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토자포 6
“속이다니. 짐이 지금 당장 집으로 돌려보내게 하마.”
“제가 다시 데려다 놓을 거예요. 제가 갈래요!”
양왕이 버둥거리며 몸을 일으키자, 정선제의 얼굴이 한껏 구겨졌다.
“부상을 입었으니 움직이면 안 된다. 안심하렴, 지금 바로 돌려보내마.”
“아닙니다. 제가 가겠습니다! 제가 갈 거예요……!”
직접 가야 한다! 머릿속에 굳게 자리 잡은 의지였다. 왠지는 몰라도 직접 가 보지 않으면 모두 다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이 녀석……!”
정선제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이미 집으로 돌려보내겠다고 했는데 왜 이리 고집을 부리는 거지?
‘소 황후와 운하는 이 아이를 어떻게 가르친 거지? 설마 나를 믿지 말라고 계속 아이에게 가르쳤던 것인가?’
정선제는 소 황후와 운하가 차가운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아프고 괴로웠다.
“그래, 그래. 명쟁 네가 직접 가거라! 단, 아바마마도 너와 함께 가겠다.”
정선제는 양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래, 그들에게 잘해 주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명쟁의 불신도 당연한 일이었다. 이제는 명쟁이 조금씩 아바마마를 믿게 더욱 아껴 줘야 한다.
“의정, 괜찮겠나?”
정선제가 나 의정을 돌아보았다.
“부상은 이미 아물었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전하의 기분입니다. 마차가 너무 흔들리거나 많이 움직이지만 않으시면 길을 떠나셔도 무방합니다.”
“알겠네.”
정선제가 돌아서 양왕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며칠 더 몸조리해서 상처가 아물면 짐과 함께 가도록 하자. 어떠하냐?”
“네.”
그제야 양왕이 고개를 주억였다.
“잘 쉬거라.”
정선제가 양왕의 매력적인 눈을 바라보며 살짝 웃었다.
정 황후와 사 마마의 얼굴이 하얗게 변했다.
거기 서 있던 조춘이는 큰 상처를 받았다. 이제 겨우 다섯 살이지만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는 알고 있었다. 저 아이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 이 사람들이 자신을 집으로 돌려보내려고 한다!
집을 떠난 후로 부모님이 그립기는 했지만 좋은 곳에서 좋은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여기는 매일매일 고기가 있고 그림처럼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녀는 여기서 살고 싶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니!’
조춘이는 순간 어찌해야 좋을지 몰라 사 마마를 붙들었다.
“마마…….”
그런데 여기까지 오면서 조춘이에게 언제나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 주던 사 마마는 이미 없었다. 사 마마는 그녀에게 눈을 흘기며 호통을 쳤다.
“어서 나가거라!”
‘여기까지 와 쫓겨나다니, 쓸모없는 것.’
* * *
그로부터 며칠 뒤. 양왕의 병세가 많이 호전되자 정선제는 직접 양왕을 데리고 조춘이를 집으로 데려다주러 길을 떠났다. 정 황후, 사 마마 그리고 나 의정도 따라나섰다.
뒤편의 널찍한 마차에 탄 양왕이 잠든 시각. 정선제와 정 황후, 이 부부는 앞선 마차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폐하, 명쟁이 깨어났으니 액막이는 필요 없겠습니다.”
“그렇지.”
정선제가 고개를 끄덕이니 정 황후는 안심이 된다는 듯 살짝 웃었다.
“정말로 소 황후의 혼이 도왔습니다. 명쟁은 고귀한 신분이니 나중에 마땅히 그 아이에게 어울릴 만한 중신의 딸을 데려다 맺어 줘야겠습니다.”
정선제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 그는 이미 모정건을 태자로 봉했지만 어쨌든 양왕이야말로 본처인 소 황후 소생의 적자이다. 소씨 가문은 복권되었고 가문의 옛 충신들이 아직 활약하고 있었다…….
양왕은 본처 소생의 적자이니 절대로 대충 혼사를 치를 수는 없었다. 반드시 태자와 비슷한 수준의 며느리를 맞이해야 양왕에 대한 황제의 사랑과 소씨 가문에 대한 죄책감을 보여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양왕이 정말 중신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다가는 후계에…….
‘이리 보면 액막이도 나쁘지 않은데.’
정선제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미 궁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조춘이를 돌려보내겠다 약속했다. 군자는 농담을 하지 않는 법인데 어찌 번복할 수 있겠는가.
마차는 사흘을 달려 드디어 용수진에 도착했고, 곧 어느 골목 허름한 집 앞에 멈춰 섰다.
정선제와 정 황후 모두 마차에서 내렸다.
“폐하, 우선 마을에 있는 객잔에서 쉬시겠습니까?”
채결이 물었다.
“아니다. 짐이 함께 사람을 돌려보내기로 명쟁과 약속을 하지 않았더냐. 사 마마, 자네가 먼저 가서 상의를 해 보게!”
“알겠습니다.”
사 마마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조씨네의 문을 두드렸다.
사 마마가 떡하니 돌아오니 조씨 부부는 놀라서 허둥거렸고, 조춘이는 뛰어와 조씨댁의 다리에 매달려 울먹였다.
“어머니, 내가 싫대요!”
조씨 부부는 눈앞에 나타난 잘생긴 남자아이를 보자 그가 바로 사 마마가 말했던 어린 도련님이라는 것을 알았다.
“저…….”
조씨는 조그만 아이를 상대하고 있음에도 그 싸늘한 눈빛에 자기도 모르게 간담이 서늘해졌다.
“마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요?”
조씨댁이 물었다. 지금 사람을 돌려줄 테니 돈을 내놓으란 건가? 그럴 순 없었다. 죽어도 은자 5백 냥을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게다가 벌써 열 냥은 써 버린 후였다.
사 마마는 양왕 곁에 서 있었다. 정선제와 정 황후는 모두 편복 차림으로 뒤에 서서 나서지 않았다.
“그게…….”
사 마마가 말을 하려다 말았다. 그녀도 정말이지 아이를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이분이 바로 도련님인가요? 아이구, 병세가 위중하다 하지 않았나요? 아주 생기가 넘치는 걸 보니 우리 둘째 덕이 분명해요.”
조씨가 양왕을 흘깃 보더니 말했다.
“맞아요, 바로 그거예요.”
조씨댁도 얼른 맞장구를 쳤다.
부부가 한마음으로 목청을 높이는 동안, 양왕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조춘이는 어머니를 안고 꺼이꺼이 울고 있었고, 그 옆에는 일고여덟 정도 된 여자아이가 하나 더 있었다. 그는 의심의 눈초리로 주변을 확인하다 갑자기 오른쪽의 방을 쳐다봤다. 깜깜한 그곳에 무언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는 갑자기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명쟁아, 어딜 가니?”
사 마마 뒤에 서 있던 정선제가 놀라서 쫓아 뛰어갔다.
“폐, 나리!”
“나리, 마님.”
정 황후가 깜짝 놀라 정선제를 쫓아갔고 나머지 일행들도 너 나 할 것 없이 우르르 그 방으로 들어갔다.
그저 초라하고 평범한 방이었다. 침상 하나에 궤짝 몇 개, 그리고 탁자가 전부였다. 양왕은 바닥에 엎드려 침상 밑으로 몸을 반쯤 집어넣고 있었다.
“명쟁아, 뭐 하는 게냐? 어서 일어나거라, 그러다 상처가 덧난다!”
정선제의 놀라 만류하는 소리에 양왕은 침상 밑에서 머리를 내밀었지만 오른손은 아직 침상 밑을 더듬거렸다. 그러더니 섬뜩하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뭘 잡았는지 좀 보세요!”
“명쟁아!”
정선제가 몸을 숙여 양왕을 잡아끌었고, 거의 동시에 양왕은 침상 밑에 있던 것을 끌어냈다.
“제가 미련한 토끼를 한 마리 잡았어요!”
“으앙……!”
어린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뽀얗고 귀엽게 생긴 서너 살 정도의 여자아이가 양왕의 손에 끌려 나왔다.
“으애앵……!”
조앵기는 눈앞이 캄캄해져서 바닥에 엎드려 작은 두 손으로 헝클어진 머리채를 붙들고 울고 있었다.
“으앙……!”
“명쟁아,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
정선제가 숨을 멈췄다.
“아바마마, 제가 미련한 토끼를 잡았어요.”
양왕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조앵기의 팔을 잡아끌었다.
“제가……!”
갑자기 양왕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명쟁아.”
정선제가 크게 놀라 양왕을 잡았지만 양왕은 이미 정신을 잃은 후였다.
“의정, 의정!”
나 의정이 뛰어 들어와 얼른 양왕을 침상에 눕히고 옷을 벗겼다. 단단히 싸맨 상처에서 피가 배어 나왔다.
“상처가 다시 벌어졌습니다! 사람을 돌려주자마자 금방 이렇게 되어 버렸으니 어쩌면 좋을까요?”
정 황후가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허… 하지만…….”
정선제는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폐하, 전하는 오는 길에 마차가 흔들려서 피로가 쌓이고 방금 동작이 격해 정신을 잃으신 것뿐입니다.”
나 의정이 큰일이 아니라고 안심시켰으나 정 황후가 어딘지 웃는 듯한 얼굴로 반기를 들었다.
“만약 명쟁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의정이 책임질 건가?”
나 의정은 가슴이 들썩거렸지만 입술을 깨물며 침착하게 대답했다.
“전하는 닷새 전 이미 회복하셨습니다.”
양왕의 상태는 액막이와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아이고!”
사 마마가 크게 외쳤다.
“소인이 이제야 알았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사람을 잘못 데려온 겁니다! 견능대사는 그날 내린 비가 참 이상하다고 했었습니다. 저희가 액막이할 사람을 찾을 수 있게 하늘이 길을 알려 주는 비라고 했습니다. 그 덕에 저희가 이 집에 온 것이고 전하도 나으신 것입니다.
하나 실은 저희가 사람을 잘못 찾았던 겁니다! 둘째가 아니라 셋째 딸을 데려와야 했던 모양입니다! 보십시오. 저희는 저 아이를 보지도 못했는데, 전하는 들어가자마자 침상 밑에서 바로 찾아 끌어내셨습니다. 저희가 실수를 한 것이 분명합니다. 사실은 조씨 집안 셋째 딸이었던 겁니다.”
채결은 아무 말 없는 정선제를 힐끔하고 그의 의중을 알아챘다. 그는 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조앵기를 자세히 살펴보고는 그다음엔 문가에서 조씨댁을 끌어안고 있는 조춘이를 재차 뜯어보았다.
“와, 셋째는 정말 예쁘게 생겼습니다!”
눈물을 닦고 있는 조앵기의 얼굴에 사람들의 눈길이 쏠렸다. 정말 세 자매 중 조앵기의 외모가 제일 출중했다.
“그럼요, 저 모습을 좀 보십시오. 이 아이야말로 전하와 어울리는 짝입니다.”
사 마마가 말했다.
‘적어도 외모는 괜찮군.’
이리 생각한 정선제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 황후와 사 마마는 정선제가 이 일을 묵인하는 것을 보고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쇠뿔을 단김에 빼겠단 일념으로 사 마마가 얼른 조씨 부부에게 물었다.
“이 아이가 이 집 셋째 딸인가요?”
문가에 있던 조씨 부부는 아까부터 놀라서 얼이 빠져 있었다. 세상에, 저 사람들이 황제와 황후란 말인가? 침상에 누워 있는 저 아이가 황자고? 세상에나!
하지만 지금은 그런 이야기나 할 때가 아니었다.
조씨가 겨우 더듬대며 대답했다.
“예, 예에……. 이 아이가 바로 저희 셋째입니다.”
“맞습니다. 지난번 마마와 대사님이 오셨을 때도 저 아이를 부르려고 했지만 어디에 있는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이름은 앵기라고 하고요, 석 달 후 구월이 되면 네 살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