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토자포 3
“아, 부인, 그리고 스님… 들어오세요.”
조씨는 손님들의 면면과 차림새를 보더니 금세 굽실거리며 그들을 안으로 안내했다. 조씨는 부인과 하인들을 데리고 들어오면서 소리쳤다.
“이봐, 귀한 손님이 오셨어.”
침상에 있던 조씨댁은 깜짝 놀라 얼른 옷을 챙겨 입었다.
조씨의 ‘들어오세요.’라는 말과 사람들의 발소리가 들렸다. 조씨댁이 옷을 입고 나오니 금은보화로 치장한 부인이 스님과 함께 탁자에 앉아 있었다. 조씨댁은 숨을 들이켜고 바깥을 흘깃 보았다. 마당의 오두막에는 마차 한 대가 서 있었고 하인들이 마차를 정리하고 있었다.
“하하. 안녕하세요, 부인, 스님. 어서 가서 차를 준비하겠습니다.”
조씨댁은 중요한 손님이라는 것을 금세 알아채고 아이들의 방으로 갔다.
“첫째야, 둘째야, 어서 일어나 물을 끓여라.”
시끄러운 소리에 벌써부터 깨어 있던 조춘연과 조춘이는 금방 침상에서 내려왔다.
조씨댁은 조앵기가 보이지 않자 침상을 살펴보았지만 역시 찾을 수 없었다. 방 안을 돌아보아도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했지만 귀한 손님이 기다리고 있으니 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조춘연과 조춘이는 부엌으로 가서 물을 끓이고 조씨댁은 마른 대추를 내왔다. 그러곤 방으로 들어가 새 수건 두 장을 꺼내 손님들에게 건넸다.
조씨댁은 조씨 곁에 서서 입을 열었다.
“곧 따뜻한 차가 준비될 거예요, 부인, 대사님. 우선 대추라도 좀 드세요. 집에 마침 아무것도 없었는데 비도 이렇게 많이 오니 뭘 사러 가기도 어렵네요. 하하.”
승려는 합장을 했고, 부인은 공손한 조씨 부부의 모습을 보더니 만족한 듯 수건을 들어 얼굴을 닦고 환하게 웃었다.
“부인은요. 저도 그저 주인이 시키는 일을 하러 돌아다니는 시종일 뿐이에요.”
조씨 부부는 깜짝 놀랐다. 저렇게 큰 금잠을 한 사람이 시종이라고?
그들도 지현 부인이 어멈을 데리고 외출한 것을 본 적이 있는데 그 어멈은 고작 조악한 은잠 하나만 꽂고 있었다. 지현 부인이 머리에 꽂았던 장식마저도 이 부인이 한 것보다 훨씬 조악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눈앞의 부인이 지현 부인보다 훨씬 기품 있었다. 그런데 저 부인은 자기가 그저 시종일 뿐이라고 이야기했다!
조씨 부부가 글공부를 하지는 않았지만 희곡에 나오는 ‘화려하게 치장한 시종’이라는 말은 들어 본 적은 있었다. 들을 때는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이렇게 직접 보고 나니 세상에 정말 있구나 싶었다.
시종의 기품이 이 정도라면 그 주인이 어떨 것인지는 말할 필요도 없었다. 분명 이야기 속에 나오는 도성 후작 가문에서 온 사람일 것이다.
“원래 근처 현에서 볼일이 있었는데 갑자기 큰비를 만나는 바람에 비를 피하러 여기까지 오게 된 거예요.”
부인의 말에 조씨가 대답했다.
“이렇게 누추한 저희 집에 와 주셨으니 저희의 영광이지요! 부인… 아니, 정말 실례합니다만 어떻게 불러야 할지요?”
부인이 빙그레 웃으며 자신들을 소개했다.
“사씨니까 그냥 사 마마라고 불러 주시면 돼요. 이분은 견능대사십니다.”
이때 가벼운 발소리가 들리고 여자아이들이 찻주전자와 찻잔을 들고 들어왔다. 양 갈래로 머리를 땋은 아이는 일곱 살 정도 되어 보였고 찻주전자를 들고 왔다. 찻잔을 들고 있는 아이도 같은 머리를 하고 있었는데 대여섯 살 정도 되어 보였다.
사 마마는 눈을 가늘게 뜨고 아이들을 살펴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견능대사 귓가에 속삭였다.
“이 둘은 어떻습니까?”
견능대사의 두 눈이 반짝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일부러 찾는 것보다 우연히 만나는 것이 더 좋은 법입니다.”
사 마마와 견능대사는 황제의 명을 받아 도성을 벗어나 중상을 입은 황자를 위해 액막이를 해 줄 민며느리를 찾고 있었다.
소씨 가문이 복권되었지만 소 황후는 벌써 세상을 떠난 후였다. 황제는 남매를 도성으로 불러들였지만, 오는 도중에 하나는 죽고 하나는 부상을 당했다.
어린 황자에게 어떤 약도 소용이 없자 계후인 정 황후가 액막이 이야기를 꺼냈고, 황제는 바로 승낙했다.
정 황후가 그런 제안을 한 것은 우선 황제와 만백성 앞에서 자신의 현숙한 모습을 보여 체면을 차리기 위함이었다. 또, 만약 황자가 정말 건강을 회복한다면 그것은 황후의 공이 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비천하고 가난한 집의 여식을 양왕비 자리에 세워서 나중에 그에게 힘이 될 수 있는 귀족의 딸과 혼인하는 것을 미리 방지할 수 있었다.
정 황후는 사람들을 궁에서 내보내면서 너무 빨리 찾아서는 안 된다고 했다. 이리저리 헤매고 고생해서 ‘천신만고’ 끝에 찾았음을 강조해야 한다며.
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 황후가 서신을 보내왔는데, 거기에는 정선제의 인내심이 바닥나고 있으니 내일 안으로 하나 고르라고 쓰여 있었다.
마음이 급해진 사 마마는 견능대사와 함께 현으로 이동해 내일 지현과 인사를 하고 대충 가난한 집안의 여식을 고를 계획이었다. 그런데 이동하던 중, 갑자기 큰비를 만난 것이다.
밤이 늦어 어두운 데다 비도 합세해 시야를 가리니 마부가 길을 잘못 들면서 돌고 돌아 이 작은 마을까지 오게 되었다. 심지어 마차에도 물이 차서 안에 탄 사람들까지 젖어 버린 탓에 가까운 집을 찾아 하루 머물며 비를 피하려 했던 것이다.
갑자기 찾아온 집에 딸이 둘이나 있는데 나이까지 적당했다. 생김새도 단정한 편이었다. 게다가 방금 견능대사의 말처럼 일부러 찾는 것보다 우연히 만나는 편이 더 좋았다!
‘비를 피하려다 궁합이 맞는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훨씬 운명적인 느낌이 드니 황제와 백성들 모두 믿을 것이다.
사 마마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부인, 이 아이들은 모두 부인의 딸들인가요?”
“네!”
조씨댁이 친절하게 대답했다.
“오.”
사 마마의 눈길이 불룩 튀어나온 조씨댁의 배에 멈췄다.
“아이가 셋이라니, 대단하네요.”
조씨 부부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사실 딸이 둘이 아니라 셋이에요. 그런데 셋째 딸은… 이 녀석이 지금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요.”
“이런, 한밤중에 돌아다니다니요.”
사 마마의 말에 조씨댁은 난처해져 변명하듯 둘러댔다.
“원래는 그러지 않는데 자다가 떨어지기라도 했는지… 방이 어두워서 어디에 박혀 있는지 모르겠어요.”
조금 전 문을 열 때까지만 해도 문은 잠겨 있었다. 그러니 조앵기는 분명 집 안에 있을 것이다. 단지 어디에 숨어 있는지 알 수 없을 뿐이었다.
‘흥, 누가 가난뱅이 장사꾼 집안 아니랄까 봐. 아이들에게서도 교양이라고는 전연 찾아볼 수 없군.’
사 마마는 내심 이렇게 비웃었지만 겉으로는 그들을 염려하는 체했다.
“아이, 벌써 따님이 셋이나 있는데 배 속에도 하나 품고 계시군요. 힘드시겠어요.”
과연 조씨 부부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고, 사 마마는 고개를 기울여 부부 곁의 두 딸을 살펴보았다.
“우리가 오늘 이렇게 나온 건… 사실 저희 도련님께서 병이 들어 민며느리를 찾고 있거든요. 적당한 사람을 찾을 수 없었는데 방금 견능대사께서 말씀하시길 이 비가 기회가 되어 분명히 그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거라 하시더군요.”
“네?”
조씨 부부는 깜짝 놀랐다. 저 부잣집에서 민며느리를 찾는다고? 그리고 이 비가 기회가 될 거라고? 그렇다면 이 집에 찾는 사람이 있다는 말인가? 설마 첫째와 둘째?
오늘 저녁을 먹을 때 유씨가 부잣집에 민며느리로 보내는 이야기를 하긴 했는데, 마침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정말 사 마마의 말처럼 정해진 운명이란 말인가?
조씨댁의 눈길이 자연스럽게 조춘연과 조춘이에게 멈췄다. 아이를 보내는 것은 무척 슬픈 일이지만, 사 마마의 차림새와 길을 나서면서 대사까지 데리고 다니는 것을 보면 분명 귀족 중에서도 지체 높은 집안인 게 분명했다!
저런 집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전생과 현생, 후생에서도 만나기 힘든 행운을 움켜쥐는 일일 것이다!
‘머뭇거렸다가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은 오지 않을 거다.’
조씨도 흥분하긴 매한가지라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아이들은 말도 잘 듣고 철도 든 아이들입니다. 생긴 것도 괜찮고요. 어느 아이가 행운을 얻게 될까요?”
사 마마가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
“먹과 붓을 가져다주시고 아이들의 사주팔자를 알려 주세요.”
“네, 네.”
조씨댁이 대답하고는 얼른 방으로 들어갔다. 글공부를 하는 집안은 아니었지만 조씨가 글도 조금 알았고 장사를 하려면 글씨를 쓸 일도 있었기에 싸구려긴 해도 붓과 먹을 가지고 있었다.
조춘이는 고개를 들어 조씨를 보았다.
“아버지, 뭐 하는 거예요?”
조씨는 아이들이 행여 말실수라도 해서 귀인들에게 안 좋은 인상이라도 남길까 싶어 아이들을 내보냈다.
“너희들은 밖에 나가서 빗방울이라도 구경해라.”
“네.”
조춘연이 조춘이의 손을 잡고 밖으로 나가 부엌 문가에 앉았다. 그동안 조씨댁은 붓과 종이를 들고 와 탁자에 올려놨다.
두 딸의 사주팔자를 알려 주자 견능대사가 그것을 기록하더니 조용히 입을 열었다.
“됐습니다. 두 시주님은 물러가 주십시오.”
“네, 네.”
조씨 부부는 얼른 밖으로 나갔다.
방 안에는 사 마마와 견능대사만 남았다.
견능대사는 사주팔자를 계산해 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복이 없는 궁합입니다.”
“이렇게 가난한 민가에서 복이 많을 리가 있겠습니까. 복이 없을수록 좋으니, 이제는 누구를 골라야 할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사 마마가 비웃듯 말하니 견능대사는 조춘연을 추천했다.
“큰아이는 철도 들고 말도 잘 듣는 것 같습니다.”
“나이가 많습니다. 일곱 살이면 전하보다도 한 살이 더 많은 데다 작은아이가 생긴 것도 더 낫습니다. 신분이 워낙 차이 나는데 외모까지 떨어지면 황후 마마가 일부러 전하를 푸대접한다고 생각해 폐하께서 반대하실지도 모릅니다.
사실 작은아이도 특출나게 예쁜 것은 아니라 중간 정도입니다. 비가 오는 바람에 상황에 맞춰 임기응변한 것이 아니었다면 저 아이들을 고르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러면 마마는 어떤 아이가 마음에 드십니까?”
“조춘이로 하시지요!”
사 마마가 조춘연은 이미 내켜 하지 않는 티를 냈기에 견능대사도 다시 권하지 않았다. 사 마마가 붓을 들어 조춘이의 이름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리고 마른기침을 하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
“조 선생, 조 부인!”
조씨 부부가 얼른 뛰어 들어왔다.
“예, 예.”
“어떤 아이를 고르셨나요, 마마?”
마음이 급한 조씨댁이 물었다. 그녀는 사 마마가 아무도 선택하지 않을까 봐 애간장을 졸였다! 이 집안에 정말로 그렇게나 좋은 일이 생길까 싶었던 것이다.
조씨댁의 가슴이 쿵쾅쿵쾅 방망이질하는데, 사 마마가 부엌 밖에 앉아 있는 조춘이를 가리키며 웃었다.
“둘째가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