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토자포 10
양왕이 고개를 돌리자 그의 뒤를 따르는 환관 이락이 얼른 다가왔다.
“전하.”
이락의 손에는 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저녁 식사 때 정선제가 양왕을 달래기 위해 어선방에 시켜 올린 간식이었다. 물론 양왕은 그까짓 간식으로 어르고 달랠 수 있는 아이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는 퍽이나 기쁜 척 바로 두어 개 집어 먹었다. 정선제는 양왕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자 그가 가지고 갈 수 있도록 더 준비시켰다.
이락이 바구니 뚜껑을 열자 양왕은 안에서 만두 하나를 꺼내 조앵기의 손에 쥐여 주고 그녀를 쳐다보았다.
별안간 맛있는 냄새가 퍼지자 조앵기가 그쪽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하얗고 통통하고 아주 귀여운 토끼 모양의 만두를 발견하자마자 눈물이 쏙 들어갔다.
“와앙!”
조앵기는 한입 크게 베어 물었다. 쫄깃한 첫맛과 새콤달콤한 소가 혀를 자극했다. 너무 맛있어서 금방이라도 날아갈 것 같았다.
“우와……!”
토자포를 맛본 조앵기의 두 눈이 반짝였다. 지금까지 먹었던 것 중에 제일 맛있는 음식이었다.
“흥.”
양왕은 차갑게 코웃음을 치고는 명을 내렸다.
“주방에 일러 다시 음식을 준비시켜라.”
말을 마친 양왕은 침실로 들어갔다.
이락이 나가서 분부를 전했다.
이각이 흐른 후, 궁인들이 한 상 가득 음식을 차려 냈다.
조앵기는 탁자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그릇에 작은 얼굴을 파묻다시피하고 와구와구 열심히 밥을 먹었다.
양왕은 차가운 표정으로 탁자에 앉아 그녀가 먹는 것을 바라보다가 짜증을 냈다.
“무는 먹지 마.”
조앵기는 손을 멈칫하더니 옆에 있던 토란을 집었다.
양왕은 젓가락을 들고 천천히 밥 한 그릇을 다 먹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조앵기도 놀라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식사를 마치고 사람들이 조앵기를 데리고 가 목욕을 시켰다.
그동안 정선제와 정 황후가 목수궁으로 찾아왔다.
“명쟁아, 네가 궁녀들을 처벌했다더구나.”
“네, 아바마마. 저들이 말을 듣지 않고 상한 음식을 상에 올리고 아침도 준비하지 않았어요. 저런 사람들을 처벌하면 안 되나요?”
“되다마다. 하지만 살기가 너무 센 것 또한 좋은 일이 아니다.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생긴다면 꼭 짐에게 먼저 알려 다오.”
양왕의 말에 정선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보니 명쟁이 왕비를 많이 좋아하는구나.”
정 황후가 웃으며 말했다.
“저는 아바마마의 아들이에요. 아바마마가 그 여자와 혼인하라고 하셨으니 아무리 싫어도 그 사람이 제 왕비입니다.”
양왕은 차가워진 눈빛으로 내뱉었다.
정선제는 조그맣게 한숨을 쉬며 그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네가 속상한 것을 어찌 모르겠느냐. 하지만 짐은 너를 위해 그런 것이란다!”
양왕은 입술을 움찔거렸다.
“저자들은 한 명도 남겨 두고 싶지 않아요. 특히 여 마마 저 늙은이는 조앵기를 돌보면서 밥도 준비하지 않았어요.”
“그럼 바꾸려무나.”
양왕은 기다렸단 듯이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찾는 사람을 얘기했다.
“예전 제가 동주에 있을 때 누님이 궁에서의 이야기를 종종 해 줬어요. 예전에 어마마마를 모시던 사람들 중에 위 마마와 고 마마가 제일 좋았다고 했습니다. 그 사람들을 보고 싶어요.”
“그건…….”
정선제는 일순 머뭇거렸다. 둘은 소 황후의 심복이라 그도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소 황후는 유배형을 받은 죄인이기에 시종은 단 한 명도 데려갈 수 없었고, 그녀를 따르던 측근들도 제각각 다른 궁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이제 와서 소 황후의 심복들을 양왕과 만나게 하자니 정선제는 어쩐지 마음이 불편했다.
바로 그때, 양왕은 자그마한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구겨진 이마 아래, 눈에 쓸쓸한 빛이 스쳤다.
“어마마마도 안 계시고 누님도 안 계시니…….”
정선제의 마음이 살짝 떨렸다. 소 황후는 벌써 세상을 떠났고 운하도 죽었다. 양왕이 궁에 돌아왔다지만 남은 혈육이라곤 오직 자신 하나뿐이었다……. 하지만 일국의 군주가 언제나 양왕 곁에 함께 있을 수 없었다.
‘이 아이는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기댈 데는 나밖에 없으니.’
정선제는 금방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리하거라.”
정 황후를 돌아보며 말했다.
“황후, 이제부터 위 마마와 고 마마에게 명쟁의 시중을 들게 하시오.”
정 황후의 눈에 한기가 스쳤지만 그녀는 웃는 얼굴로 명을 받들었다.
“알겠습니다.”
위 마마 그 늙은이는 소 황후의 심복 중 가장 충성스러운 사람이라서 한참 전에 벌써 세의국洗衣局으로 보내 막일을 시켰다. 위 마마를 양왕 곁으로 보내고 싶은 마음은 털끝만큼도 없었지만… 다행히 고 마마가 있었다! 고 마마는 오래전부터 자신의 사람이었다.
정선제는 몇 마디 더 당부하고는 정 황후와 돌아갔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는 양왕의 눈길이 차가워졌다.
‘흥, 고 마마 그 늙은 여우! 이제는 내 손에 들어왔다!’
* * *
저녁을 배불리 먹은 조앵기는 침상에 오르자 금방 잠에 빠졌다.
이튿날 아침, 양왕은 일찍부터 공부하러 갔다.
일어난 조앵기가 마마에게 이끌려 단장을 하고 반청으로 들어가니 한 상 가득 아침이 차려져 있었다. 조앵기는 제대로 된 아침상을 보고 두 눈이 반짝였다.
“왕비 마마, 어서 잡수세요!”
뒤에서 마마가 말했다.
조앵기는 젓가락을 들어 야무지게 먹기 시작했다.
‘우와, 드디어 음식을 먹을 수 있어!’
더 중요한 건 양왕이 자리에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 마음대로 먹을 수 있었다.
아침을 먹고 조앵기는 대청에 엎드려 놀았다. 탁자 위에는 과일과 간식이 여럿 준비돼 있어 출출할 때마다 하나씩 먹으면 됐다.
정오가 되고 양왕이 돌아왔다.
조앵기는 숨죽인 채 젓가락을 놀렸지만, 저녁에는 다시 편하게 혼자 밥을 먹을 수 있겠거니 상상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양왕은 저녁 식사 자리에도 함께했다.
조앵기는 작은 몸을 뻣뻣하게 굳힌 채 얌전히 앉아 있었다.
양왕이 그녀 옆에 점잖게 앉아 천천히 젓가락을 집어 드니 조앵기도 그제야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라복환자蘿卜丸子(무 완자)가 먹고 싶었지만, 그는 라복환자를 먹지 못하게 했다. 그녀는 하는 수 없이 토란 고기 전병을 집어 들고 조심스럽게 물어봤다.
“전하, 오늘 저녁은 아바마마와 함께 드시지 않아요?”
양왕이 그녀를 힐끗 보더니 대답했다.
“네가 또 거기 가서 밥을 먹겠다고 줄 서 있을까 봐!”
“으음…….”
네 살도 안 된 조앵기는 아직 모르는 것이 많았다. 아직도 자신이 무슨 잘못을 한 건지 알지 못했다. 다만 양왕이 싫어한다고 느꼈을 뿐이었다.
양왕이 짜증 섞인 말을 내뱉었다.
“쯧, 아둔한 것!”
조앵기는 양왕이 자신을 노려보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양왕은 첫날에는 그녀와 한 끼만 같이 먹다 나중에는 점심과 저녁을 그녀와 함께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지금은 아침까지 그녀와 함께 먹었다.
조앵기는 굉장히 불편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어린 왕비를 괴롭혔다가는 양왕이 끝까지 쫓아올 것이라는 사실을 온 황궁 사람들이 알게 됐다.
모두들 양왕이 나이는 어려도 체통을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조앵기를 좋아하지 않음에도 그녀를 자신의 부인으로 대우했다. 개도 주인을 봐 가면서 때리라고 했다.
이후로 사람들은 그녀를 괴롭히지는 못했지만, 여전히 그녀를 냉대하고 무시했다. 그들의 태도를 통해 조앵기는 네 살도 되기 전에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미워하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누구도 그녀를 놀리지 않았고 먹을 것을 꼬박꼬박 챙겨 주었다. 하지만 그녀와 함께 놀아 주지도 않았다.
궁녀와 환관, 마마들은 언제나 냉랭해서 조앵기는 주로 밖으로 나돌았다.
궁 안에는 그녀와 비슷한 또래의 공주들이 몇 명 있었는데 언제나 놀이 친구들을 데리고 어화원에서 놀고 있었다. 조앵기가 주춤주춤 다가가면 그들은 그녀를 흘겨보며 다가오지 못하게 하거나 아예 자리를 떠나 버렸다.
그즈음 궁의 어린 공주들과 군주들은 줄넘기 놀이를 좋아했다.
조앵기도 함께 놀고 싶었지만 그들이 어울려 주지 않을 거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기에 한쪽에 가만히 숨어 있었다.
공주들과 귀족 여인들이 화원에서 신나게 놀던 중 공주 한 명이 갑자기 넘어져 앙앙 울기 시작했다. 근처에 있던 귀부인이 얼른 달려가 공주를 품에 안고 후후, 발에 입김을 불어 주었다.
“괜찮아, 이렇게 호호 불어 주면 안 아플 거야.”
귀부인이 몇 번 불어 주니 과연 울던 공주가 웃기 시작했다.
조앵기는 조그만 머리를 갸웃거리며 목수궁으로 뛰어갔다. 너무 급히 뛰어 버드나무 그늘을 지나가다 나무뿌리에 발이 걸려 우당탕탕 바닥을 굴렀다.
“으앗……!”
시원하게 구른 조앵기는 다리 곳곳이 화끈거리며 아팠다. 특히 무릎이 견딜 수 없이 아파 바닥에 웅크리고 엉엉 울었다. 그러다 아까의 장면이 떠올라 고개를 숙여 자기 무릎을 ‘호호’ 불어 보았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호오… 호… 호…….”
다시 입김을 불어 보았지만 아픈 건 여전했다.
‘호호 불면 안 아프다며!’
조앵기는 이각 정도 바닥에 앉아 있다가 절뚝거리면서 목수궁으로 들어갔다. 위 마마는 조앵기가 들어오는 것을 보곤 어두운 얼굴로 다가와 팔을 잡았다.
“어딜 다녀오세요, 마마? 어쩌다 다치신 거예요?”
“그냥 밖에서 돌아다녔어요…….”
조앵기가 얌전히 대답했다. 위 마마는 귀신같이 무서운 얼굴을 했지만 더는 캐묻지 않았다.
“가시죠.”
위 마마는 조앵기를 안고 들어가 대청에 내려놓았다.
곧 태의가 와서 그녀 무릎의 상처를 싸맸다. 인대가 늘어나 주변까지 크게 부어올랐다.
태의가 가고 양왕이 돌아왔다. 양왕은 진한 약 냄새를 풍기며 다리를 싸맨 조앵기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조앵기, 무슨 사고를 친 거야?”
“넘어졌어요.”
조앵기는 대답하며 힘없이 고개를 숙였다.
양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쓸데없이 나가서 날 망신시키지 마. 지금도 다쳐서 왔잖아. 아무도 너를 좋아하지 않는데 망신당할 일까지 일부러 찾아다니지 말라고!”
양왕이 차갑게 내뱉었다. 조앵기가 따돌림을 당하고 아무도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새삼 생각하니 양왕은 그나마 속이 시원했다.
조앵기는 뚝뚝 눈물을 흘렸다.
“하, 또 울어? 조용히 해! 울지 마!”
양왕이 화를 내며 반청으로 갔다.
위 마마는 조앵기를 안고 반청으로 들어와 의자에 앉혔다. 하나 조앵기는 아파서 음식이 들어가지 않아 몇 숟갈 먹고는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