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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 그 너머에는-4화 (4/140)

4화. 접근 (1)

교생이라는 말에 아이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남녀 공학이었지만 남녀가 반이 나뉘어 있으므로 젊은 남자 선생님의 등장은 언제나 여학생들의 관심을 모으게 된다.

그러나 희나는 흥미가 없어서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구름도 별로 없는 파란 하늘은 더없이 청명해 보였다.

밖에 나가고 싶다고 멍하니 생각하고 있는데 갑자기 아이들의 환호성이 들렸다. 옆자리에 앉은 민정이 “훈남이다.”라고 중얼거리는 것을 듣고 관심이 동해 희나도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곧 생글생글 웃고 있는 노처녀 담임 옆에 젊은 남자가 하나 서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희고 갸름한 얼굴에 뿔테 안경. 키가 크고 조금 마른 듯한 체형에 잘 어울리는 슈트.

처음 희나는 낯이 익다고만 느꼈을 뿐 누군지 눈치채지 못했다. 어디서 본 적이 있나 보다- 하고 막연히 생각했을 뿐이다.

“안녕하세요, 유진혁입니다. 2학년 3반의 교생으로 배정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외모만큼 듣기 좋은 음성으로 소개를 마치자 여학생들의 “꺄아-!” 하는 환호성이 다시 이어졌다.

열렬한 환대에 젊은 남자 선생은 당황한 듯 어색하게 웃었다. 그리고 미소 띤 눈으로 반 안을 둘러보던 그가 창가 자리에 앉아 있는 희나를 발견했다.

시선이 마주치자 딱 굳어지는 얼굴. 그 당황한 시선을 보자 희나는 두 달 전의 기억이 되살아났다.

분명했다. 여동생을 찾아다니던 가엾은 원조교제남이다.

의외의 장소에서 마주쳐 희나도 몹시 놀랐으나 내색하지 않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저렇게 쳐다보면 아는 사이인 거 티 나잖아. 멍청하기는.’

희나는 고개를 돌려서 건너편에 앉아 있는 소영과 사과머리의 기색을 살폈다. 두 사람 다 불량하게 앉아 있을 뿐 교생에 대해서 아무것도 눈치챈 기색이 없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다. 그녀들은 저 남자를 보지도 못했다. 저 남자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은 희나뿐이다. 연락도 다 희나의 휴대폰으로 했다.

‘그래, 휴대폰……!’

휴대폰에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그때 원조교제를 시도한 문자는 이 손 안의 휴대폰에 아직도 고스란히 남아 있을 터였다.

교생이 학생에게 원조교제를 시도했다. 당장 모가지가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은 스캔들이다.

‘이건 써먹을 수 있겠는데.’

여전히 굳어 있는 그의 얼굴을 보며 희나의 예쁜 입꼬리가 사악하게 위를 향했다.

***

아침 조례를 마치고 진혁은 담임인 박 선생을 따라 교실을 나왔다.

어딘지 굳어 있는 그를 보고 박 선생은 긴장했다고 생각했는지 따뜻하게 말을 걸었다.

“처음이라 좀 정신이 없죠? 이제 몇 번 더 하다 보면 편해지실 거예요.”

“아, 죄송합니다. 적응이 잘 안 돼서…….”

“신경 쓰지 마세요. 4교시부터 교장 선생님 강의 있죠? 그 전에는 실습 일지 쓰실 건가요?”

“네. 그런데 괜찮다면 비는 시간에 학생들 이름을 외우고 싶습니다. 출석부를 빌릴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제가 그럼 이런저런 얘기 해 드릴게요. 같이 가시죠.”

박 선생은 흔쾌히 대답하며 출석부와 뭔가를 챙기더니 그를 4층 교사 준비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벌써 여러 명의 교생들이 모여 출석부를 보고 실습 일지를 쓰는 등 열심이었다.

진혁과 박 선생은 비어 있는 테이블로 가서 자리에 앉았다.

“이게 출석부고 이쪽은 생활기록부예요. 아마 생활기록부까지 볼 필요는 없을 거고……. 출석부 보면서 이름을 외우시면 돼요. 학생들에 대해 궁금한 점 있으면 물어보시고요.”

친절한 제안에 진혁은 감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출석부를 펼치자 박 선생이 프린트 한 장을 더 넘겨주며 물었다.

“그리고 이게 자리 배치도예요. 이름이랑 얼굴이 매치가 되는 학생이 있나요?”

이름만 나열된 출석부만 봤을 때는 막막했지만 자리 배치도가 있으니 조금 생각이 나는 것도 같았다. 진혁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맨 앞자리에 있던 아이들이랑 뒷자리에 있던 몇 명이 생각이 나네요.”

“뒷자리 애들이면 우리 반 단풍나무들이요?”

‘단풍나무’란 표현을 듣고 진혁은 픽 웃었다. 확실히 뒷자리 아이들이 알록달록하긴 했다.

“아이들 머리 색이 화려하더군요. 두발 자유인가 보죠?”

“기본적으로 심하게 무지개색만 아니면 대강 다 허용해요. 이 아이들 외에는 기억에 남는 애들 없으신가요?”

“글쎄요…….”

진혁이 기억을 더듬어 보려는데 박 선생이 손가락을 뻗어 자리 배치도의 한 자리를 톡톡 두들겼다.

자리 배치도에는 ‘주희나’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이 애는…….”

“아까 선생님이 쳐다보시던 그 애죠.”

그 말에 진혁은 얼굴을 붉혔다. 그 반응을 보고 박 선생은 재미있다는 듯이 웃었다.

“아주 인형처럼 예쁜 학생이죠? 저도 처음 봤을 땐 넋을 잃고 쳐다봤어요.”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좀 놀라서…….”

진혁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박 선생은 여전히 웃는 얼굴이었다.

“하하, 왜 놀라셨어요?”

“……다른 데서 본 적이 있거든요.”

“네? 어디서요?”

대답을 해도 되나 머뭇거리던 진혁은 방금 전의 대화와 박 선생의 따뜻한 시선을 보고 사실대로 말해 버렸다.

“……집 근처 주유소에서.”

“주유소요?”

“네. 새벽 아르바이트를 하더군요.”

“야간이요?”

“잘 모르겠습니다. 오전 6~7시 정도에 있더라고요.”

박 선생은 모르고 있었던 듯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진혁의 이야기는 사실이었다.

그는 올해 초부터 주말마다 부모님의 일을 도우러 충북에 위치한 과수원에 내려가고 있었다. 본래 일을 도와주러 오던 사람이 갑작스레 그만두었기 때문이다. 토요일 새벽 일찍 출발해서 월요일 새벽에 돌아오는데, 그때마다 항상 희나가 있었다.

“그런데 희나는 선생님을 모르는 것 같던데요?”

“아…… 모를 거라고 생각해요. 안에서는 밖이 보이지만 밖에선 안이 잘 안 보이니까요.”

“하긴…… 딱히 신경 안 쓰면 모르겠군요.”

“네. 하하- 뭐 그냥 다 똑같은 아저씨로 보이겠지요.”

진혁의 말을 듣고 박 선생은 잠시 고개를 기울여 생각하는 듯하더니 말을 이어 갔다.

“제가 알기로는 방과 후에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거든요. 새벽에도 하는 줄은 몰랐네요…….”

“그 애가 그렇게 아르바이트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가정 형편이 많이 안 좋은 걸로 알고 있어요. 기초 수급자구요. 뭐 생활기록부 보시면 아실 거예요.”

진혁은 궁금했지만 생활기록부를 굳이 펼쳐 보진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조례 시간에 멍하니 쳐다봐서 이상하게 생각하고 있을 것이 뻔한데 굳이 긁어 부스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 후로도 계속 이어지는 박 선생의 수다를 듣다 보니 어느새 1교시 종료를 알리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자, 그럼 저는 수업이 있어서 이만 가 볼게요. 점심에 급식 지도 잘 부탁합니다.”

“네, 여러 가지 이야기 정말 감사합니다.”

박 선생을 보낸 뒤 혼자 남겨진 진혁은 주변을 슬쩍 살핀 후 생활기록부를 펼쳐 보았다.

20여 페이지를 대충 훑어보았을 즈음 드디어 ‘주희나’라고 쓰인 생활기록부가 나왔다.

진혁은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키며 생활기록부를 읽었다. 그리고 그녀의 학업 기록을 본 후 그는 생각했다.

‘열심히 사는 아이구나.’

방금 들은 대로라면 저녁 아르바이트에 주말 아르바이트까지 하고 있는데 희나는 1학년에 결석이 겨우 한 번뿐이었다. 성적은 딱히 좋다고 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심하게 나쁘지도 않다.

그녀가 성실하다고 생각하고 있긴 했다. 아주 이른 새벽임에도 졸거나 꾀를 부리는 모습 없이 늘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그 웃는 얼굴을 떠올린 진혁의 얼굴이 약간 붉어졌다.

사실 진혁은 희나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다.

매주 금요일 저녁에 내려가다가 우연히 사정이 생겨 토요일 새벽에 내려갔고, 그때 주유를 하며 희나를 처음 보았다. 아주 예쁜 데다 요령 부리지 않고 밝게 인사해 주는 모습이 피로를 가시게 해 줬었다. 그 뒤로 내려가는 시간을 바꾸게 된 것은 솔직히 그녀를 보기 위해서였다.

‘고등학생일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는데.’

키도 크고 말투도 어른스러운 데다 웨이브 파마를 하고 있어서 당연히 성인일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두 달 전, 뜻하지 않은 곳에서 희나가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정말 기절할 정도로 놀랐다.

진혁의 시선이 생활기록부에 붙어 있는 희나의 증명사진으로 향했다. 새침한 표정은 아까 아침에 본 희나의 얼굴 그대로였다. 주유소에서 웃고 있는 얼굴과는 생판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참견할 일 아닌 거 알면 참견하지 말고 꺼져요. 재수 없으니까.”

짜증으로 가득했던 두 달 전의 표정이 눈앞에 선명하게 떠올랐다.

‘다시는 못 보게 될 줄 알았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될 줄이야.’

그 이후로는 그 주유소에 한 번도 들르지 않았다.

슬슬 아물어 가던 싫은 생각이 떠오르자 진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는 사진에서 시선을 거두고 아래에 달린 인적 사항 란으로 내려갔다.

「기초 생활 수급자, 급식 지원 대상자, 학교 운영 지원비 대상자, 편부 가정.」

길게 쓰여 있는 특기 사항을 읽자 씁쓸함이 몰려왔다. 그린 듯이 불행한 가정환경이다.

‘그래서 엇나가게 된 걸까…….’

하지만 뭔가 의아하다.

원조교제 같은 걸로 돈을 쉽게 버는 학생이 굳이 고생스러운 새벽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려고 할까? 그것도 그렇게 성실하게?

풀리지 않는 의문을 품은 채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시간이 흘러가 금세 3교시 종료 벨이 울렸다.

진혁은 생각을 접고 교직 강의에 들어가기 위해 강당으로 향했다.

강의를 듣고 진혁은 다른 교생들과 함께 급식 지도를 하러 나왔다.

본관에 다다랐을 무렵 위에서 누군가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선생니이이이이임!”

올려다보니 여학생 네다섯 명이 3층 창문에 붙어서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교생들이 다 같이 웃으면서 손을 흔들자 학생들도 손을 마주 흔들었다.

“유진혁 선생니이이이임!”

아무 생각 없다가 이름을 다이렉트로 호명당한 진혁은 깜짝 놀랐다. 여학생들이 꺄아, 꺄아거리며 소리쳤다.

“선생님! 지현이가 선생님 좋대요! 사귀어 주세요!”

“꺄아아아아아악! 하지 마!”

“하지 말긴- 아까 그랬잖아!”

뒤에서 지현이 말렸지만 앞의 여학생들은 목소리를 낮추지 않았다.

내용은 좀 당황스러웠지만 풋풋하고 귀여운 모습들에 옛날 생각이 나서 진혁은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그 웃음은 곧 멎고 난감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야, 지현이 남자 친구 있잖아-! 선생님은 내 꺼, 내 꺼!”

“너도 학원에 심남 있잖아~!”

“그깟 놈 버려!”

“선생님~ 전 양다리라도 좋아요!”

“지현이도 세컨드라도 좋대요!”

소녀들은 거침없이 꺄하하하, 하고 웃으며 소리쳤다. 거리가 멀어서 이름만 말 안 하면 얼굴이 안 보일 거라 생각하고 마구 폭주하는 모양이었다.

“너희들! 위험하니까 몸 내밀지 마!”

난처해하는 진혁의 뒤에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돌아보니 교무 회의 때 얼굴을 익힌 학생 주임이었다.

호통을 들은 여학생들은 “꺄아- 학주다-!” 하면서 흩어져 복도 안으로 자취를 감추었다.

학주의 시선이 진혁에게 닿았다. 잘못한 건 없었지만 진혁은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하하- 첫날부터 고생이군요.”

“아닙니다. 옛날 생각 나서 좋네요.”

“옛날이라니, 고등학교 졸업한 지 얼마 안 되지 않았어요?”

다행히 학주는 학생들에게만 엄격한 사람인지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걸어 왔다.

“벌써 5년이 넘었는걸요.”

“그렇게 안 보이는데 제대하고 왔나 보군요.”

진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학주가 먼저 걷기 시작하자 교생들은 모두 뒤를 따랐다.

“학생들과 거리를 잘 두셔야 될 거예요. 여학생들이 교생에게 열광하는 거야 뭐 원래부터 흔한 일이지만…….”

선생님답게 설교하는 어조로 말을 늘어놓다가 학주는 진혁을 힐끔 보며 말했다.

“유 선생님은 요즘 애들이 좋아하는 스타일이니까요.”

그렇게 말하고 그는 숱이 줄어든 자신의 머리가 신경 쓰이는 듯 매만졌다. 옆에서 다른 교생들도 웃으며 맞장구를 쳐서 진혁은 왠지 민망해졌다.

“유 선생님, 여자 친구는 있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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