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토자포 24
“조앵기, 뭐 하는 거냐!”
양왕이 소리쳤다.
조앵기는 잔뜩 굳은 얼굴이었지만 눈물을 흘리며 그를 뿌리쳤다.
“상관없잖아요! 아… 놔요……! 아악!”
양왕은 그녀를 꽉 잡았다.
“너… 죽으려는 거야?”
“그게 뭐가 어때서요? 상관없잖아요, 내 목숨은 내 거예요!”
“아니, 네 것이 아니야. 넌 내 거야!”
양왕은 그녀의 얼굴을 잡고 차갑게 내뱉었다.
“언동, 가서 엽연채를 잡아 와.”
“연채가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싫은 건 당신이에요! 당신을 보고 싶지 않아요! 죽어도 당신 옆에 있고 싶지 않아요.”
조앵기가 소리쳤다. 그녀의 한 마디 한 마디에 양왕의 마음이 갈기갈기 찢겨 나갔다. 그는 고요한 눈으로 그녀를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만해.”
“아니요! 당신이 미워요! 여기 있지 않을 거예요, 당신 곁에 있지 않을 거라고요……!”
그녀의 외침은 점점 비명으로 변했다. 양왕은 갑자기 조앵기의 턱을 잡고 자기 얼굴을 보게 했다.
“무슨 상관이지?”
양왕이 차갑게 웃었다.
“조앵기. 네가 원하든 말든, 좋아하든 말든, 너는 언제나 본왕 곁에 있어야만 해! 살아서도 죽어서도 날 벗어날 수 없어! 나에게서 도망치려 한다면 본왕은 너를 묶어 둘 거야. 묶어서 안 되면 네 다리를 분지를 거야! 네가 죽음으로 도망가겠다면, 엽연채를 죽여 버릴 거다!”
조앵기는 그의 얼음장 같은 말에 겁에 질렸다. 두렵기도 하고 슬픔이 밀려와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양왕은 서럽게 우는 그녀를 보자 찢어질 듯 마음이 아파 그녀를 끌어안고 눈물을 닦아 주었다.
“울지 마, 그만. 착하지, 뚝?”
“어, 이게……?”
밖에서 소리가 들리더니 채결이 들어왔다. 아리따운 궁녀 두 명이 그 뒤를 따라왔다.
그 궁녀들을 보자마자 조앵기의 얼굴에 핏기가 가셨고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전생에서 채결은 그렇게 사람들을 데리고 오더니 자신더러 곁채로 가서 자라고 했다.
그리고 그날 밤, 양왕은 이들이 아니라 자신을 품에 안았다. 하지만 결국 저 여자들을 집에 들였고 자신은 그녀들과 몸싸움까지 벌였다.
채결은 황제의 명에 따라 양왕의 시침을 들 궁녀를 데리고 왔다가 본의 아니게 양왕의 품에 안겨 울고 있는 양왕비를 본 것이다.
“전하, 저…….”
채결이 민망한 웃음을 흘렸다.
양왕도 그 궁녀들을 알아보고 몹시 혼란스러웠다. 전생에서 조앵기와 합궁하고 난 후에 보낸 시간이 제일 달콤하고 행복했다. 하지만 시첩을 들이고 난 후엔, 다시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었다.
채결은 조앵기를 안중에 두지도 않고 실실대며 입을 열었다.
“폐하께서 말씀하시기를, 전하도 이제 어른이시니 세상 물정을 아셔야 한다며 전하께…….”
“꺼져라!”
양왕이 소리쳤다.
“하오나…….”
채결이 머뭇거렸다.
“전하… 소인의 말이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폐하께서 전하를 곁에서 모실 사람이 부족하다 하시며 신경 써서 이 두 사람을 고르셨습니다. 분명 전하를 잘 모실 것입니다.”
양왕이 자리에서 일어나 차갑게 쏘아붙였다.
“꺼지라고 하였다! 못 들었느냐?”
채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 네,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취주, 취옥, 전하를 잘 모시거라.”
“데리고 꺼져!”
채결은 깜짝 놀랐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모두 돌아가라.”
‘오늘은 양왕의 기분이 나쁜 것 같으니… 일단 물러갔다가 내일 다시 얘기해야겠군.’
실망한 얼굴의 궁녀 둘도 채결의 뒤를 따라 돌아갔다.
그들이 돌아가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던 조앵기는 몸을 바들바들 떨더니 끝내 울음을 터뜨려 버렸다. 양왕이 그녀를 껴안고 달랬다.
“울지 마.”
양왕은 그녀를 꼭 감싸 안고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저 사람들은 필요 없어. 난 너만 있으면 돼.”
조앵기는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어 세차게 고개를 흔들었다. 그녀는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나랑은 상관없어요! 저리 가요!”
양왕은 그녀를 더욱 꼭 끌어안고는 걸음을 옮겼다.
“더러워졌잖아, 가자.”
환관들이 이미 욕조 가득 물을 채워 두었기에 욕실에는 습기가 가득했다. 조앵기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니 자신은 이미 욕실에 있었고 욕조에는 물이 찰랑였다.
“앗, 뭐 하는 거예요?”
“온몸에 설탕이 잔뜩 묻어서 씻겨 주려고.”
양왕이 그녀의 보드라운 볼에 살짝 입을 맞췄다.
“달다.”
“아앗……!”
조앵기가 몸을 버둥거렸다.
“저리 가요, 내가 씻으면 돼요!”
양왕은 버둥대는 그녀의 손을 잡고 씩 웃었다.
“같이 해.”
조앵기는 미쳐 버릴 지경이었다.
“저리 가! 이 나쁜 놈……!”
“하하.”
양왕이 고개를 숙여 그녀의 이마에 머리를 맞댔다. 양왕은 두 눈을 반짝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벌써 오랜 부부 사이에 부끄러워하기는?”
그도 기억났다. 오늘은 전생에서 조앵기와 합궁한 날이었다.
조앵기는 물속에 들어간 후에도 싫다고 계속 소리쳤다. 화가 나면서 겁도 났다. 그를 걷어차서 환관으로 만들어 버리고 싶었지만 힘이 약해 그럴 수도 없었다.
하지만 조앵기의 생각과 달리, 그는 다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이 씻겨 주기만 했다.
목욕을 마친 후, 양왕은 조앵기의 몸에 남은 물기를 닦아 주고 옷을 입혀 침상에 눕혔다. 그녀는 침상 구석에 웅크린 채 벌벌 떨었지만, 양왕은 그 떠는 몸을 안고 머리를 토닥일 따름이었다.
“너무 어려. 더 키워야겠다.”
그래도 조앵기가 최대한 구석으로 몸을 말자 그는 아예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고 어루만졌다.
“토끼야, 가지 마. 착하지.”
* * *
이튿날.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양왕은 위 마마에게 조앵기를 지켜보게 하고 어서방으로 갔다.
오랜만에 정선제에게 탕을 올리러 간 정 황후도 그 자리에 함께 있었다.
“폐하, 아무리 바쁘셔도 탕 드실 시간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후훗, 역시 황후가 세심하오.”
정선제가 웃으며 그릇을 받아 들었다.
“참, 어제 폐하께서 채결을 시켜 목수궁으로 보낸 이들이 모두 쫓겨 나왔다 들었습니다.”
정 황후가 운을 뗐다.
“채결 말로는 명쟁이 양왕비와 싸워서 기분이 안 좋았다 하더군. 그때는 짐이 재상과 의논할 일이 있어 신경 쓸 시간이 없었소.”
정선제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
“이따 짐이 가서 물어보리다.”
“폐하, 양왕 전하가 뵈옵기를 청합니다.”
환관이 들어왔다.
“음? 말이 나오자마자 왔군. 어서 들라 해라.”
정선제가 시원하게 웃었다.
곧 양왕이 성큼성큼 걸어와 정선제를 향해 인사했다.
“아바마마를 뵈옵니다.”
“일어나거라. 조금 전 어마마마와 네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제는…….”
“아바마마께서 소자에게 시침할 궁녀를 하사하신 걸 알고 있사옵니다. 하나 저는 필요 없습니다.”
양왕이 정선제의 말허리를 끊고 제 말을 했다.
“아……?”
정선제와 정 황후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필요 없다는 게 무슨 말이지?
양왕도 그들과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기 싫어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했다.
“소자는 시침할 궁녀가 필요 없습니다. 시첩이나 측비도 필요 없어요. 저는 왕비만 있으면 되옵니다.”
“뭐라?”
정선제와 정 황후가 깜짝 놀랐다. 그들은 동시에 같은 생각을 했다. 양왕이 미쳤구나!
“명쟁아, 왜 그러더냐?”
정선제가 물었다.
“양왕비가 질투를 해서 소란을 피웠던 거니?”
따라 묻는 정 황후는 가슴이 쿵쾅거렸다. 양왕은 그녀를 흘깃 보더니 크게 웃었다.
“하하하. 그런 거라면 오히려 더 좋겠네요. 안타깝게도 아니에요. 아바마마, 소자는 왕비 하나면 충분합니다.”
정 황후는 흥분되기 시작했다.
“아니… 전에는 왕비를 싫어하는 것 같더니, 이렇게나 아끼고 있었구나? 아휴, 아무튼 직접 골라 온 아이니 본디 천생연분인 거지. 이제야 양왕비가 좋은 사람이라는 걸 알았나 보구나.”
정 황후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았다. 혹시라도 양왕이 어느 세력 있는 집안의 측비를 얻지는 않을지 그리 걱정했는데, 양왕이 머리가 어떻게 되기라도 한 건지, 아니면 정말 조앵기에게 미혹이 되기라도 했는지 저런 말을 쏟아 내고 있었다.
저 말이 사실이든 거짓이든, 설령 거짓이라 해도 지금 이 자리에서 못을 박아 양왕이 양왕비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온 세상이 알게 해야 했다. 자신들이 양왕에게 첩을 얻어 주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양왕 스스로 원하지 않는 것임을 말이다!
바보 같은 조앵기가 양왕의 마음을 사로잡을 줄이야. 쯧쯧, 정 황후는 내심 혀를 찼다. 원수가 선사한 치욕인 조앵기를 저리도 좋아하고 있으니 소 황후는 지금 어떨지. 할 수만 있다면 관에서 벌떡 일어나고 싶겠지!
“아…….”
반면, 정선제는 머뭇거렸다. 첩을 얻어 주지 않았다간 더더욱 양왕을 차별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염려된 것이다.
하지만 양왕의 의지가 너무나 단호해 보이니 어쩔 수 없었다. 당분간은 다른 부분에서 양왕에게 더 많이 보상해 줄 수밖에! 정선제는 양왕부의 보수 예산에 3만 냥을 더 추가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그래. 명쟁의 다정한 모습이 짐과 꼭 닮았구나!”
양왕은 속으로 비웃었지만 손을 모으고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아바마마.”
* * *
양왕이 어서방을 나선 이후, 그가 정선제에게 조앵기 말고는 평생 다른 여인을 들이지 않겠다고 했다는 소식은 삽시간에 퍼져 나갔다. 곧 온 황궁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알게 되었다.
조앵기는 나무 아래 앉아 계화떡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이 소식을 듣자 어안이 벙벙했다.
하지만 ‘와앙’ 하며 계화떡 반 개를 삼켰다.
이쪽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에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복잡해졌다. 시고 달고 쓰고 떫은 모든 감정이 느껴졌다. 그리고 엽연채의 말이 또 떠올랐다.
“전하께서 마마의 머리를 빗겨 주잖아요!”
이때, 밖에서 궁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발걸음 소리가 나더니 짙은 자주색 옷을 입은 사람이 다가와 슬며시 조앵기 곁에 앉았다. 조앵기는 고개를 숙인 채 그에게 눈길도 주지 않았지만 그가 훅 다가와 그녀가 들고 있던 반쪽짜리 계화떡을 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