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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단, 그 너머에는-3화 (3/140)

3화. 최악의 첫인상 (2)

거기에 서 있는 사람은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남자였다.

야상 재킷에 검은 니트, 청바지에 뿔테 안경. 수줍은 듯 약간 붉어진 하얀 얼굴.

음흉해 보이는 변태 중년을 상상했지만 전혀 달랐다. 제법 잘생긴 데다 깔끔하고 훈훈해 보이는 인상은 도저히 원조교제 같은 걸 할 것 같지가 않았다.

‘헌팅인가.’

길거리에 혼자 서 있으면 헌팅을 당하는 건 희나에겐 흔한 일이었다.

희나는 귀찮다는 듯이 고개를 돌리며 무시하려 했다. 그러자 그 차분한 목소리가 다시 말을 걸어 왔다.

“혹시…… 채팅하신 분인가요?”

얼굴을 잔뜩 붉히며 더듬더듬 하는 말을 듣고 놀라서 다시 그를 휙 돌아보았다. 그 기세에 그는 움찔하며 살짝 뒤로 물러섰다. 희나는 속으로 혀를 찼다.

‘이렇게 멀쩡해 보이는 인간도 그런 더러운 짓거리를 하는구나.’

가만히 있어도 딱히 여자가 부족할 것 같진 않은 얼굴이다. 그런데 굳이 여자 고등학생에게 돈까지 써 가며 관계를 맺으려고 하다니……. 언론에서 말하는 페도필리아나 뭐 그런 취미인 모양이다.

“저기…….”

“네, 그거 나 맞아요.”

희나는 쌀쌀맞게 대답했다. 그는 “아…….” 하더니 말없이 놀란 얼굴로 희나를 보기만 했다.

희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왜 그렇게 쳐다봐요?”

“아, 아니…… 그쪽처럼 예쁜 학생이 왜 이런 일을…….”

‘사돈 남 말 하고 있네.’

희나는 코웃음이 나오는 것을 눌러 참았다. 말끔한 외모에 상당한 호남이었지만 진심으로 경멸스럽게 느껴졌다. 조금도 같이 있고 싶지 않다.

시간 끌 필요 따윈 없으니 희나는 말없이 먼저 앞장서서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따라오는 기색이 없었다.

“안 따라오고 뭐 해요?”

“네? 아, 어디…… 가는 거예요?”

“모텔이지 어디긴 어디예요? 내가 아는 데로 가요.”

다시 싸늘하게 말하고 걷기 시작했다. 남자는 잠시 머뭇거리는가 싶더니 천천히 그녀를 따라 걸었다.

1분도 되지 않아서 궁전 모양의 장식이 요란하게 붙은, 천박해 보이는 건물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근방 중, 고등학생들에게 유명한 모텔이었다. 말하자면 돈에 눈이 멀어서 신분증 확인도 하지 않는 허술한 곳이란 뜻이다. 아까 그 녀석들은 이 건물 안에 이미 방을 잡고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희나가 할 일은 다음과 같았다. 들어가서 샤워를 하라고 말하고 녀석들에게 전화를 건 후에 도망친다. 그것뿐이다.

‘내 탓도 아닌데, 뭐.’

희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대로 데려가면 저 대학생은 분명히 호된 곤욕을 치를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위협을 당해서 그를 데려가기만 할 뿐인 피해자다. 돈을 뜯어내는 것도, 폭력이나 협박을 행사하는 것도 사과머리 패거리다. 희나에게는 10원 한 장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저런 변태 놈은 그런 일 당해도 싸. 쓸데없는 생각 할 필요 없어.’

그렇게 되뇌어도 어딘지 찜찜하다.

그러는 사이 궁전 모텔에 도착했다.

혼자 앞장서서 걷던 희나는 일단 모텔 앞에서 멈춰 섰다. 들어갈 때는 그가 먼저 들어가야 했다. 그가 모텔비를 계산하도록 해야 하니까.

그러나 뒤쫓아 오던 이 아청 변태는 희나가 멈춰 선 옆에 똑같이 멈춰 섰다.

가만히 선 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 청년에게 희나는 재촉하듯 말했다.

“뭐해요? 빨리 안 들어가고.”

“저기, 모텔에는 굳이 안 들어가도 괜찮은데요.”

‘이건 또 뭔 헛소리래.’

희나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사실은 좀 물어볼 게 있어서 나온 건데…….”

“물어보긴 뭘 물어봐요?”

“어, 그게 저기…….”

그는 주머니를 뒤져 휴대폰을 꺼내더니 뭔가를 찾아 희나에게 내밀었다. 뭐 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호기심이 동해서 화면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코가 날아갈 정도로 밝게 찍은 한 여자의 사진이 떠 있었다.

“……이게 뭐예요?”

“혹시 이 여자애 모르세요?”

질문을 받고 희나는 다시 주의 깊게 사진을 보았다. 머리를 화려하게 염색하고 화장도 몹시 진했지만 아직 얼굴이 앳돼서 고등학생 정도로 보였다. 그러나 이런 날라리 같은 여자애는 전혀 기억에 없다.

“글쎄요, 모르겠는데.”

희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하자 그는 조금 상심한 표정이 되었다.

“얘랑 하고 싶어서 나온 거예요?”

“아니, 무슨……그런…….”

쏘아붙이듯이 묻자 그는 얼굴을 붉히면서 손사래를 쳤다.

“내 여동생이에요. 가출해서 찾아다니고 있어요.”

얼굴만 봐도 집에 얌전히 붙어 있을 것 같아 보이진 않지만 가출이라니.

갑작스럽고 뜬금없는 변명에 혹시 그가 그들이 저지르려는 범행에 대해 눈치챈 게 아닌가 싶어서 희나는 조심스럽게 그의 기색을 살폈다. 하지만 청년의 표정에는 수상한 기색은 조금도 없었다.

희나는 자세히 보는 척하면서 그와 사진을 번갈아 가면서 다시 확인했다. 화장이 진해서 미묘하지만 그러고 보니 좀 닮은 것도 같았다.

‘멀쩡해 보이는데 꽤나 콩가루 집안인가 보네.’

그렇게 결론을 내린 희나는 들고 있던 휴대폰을 그에게 다시 돌려주며 물었다.

“근데 동생을 왜 이런 데 나와서 찾아요?”

“그게…… 여동생이 이 근처에서 그, 안 좋은 일을 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거든요. 이 동네 애들끼리는 서로 다 알 거라기에…….”

희나의 물음에 청년은 단어를 골라 가며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원조교제라는 단어조차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안 좋은 일’ 따위로 표현하는 걸 보니 눈물 겨운 여동생 스토리는 아무래도 진짜인 모양이었다.

‘뭐야, 무슨 지역별 원조교제 동호회라도 있는 줄 아나.’

그렇게 투덜거리긴 했지만 희나는 어쩌면 이 위에서 기다리고 있는 애들은 그 여자애가 어디 있는지 알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 가출 청소년들이 모일 만한 장소라면 그 애들도 분명히 뻔질나게 드나들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나는 ‘사실 당신을 상대로 범죄를 획책하고 있었는데 내 패거리들이라면 알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멍청하게 털어놓을 만큼 바보는 아니었다. 애초에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건 영 질색이었고.

“그런 거면 보자마자 물어보지, 뭐하러 여기까지 와요? 시간만 낭비했네.”

“미안해요. 학생이 너무 예뻐서……. 아무래도 내가 미쳤나 봐요.”

희나가 쌀쌀맞게 쏘아붙이자 청년이 작게 사과한다.

그렇게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데 희나의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기다리다 지친 녀석들이 문자를 보낸 모양이었다.

‘아, 망했네. 이제 어떻게 하지.’

원조교제를 하려던 파렴치한이면 모를까, 여동생 찾아 헤매는 불쌍한 오빠를 악의 소굴로 밀어 넣는 건 그녀로서도 조금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다. 게다가 안 한다는데 억지로 모텔로 끌고 들어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희나는 멍청하게 서 있는 남자에게 짜증을 냈다.

“아- 안 할 거면 빨랑 가요!”

“네, 아, 시간 빼앗아서 미안합니다.”

그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다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지갑을 꺼냈다.

“저기 그래도 그냥 갈 수는 없고…… 돈은 드릴게요.”

준다는데 굳이 받지 않을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차비 정도 주려나 보다- 하고 생각하며 손을 쑥 내민 희나의 눈이 동그래졌다. 그가 몇 장이나 되는 5만 원짜리 지폐를 내밀었기 때문이다.

“아까 이 정도 금액이라고 했죠?”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돈을 세어 보니 40만 원이었다. 아무것도 안 했는데 한 달 아르바이트비에 달하는 금액이 고스란히 주머니에 들어온 것이다.

“네, 맞네요. 그럼 잘 가요.”

큰돈이었지만 희나는 귀찮은 듯 입고 있던 재킷의 주머니에 대충 돈을 쑤셔 넣었다. 어차피 내가 쓸 수 있는 돈도 아니니까.

그녀가 차갑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는 때였다.

“잠깐만요.”

“왜요?”

“저기…… 이건 내가 참견할 일이 아니지만 정말 동생 보는 거 같아서 말하는 건데, 학생 이런 일 그만두세요. 예쁜 학생이 이런 일 하는 거 알면 부모님이 슬퍼하실 거예요.”

희나의 예쁜 이마가 마구 구겨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남에게서 그런 말 들을 이유는 없다. 그리고 더 화가 난 것은 그가 부모님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아마 아버지는 희나가 이러고 다니든 말든 슬퍼하기는커녕, 이만큼 돈이 된다는 걸 알면 시켜먹을지도 모른다.

“참견할 일 아닌 거 알면 참견하지 말고 꺼져요. 재수 없으니까.”

불쾌함을 그대로 담아 냉랭하게 내뱉자 남자의 얼굴이 충격을 받은 듯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희나는 돌아서서 그대로 휙 걸어가 버렸다. 다시 볼 일도 없는 저런 인간 아무려면 어떠냐.

골목을 벗어날 즈음 희나는 정신없이 울리고 있는 휴대폰을 꺼내 받았다.

[야, 미친 X아! 너 튀면 뒈진다고 했지? 우리 말이 말 같지가 않냐?]

희나는 끊임없이 이어지는 각종 창의적인 욕설을 빠르게 끊으며 말했다.

“……일이 잘 안 됐어. 내려와. 돈 줄 테니까.”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어 버린 희나는 큰길로 걸어 나갔다. 어쨌든 손을 더럽히지 않고 돈을 받았다는데 크게 뭐라고 하진 않을 거다. 대로변이니 돈을 건네주면 그냥 가게 해 줄 확률도 높았다.

겨우 한 시간 정도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었지만 치가 떨리도록 지긋지긋했다. 불러내도 다시는 절대 안 나온다. 이런 짜증 나는 일에 엮이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희나는 몇 번이나 그렇게 생각하며 신경질적으로 손톱을 물어뜯었다.

***

5월의 어느 월요일.

두 달 정도 시간이 지나자 봄방학의 불쾌함은 점점 그녀의 마음에서 지워져 갔다.

전과 달라진 것은 별로 없었다. 그저 1학년 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 하나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게 되었을 뿐이다.

언제나처럼 수업 종이 울리기 직전에 교실로 들어온 희나는 창가 쪽 자신의 자리에 앉아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곧 종이 울리고 드르륵 소리와 함께 교실 앞문이 열렸다. 그리고 안으로 들어선 노처녀 담임은 항상 후줄근하던 차림이 어째 오늘따라 잔뜩 신경을 쓴 모양새였다.

‘맞선이라도 보러 가나.’

희나는 심드렁하게 그렇게 생각했다. 다른 아이들도 담임의 승부 패션을 눈치챘는지 소곤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렸다.

담임은 어색하게 헛기침을 하더니 교탁 옆을 탕탕 두들기며 말했다.

“조용, 조용-. 반장, 인사해!”

“차렷, 경례.” 하는 소리와 함께 인사를 마치고 평소대로 조례가 시작되었다. 늘 별거 없는 내용이었는데 오늘은 나름 새로운 소식이 있었다.

“오늘부터 교생 실습이 시작됩니다. 앞으로 4주간 함께하게 될 유진혁 선생님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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