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53화 (853/858)

번외 토자포 20

“조앵기!”

양왕이 그녀의 옷깃을 쥐고 무섭게 노려봤고 조앵기의 눈에서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졌다.

“어떻게 하려고요? 내가 알리는 게 싫으면 우리 헤어져요, 놔 달란 말이에요! 이혼을 못 해 준다면… 나를 쫓아내도 좋아요!”

조앵기는 거의 발악하듯 소리쳤고, 양왕은 창백한 얼굴로 그녀의 얼굴을 힘주어 감싸 쥐었다.

“아니야. 평생 그럴 일은 없어! 전생엔… 내가 잘못했어. 네가 죽고 후회했어! 널 잃을 순 없어!”

조앵기는 떨어져 나가라 고개를 가로저었다.

“상관없어요. 알아들었으면 날 놔줘요. 그러지 않으면 내가 당신 일을 다 망쳐 놓을 거예요! 그럼 우리 다 같이 죽는 거예요. 그게 싫다면 지금 당장 나를 죽여요.”

그녀는 죽음이 무서웠다. 하지만 그와 함께 지내는 건 죽음보다 더 무서웠다.

그런 나날은 이미 겪어 봤다. 매일 두려움 속에서 그의 마음을 짐작하고, 그의 감정 기복에 따라 요동치는 삶을 견뎌 냈다. 가슴 졸이며 고통에 허덕이는 그런 인생은 죽음보다도 못했다.

넋을 놓은 것 같은 그를 보자 조앵기가 황급히 물었다.

“날 놔줄 거예요? 아니면 날 죽여요! 자!”

그녀는 희고 보드라운 목을 내밀었다.

양왕은 깊은 슬픔에 잠겼다. 순간 마음이 텅 빈 것 같았지만 도리어 웃음이 나왔다.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조앵기, 넌 어려서부터 내 거야. 태어날 때부터 내 거라고, 하.”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입술에 사납게 입을 맞췄다.

“아……!”

조앵기는 몸부림쳤지만 그녀의 힘으로는 계란으로 바위 치기였다. 아무리 저항해도 그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마차 안에서 거친 입맞춤을 당한 탓에 조앵기는 입술이 다 부르텄다.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면서도 그가 더 심한 짓을 할까 봐 차마 물어뜯지도 못했다.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조앵기는 정신이 몽롱해졌다. 궁에 어떻게 도착했는지도 몰랐다. 양왕은 그런 그녀를 안고 목수궁으로 들어갔다.

가는 길에 그가 마주친 궁녀와 환관들 모두 붉게 물든 양왕의 어깨와 아직도 뚝뚝 떨어지는 핏방울을 보고 놀라 잠시 숨을 멈췄다.

양왕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 손을 축 늘어뜨리고 있는 조앵기에게도 피가 묻어 있었다. 머리는 다 헝클어지고 온몸은 더러워진, 참담한 모습이었다.

궁녀와 환관들이 얼른 인사를 올렸다.

“전하를 뵈옵니다.”

양왕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싸늘한 눈으로 그들을 흘겨봤다.

“왕비의 시중을 드는 사람이 누구냐?”

소완과 궁녀 몇 명이 벌벌 떨면서 아뢨다.

“소인입니다.”

“모두 끌어내 죽여라!”

양왕의 매서운 목소리가 울렸다.

“전하……!”

소완과 궁녀들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소리를 질렀다. 그때, 밖에서 환관들이 들어와 소완과 궁녀들을 끌어냈다.

양왕은 조앵기를 안고 침실로 들어가며 차갑게 내뱉었다.

“다음에 또 왕비가 사라지면 목수궁 사람들 전부 저렇게 될 줄 알아라.”

목수궁의 모든 환관과 궁녀들은 사색이 되어 서둘러 대답했다.

“명심하겠사옵니다.”

그들이 도로 고개를 드니 얼음처럼 차갑고 늘씬한 양왕의 뒷모습과 그의 걸음에 따라 흔들리는 긴 머리칼만이 보였다.

양왕은 침실로 들어와 조심스레 조앵기를 침상에 내려놓았다. 조앵기는 침상 구석에 웅크린 채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전하!”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창백한 얼굴의 위 마마가 들어왔다.

“왕비 마마께서 사라지셨다면서요…….”

위 마마가 양왕의 핏자국을 보더니 놀라서 말을 멈췄다.

“어찌 된 일입니까?”

“조금 벗겨진 것뿐이니 놀랄 것 없어, 마마.”

양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위 마마는 오늘 그의 심부름으로 궁 밖에 나갔었다. 그녀가 있었다면 조앵기는 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상처는 내가 알아서 할게. 마마는 물이나 준비해 줘.”

“알겠습니다.”

위 마마가 밖으로 나갔다.

양왕은 침상으로 와 다시 조앵기를 안았다.

조앵기는 이제 막 이불 속에 파고들었는데 그가 다시 그녀를 안으려 손을 뻗었다. 조앵기는 다시 몸부림쳤다.

“아아……!”

양왕은 그녀를 끌어내 품에 안고 그 머리에 턱을 괴었다.

조앵기는 입술만 꼭 깨물고 있다 결국 한숨을 내쉬며 모르는 척 눈을 감았다.

그녀는 마차에서 죽어 버리겠다고 한 후로 무거운 짐을 벗은 듯 홀가분해졌다.

자신은 그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원하는 것, 마음에 든 것이라면 절대로 손에서 놓지 않는 사람이었다. 자기 손에서 망가지는 한이 있어도 절대 버리지 않는 사람이다.

그게 바로 양왕 모명쟁이다.

조앵기는 체념하고 운명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고개를 숙이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세월을 가늠했다. 자신은 이제 열세 살이다. 스물네 살에 죽으니 아직 11년이나 남아 있었다.

도망갈 수 없다면 기다려야지.

이번 생에는 그에게 어떤 기대도 없다. 하니 자신의 마음만 잘 다스려야 된다!

‘그래야 아프지 않을 테니까.’

조앵기는 가볍게 숨을 쉬고 조용히 그의 품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너무나 평온한 그녀의 숨소리에 그의 가슴은 칼에 에이듯 아프고 쓰라렸다. 그는 그녀의 머리를 제 품에 한껏 당겼다.

“앵기, 조앵기…….”

그녀의 마음은 어디 있을까? 그는 전혀 느낄 수 없었다. 그저 버려진 채, 홀로 절망 속으로 끝없이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앵기도 예전에 이런 감정이었겠지…….’

“전하, 물을 준비했습니다.”

그때 위 마마가 들어왔다.

“응.”

양왕이 조앵기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위 마마는 냉랭한 표정으로 조앵기를 안고 나가는 양왕을 보고 한숨을 지었다.

위 마마는 양왕의 마음속에 언제나 왕비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챘다. 하지만 양왕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고 그런 스스로를 믿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 어떻게 갑자기 깨달은 걸까?

* * *

하늘은 점점 어두워졌다.

목수궁의 반청에는 음식이 차려지고 있었다.

그곳으로 촉촉한 물기를 머금은 조앵기가 들어왔다. 풀어 헤친 머리도 아직 젖어 있었다.

벌써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양왕은 그녀가 오는 걸 보자 얼른 안아 침실로 들어갔다.

구월의 날씨는 기분 좋게 선선했지만 난방을 할 정도는 아니어서 방 안에 화로를 하나 피우고 주변에 망을 둘렀다.

양왕은 그녀를 안은 채 화로 옆에 앉아 조심스럽게 그녀의 머리를 빗겨 주었다. 조앵기는 미동도 없이 그의 어깨에 기대 그가 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머리가 마르고 난 후에 두 사람은 반청으로 가 밥을 먹었다.

조앵기는 대충 몇 술 뜨고는 침상으로 가 잠을 청했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양왕은 주먹을 불끈 쥐고 있었다.

문가에 있던 언서는 언동과 서로를 멀뚱히 쳐다보다가 양왕에게 다가섰다.

“전하, 왕비 마마께 무슨 일이 있습니까?”

양왕은 어두운 얼굴로 씁쓸히 웃었다.

“어떻게 해야 저 사람이 마음을 풀고 날 용서해 줄까?”

언서 형제는 몇 달 전에 양왕에게 발탁되어 그의 곁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는 양왕이 이미 기억을 되찾아 묵묵히 조앵기에게 잘해 주고 있을 때였다. 그래서 형제는 양왕의 행동이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언동이 실실 웃었다.

“여자 마음을 풀어 주려면 좋아하는 것을 주면 됩니다.”

양왕이 눈썹을 꿈틀하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 * *

이튿날 아침.

조앵기가 눈을 비비는데 양왕이 그녀를 끌어다 양쪽으로 머리를 땋아 틀어 올렸다.

식탁에 앉으니 그녀가 좋아하는 음식이 가득했다. 주식은 가시를 다 바른 계화어 찜이었고 후식은 토자포 두 접시였다.

조앵기는 토자포를 흘깃했지만 고개를 숙이고 찐 교자만 먹었다.

식사를 마친 그녀는 평상에 엎드려 화본을 봤다.

하루가 그렇게 흘렀다.

조앵기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양왕은 마음이 급해졌다.

다음 날 아침.

게슴츠레 눈을 뜬 조앵기는 아직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 머릿장에서 뭔가가 움직이는 것을 본 것 같았다.

장롱에서 뭔가가 움직인다? 눈을 비비고 보니 그제야 제대로 보였다. 작은 우리 안에 조그만 거북이 두 마리가 엉금엉금 기어 다니고 있었다.

“와……!”

조앵기가 반가워하며 벌떡 일어나 우리를 집어 들었다.

“소연아!”

조앵기는 우리를 집어 들고 거북이를 살펴봤다. 확실히 소연이다! 완전히 똑같았다!

신이 난 조앵기가 한참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우뚱했다.

‘하지만 옆에 있는 거북이도 소연이랑 똑같이 생겼는걸!’

두 마리 거북이가 안에서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조앵기는 금세 소연이가 어떤 녀석인지 구분할 수 없게 되었다.

슬퍼진 조앵기가 코를 훌쩍였다.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은 탓이다. 거북이는 원래 모두 비슷하게 생겼다는 걸!

그러니까 이건 소연이가 아니다! 모명쟁이 사람을 속이려고 대충 사다 놓은 거북일 뿐.

조앵기는 코웃음을 치며 우리를 내려놓았다. 그때, 양왕이 들어왔다.

“거북이 좋아하지 않았어?”

조앵기는 그를 잠깐 흘겨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양왕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도 한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가 저와 말을 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예 존재도 하지 않는 것처럼 무시했다.

“이리 와.”

양왕이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고 탁자에 앉혀 머리를 빗겨 줬다.

조앵기는 그를 머리를 빗겨 주는 궁녀쯤으로 생각했다. 머리 단장을 마치기 무섭게 그녀는 얼른 서차간으로 들어가 계속 화본을 읽었다.

양왕은 마음이 아팠지만 책을 들고 수업을 받으러 갔다. 언서 형제는 양왕의 뒤에서 속닥거렸다.

“왜 아무 효과가 없지?”

“그게 정말 마마가 좋아하는 게 맞아? 거북이를 정말 좋아하신대?”

언서의 물음에 언동 역시 소곤대며 되물을 뿐이었다.

앞서가던 양왕은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 참고 있었다. 조앵기는 거북이를 좋아한 것이 아니라 그 거북이를 선물한 사람을 좋아한 거였다!

그녀가 오매불망 잊지 못하는 존재가 엽연채라니, 양왕은 속이 말이 아니었다.

그는 지금뿐이 아니라 전생에서도 엽연채를 싫어했다.

조앵기는 토자포를 정말 좋아한다. 연회가 있을 때면 늘 토자포가 있었는데, 그녀는 한 접시에 담긴 토자포 세 개를 단숨에 모두 먹어 치울 정도로 토자포를 좋아했다.

하지만 엽연채를 만나고부터는 두 개만 먹고 하나를 숨겨다 엽연채에게 가져다줬다.

엽연채는 그의 왕비를 꼬여 내고, 그의 토자포를 먹었다! 그리고 조앵기에게 거북이까지 선물했다!

양왕은 엽연채를 좋아하려야 좋아할 수 없었다.

조앵기가 마음속에 다른 사람을 품고 있는 것이, 다른 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 싫었다. 그녀는 그만의 것이어야 했다.

양왕은 냉소하며 걸음을 빨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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