처럼 단정한 흰 얼굴은 담담해 보였다. 진혁의 입술에서 조용한 말이 흘러나왔다.
“제가 주희나 학생과 화요일 밤에 함께 있었습니다.”
김 형사가 다시 눈을 빛내고, 박 선생과 희원의 얼굴이 경악에 빠졌다. 그리고 희나는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진혁의 말이 떨어진 후 물을 끼얹은 듯 묵묵하던 실내의 침묵은 김 형사의 목소리에 의해 깨졌다. 그는 굳은 표정으로 진혁 쪽으로 다가서며 말했다.
“일단 서로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잠시 얘기 좀 들을 수 있을까요.”
“잠깐만요, 이거 이상해요. 오해가 있어요.”
패닉에 빠진 희나는 정신없이 김 형사와 진혁의 사이로 끼어들어 나오는 대로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말이 이상해지는데, 이 선생님은 상관이 없어요. 제가 얘기할게요. 이 사람 얘기는 듣지 마세요.”
“미안하지만 우선 이분 이야기를 들어봐야겠다. 대기실에서 기다려주렴.”
“싫어요. 그럼 저도 같이 들어갈래요.”
“할 얘기가 있으면 다른 분을 붙여줄 테니 그분에게 말하도록 해.”
김 형사의 마지막 말에는 대들 수 없는 힘이 실려 있었다. 희나가 움찔해서 조금 뒤로 물러나자 김 형사는 진혁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갔다. 그리고 진혁을 데리고 온 남자에게 희나를 맡으라는 듯 눈짓을 하더니 진혁을 향해 정중하게 말을 건넸다.
“죄송하지만 각각 따로 진술을 받고 싶습니다. 따로 조사실로 들어와 주시기 바랍니다.”
“하지만…….”
희나가 포기하지 못하고 진혁의 팔소매를 잡았다. 그러자 진혁의 커다란 손이 희나의 어깨를 잡았다. 그는 차분한 표정으로 희나를 쳐다보면서 다정하게 말했다.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돼. 금방 다녀올 테니 걱정 마.”
“안 돼요, 잠깐…… 가지 말아요.”
“난 괜찮아. 걱정할 거 없어.”
그리고 그는 부드럽게 희나의 손을 소매에서 떼어 내고 김 형사의 뒤를 따라 대기실을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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