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탐색전 (2)
“나? 스물다섯.”
“에엑? 스물다섯?”
희나는 놀랐다. 처음 봤을 때는 대학교 초년생 정도라고 생각했고, 지금은 슈트를 입고 있어서 좀 더 어른스럽게 보이긴 했지만 스물두 살 정도라고 생각했다. 일곱 살이나 많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저런 얼굴로 스물다섯 살이라니. 못 믿겠다는 듯 그를 쳐다보던 희나가 입술을 비죽였다.
“뭐야. 선생님도 아저씨였잖아?”
“나도 아니까 너무 대놓고 말하지는 마.”
우울하게 말하는 진혁을 보고 희나는 킥킥 웃었다. 진혁이 교생이 아니고,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다면 그렇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직후 누가 머릿속을 본 것도 아닌데 민망했다. 희나는 고개를 휘휘 저어 생각을 몰아낸 뒤 닭살이 돋는 팔을 슬쩍 긁으며 방금 전까지 하던 총무 이야기로 돌아갔다.
“어쨌든 그 아저씨가 자꾸 오빠라고 부르라고 하면서 힘든 일 있으면 자기한테 말하래요. 그게 짜증 나서 식당에 앉아 있기가 좀 그래요.”
말해 놓고 희나는 미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생각해보면 선규가 해 주겠다는 것들은 지금 진혁이 이미 해 주고 있는 것과 유사했다. 힘든 일이 있으면 돕겠다고 하는 것도 그렇고, 나이도 비슷하고.
한 가지 큰 차이가 있다면 진혁의 경우는 희나 쪽에서 먼저 도움을 빙자한 빈대 붙기를 한 것이고 선규에게는 그러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마 선규를 먼저 알게 됐어도 그녀는 그냥 집에서 살면 살았지 그 사람에겐 절대 보증인이 되어달라거나 하는 말은 안 했을 거다.
‘왜 그러는 거지. 외모가…… 달라서 그런가.’
희나는 나무젓가락을 입에 문 채로 슬쩍 진혁을 돌아보았다. 단정한 외양이 깨끗하고 성실해 보인다. 어쩐지 음흉해 보이지 않고, 선의에 대한 대가를 요구하지 않을 것 같은 분위기가 있다.
그녀의 젓가락질이 멈춘 것을 느꼈는지 진혁이 희나를 올려다보았다. 그리고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희나에게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렇게 봐?”
“그냥요. 왜 선생님이 인기가 있나 해서.”
선규랑 비교해보고 있었다고는 말할 수가 없어서 별생각 없이 한 희나의 말에 진혁이 얼굴을 조금 붉혔다.
“뭐야, 그게.”
“멍해 보이는 데다 알고 보면 완전 아저씬데 이상해서요.”
“아저씨라서 미안하다.”
돌직구에 진혁이 한숨을 내쉬면서 말했다. 발끈하면 좋을 텐데 괴롭혀도 큰 반응이 없으니 재미가 없다.
‘뭐 좀 어려 보이는 거뿐, 바보 멍청이 호구 같은데. 잘생기긴 무슨, 그냥 키 크고 아무 데서나 실실 웃고 다니니까 그런 거겠지.’
그렇게 혼자 결론을 내리던 희나는 다른 의문을 품었다.
‘근데 이 사람은 날 어떻게 생각할까?’
바닥에 내려놓은 찬합들은 정갈하고 정성이 담겨 있었다. 어머니가 아들을 생각해서 싸준 거니 당연하겠지만, 그걸 왜 나하고 같이 먹는 걸까.
‘총무 아저씨는 다른 의도가 있다 해도 선생님은 그런 것 같지도 않은데.’
그에게 호감을 살 만한 행동은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진혁에게 그녀는 협박 미수범인 원조교제 여고생일 뿐이다.
“선생님은 왜 나한테 잘해줘요? 내가 불쌍해서?”
“그거 무슨 정기 검진이야? 또 물어봐?”
“고시원까지는 여동생 생각나서 그러려니 했는데 지금 밥까지 챙겨주고 있잖아요. 내가 한 행동 보면 엮이기 싫은 게 정상인데.”
“그냥 두고 볼 수가 없어서 그래. 누구나 그럴 거야.”
“안 그러던데요. 왜 두고 볼 수가 없는데요?”
희나는 ‘나한테 호감이 있어서?’ 하는 대답을 순간 떠올렸으나 진혁의 입에서 나온 건 다른 말이었다.
“위태로워 보이니까.”
그녀가 이건 무슨 말이냐- 하는 표정으로 쳐다보고 있으려니 그가 말을 이어 갔다.
“조금만 더 압박을 가하면 크게 비뚤어져버릴 것처럼 보였어.”
‘그래서 예비 불량 청소년을 교화하려고 하셨다? 참스승 나셨네.’
희나의 마음속에 배배 꼬인 생각들이 피어났다. 어쩐지 판에 박힌 옳은 말만 늘어놓는 그의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난 네가 원래 나쁜 애라고는 생각 안 해. 가끔 사악해 보일 때가 있긴 하지만…….”
“누가 사악하다는 거예요?”
“네가 사정이 안 좋다고 해서 엇나가고 그러는 게 용서되는 건 아니야. 안 좋은 것도 문제지만 엇나가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
희나는 설교 모드에 들어가려는 진혁의 말을 가로막듯 젓가락을 쥔 손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그럼 나여서가 아니라 누구한테라도 그랬을 거란 말이에요?”
물으면서도 그녀는 ‘이런 걸 묻는 건 이상하다’라고 도중에 자각했다. 어떤 대답이 나와도 이상할 텐데 뭘 바라고 묻는 건지 스스로도 의미를 알 수가 없었다.
그 질문 때문에 좁다란 사회과 지도실에 미묘한 긴장이 흘렀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진혁이 희나를 보지 않은 채로 나직이 말했다.
“너야말로…….”
“네?”
질문에 대한 대답이 아닌 엉뚱한 말에 희나가 반문했다.
“전에도 이런 적 있어?”
“어떤 적요?”
“다른 사람한테도 협박한 적 있어?”
그의 질문에 희나가 눈살을 찌푸렸지만 진혁의 눈빛은 진지했다. 결국 그녀는 시선을 돌리며 툭 내뱉었다.
“없어요.”
“다행이네.”
그녀의 대답을 듣고 진혁이 부드럽게 웃었다.
“난 괜찮지만 이제 그런 짓은 하지 마.”
“내가 하는 말을 믿어요? 나 거짓말 잘하는데.”
“안 믿을 거면 묻지 않는 게 낫지.”
희나는 협박하고 사기 치려고 했다. 짜증 나는 순간에 멍청하게 걸어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거슬려서. 그리고 그로 인해 일어났을지도 모를 일에 죄책감도 느낀 적 없다.
‘왜 그렇게 쉽게 용서하고 내 말을 믿는 거야.’
그녀가 묵묵히 생각에 잠겨 있자 진혁이 분위기를 환기시키려는 듯 말을 돌렸다.
“어쨌든 밥 좀 잘 챙겨 먹고 다녀. 넌 너무 말랐어.”
“흥. 처음 봤을 땐 예쁘다고 했잖아요.”
희나는 속으로 ‘아, 내가 왜 자꾸 이런 소릴 하지’라고 생각했지만 이미 나와 버린 말이었다.
질문을 해도 시원하게 풀리지 않는 무엇 때문에 답답해서 갈증이 났다. 핵심을 피해 가고 있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계속 확인하고 싶어져 도발적인 말을 하게 된다. 선생님과 제자의 대화라기엔 아슬아슬한 선에서 진혁을 몰아붙이며 줄타기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좀 더 찌면 더 예뻐질 거야.”
진혁은 계속 그녀를 보지도 않은 채 건조하게 말했다. 말투가 그래서 희나는 칭찬임에도 아무 의미 없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러면 이따 밥이나 사줘요. 냉면 먹고 싶어.”
“오늘은 과외 하러 가야 돼.”
진혁의 짧은 대답에 희나는 맥이 탁 풀리는 느낌이었다.
처음 봤을 때랑 두 번째 만났을 때는 그가 자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다고 느꼈지만, 지금은 그냥 여동생처럼 대하는 것 같다.
‘이제 흥미가 떨어진 건가.’
희나는 재연을 떠올렸다.
이지적이고 성숙해 보이는 미인. 선생님보다 누나라고 생각했는데 나이를 들어보니 둘이 비슷한 또래일 것 같다. 나 같은 버릇없는 여고생보다 훨씬 매력적인 상대다.
이제 사적인 만남에 선을 그으려는 걸까. 그 사람이랑은 함께 다니면서?
‘뭐 그러면 잘된 거지.’
씁쓸한 기분이 드는 건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제멋대로 굴던 걸 못 하게 되어서라고 희나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
잘 생각해보면 여동생이 생각나서 잘해주는 게 훨씬 편하다. 동정 받는 건 싫지만 선생님이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며 자기만족을 위해 그러는 게 아니니까 참을 만하다. 흑심이 없다면 부담스럽거나 불안할 일도 없으니까. 잘된 일인 거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희나는 지도실 바닥에 쌓인 먼지를 발끝으로 밀어내며 물었다.
“선생님 동생 아직도 못 찾았어요?”
갑작스런 화제 전환에 진혁이 희나를 잠깐 돌아보았다가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찾는 건 거의 포기했다고나 할까.”
“경찰에서는 뭐래요?”
“별말 없지. 실종이 아니라 가출이 확실해서.”
“연락 왔었어요?”
“본가 쪽으로 전화가 몇 번 왔었어.”
그 연락들은 아마 돈을 요구하기 위한 것일 거다. 돌아오지도 않고 행방을 말하지도 않고 안심시켜줄 생각도 없으면서 연락한다면 그것뿐이다.
표정이 어두운 진혁을 바라보던 희나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내가 좀 알아볼까요?”
진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제안하는 희나 쪽에서도 나답지 않은 일이라고 조금 놀라고 있었다.
이 근처에서 어슬렁거리는 가출 소녀라면 진혁보다는 또래인 희나가 찾아보기 더 쉬울 것이다. 그녀에 대해 알 만한 녀석들도 진혁에게는 말하지 않겠지만 희나에게라면 말해 줄 테니까.
귀찮은 일에 엮이기 싫어서 여태까지 무시해온 희나였지만 조금쯤은 그가 좋아할 만한 일을 해줘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으면 기쁜 얼굴로 고맙다고 말할까? 딱히 그런 얼굴을 보고 싶은 건 아니지만.’
희나는 생각했다. 그냥 빚지고 살기 싫을 뿐이다. 그리고 조금 호기심도 생겼다.
여동생을 찾고 나면 지금 이 관계는 어떻게 되는 걸까? 나에게서 여동생을 연상하고 있었다면 그 후엔 손을 떼게 될까?
희나의 머릿속에서 돌아가고 있는 생각을 알 리 없는 진혁이 조심스레 물어왔다.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어?”
“물어볼 만한 사람이 있어요. 사진 좀 몇 장 주세요.”
진혁은 바로 휴대폰을 꺼내서 사진 몇 장을 전송하기 시작했다.
“이름은 유진혜고 열아홉 살이야. 키는 한 162 정도에 체격은 보통 정도.”
유진혜란 이름은 이제 친숙해서 무슨 아는 사람 같다. 만나게 되면 묘한 기분이 들 것 같다.
희나는 대충 그의 말을 메모하고 나서 물었다.
“집에서 나간 지는 얼마나 됐어요?”
“이제 거의 1년쯤 되어가네.”
“그럼 그동안 내내 그런 식으로 찾아다닌 거예요?”
‘그런 식으로’란 말이 첫 만남 당시의 상황을 의미한다는 걸 눈치챈 진혁이 고개를 저었다.
“그런 식으로 해본 건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난 사실 처음 한 달 정도 빼면 거의 손을 놓고 있었어.”
“그럼 그땐 왜 새삼스럽게?”
‘정말 원조교제 하려다가 둘러댄 거 아냐?’ 하고 의심하는 걸로 보였는지 진혁이 손을 내저으며 변명했다.
“그 전달쯤에 동생이 천호동 근처에서 ‘그걸’ 한다는 말을 들었거든.”
그럴듯한 이유에 희나는 수긍했다. 진혁은 동생의 사진이 뜬 스마트폰을 잠시 바라보다가 내려놓고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이제 슬슬 가봐야겠다. 찾으면 연락해줘.”
“그럴게요.”
정리하는 그를 보면서도 희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그도 별다른 말 없이 혼자서 가져온 찬합을 쇼핑백에 깔끔하게 챙겨 넣었다.
“그럼.”
짧게 말하고 나가려는 진혁에게 희나가 빠뜨린 찬합 하나를 가리켰다.
“이거 하나 빼먹었는데요.”
“그건 딸기니까 가져가서 먹어.”
그렇게 말하고 부드럽게 웃은 뒤 그는 몸을 돌렸다.
남겨진 찬합통과 진혁을 번갈아 보던 희나가 다시 그를 불러 세웠다.
“저기…….”
“……?”
“잘 먹었어요.”
기어들어 가는 듯한 목소리에 진혁이 빙긋 웃더니 쇼핑백을 살짝 들어 보였다.
“이건 학교 냉장고에 둘 테니 괜찮으면 여기서 같이 먹자.”
“좋을 대로 하세요.”
희나가 시선을 피한 채 툴툴거리듯 말하자 진혁에게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내가 과외 하는 날은 월요일이랑 목요일이야.”
“그래서 어쩌라고요.”
“그냥 뭐, 먹고 싶은 게 있으면 전처럼…….”
그는 말을 맺지 못하고 말끝을 흐렸다.
‘사주겠단 건가? 바쁘다더니 동생 찾아준다고 하니까 시간이 나나 보네.’
희나는 부루퉁한 표정으로 고개를 대충 끄덕였다. 그러나 진혁의 입에서 나온 말을 듣고 그를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사람에게 사달라고 하지 말고.”
“그 사람요?”
진혁은 희나에게 시선을 맞추지 않고 딴 데를 보며 말을 이었다.
“위험하니까, 잘 모르는 사람은…….”
희나는 그가 선규에 대해서 말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당신도 제대로 알게 된 지는 일주일밖에 안 됐거든? 자기는 안전하다는 거야?’
심술궂은 질문이 마구 떠올랐지만 희나는 입 밖에 내지 않았다. 왠지 입을 열면 입꼬리가 올라갈 것 같았다. 그녀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스스로 모순을 알고 있는지 진혁은 얼굴을 좀 붉혔다.
“뭐, 삥 뜯고 싶어지면 참고할게요.”
다시 흐르기 시작한 묘한 기류가 오글오글하다. 희나는 일부러 퉁명스럽게 말했지만 입가가 조금 떨렸다.
“아, 그리고…….”
말할까 말까 고민하는 듯 약간 머뭇거리던 진혁이 결심한 듯 입을 열었다.
“거기 앉을 때는…… 다리 좀 모으고 앉아.”
빠르게 말을 내뱉은 그는 희나가 말의 의미를 파악하기도 전에 휙 돌아서 나가버렸다.
그 황망함에 희나는 잠시 멍해졌다가 스스로를 내려다보았다. 한쪽 다리를 책 더미에 세우고 앉아서 치마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자세다.
‘뭐야. 속바지도 안 입고 이런 자세로 앉을 리가 없잖아.’
보통 타이즈가 아니라 청반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봤다면 곧바로 속옷이 아님을 눈치챘을 것이다.
희나는 그가 줄곧 이쪽을 보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남자라면 시선이 가는 게 보통일 텐데. 그 결백할 정도의 정직성에 웃음이 나왔다.
‘뭐야, 역시 신경 쓰잖아. 아닌 척해도 다 보이는데 뭐.’
왠지 기묘한 승리감이 들었다.
“역시 나한테 안 되잖아, 바보 아저씨.”
희나는 킥킥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아까보다 한결 가벼워진 마음으로 진혁이 주고 간 딸기를 하나 더 꺼내서 입에 물었다.
딸기는 아주 달콤하고 상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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