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접근 (2)
“유 선생님, 여자 친구는 있으세요?”
“네, 뭐…….”
여자 친구는 없었지만 옆에 서 있던 교생의 질문에 진혁은 그냥 그렇게 대답했다. 여고생들에게 인기 있는 건 솔직히 기쁘고 어깨가 으쓱해지지만 오해를 받고 싶진 않았다.
그는 걸어가면서 운동장 쪽을 돌아보았다. 몇몇 소녀들이 뭔가 급한 일이라도 있는 것처럼 운동장을 가로질러 뛰어가고 있었다.
말투는 대담하지만 그래도 마구 뛰어다니며 거리낌 없이 장난치고 웃고 떠드는 모습이 영락없는 어린 소녀들이다.
아무리 보아도 여동생처럼 보일 뿐, 연애 대상으로는 느껴지지 않는다. 희나에 대해서는 그저 연령을 착각했을 뿐이라고 선을 긋고 싶었다.
“유 선생님? 뭐 하세요?”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애먼 생각에 잠겨 멍청히 서 있던 진혁은 얼굴을 붉히며 서둘러 그들을 따라갔다.
***
“그럼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일과를 마치고 교무실을 나서려고 하는 진혁을 뒤에서 누군가 불러 세웠다.
“유 선생님- 잠시만요-!”
돌아보니 여자 교생이었다.
‘심…… 재연이라고 했던가?’
이지적으로 보이는 얼굴에 치마 정장이 잘 어울렸다.
그녀가 붙임성 있게 웃으며 말했다.
“첫날이니 교생들끼리 다 같이 한잔하러 가면 어때요?”
이미 먼저 이야기가 됐는지 그녀의 뒤쪽에 벌써 함께 실습 온 6~7명의 교생들이 이쪽을 보고 있었다. 진혁도 거절할 이유가 있을 리 없다.
“좋습니다.”
그렇게 결정되어 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며 교사를 걸어 나왔다.
진혁은 딱히 다른 교생이랑 이야기할 기회도 겨를도 없어서 몰랐는데 다들 좋은 사람처럼 보였다. 오늘 처음 만났을 뿐인데도 공통의 화제가 있으니 이야기도 끊이지 않았다.
그러나 교문을 나오는 순간, 진혁의 몸이 딱 굳었다. 교문 조금 왼쪽으로 난 골목길에서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소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말할 것도 없이 희나였다. 그녀는 걸어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 멈춰 선 채 이쪽을 보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장소에서 환영처럼 서 있는 그녀를 보고 놀랐지만, 그래도 면역이 생겼는지 진혁은 아침의 교실에서보다는 빨리 정상 상태를 회복했다.
떨어지지 않는 시선을 그녀로부터 잡아떼며 그는 머릿속으로 생각했다.
‘누굴 기다리는 거겠지.’
그녀는 진혁을 모르는 척했고, 하루 종일 그녀와는 접점이 없었다. 그녀는 급식도 먹지 않고 점심시간엔 자리를 비웠고, 청소 지도를 할 때도 어느 결에 사라져 있었다.
이제 와서 그녀가 여기서 나를 보고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결론을 내린 진혁이 신경 쓰지 않으려 애쓰며 일행들과 함께 골목을 지나치려고 할 때였다.
주머니에 넣어 둔 휴대폰이 진동했다. 짧게 울리고 멎는 것이 문자 메시지인 것 같았다.
진혁은 휴대폰을 꺼내 화면을 확인했다.
「방금 나 봤죠?」
번호는 저장되어 있지 않았지만 메시지를 보자마자 희나라는 직감이 왔다.
진혁은 반사적으로 방금 전까지 그녀가 서 있던 곳을 다시 돌아봤지만 이미 거기에 그녀는 없었다.
다시 연달아 메시지가 도착했다.
「잠깐 나와요.」
명령조의 말. 그 딱딱함에 화가 나는 대신 가슴이 쿵쿵 뛰었다.
‘왜 나오라는 거지?’
곧 그럴싸한 이유가 하나 떠올랐다.
‘나를 기억해 낸 걸까? 원조교제 사실을 학교에 말하지 못하게 하려는 걸까?’
확실히 그녀로서는 불안할 법한 일이다. 그러나 진혁은 다른 누군가에게 그녀의 매춘 사실에 대해 말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와 사적으로 만나는 건 금지된 일이다.
그는 일행의 뒤로 조금 처져서 걸으며 메시지를 작성했다.
「주희나 학생 맞죠? 밖에서 만나는 건 곤란합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내일 학교에서 야기할까요?」
문제가 없는 걸 확인하고 전송했다. 전송 버튼을 누른 뒤에도 떨리는 심장이 가라앉질 않았다.
“유 선생님? 여자 친구한테 문자 왔어요?”
“아뇨, 아닙니다.”
재연이 뒤처지는 그를 돌아보며 묻자 진혁은 웃으면서 뜨거워진 뺨을 가볍게 만졌다.
희나의 별 의미 없을 짧은 문자에도 이렇게 심장이 뛰다니, 스스로도 조금 어이가 없었다.
그때 답장이 왔는지 휴대폰이 울렸다.
다시 휴대폰을 본 순간, 진혁의 설레던 마음은 싸늘하게 식었다. 그녀가 전송한 것은 대화 내용이 찍힌 스크린 샷이었다.
「기다렸죠? 제가 깜찍이고딩냥이에요. 채팅한 사람 맞아요?」
「네, 맞습니다.」
「이거 제 번호니까 여기로 전화하면 돼요. 아까 천호동이라고 했죠?」
「네, 지금 천호동이에요.」
「바로 나올 수 있어요? 내가 아는 모텔 있으니까 거기로 가요.」
그날 바로 삭제했지만 내용은 똑똑히 기억났다. 스크린 샷 위에는 또렷하게 진혁의 휴대폰 번호가 찍혀 있었다.
굳어 버린 그의 손 위에서 다시 휴대폰이 진동하며 새로운 메시지를 표시했다.
「쓸데없는 얘기 하지 말고 나와요.」
거기까지 확인하자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목적은 자기 방어가 아니라 협박임을.
이번엔 정말로 표정 관리를 할 수가 없었다.
다소 창백해진 진혁이 더듬거리며 말했다.
“저 죄송한데…… 급한 볼일이 있어서……. 다음에 함께 가죠.”
다들 놀란 표정을 지었으나 변명할 정신도 없었다. 진혁은 고개를 숙여 사과한 뒤 서둘러 자리를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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