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42화 (842/858)

번외 토자포 9

하루에 한 끼밖에 먹지 못하는 조앵기는 점심에 어떻게든 많이 먹어 두려 했지만, 양왕은 금세 젓가락을 놓았고 그가 젓가락을 놓으면 그녀도 즉시 식사를 끝내야 했다.

오늘 양왕은 반 공기만 먹고 끝이었다.

굶주린 조앵기에게서 뱃고동 소리가 났다. 고기 한 점만이라도 더 집어 먹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양왕이 탁! 젓가락을 들어 가로막았다.

“본왕은 네 부군이고 너는 본왕의 부인이다! 내가 안 먹는데 아직도 먹어? 아직까지도 이 예절 하나 못 익히다니!”

말을 마친 양왕은 몸을 일으켜 쌩하니 나가 버렸다.

조앵기는 입을 삐죽 내밀고 울었다. 너무 배가 고팠다!

뒤에 선 환관과 궁녀들은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들은 음식을 정리하면서 그녀를 조롱했다.

“어서 나가지 않고 뭐 하세요. 전하가 다시 돌아와서 아직 앉아 있는 걸 보면 또 화를 내실 거예요.”

하는 수 없이 식탁에서 내려온 조앵기는 서차간으로 들어갔다. 역시나 간식은 벌써 궁녀들이 가져간 후였다.

조앵기는 배가 몹시 고팠고, 오늘 저녁도 먹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밀려오는 허기에 괴로워하던 차에 그녀의 눈이 갑자기 빛났다. 먹을 것이 어디 있는지 생각난 것이다.

그녀는 곧 다다다다 뛰어나갔다. 궁인들은 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이 없었기에 조앵기는 제지 한번 받지 않고 혼자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그녀가 향한 곳은 목수궁에서 멀지 않은 새 화원이었다. 어제 막 공사를 마친 참이었다.

한 무리의 환관들이 싸리비를 들고 바닥을 쓸며 잡담을 하고 있었다.

“아이구, 드디어 끝났네.”

“며칠만 더 청소하면 완전히 끝날 거야.”

“어? 저기 좀 봐, 저게 누구지?”

환관들이 고개를 돌려 보더니 놀라서 굳어 버렸다.

서너 살 된 여자아이가 커다란 싸리비를 들고 그들을 따라 비질을 하고 있었다. 분홍색 벚꽃 무늬의 상·하의를 입고 머리는 양쪽으로 땋아 올렸는데 머리 한쪽에는 붉은 술이 늘어진 나비 모양 장신구를 꽂고 있었다. 아이가 힘겹게 움직일 때마다 머리의 장식이 흔들흔들 움직였다.

눈앞에 벌어진 신기한 광경에 환관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느 궁의 분이시지?”

차림새를 보니 궁녀가 아닌 것이 분명했다.

“왕비 마마 같은데.”

“저기서 뭐 하시는 거지?”

“난들 알겠어?”

궁에서 저 어린 왕비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액막이를 하러 들어온 평민의 딸이었다. 양왕의 눈에 들지 못하니 자연히 황제의 마음도 얻지 못했고 목수궁 사람들도 그녀를 공기처럼 대한다고 했다.

그녀는 지금까지 목수궁에서 한 발짝도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런데 오늘은 궁에서 나와 이곳에서 바닥을 쓸고 있다!

여기서 뭘 하는 거지? 너무나 신기한 광경이었지만 환관들은 감히 그녀를 말리지는 못하고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다.

그렇게 그들은 반나절 동안 청소를 했고, 그녀도 내내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낑낑대며 땅을 쓸었다.

“하나둘, 하나둘… 아이코…….”

환관들은 어안이 벙벙해 종종 그녀를 흘깃대면서 일을 해 나갔다.

“밥 먹읍시다!”

얼마 후, 저쪽 정자에서 큰 소리가 들렸다.

환관들은 저마다 빗자루를 내려놓고 줄을 서서 밥을 타 갔다.

조앵기의 두 눈이 별처럼 반작이더니 그녀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내던지고 관목 수풀을 헤치고 들어갔다. 나뭇잎이 덕지덕지 붙은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그녀는 밥 먹을 그릇과 젓가락을 들고 정자로 뜀박질했다. 열심히 내달린 그녀는 환관들 뒤에 줄을 서서 밥 받을 차례를 기다렸다.

“어…….”

그녀 앞에 서 있던 환관들이 계속 뒤를 돌아보며 입술을 움찔거렸다. 어린 왕비가 여기는 무슨 일로 온 거지?

하지만 모두들 신분이 낮은 하급 환관이라 아무도 입은 놀리지 못하고 웃음을 참으며 함께 줄을 서서 밥을 기다렸다.

조앵기는 밥그릇을 들고 눈이 빠져라 앞 사람들이 하나둘 음식을 받아 가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와, 토두초육土豆炒肉이네!’

조앵기가 눈을 환히 빛내며 그릇을 높게 치켜들었다. 이제 다섯 명만 더 지나가면 자기 차례였다!

그런데 그녀가 아직 토두초육을 받기도 전에, 한쪽에서 잔뜩 화가 난 고함 소리가 들렸다.

“조앵기!!”

조앵기가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리니 양왕이 저편에 서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을 이끌고 온 그가 대로한 얼굴로 자신을 부르고 있었다.

“으앗……!”

조앵기는 하마터면 들고 있던 그릇을 바닥에 떨어뜨릴 뻔했다.

‘하지만, 이제 곧 토두초육을 먹을 수 있는데.’

지금 양왕은 화가 나서 뒤로 넘어갈 지경이었다.

양왕은 방금 정선제와 함께 식사를 하던 중, 양왕비가 밥을 먹으려 환관들과 함께 줄을 서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는 곧바로 이곳으로 달려왔다.

진짜 환관들 뒤에 서 있는 조앵기를 본 그는 미칠 것 같아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조앵기, 어서 이리 오지 못해?”

“어어…….”

조앵기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트릴 것 같은 얼굴로 온 힘을 다해 그릇을 꼭 쥐고 앞에 선 환관 등 뒤에 숨어 몸을 잔뜩 움츠렸다. 마치 그렇게 하면 양왕이 자신을 보지 못하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조앵기!”

더는 참을 수 없었던 양왕은 그대로 달려와 조앵기를 붙들었다.

“이 바보 같은 게!”

“아앗……! 토두초육! 내 토두초육!”

조앵기가 날카롭게 소리쳤고, 망신스러워 고개도 들 수 없었던 양왕은 그대로 그녀를 잡아 목수궁으로 돌아갔다.

“으아앙……!”

조앵기는 죽으러 가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 놓아 울었다.

양왕이 조앵기를 끌고 목수궁에 들어오자, 복도에 앉아 잡담을 하고 있던 환관과 궁녀들은 깜짝 놀라 굳은 얼굴로 일어섰다.

“전하, 어찌 이 시간에……!”

양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조앵기를 끌고 반청으로 들어가 바닥에 그녀를 내팽개쳤다.

“이 망할 계집이, 뭐 하는 거야? 응? 환관들과 줄을 서서 밥을 먹어?”

조앵기의 하얀 얼굴에서 눈물이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나도 일을 했어요……! 엉엉… 일을 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왜 못 먹게 해요……!”

“본왕이 너를 굶겼느냐? 궁에서 너에게 먹을 걸 주지 않았어? 그런데 감히 뛰쳐나가서 환관들과 줄을 서서 밥을 먹어?”

조앵기는 결국 입술을 깨물고 흐느끼면서 일어나 식탁으로 가 의자에 앉았다.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차려져 있었다. 매일 이 시간이면 궁녀들이 탁자에 음식을 차려 두었다. 오늘도 그랬다. 하지만 조앵기가 있으나 없으나 누구 하나 찾는 이가 없었다.

양왕의 눈길이 자연히 식탁으로 향했다.

둥그런 녹나무 식탁 위에는 밥 한 그릇과 반찬 하나뿐이었다. 두부와 말린 고기찜이었다. 순간 양왕은 어제 점심에 이 음식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그걸 조앵기에게 먹으라고 또 올린 것이다. 심지어 가까이 다가서니 입도 대지 않았는데 상한 냄새가 역하게 코 속으로 스며들었다.

목수궁의 궁녀와 환관들은 혼비백산해서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밖에 모여 서 있었다.

조앵기는 의자에 앉아 식탁을 향해 반쯤 몸을 숙이고 젓가락을 집어 들었다. 그릇의 밥을 뜨더니 ‘와앙’ 하고 크게 입을 벌렸지만, 실지론 아주 작게 베어 물었다.

새 모이만큼 먹었대도 쉰 밥에선 시크무레한 냄새가 풀풀 났다. 차마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았지만 양왕이 뒤에 서서 지켜보고 있으니 뱉을 수도 없었다. 조앵기는 밥알을 입에 머금은 채로 눈물을 흘렸다.

“으앙…….”

조그마한 울음소리에 멍하니 보고 있던 양왕이 별안간 달려가서 와락, 상을 엎었다.

“으앗!”

가냘픈 조앵기의 몸도 ‘콰당’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이 음식은 누가 준비한 것이냐?”

양왕의 가슴속에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밖에 있던 환관과 궁녀들은 깜짝 놀라 우르르 무릎을 꿇었다.

“전하…….”

양왕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어린 왕비였기 때문에 그들도 왕비를 괴롭히고 조롱했던 것이다. 설령 들킨대도 어쩌면 양왕도 손뼉 치며 좋아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노발대발할 줄이야.

그중 한 궁녀가 입을 열었다.

“그… 왕비 마마께서 드시라고 드린 것이 아닙니다. 마마의 음식은 주방에 있습니다…….”

“그럼 이것들은 뭐란 말이냐?”

양왕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그건, 그건 소인이 먹을 음식입니다.”

“네 음식이라고? 천한 것 주제에 감히 네가 먹을 음식을 주인의 상에 올려놓는단 말이야? 살기가 싫은 게로구나! 여봐라, 저것을 끌어내서 때려죽여라!”

밖에서 환관이 바로 뛰어와 궁녀를 밖으로 끌어냈다.

“전하, 전하! 소인, 소인이 잘못 말했습니다……! 그건 소인의 음식이 아니라 왕비 마마께 드린 음식입니다. 소인… 소인이 잘못 가져왔습니다. 엉엉……!”

궁녀는 놀라서 울음이 터졌다. 고작 예닐곱 살 아이인 양왕이 단번에 자신을 끌어내 죽이라고 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음식을 준비했었는데, 한데… 소인이 잘못 올렸습니다…….”

“그 입 닥치거라!”

분노한 양왕이 고함쳤다. 이제 겨우 여섯 살 어린아이였지만 아이의 목소리에 위엄이 넘쳤다. 그 앞의 궁녀와 환관들은 모두 겁에 질려 얼굴에 핏기가 사라졌다.

“감히 거짓을 고하다니! 여봐라! 당장 끌고 가 죽여라!”

“전하……! 살려 주십시오, 전하!”

궁녀는 끊임없이 울부짖었지만, 양왕은 눈도 깜짝하지 않았다.

“멍하니 서서 뭘 하는 게야?”

양왕의 불호령이 떨어지자 환관들이 궁녀를 끌고 나갔다.

양왕은 아직도 화가 가라앉지 않아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두 뜰에 꿇어앉아 각자 제 뺨을 쳐라.”

남은 사람들은 그 즉시 밖으로 기어나가 스스로 자기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

양왕의 차디찬 시선이 다시 조앵기를 향했다.

조앵기는 소스라쳤지만 구석에 숨어 가만히 있었다. 양왕은 너무 무서웠다. 어른들도 그를 두려워한다. 그는 어른들도 때린다.

양왕은 잔뜩 웅크린 그녀를 보고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떠오르지 않았다. 속으로는 아직 화가 나 있었다.

“이 멍청한 것. 그 동그란 머리는 장식으로 달고 다니느냐?”

양왕이 소리쳤다.

“어…….”

자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모르는 조앵기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그저 서 있었다. 그 모습에 양왕은 더 화가 나서 조앵기의 땋아 올린 머리채를 붙들었다.

“이 바보야. 하루 종일 사고만 치고! 뇌는 어디에 붙어 있는 거야?”

“으앗……!”

조앵기는 머리를 보호하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결국 그에게 잡혀 엉엉 울었다.

하나 제일 속상한 것은 머리채를 잡혀서가 아니라 토두초육을 못 먹어서였다. 반나절 동안이나 힘들게 고생했는데 토두초육은 한 입도 못 먹었다. 그녀도 분명 있는 힘껏 청소를 했는데 단 한 입도……!

양왕은 조앵기가 울자 짜증이 솟구쳤다.

밖에서는 환관과 궁녀들이 멈출 엄두도 내지 못하고 여전히 철썩철썩 제 뺨을 때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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