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37화 (837/858)

번외 토자포 4

“아이!”

조씨 부부는 흥분에 겨워 대번에 얼굴이 붉어졌다.

하나 조씨댁은 마음 한편으로는 실망스러웠다. 엄청난 부잣집이니 조춘연이 갔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다. 둘 중에 조춘연을 더 예뻐했다기보다는, 그 애가 더 침착하고 똑똑하니 좋은 집에 시집가서 시부모님을 기쁘게 할 가능성이 아무래도 크지 않나 싶어서였다.

‘그럼 나도 덕을 좀 볼 수 있을 텐데.’

“이렇게 빗속에서 운명이 정해 준 사람을 만나다니 정말 귀한 인연이네요. 저희 주인 어르신은 재산도 많고 세력도 있으니 두 분은 안심하세요.”

사 마마가 웃으며 인사하고 밑의 여종을 불렀다.

“홍옥.”

여종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네, 마마.”

“준비해 둔 은자를 가져와라.”

“네.”

홍옥이 바로 나가자 조씨 부부는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정말 이렇게 딸을 파는 것인가? …은자는 얼마나 될까?

으리으리한 집에서 나온 것 같으니 적어도 열 냥은 주겠지? 아니야,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다. 여덟 냥이라도 충분하다.

이때, 다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홍옥이 다른 여종과 함께 들어왔다. 그들은 각자 붉은 비단을 덮은 쟁반을 들고 있었다.

쟁반을 본 조씨 부부는 멍해졌다. 저 정도면 그냥 엽전 한 무더기 아닌가?

“열어라.”

사 마마가 조용히 지시했다.

두 장의 붉은 비단을 걷자 덩어리로 된 은괴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두 개의 쟁반에 모두 은괴가 빼곡하게 들어 있었다.

“이, 이건…….”

조씨 부부는 깜짝 놀라서 그대로 굳어 버렸다. 이게 다 돈인가? 전부 다 은자란 말인가? 평생 살면서 은자 열 냥도 만져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물론 따님의 가치는 이 정도가 아닙니다만, 아무튼 우리는 며느리를 얻는 것이니까요. 우리 주인댁에 시집을 오는데 예물이나 값을 너무 박하게 따질 수는 없지요. 이건 5백 냥이에요. 이걸 받으시면 조춘이는 우리 주인댁의 사람이 되는 겁니다.

여기 계약서가 있으니 여기에 서명하시면 조춘이와의 모든 관계를 끊게 됩니다. 만약 우리 주인댁에서 먼저 요청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다시는 만날 수 없어요. 승낙하시겠어요?”

사 마마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네, 그럼요……!”

조씨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탁자로 달려가 서명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

그동안 조씨댁은 은괴를 하나 들어 깨물어 보았고, 이가 닿는 순간 감격을 금치 못했다.

‘정말 은이다!’

부부는 가득 쌓인 은자를 보자 눈앞이 다 아찔했다.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싶은 조씨댁은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었지만 은인인 사 마마와 견능대사부터 챙겨야 했다.

“시간이 늦었는데, 저, 제가 얼른 두 분의 잠자리를 봐 드릴게요.”

그러나 어느새 비가 그친 후였다.

“괜찮아요, 비가 멎었으니 마을에 있는 객잔으로 갈게요. 마을에 객잔이 있겠죠?”

사 마마는 돌려 거절했다. 이 집은 방이라고는 달랑 두 칸밖에 없는 집이었다. 하나뿐인 곁채엔 잡동사니만 잔뜩 쌓여 있을 게 분명한데 어떻게 거기서 잠을 잘 수 있겠나.

“그럼요, 물론 있지요.”

조씨가 재빨리 대답했다.

“아, 그러면 둘째는…….”

사 마마는 밖에서 비를 보고 있는 두 여자아이를 쳐다봤다.

“지금 데리고 가지요! 저희는 명을 받았으니 내일 아침 일찍 떠날 거예요.”

“그러세요. 큰애야, 둘째야.”

조씨가 바깥을 향해 소리치니 조춘연과 조춘이가 뛰어 들어왔다.

“아버지, 어머니.”

“둘째야.”

조씨가 조춘이를 끌고 와서는 순진한 아이의 얼굴을 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아무리 딸이라고 해도 어쨌든 친자식이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이렇게 갑자기 아이를 팔아넘기게 되자 뒤늦게 죄책감과 서운함이 밀려왔다.

조씨댁은 조춘이의 얼굴을 두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녀의 두 눈에서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머니, 왜 그러세요?”

조씨댁이 우는 걸 보고 조춘이가 깜짝 놀라 물었다.

“어머니… 왜 우세요? 우와, 웬 은자가 이렇게 많아요?”

그러다 눈앞의 은자를 발견했고 아이도 반가워했다. 고작 다섯 살이래도 은자가 뭔지는 벌써 알고 있었다. 자주 부모를 따라 돌아다니면서 저게 있으면 맛있는 음식과 고운 옷, 예쁜 머리 장신구를 살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후였다.

“하하, 우리 주인댁에는 돈이 훨씬 더 많단다.”

사 마마가 웃으며 조춘이에게 다가갔다.

“이건 그저 약소한 성의일 뿐이야. 시집오면 돈도 예쁜 옷도 아주 많아. 금은보화로 만든 장식품도 얼마든지 있어.”

말을 마친 그녀는 머리에서 금잠을 빼내어 조춘이의 손에 쥐여 주었다.

“이것 봐, 마음에 드니?”

조춘이는 제 손에서 빛나는 장신구를 보자 굉장히 예쁘다고 생각했지만 그뿐이었다.

사 마마가 미적지근한 반응을 알아채곤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소매에서 주머니를 하나 꺼냈다. 궁에 돌아가면 어린 여자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궁 밖에서 샀던 물건이다.

주머니 안에는 술이 늘어진 머리 장신구 두 개가 있었다. 귀한 물건은 아니지만 예뻤다.

“자, 이거 줄게.”

아이는 그것을 받아 들고 두 눈을 반짝이며 사 마마를 올려다보았다.

“정말 주시는 거예요?”

아이는 늘 이런 머리 장신구를 가지고 싶어 했다.

“그럼! 우리 집에 가면 이것보다 훨씬 예쁜 것도 한가득 있단다.”

사 마마가 대답했고, 조씨가 그 말을 받아 보탰다.

“둘째야, 이제 이 마마와 함께 가는 거야. 앞으로는 화려한 비단과 산해진미가 가득한 곳에서 먹고 싶은 건 뭐든 먹을 수 있어. 넌 소고기를 좋아하잖니, 이제는 먹고 싶은 만큼 먹을 수 있어.”

“그래. 늦었으니 어서 가자.”

사 마마는 좋아하는 조춘이의 모습을 보며 그 손을 잡고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어머니…….”

조춘이는 장신구와 먹을 것이 탐이 나면서도 어쩐지 겁이 나서 조씨댁을 돌아보았다. 하나 아까 고개를 떨군 조씨댁은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어머니, 춘이는 어디로 가는 거예요?”

조춘연이 물었다.

“조용히 해라. 네 동생은 이제 부자가 되는 거야.”

조씨가 조춘연에게 살짝 눈을 흘기며 잔소리를 하곤 사 마마 일행을 쫓아갔다.

“제가 길을 안내해 드리지요.”

“부탁드려요.”

사 마마가 조춘이를 데리고 마차에 오르자 일행은 집을 나섰다.

온 집안이 조용해졌다. 방에 있던 조앵기는 그제야 침상 밑에서 기어 나와 숨을 몰아쉬었다.

조춘연을 데리고 방 안으로 들어온 조씨댁은 오랜만에 기름을 아끼지 않고 등불에 불을 밝혔다. 그러곤 바닥에 앉아 눈물을 훔치고 있는 조앵기를 발견했다. 조씨댁은 굳은 얼굴로 다가가 조앵기의 귀를 잡아당겼다.

“이놈의 계집애, 어딜 쏘다니다 온 거야?”

“으… 아앙……!”

조앵기는 아파서 눈물이 났다.

“어머니, 앵기가 침상 아래로 떨어졌던 것 같아요.”

조춘연이 다가와 조씨댁의 손을 풀었다.

조씨댁은 떠나간 조춘이를 생각하면 괴롭다가도 밝게 빛나는 은자를 생각하면 흥분되고 기뻤다. 그러자 화도 누그러져 손을 놓고 조춘연을 안아다 침상에 뉘었다. 그리고 조앵기도 끌어다 먼지로 더러워진 옷을 벗겨 침상에 눕혔다.

“어서들 자라.”

조앵기는 이불 속에 숨어 크게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왜 그렇게 마음이 놓이는지는 그녀도 알 수 없었다.

조씨댁은 나가면서 방의 불을 껐지만, 대청에 있는 등불은 날이 밝을 때까지 꺼지지 않았다.

이튿날 아침, 조씨 부부가 일찍이 마을의 객잔에 들렀건만 사 마마 일행은 벌써 떠난 후였다.

조씨댁은 조금 걱정이 됐다.

“이렇게 급히 간 걸 보면 무슨 대갓집이 아니라 인신매매범들인 거 아닐까요?”

조씨가 두 눈을 부릅떴다.

“어떤 인신매매범이 5백 냥이나 주고 사람을 잡아가?”

조씨댁은 멈칫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그러네요.”

부부는 물건을 잔뜩 사서 돌아갔다.

점심에 돼지고기와 증계단을 먹은 조앵기는 기분이 무척 좋았다. 조씨댁은 녹두떡까지 만들었다. 얼마 만에 먹는 간식인지 기억도 나지 않아 복도에 주저앉아 눈도 반쯤 감고 녹두떡을 먹었다. 나무 위 새들은 쉴 새 없이 지저귀고 있었다.

조앵기는 최고로 기분이 좋았다. 오후에는 조춘연이 조앵기를 데리고 밖에 나가 놀았다. 이즈음의 조앵기는 참 자유로웠다.

* * *

유월은 무덥고 비도 많이 오는 계절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시 많은 비가 내렸다.

저녁을 먹으면서 조씨 부부는 내년에 집수리를 하자고 의논했다.

“이 본채 두 칸뿐만 아니라 옆에 곁채도 두 칸 더 지어요.”

쏴아아아……. 이날 따라 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유독 시끄러웠다. 그러거나 말거나, 조앵기는 탁자에 엎드린 채 짧은 팔을 뻗어 음식을 집어 먹느라 여념이 없었다.

쾅쾅쾅! 그때, 밖에서 급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부부는 큰 소리에 깜짝 놀랐고, 조씨가 일어서 우산을 받쳐 들고 마당으로 뛰어나갔다.

끼익. 문을 열자 밖에 사 마마가 서 있는 게 아닌가!

“마마, 어쩐 일이세요?”

그는 조춘이를 떠올렸다. 설마, 지난번에 돈을 너무 많이 준 것 같으니 돌려달라고 온 건 아니겠지?

조씨가 안절부절못하며 돌아보니 사 마마 뒤에 조춘이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서 있었다.

“아버지…….”

“둘째야, 어떻게 돌아왔어?”

조씨는 심장이 벌떡거렸지만 얼른 정신을 가다듬고 사 마마에게 허리를 숙였다.

“마마, 우선 들어오세요.”

조씨댁은 손님들을 보고 얼른 조춘연을 시켜 탁자의 음식을 정리했다. 일행이 우르르 들어왔을 때는 탁자는 벌써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둘째야……!”

조씨댁이 조춘이를 보자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아, 너희들이 이 아이의 가족인가?”

그 순간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는데, 아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한기를 품고 있었다.

사 마마와 손님들 뒤에서 작은 그림자가 튀어나왔다. 조씨 부부와 조춘연이 깜짝 놀랐다. 예닐곱 정도 된 남자아이는 보라색 비단옷을 입고 있었다. 그림같이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그의 아름다운 두 눈에는 설명할 수 없는 냉기가 번뜩였다.

조춘이는 조씨댁에게 달려들어 울었다.

“어머니… 내가 싫대요.”

“그, 그게 무슨…….”

조씨 부부는 무슨 일인지 전혀 알 수 없어 말까지 더듬댔다.

“정말이지… 어떻게 말해야 할지.”

사 마마가 미간을 찌푸리며 그간의 사정을 알려 주었다.

당시 사 마마는 조춘이를 데리고 도성에 돌아갔다. 한데 궁에 들어서자마자 그 밑의 궁녀가 사 마마에게 다가와 소식을 전하는 게 아닌가.

“사 마마, 전하가 깨어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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