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토자포 11
저녁, 침상에 들자 조앵기는 점점 더 아파 와 구석에서 흐느꼈다. 화가 난 양왕이 벌떡 일어났다.
“야! 이 계집애야, 잠 좀 자자!”
조앵기는 아까 넘어질 때 너무 심하게 나뒹군 탓인지, 씻고 침상에 누웠는데도 여전히 무릎께가 욱신거리고 아팠다.
양왕이 화를 내자 조앵기는 입을 막고 몸을 잔뜩 웅크려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양왕이 도로 눕자 잠깐 조용하던 조앵기는 이내 참지 못하고 다시 앵앵거렸다. 양왕은 버럭 화가 나서 그녀를 끌어 올렸다.
“으악……!”
조앵기는 양왕이 자신을 끌어당기자 놀라서 소리를 빽 질렀다. 아파 죽을 것 같았다!
양왕은 이미 그녀를 끌어당겨 품에 안고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 바보야, 울지 말라고.”
그러면서 조앵기의 무릎에 손을 올렸다. 손을 대자마자 조앵기는 통증을 못 이기고 계속 비명을 질렀다.
“아악……! 으아앙……!”
조앵기는 아파서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그는 상처를 건드리는 것도 아니고 주무르고 있었다! 조앵기는 아파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조용히 해!”
짜증이 난 양왕은 그녀의 상체를 누르고 고개를 숙여 그녀의 무릎에 대고 입김을 불었다.
“호호 불어 줄게, 울지 마!”
“흡……!”
조앵기는 그의 옷자락을 잡았다. 무릎이 후끈거렸는데 갑자기 아프지 않았다. 눈물이 멈추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져 양왕의 품에 머리를 비벼 댔다.
“쿨쩍…….”
조앵기에게 밀려 몸이 뒤로 휘청이자 짜증이 난 양왕이 그녀를 밀었다.
“이 멍청이가, 부군을 죽이려는 거야?”
하지만 양왕은 그녀의 다리를 건드릴까 봐 힘을 쓰지 못했다. 또 울기 시작하면 잠자기는 틀렸으니까.
다리를 좀 더 주무르니 조앵기는 울음은 그쳤지만 그의 품에 기대서 일어나려 하지 않았다.
양왕이 조앵기를 밀었다.
“안쪽에서 자.”
조앵기는 움직이지 않고 그의 옷자락을 잡은 채 칭얼거렸다.
“호 불어 줘요.”
양왕은 하기 싫어서 그녀를 밀쳤다.
“아아앙……!”
상처를 건드리자 조앵기는 아파서 입술을 깨물며 양왕의 품에 안겨 한사코 그의 옷자락을 놓지 않고 칭얼거렸다.
“불어 줘요, 호 불어 줘요…….”
양왕은 어쩔 수 없이 그녀의 상처를 다시 호호 불어 줬다. 조앵기는 그제야 고개를 끄떡거리며 누워 잠이 들었다.
조앵기는 이때부터 호호 불어 주는 게 좋아졌다. 그 후에는 어딜 부딪치거나 넘어지거나 하면 무조건 양왕에게 호호 불어 달라고 했다. 양왕은 화가 났지만 불어 주지 않으면 내내 칭얼대며 잠을 못 자게 했기에 그녀가 해 달라는 대로 해 줄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물론 양왕이 그녀를 괴롭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조앵기가 하릴없이 대청에 앉아 도화병을 입에 물고 있으면 양왕이 뛰어 들어와 말을 걸었다.
“뭐 하는 거야?”
조앵기는 도화병을 입에 물고 동그란 눈으로 그를 보며 쭈뼛쭈뼛 대답했다.
“도화병 먹어요.”
그러면 양왕은 ‘탁’ 하고 조앵기의 손을 쳐서 도화병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누가 먹으래!”
말을 마치고는 바람처럼 사라졌다.
“으앙……!”
조앵기는 바닥에 떨어져 조각난 도화병을 보다가 그가 사라진 곳을 쳐다보며 속상해했다.
하지만 양왕도 곤란할 때가 있었다. 그해 겨울, 양왕이 넘어져서 다리를 다친 것이다. 저녁이 되자 그는 굳은 얼굴로 꼼짝 않고 침상에 누워 있었다.
하나 조앵기는 한껏 들떠 있었다. 다음 날이 정선제의 만수절이었고, 그런 기념일이면 늘 토자포가 올라온단 것을 그녀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목 빼고 기다리던 그날이 바로 내일이어서 토자포 꿈까지 꿨다.
이날 밤 그녀는 흥분을 못 이겨 베개를 안고 침상을 데굴데굴 굴러다니기까지 했다. 양왕은 침상에 오르기 전에 그녀에게 화를 냈다.
“굴러다니지 마.”
조앵기는 그제야 가만히 있었다. 하지만 낮에 생각하던 것이 한밤의 꿈에 나타나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거동이 불편한 양왕은 뻣뻣하게 누워 움직이지 않았다. 하지만 조앵기는 낙지처럼 그의 몸을 감싸고 잠꼬대까지 했다.
“토자… 포… 토자포…….”
조앵기가 살짝 양왕의 다친 쪽을 누르고 있어 양왕은 굳은 얼굴로 꼼짝 않고 누워 있었다.
당장이라도 조앵기를 걷어차고 싶었지만 조금만 움직여도 죽을 만큼 아팠다. 그녀가 깨어날 때 그의 상처를 건드릴 게 분명하니 깨울 수도 없었다.
그냥 그렇게 자신을 안은 채 토자포 꿈을 꾸게 내버려 둘 수밖에 없었다.
잠꼬대도 괜찮고 그를 안고 있는 것도 참을 만했다. 그런데 조앵기는 혓바닥까지 내밀어 ‘추릅’ 하고 양왕의 얼굴을 핥았다.
“토자포, 으으음… 와앙……!”
양왕은 화가 치솟아 몸이 부들부들 떨려 이를 악물었다.
“조앵기!”
“쓰읍!”
“조앵앵!”
“쭈압!”
“조, 토자포!”
“토자포, 와앙……!”
그렇게 이튿날 아침이 밝았다. 아침부터 크게 혼이 난 조앵기는 엉엉 울다가 야옹야옹 울면서 머리채를 붙들고 울었다.
* * *
해가 바뀌고 조앵기는 공부를 할 수 있는 네 살이 되었다.
조앵기는 양왕과 함께 일찍 아침을 먹고 나와 덕현궁德賢宮으로 향했다. 그녀는 그곳에서 공주, 군주 등의 종실 여자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들었다.
아무도 조앵기를 상대해 주지 않았지만 이미 혼자 있는 데 익숙해진 그녀는 교실 한편에 앉아 묵묵히 공부했다.
그녀에게 글을 가르치는 사람은 문씨 성을 가진 여선생이었다. 다 같이 글을 배우던 어느 날, 문 선생이 조앵기를 향해 이리 물었다.
“왕비 마마는 글을 처음 배우시나요?”
“네.”
조앵기가 끄덕였다.
“이해력이 뛰어나시네요.”
누구도 차별하지 않고 가르치는 문 선생은 상냥하게 웃으며 조앵기를 칭찬했다. 조앵기는 문 선생의 따뜻한 미소를 보자 신이 나서 더 열심히 글을 익혔다.
조앵기는 집에 돌아와서도 글씨 연습을 했다. 나이도 어리고 처음 글을 배운 것이었지만 한 획, 한 획 천천히 써 내려가는 글씨는 꽤나 예뻤다.
조앵기는 방에 탁자를 놓아 달라고 위 마마에게 부탁했고, 그렇게 그것은 그녀의 책상이 되었다.
그녀는 수업을 들을 때, 밥 먹고 잠잘 때만 제외하곤 언제나 글씨를 연습했다.
양왕은 매일 책상에 앉아 있는 조앵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별말 없이 정원의 나무 아래에 앉아 기보를 펼쳤다.
“왕비 마마께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습니다. 여인들을 가르치는 문 선생이 마마를 굉장히 좋게 보신다 합니다.”
곁에 있던 이락이 말했다.
양왕은 가라앉은 눈빛을 띤 채 차갑게 웃을 뿐, 기보에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조앵기는 싱글벙글대며 글을 다 썼고, 밥을 먹을 때까지도 웃고 있었다. 양왕은 차갑게 한번 쳐다볼 뿐이었다.
이튿날 조앵기가 숙제를 제출하니 문 선생은 글씨를 잘 썼다며 또 칭찬했다.
다음에는 금琴을 배웠다.
보름 정도 배우자 문 선생은 조앵기에게 소질이 있다고 했다.
“돌아가서 열심히 연습해요. 참, 나중에 훌륭한 선생님을 찾아 배우는 게 좋을 거예요. 어쩌면 나중에 굉장한 연주자가 될 수도 있어요.”
조앵기는 두 눈을 반짝였다.
“알았어요.”
목수궁으로 돌아와서는 매일같이 금을 연습했다.
양왕은 창밖에 앉아 냉랭한 모습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뭐 하는 거야?”
한참을 지켜보던 그가 물었다.
“네?”
조앵기가 손을 멈추고 그를 올려다보았다.
“금을 연주하고 있어요. 선생님이 직접 만든 「도화조桃花調」라는 곡이에요. 저는 커서 대단한 금 연주자가 될 거예요!”
지난번 만수절 때 뛰어난 금 연주자가 참석해 기량을 발휘했는데, 황제가 입이 마르게 칭찬을 하며 그에게 상도 잔뜩 내렸었다. 황후와 귀부인들도 그를 치켜세우느라 정신이 없었다.
하니 앞으로 자신도 뛰어난 연주자가 되면 모든 게 좋아질 터였다. 다들 자신을 칭찬하고 자신을 좋아하게 될 것이다.
“네까짓 게? 흥!”
양왕이 비웃었지만 조앵기는 쭈뼛대면서도 그를 한번 쳐다보았다.
“저도, 저도 잘할 수 있어요…….”
양왕이 그녀를 깔보는 듯 혀를 차더니 펄쩍 하고 창으로 뛰어 들어와 금을 빼앗아 몇 번 퉁기자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유려한 선율이 흘러나왔다. 바로 그녀가 보름 동안 연습한 「도화조」였다.
조앵기는 민망해졌다. 자신은 보름이나 연습하고서야 조금 익숙해졌는데 그는 한 번 듣자마자 완벽하게 연주했다.
“이까짓 걸 보름이나 연습해야 해?”
양왕이 차갑게 흘겨보았다.
“전하는 저보다 크잖아요…….”
조앵기는 입술을 삐죽거렸다.
“세 살이라도 너보다 잘하는 사람은 있어. 고작 이 정도 가지고 대단한 연주자는 무슨.”
양왕은 픽 비웃고는 금을 내버려 둔 채 나갔다.
조앵기는 묵묵히, 하지만 열심히 금을 익혀 나갔다.
* * *
매월 마지막 날이면 정선제는 황자들이 공부한 것을 확인했다. 돌아오는 월말 시험을 사흘 앞두고, 양왕은 정선제와 함께 식사를 했다.
“아바마마, 왜 저희만 시험하시고 공주들은 검사를 하지 않으세요?”
살짝 놀란 정선제가 대답했다.
“하하. 너희는 황자가 아니더냐! 그래도… 공주들을 살펴보는 것도 괜찮겠구나. 하하하, 채결, 사흘 후에 공주들도 벽옥헌碧玉軒으로 오도록 전해라.”
공주 등의 종실 여자들은 정선제가 자신들도 시험해 본다는 소식에 반가워했다. 조앵기도 기대하는 마음으로 금 연습에 박차를 가했다.
수업이 끝난 후, 문 선생은 복도에서 조앵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야기했다.
“마마는 연주를 잘하시니까 황제 폐하께 잘 보이면 좋은 스승을 찾아 배우실 수 있을 거예요.”
“알겠어요!”
조앵기도 들떠서 활짝 웃었다.
양왕은 멀리서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는 어두운 얼굴로 우다다 뛰어왔다.
“이 바보야, 여기서 뭐 하는 거야?”
놀란 조앵기는 문 선생의 뒤로 숨었고, 문 선생은 황급히 양왕에게 인사를 올렸다.
“양왕 전하를 뵈옵니다.”
양왕이 그녀를 흘깃하고는 조앵기를 노려봤다.
“빨리 안 와!”
말을 마친 양왕이 돌아갔다.
조앵기는 하얗게 질려서 쫓아갔다.
두 사람은 목수궁으로 돌아갔다. 조앵기는 양왕이 왜 서두르는지 몰랐지만 양왕의 얼굴이 무서워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궁으로 돌아오자 양왕은 한마디 말도 없이 바로 서재로 들어갔다. 혼자가 된 조앵기는 비로소 홀가분한 마음으로 자기 방으로 들어가 금 연습을 시작했다.
그렇게 정선제의 시험 날이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