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55화 (855/858)

번외 토자포 22

“넌 아직 어려서 몰라.”

“알아요.”

“저도 알아요. 밥 먹을 때마다 전하께서 마마에게 음식을 집어 주잖아요.”

엽연채의 말에 엽영교도 따라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 주려는 거야.”

조앵기가 차갑게 내뱉었다. 그러자 그 품에 안겨 있던 엽연채가 그녀를 돌아봤다.

“하지만 전하께서 마마의 머리를 빗겨 주잖아요.”

“그게 뭐 어때서?”

조앵기가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아버지는 한 번도 어머니 머리를 빗겨 준 적이 없어요.”

“우리 아버지도 그래! 그런 건 여자들이 하는 거라고 하셨거든.”

“왜 없어?”

엽영교까지 동조하니 조앵기는 오히려 그게 이상했다. 양왕은 아주아주 어릴 때부터 그녀의 머리를 빗겨 줬다. 그래서 세상 모든 남자들이 그리하는 줄만 알았다.

“그냥 없어요. 우리 아버지는 한 번도 어머니 머리를 빗겨 준 적이 없어요. 하지만 전하는 마마의 머리를 빗겨 주잖아요. 남자가 여자 머리를 빗겨 주는 건 그 사람을 정말 정말 사랑하는 거라고 우리 어머니가 그랬어요.”

엽연채가 입술을 삐죽거리며 말을 이었고 조앵기는 놀라서 그만 얼어붙었다.

‘이게 당연한 일이 아니라고?’

조앵기는 불현듯 전생에서 그와 함께 도망 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한번은 주 선생, 호위 무사들과 떨어져 양왕하고만 어떤 산에 숨었던 적이 있었다.

자신들은 사냥꾼이 잠시 머무는 산기슭 작은 오두막에 몸을 숨겼다. 한겨울이라 날씨가 몹시 추웠는데, 오두막이 허름한 탓에 창을 통해 겨울바람이 계속 새어 들어왔다.

자신은 춥고 배고파 양왕의 품에 안긴 채 칭얼대기만 했다.

“전하, 배고파요! 배고파…….”

양왕은 그녀의 뒷덜미를 잡고 화를 냈다.

“어제 마지막 남은 전병도 네가 다 먹어 치우고는 또 배가 고프다고?”

전병은 어제 먹었는데 오늘 어떻게 배가 안 고플 수가 있지? 이리 생각하는데, 차갑게 쏘아붙인 양왕이 이쪽을 밀쳤다. 그는 화살을 들고 ‘쾅’ 하고 문을 열었다. 그러더니 금세 ‘쾅’ 하고 다시 들어와 저를 둘러업고 나갔다. 그렇게 그의 등에 꼭 붙어서 눈을 감았다.

얼마나 달렸을까. 양왕은 꿩 한 마리를 잡아 오두막으로 돌아왔다.

그는 깃털을 뽑고 이쪽은 부싯돌을 부딪쳤다. 하지만 손가락이 벗겨질 정도로 부싯돌을 쳐도 불씨가 붙지 않았다.

그는 부싯돌을 빼앗더니 자신을 흘겨보며 불을 붙였다.

“제대로 하는 게 없지. 저 구석에 가서 가만히 서 있어!”

그래서 하란 대로 했고, 음식을 하던 그는 연기 때문에 콜록거렸다.

“다른 사람들은 부인이 부군 시중을 들어 준다던데, 넌 내가 시중을 들어 주니 좋겠구나!”

탁, 그가 꿩탕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너무나도 허기진 차라 그릇이 있고 없고를 따질 때가 아니었다. 자신은 탕을 통째로 들고 마셨다. 하지만 입에 대자마자 ‘풉’ 하고 뱉어 냈다.

“으악……! 뜨거워요! 히잉……!”

들고 있던 꿩탕을 떨어뜨리자 양왕이 얼른 받아 탁자에 내려놓고 짜증 섞인 눈길로 저를 쳐다봤다.

“탕 하나도 못 먹는 것이냐! 앉아, 움직이지 말고.”

배가 고파 죽을 것 같았던 자신은 얌전히 앉아 있었다. 그는 숟가락으로 탕을 떠서 호호 불어서 먹여 줬다. 꿀꺽하고 받아먹은 다음, 뚫어져라 그를 쳐다봤다. 소금도 들어가지 않았지만 신선하고 맛있었다.

그가 다시 탕을 떠서 후후 불었다. 자신은 마음이 급해 엉덩이가 들썩거렸지만 감히 재촉하지는 못하고 얼른 떠먹여 주길 기다렸다.

국물을 반쯤 먹고 난 후에 그가 다리 하나를 쑥 뜯어 건넸다…….

힘든 시절이었지만 행복했다.

육 측비 같은 사람들을 보지 않아도 되고, 그는 어딜 가든 저를 데리고 다녔다.

그래서 심지어 영원히 이렇게 도망 다녀도 좋겠다 생각했다. 험난한 생활 속에서도 어쩌면 그도 조금은 자신을 좋아할 거라는 환상을 품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왜 굳이 데리고 도망 다닌다는 말인가?

하지만 도망도 끝이 있었고 자신도 끝을 맞이했다. 아름다운 환상이 모두 산산이 부서지고 처참하게 지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엽연채는 지금 머리를 빗겨 주는 일이 양왕이 이편을 사랑하는 증거라고 한다. 조앵기는 차갑게 말했다.

“너희가 몰라서 그렇지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야. 마음만 먹으면 자기 자신도 얼마든지 속이는 사람이라고.”

그때, 바깥쪽 주렴이 살짝 흔들렸다. 그 뒤편에는 양왕이 서 있었다. 그는 주렴을 걷으려 손을 뻗다 그녀의 말을 듣고는 가슴이 아렸다.

양왕은 잠시 생각하다 그대로 들어갔다.

그의 발걸음 소리를 듣고 전 마마의 안색이 변했다.

“양왕 전하를 뵈옵니다.”

“그래.”

양왕이 조용히 대답하며 조앵기에게 다가갔다. 조앵기는 다만 엽연채를 안은 채 그를 돌아보지도 않았다.

“뭐 하고 있었어?”

조앵기는 양왕과 말도 섞고 싶지 않았지만, 엽연채와 엽영교가 있는 자리에서 분위기를 딱딱하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조앵기는 그를 살짝 곁눈질하고는 대충 대답했다.

“얘기하고 있었어요.”

“음.”

양왕은 그녀의 흘러내린 머리카락 몇 가닥을 귀 뒤로 넘겨 주었다.

엽연채와 엽영교, 채 마마, 전 마마 모두가 보고 있는데! 조앵기는 얼른 머리 한쪽을 감싸고 그를 흘겨봤다.

살짝 붉어진 그녀의 얼굴을 보곤 양왕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그녀가 자신을 미워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어쩌면 영원히 용서해 주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그녀를 놔줄 수 없었기에 그의 옆에 꼭 붙잡고 있어야만 했다.

양왕은 식사를 마치고 근학전으로 향했다.

조앵기는 엽연채와 엽영교와 함께 정원에서 공놀이를 했다.

엽연채와 엽영교는 아직 어려 같이 놀다 보면 집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금세 잊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채 마마는 달랐다. 궁에 들어온 지 닷새가 훌쩍 지나도록 양왕 부부가 자신들을 돌려보낼 생각이 없어 보이니 당연히 좌불안석이었다.

그때 어떤 궁녀가 들어와 조앵기에게 인사를 올렸다.

“왕비 마마, 황후 마마께서 부르십니다.”

조앵기는 그녀가 봉의궁에서 온 궁녀인 걸 알아봤다. 전에도 전할 말이 있으면 이 궁녀가 왔었다.

“그래.”

조앵기는 들고 있던 공을 엽연채에게 쥐여 주었다.

“여기서 놀고 있어. 금방 돌아올 거야.”

조앵기는 궁녀와 함께 나갔다.

봉의궁에 도착하니 정 황후와 태자비가 기다리고 있었다. 조앵기는 정 황후에게 인사를 올렸다.

“어마마마를 뵈옵니다.”

그다음엔 태자비를 흘깃 쳐다보며 인사를 건넸다.

“태자비 마마.”

“일어나라. 누가 왔는지 좀 보거라.”

정 황후가 무시하는 듯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조앵기가 놀라서 고개를 들자 과연 부인 둘이 정 황후 곁에 서 있었다. 온씨와 묘씨였다.

정 황후는 들고 있던 찻잔을 천천히 옆에 있던 항탁에 내려놓으며 웃었다.

“듣자 하니, 네가 두 소저를 궁에 가둬 두고 소란을 피우고 있다던데. 그 아이들은 아직 많이 어리단다. 이것 보렴, 식구들도 걱정되어 여기까지 왔잖니.”

조앵기는 창백한 얼굴로 그 자리에서 고개를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그 소저들은 왜 데려오지 않았지?”

정 황후가 미간을 찌푸리며 묻자 궁녀는 흠칫 놀라더니 얼른 대답했다.

“소인이 잘못했습니다. 지금 바로 다녀오겠습니다.”

궁녀가 바로 밖으로 나가더니 곧 엽연채와 엽영교를 데리고 왔다.

“연채야, 영교야!”

온씨는 두 사람을 보자 눈시울을 붉히며 그제야 마음을 놓았다. 그간 불안해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궁은 법도와 예절이 엄격한 곳이기 때문에 자칫 실수했다가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다. 게다가 저 아이들은 아직 어렸다.

온씨와 묘씨는 매일을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지내다가 닷새, 엿새가 지나도 돌아오지 않자 결국 황후를 찾아온 것이다.

“어머니!”

묘씨를 발견한 엽영교의 눈가가 붉어졌다. 달려가 안기고 싶었지만 묘씨가 말리는 손짓을 하자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어휴, 자네가 무슨 짓을 했는지 좀 보게. 부모가 애가 타서…….”

정 황후 아래 앉아 있는 태자비가 혀를 찼다. 3년 전에 시집온 태자비는 이제 꽃다운 나이 스무 살이었다.

정 황후는 조앵기를 쏘아보며 호통을 쳤다.

“어서 아이들을 돌려보내지 못하겠느냐!”

노려보는 눈길에 조앵기는 바들바들 떨며 얼굴이 창백해졌다.

“전하.”

이때, 밖에서 궁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양왕이 바람을 일으키며 성큼성큼 들어왔다.

“본왕이 들어오자마자 왕비에게 호통을 치는 어마마마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왜 그렇게 노여워하시는 겁니까, 어마마마?”

정 황후가 얼굴을 찡그리자, 태자비가 얼른 나서서 입을 열었다.

“양왕, 그게 무슨 말인가요? 양왕비가 저 댁 아이들을 궁에 가두고 집에 보내지 않아서 아이들 부모가 너무 걱정되어 궁으로 찾으러 왔는데, 어마마마께서 몇 마디 하시는 게 뭐가 잘못됐나요?”

양왕이 웃으며 서슬 퍼런 눈으로 정 황후를 쳐다봤다.

“본왕이야말로 왜 궁에 가뒀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왕비가 엽씨 가문 소저들과 인연이 있어 궁으로 불러 며칠 동안 함께 시간을 보냈을 뿐인데, 그것도 안 된다는 말씀이신가요?”

“그게…….”

태자비가 반박하려 했지만, 양왕은 아랑곳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어마마마는 진 상서 여식과 인연이 있어 궁으로 불러 3년을 궁에서 지내게 하셨죠. 요씨 가문과 여씨 가문 여식과 친하게 지내는 득월공주는 그들을 불러들여 몇 달씩 지내게 했고요. 그런데 왜 양왕비에게만 가뒀다고 하시는 거죠?”

정 황후와 태자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이렇게 어린데 부모의 허락이 필요하단 거죠!”

태자비가 황급히 이렇게 변명하니 양왕은 차가운 눈으로 온씨와 묘씨를 바라보며 물었다.

“두 분이 반대하셨습니까? 왕비가 억지로 데려온 것입니까?”

온씨와 묘씨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묘씨가 얼른 대답했다.

“물론 아니지요…….”

“들으셨습니까? 왕비가 지내기 답답해 두 사람을 벗으로 데려온 것뿐인데, 어마마마께서는 어찌 훈계를 하십니까?”

정 황후와 태자비는 말문이 막혀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사실 별일 아닌 일이었다. 하지만 온씨와 묘씨가 찾아오자 정 황후는 이 기회에 조앵기를 밟아 주고 싶었다. 그런데 밟아 주기는커녕 되레 뒤집어쓰게 생겼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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