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51화 (851/858)

번외 토자포 18

‘응? 어제가 구월 초아흐레였잖아! 자시가 지났으니 이제 구월 초열흘, 그러니 이제 생일인 건가?’

조앵기는 얼어붙었다.

양왕은 한 번도 자신의 생일을 챙겨 준 적이 없었다. 그뿐 아니라 누구도 이쪽의 생일을 챙겨 준 적이 없었기 때문에 스스로도 본인의 생일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양왕이 마침 오늘 자신을 데리고 뱃놀이를 하고 불꽃놀이도 해 줬다. 설마, 생일을 축하해 주는 걸까?

아니, 그럴 사람이 아니다. 이건 그저 우연일 뿐이다! 하지만 전생엔 그가 자신을 데리고 뱃놀이를 한 기억이 없었다.

조앵기의 마음속에 의문이 생겼다. 양왕이 아직 잠들기 전이어서 그의 품에 파고들어 고개 들고 소곤거렸다.

“전하…….”

“응.”

양왕이 그녀의 머리에 턱을 올리고 그녀의 납작한 배를 살짝 꼬집었다.

“아이…….”

조앵기가 칭얼거렸다.

“하하.”

양왕이 조용히 웃었다. 그녀의 풋풋한 향기가 그의 코에 맴돌자 마음이 흔들려 한번 깨물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어리니 참아야 한다.

조앵기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입을 뗐다.

“뱃놀이는 왜 온 거예요?”

“뱃놀이가 뱃놀이지 왜는 무슨.”

양왕이 무뚝뚝하게 대답하자 조앵기가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저를 데리고 배를 탄 적 없잖아요!”

양왕이 킥킥 웃었다.

“내가 왜 너를 데리고 배를 탄 적이 없어?”

그의 반문에 조앵기는 얼떨떨해졌다. 분명 전생에는 그런 기억이 없었는데 지금은 생겼다……. 뭔가 잘못된 걸까?

“무슨 이상한 꿈이라도 꾸고 있는 거야?”

양왕이 갑자기 겉눈을 뜨고 그녀를 내려다봤다.

꿈? 조앵기는 생각에 잠겼다. 몸을 숙인 양왕의 코가 그녀의 코에 닿자 그녀는 아득해졌다.

양왕의 고혹적인 눈이 살짝 빛나고 곧 몸을 숙여 그녀의 귀고리에 입을 맞췄다.

조앵기는 낮게 신음하며 몸을 비틀었다. 그녀는 얼굴이 화끈거려 몸을 움츠렸다.

양왕이 그녀를 안았다. 일단 이렇게, 내가 잘해 주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주자.

양왕은 조앵기가 몰래 행장을 꾸리고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신들이 왕부에서 살게 되길 기다렸다가 그때 바로 도망갈 준비를 하고 있는 줄 모두 알았다.

하지만 기회를 주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번에 궁에 돌아가면 도성을 벗어나 남쪽 정주로 가서 휴양하겠다고 청할 것이다.

그녀에게 전생과 비슷한 일을 보여 주지 않으면 이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너무나 상쾌한 날씨였다.

* * *

잠이 드는 줄도 모르고 잠에 빠졌다가 일어나니 날은 이미 밝아 있었다.

아침은 배에서 먹었다. 어죽, 그리고 접시 가득 담긴 토자포를 보곤 조앵기는 단숨에 토자포 세 개를 집어 먹었다. 식후에는 남은 토자포 서너 개를 싸서 챙겼다.

아침 식사를 마친 양왕은 조앵기를 데리고 도성으로 돌아갔다.

도성에 도착한 후, 양왕은 정선제를 만나러 갔다. 조앵기는 정원에 앉아 아까 가져온 토자포를 베어 물었다. 그녀의 신변 궁녀 소완이 차를 따라 주면서 그녀를 흘깃 쳐다봤다.

“이렇게 이른 시간부터 토자포를 드시는 거예요? 마마, 어제 전하와 어딜 다녀오셨어요?”

“구월 초아흐레에는 높은 곳에 올라가야 하는 법이잖아. 하루 더 있으면서 뱃놀이 다녀왔어.”

“마마도 구월 초아흐레에 등산하는 걸 아세요?”

소완은 피식 웃었고 조앵기는 ‘와앙’ 하고 베어 물어 들고 있던 토자포 반을 꿀꺽 삼킨 후에 반문했다.

“내가 왜 몰라? 해마다 전하와 함께 갔는데! 오, 너는 새로 와서 모르는구나.”

소완이 흠칫하더니 웃었다.

“소인이 마마를 모신 지 얼마 되지 않은 건 맞지만 전에는 계속 폐하 궁침에서 청소를 했어요. 그런데 전에도 마마와 전하가 산에 다녀오셨다는 이야기는 들어 본 적은 없는걸요.”

“그럴 리가?”

조앵기는 갑자기 멍해졌다. 이게 아닌데!

“마마?”

소완이 조심스럽게 불렀다.

“응, 아니야. 가 봐.”

조앵기는 정신이 다른 데 팔린 듯 대강 대답했다.

소완이 나가고 혼자 남은 조앵기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로 머릿속을 정리해 나가기 시작했다. 자신은 해마다 구월 초아흐레에 양왕와 함께 성묘를 갔다. 하지만 그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해 그저 산으로 놀러 갔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방금 소완이가 금시초문이란 듯이 얘기했잖아?’

조앵기는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기억을 곰곰이 되짚었다.

과연. 전생에서도 그와 성묘를 갔었던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래, 한 번도 아바마마에게 알리지 않았었다. 처음으로 성묘에 동행했던 때, 자신들은 이미 궁에서 나간 후였다!

조앵기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시더니 그녀는 그대로 주저앉았다.

그래, 분명 처음 성묘를 갈 때 왜 육 측비를 데려가지 않는지 물었었다……. 그땐 이미 육 측비가 시집온 지 몇 년이 지난 후였으니.

그러니 올해 구월 초아흐레에는 성묘를 가지 않았어야 한다. 한데… 성묘를 간 건 아니지만 뱃놀이를 갔다.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자신이 어제 그에게 물어보지 않았는가. 성묘하러 안 가냐고. 그는 안 간다고 했다.

지금 생각하니 미심쩍은 반응이었다. 아직 자신을 데리고 성묘를 가기 전이니, 무슨 성묘냐고 되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양왕은 그저 안 간다고 했다. 마치 늘 이편을 데리고 성묘에 다녔던 것처럼. 마치 환생한 그녀가 전생과 현생의 기억이 모호해져 어떤 기억은 온통 뒤죽박죽인 것처럼…….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다시 소완이 다가왔다.

“마마?”

인기척에 조앵기의 손에 들려 있던 반쪽짜리 토자포가 툭 떨어져 바닥에서 몇 번 굴렀다.

“아이고, 토자포가!”

소완이 소리를 질렀다. 반년 동안 조앵기를 따른 소완은 그녀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토자포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소완이 고개를 들어 조앵기를 보았다.

“마마… 어……?”

창백해질 대로 창백해진 조앵기는 멍하니 일어서더니 뻣뻣하게 굳은 몸으로 방을 향해 한 발짝씩 걸음을 옮겼다.

“어, 마마? 마마?”

소완이 얼른 쫓아갔다.

조앵기는 방으로 돌아가 침상에 웅크려 벌벌 떨어 댔다.

“왜 그러세요?”

소완도 크게 놀라 안색이 변했다. 그때, 조앵기의 얼굴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내 토자포…….”

“아, 방금 떨어뜨리셨죠. 그렇지만 주방에 세 개가 더 있어요! 소인이 바로 가서 다시 쪄 올 테니 울지 마세요.”

소완이 놀라서 뛰어나갔다. 멀쩡하다가 갑자기 우는 모습을 전하가 보기라도 했다면 무슨 벌을 내릴지 모른다.

소완이 나가더니 곧 토자포 한 접시를 들고 와 침상 옆의 탁자에 올려 두었다.

“따뜻해요.”

“나가 봐.”

조앵기가 눈물을 흘리면서 토자포 하나를 베어 물었다.

소완은 밖으로 나갔다. 곧 밖에서 다른 궁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마, 노왕비 마마께서 출산하셨어요. 전하는 폐하와 함께 노왕부로 가시니 저녁은 여기서 드시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조앵기가 몸서리를 치며 들고 있던 토자포를 또다시 떨어뜨렸다. 그녀는 별안간 침상에서 내려와 밖으로 뛰쳐나갔다.

여기 있어서는 안 된다!

겁에 질린 조앵기는 온 세상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더없이 확실해졌다. 무엇도 꿈이 아니었다. 절대로 꿈이 아니다!

자신은 정말 한 번 죽었었고, 그 전엔 태자에게 잡혀 성루로 끌려갔었다.

죽음을 목전에 둔 당시, 울면서 그의 이름을 부르짖었다. 그가 구해 주기를, 전처럼 안아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그의 냉소와 한 번도 자신을 좋아한 적도 마음을 준 적도 없다는 차디찬 말뿐이었다!

운명이 반복되어 언젠가 자신은 성루에서 떨어져 그의 앞에서 죽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이상한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고, 태도도 변했다. 어쩌면… 그도 같은 상황인 걸까?

그래, 틀림없었다! 그도 돌아온 것이다! 그래서 변한 것이다.

그리고 자신도 돌아온 것을 알고 있으니까! 전생의 기억을 가진 자신이 경계할까 봐 두려워 잘해 주는 척 가식을 떨고 있는 것이다. 자신이 계속 속아 넘어가게 달래 다시 한번 죽게 만들려고.

조앵기는 단숨에 목수궁에서 뛰쳐나왔다.

“왕비 마마?”

그녀가 울며 달려나가자 길가의 궁녀와 환관들이 모두 돌아보았다.

“아……!”

그들의 냉담한 눈길에 조앵기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녀는 곧 오솔길의 관목 수풀로 들어갔다. 전생이든 현생이든 여기서 십수 년을 살아온 그녀는 주변의 지형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주변 건물이나 커다란 나무 화단, 관목 숲을 이용해 들키지 않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낡고 허름한 건물에 도착했다.

환관 몇 명이 안에서 바삐 일하고 있었다. 커다란 수레 몇 대에 온갖 쓰레기가 실려 있었다.

옷을 짓는 재의전裁衣殿에서 나온 옷감 조각, 주방의 구정물, 그밖에 잡다한 쓰레기들이 종류별로 커다란 마차 다섯 대에 실려 있었다.

매일 궁 밖으로 내보내는 쓰레기였다.

조앵기는 일하는 환관들이 한눈을 팔고 있을 때 옷감 쓰레기 속으로 숨어들었다.

어렸을 때 양왕이 이렇게 그녀를 데리고 남들 몰래 궁 밖으로 나가곤 했다.

환관들은 쓰레기를 모두 싣고 말을 달려 수레를 끌고 나갔다.

매일 몇 차례 쓰레기를 싣고 나가는 환관들은 문지기들과 친분이 있었다. 역시나 문지기는 장창으로 수레 위의 물건을 몇 번 두드려 보고는 바로 내보내 줬다.

수레들을 끌고 궁문을 나온 환관들은 번화한 큰길에 도착했다.

조앵기는 옷감 더미를 헤치고 고개를 내밀어 마부석에 앉은 환관이 수레를 모는 데 집중하고 있는 것을 확인했다.

거리에 사람이 많아 수레는 아주 천천히 가고 있었다.

이때다! 싶어 수레에서 뛰어내리다 ‘쿵’ 넘어진 조앵기는 아파서 숨을 헐떡였다.

“아이고, 소저! 괜찮아요?”

지나가던 행인이 물었다.

“아, 네…….”

조앵기는 코를 훌쩍이며 일어섰다. 겁이 났지만 그보다도 감격이 밀려왔다.

‘와! 드디어 나왔어. 이대로 도망가기만 하면 돼!’

하지만 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했고 조앵기는 전생의 기억까지 통틀어도 혼자서 외출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 예전에 양왕과 함께 도망갔을 때는 어딜 가든 그가 늘 외투로 그녀를 감싸 데리고 다녔었다.

조앵기는 기쁘면서도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막막하고 겁이 났다.

펑, 펑! 갑자기 어딘가에서 폭죽 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을 보니 커다란 저택 대문이 보였다. 문 앞에는 돌사자 두 마리가 있었고 양쪽에 걸린 ‘희喜’ 자가 크게 쓰여진 등불 밑에서 하인 두 명이 폭죽을 터뜨리고 있었다.

폭죽 소리가 멎자 사람들이 즐거워하는 소리가 들렸다. 곧 마차들과 잘 차려입은 손님들이 들어갔다. 고개를 들어 보니 대문에 금색으로 커다랗게 ‘정안후부’라고 쓰여진 편액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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