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토자포 1
“미증고米蒸糕(쌀떡)요! 어서 오세요, 하나에 2문, 두 개에 3문이에요.”
“하하하, 나 잡아 봐라! 어서!”
도성에서 80리 떨어진 용수진榕樹鎭에는 활기가 넘쳤다. 상인들은 목청을 높여 장사를 하고 아이들은 거리에서 술래잡기를 하며 시끌시끌했다.
큰길에서 멀지 않은 작은 골목에 낡은 집이 한 채 있었다.
작고 평범한 이 집에서는 식사를 준비하는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방 두 칸과 바깥쪽 부엌이 전부인 좁은 민가였다.
방 안의 침상에는 서너 살 정도 된 여자아이가 누워 있었는데 얇은 이불 하나 덮지 않은 채였다.
아이는 쌕쌕 고른 숨을 내쉬며 곤히 잠들어 있었다. 그러나 이내 뽀얗고 부드러운 얼굴을 찡그렸다 풀었다 하더니 몸을 웅크리고 울었다. 악몽이라도 꾸는 모양이었다. 작은 몸이 움찔거리다 마침내 우당탕하고 침상에서 떨어졌다.
“아앙……!”
조앵기가 아파하며 침상에 도로 기어 올라갔다.
다시 침상에 앉은 후에야 조앵기는 막 일어나 침침한 눈을 비벼 떴다. 방 안은 낡고 소박했다. 그녀 자신은 커다란 나무 침상에 누워 있었고 침상 발치에는 오래되어 칠이 벗겨진 상자가 있었다.
창을 열자 멀리 있는 푸른 나무가 보였고 매미 울음소리가 들렸다. 창 아래에는 탁자가 하나 있었다.
조앵기는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 꿈속의 붉은 벽과 초록 기와가 점점 멀어지고 눈앞은 낡고 소박한 것들로 바뀌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이곳은… 자신의 집이었다.
왠지 모르지만 익숙하면서도 낯섦이 느껴졌다. 조앵기는 그게 어떤 느낌인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다만, 조금 전 몹시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섭기만 했고 아마도 마지막에는 높은 곳에서 떨어진 것 같았다. 하지만 떨어지면서 그 전의 내용은 모두 잊어버렸다. 뭔가 있었던 것 같다가도 그저 한바탕 꿈을 꾼 성도 싶었다.
조앵기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몸을 일으켰다. 창밖을 보니 마당에서 여자아이 둘이 나무 조각을 들고 놀고 있었다. 잔꽃 무늬 옷을 입고 땋은 머리를 누더기 천으로 묶고 있는 아이는 일곱 살이었다. 하도 빨아 색이 연해진 붉은 옷을 입은 아이는 다섯 살이었다.
꼬르륵…….
조앵기의 배에서 소리가 났다.
조앵기는 방에서 뛰어나갔다. 방 밖에는 팔선상이 놓여 있었고 스무 살 좀 더 된 듯한 부인이 커다란 배를 내밀고 탁자에 앉아 아이에게 만두를 먹이고 있었다. 만두를 받아먹는 사내아이는 이제 돌쯤 돼 보였다.
조앵기도 배가 고팠다! 꿈에서 뭔가가 계속 먹고 싶었는데 기억이 나지 않았다. 상관없었다. 지금은 뭐든 주린 배에 넣고 싶을 뿐이었다!
콩콩콩! 조앵기는 짧은 다리로 부엌으로 달음박질해 이가 빠진 닭 무늬 그릇을 꺼내 쏜살같이 돌아왔다.
“어머니, 어머니, 저도 만두 먹고 싶어요.”
흠칫 놀란 여자가 조앵기의 뒤통수를 한 대 때렸다.
“아이코.”
조앵기는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
화가 난 여인이 눈을 부라렸다.
“먹고 먹고 또 먹고, 먹는 것 말고 할 줄 아는 게 뭐야! 쓸모도 없는 게 밥만 축내고 있지!”
여자는 한 팔로 아기를 안고 다른 손으로 탁자 위의 만두를 들고 나가 버렸다.
바닥에 쓰러진 조앵기는 어지러워 고개를 흔들며 몸을 일으켰다. 힘없이 그릇을 부엌에 가져다 놓고 마당으로 나온 조앵기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갔다.
일곱 살짜리 아이는 조앵기의 큰언니 조춘연이고, 다섯 살짜리 아이는 둘째 언니 조춘이였다.
셋째 딸인 조앵기의 이름은 남달랐다. 글공부를 시작한 옆집 녀석도 쓸 줄 모르는 글자인데, 조앵기 그녀가 직접 고른 글자였다.
조씨 집안은 이 작은 마을에서 살아가는 정말 너무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조씨는 노점을 열어 나무 조각품을 팔아 생활하고 있었는데, 그거면 먹고 살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딸만 연달아 셋을 낳은 탓에 부부는 우울해했다.
첫 딸이 태어났을 때는 처음 부모가 되어 크게 기뻐했다. 몇 년이나마 공부를 해 본 조씨는 고심해서 조춘연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둘째 딸이 태어났을 때는 부부 둘 다 속이 좀 상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고민해서 이름을 지어 주었다.
셋째를 가졌을 때 조씨댁은 매일 사찰에 가서 꼭 사내아이를 낳게 해 달라고 빌었다! 꼭 아들이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큰집의 시어머니가 그녀를 가만두지 않을 것이었다.
그런데 낳고 보니 이번에도 딸이었다.
조씨댁은 죽어라 목 놓아 울었고, 조씨도 또 딸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아이 얼굴도 보지 않고 문 앞에 앉아 씁쓸한 한숨만 몰아쉬었다.
아이는 줄곧 이름도 없는 채로 호적에 올려 주지도 않았다. 돌이 되어 관아에서 재촉하자 어쩔 수 없이 호적을 정리해야 했다.
조씨는 이름을 지어 주는 것도 귀찮아 예전에 공부할 때 쓰던 글자 책을 가져다 그녀에게 직접 펼치게 했다. 조앵기가 책을 직접 펼쳐 손가락으로 짚은 글자를 그대로 이름으로 쓴 것이다. 그녀는 작은 손으로 직접 ‘앵’과 ‘기’라는 글자를 골랐다.
조씨는 ‘앵’ 자를 쓰지 못해 책을 보고 그렸다. 관아에서 호적을 써 주는 소사가 그 글자는 앵두의 ‘앵’과 발음이 같다고 알려 주었다.
하지만 그녀의 부모는 조앵기의 이름이 앵기이든, 영기이든 아니면 앵두이든 상관없었다. 어차피 계집아이일 뿐인데.
조춘연은 첫째 아이라서 부모가 많은 관심을 기울였으니 자연히 예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차녀 조춘이에 대한 애정은 그다지 크지 않았고, 심지어 조앵기에게는 미운 감정마저 들었다.
그리고 지금 조씨댁은 배 속에 하나를 더 품고 있었다.
몹시도 걱정이 되었던 조씨 부부는 천지신명께 빌고 또 빌며 아들이기를 바랐다. 만약에 이번에도 또 딸이면 어떻게 해야 하지?
조씨댁은 말할 수 없이 조바심이 났고 걸핏하면 화를 내곤 했다. 오늘 조앵기를 한 대 때린 것은 그나마 가벼운 편이었다.
조씨댁은 아들을 보기 위해 임신 중에 사내 아기를 안고 있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친정에서 어린 사내 조카를 데려다 돌보고 있었다.
조춘연과 조춘이는 아버지가 만들어 준 작은 나무 조각을 가지고 장난치고 있었다. 조춘연은 나무 호랑이를 들고 위세를 부렸다.
“나는 호랑이야! 산의 모든 짐승들은 내 말을 들어야 해.”
조춘이는 개 조각을 들고 있었다.
“나는 늑대야, 호랑이도 안 무서워.”
조앵기가 다가가 그 옆에 풀썩 앉자 조춘이가 작은 토끼를 손에 쥐여 줬다.
“가져.”
조앵기는 토끼를 들었다.
“응, 나는 토끼야.”
“어흥……!”
“아우우……!”
조춘연과 조춘이가 나무 조각을 들고 달려들어 토끼를 땅에 떨어뜨렸다.
“다 먹어 버렸다.”
조춘연의 말에 조앵기가 입을 삐죽거렸다.
“으앙……!”
그런데 토끼, 토끼……? 뭔가 토끼와 관련된 단어가 떠오를 것 같았다. 갑자기 너무 배가 고팠다!
그때 ‘끼익’ 하고 대문이 열리더니 스물다섯 정도 된 남자가 멜대를 들고 들어왔다. 그의 바구니에는 직접 만든 작은 조각품들이 들어 있었다. 흔히 볼 수 있는 작은 동물 같은 조각이나 나무로 된 머리꽂이들이었다. 이런 것을 팔아서 겨우 입에 풀칠이나 하는 정도였다.
“아버지!”
아버지가 돌아오는 것을 보자 조춘연과 조춘이가 달려나갔다.
조앵기도 두 언니를 따라 아버지 곁에서 맴돌았다.
“에이, 저리 가, 저리. 이것 좀 내려놓자.”
그는 피곤한 얼굴로 말했다.
“아버지 좀 쉬게 저리 가. 아버지 발 디딜 곳도 없잖니.”
조씨댁이 부엌 문간에 서서 허리를 받치고 야단을 치자, 조춘연이 동생들을 데리고 물러섰다.
조씨는 바구니 두 개를 들어다 처마 밑에 내려놓고는 고개를 들어 목에 두른 수건으로 땀을 닦았다.
“오늘은 왜 위를 안 데리고 있어?”
위, 조씨댁이 오늘 안고 있던 사내아이의 이름이었다.
“잠들어서 침상에 눕혔어요. 이따 새언니가 와서 데려갈 거예요.”
조씨는 입술을 움직였지만 말은 없었다.
아기는 조씨댁의 새언니 유씨에게서 ‘빌려와서’ 안고 있는 것이었다. 유씨는 늘 저녁 먹을 시간에 아이를 데리러 와서 꼬박꼬박 식사를 하고 갔다. 오늘도 그 시간에 올 것이라 당연히 저녁밥을 준비해야 했다.
조씨 집안은 안 그래도 여유가 없는데 배 속 아이까지 딸린 입이 넷이나 됐다. 거기에 요즘은 장사도 잘되지 않아 매일 맨밥에 채소 요리 몇 가지만 놓고 먹었고 하루에 하나 먹는 계란은 조씨댁에게만 주고 있었다.
이런 처지에서 매번 유씨의 끼니까지 챙겨야 하니 조씨는 걱정이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담담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말린 고기를 좀 썰어 내와.”
중추절에 음식을 준비하려고 마련해 둔 것이었다.
조씨댁은 한숨을 쉬더니 부엌으로 들어갔다.
조춘연과 조춘이는 말린 고기라는 이야기를 듣자 신이 나서 조씨댁의 뒤를 졸졸 쫓아갔다.
“우리도 말린 고기 자르는 거 구경할래요.”
“저리 가거라들! 방에 가서 사촌 동생이나 좀 보고 있어.”
조씨댁이 아이들을 쫓아냈다.
“네가 가.”
조춘이는 조앵기를 보내고 언니와 함께 어머니의 꽁무니를 쫓아 부엌으로 들어갔다.
조앵기는 짧은 다리로 콩콩대며 방으로 들어가 침상 옆에 앉아 돌이 된 사촌 동생을 보고 있었다.
금방 날이 어두워졌다. 누군가 문을 두드리자 조춘이가 얼른 뛰어가 문을 열며 반갑게 불렀다.
“외숙모.”
“아이고, 우리 예쁜 춘이구나.”
유씨가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이 유씨는 조씨댁 친정의 큰며느리였다. 시집오자마자 단숨에 아들 둘을 낳았으니 그쪽 면에선 능력이 아주 대단한 여자였다.
“새언니, 왔어요?”
조씨댁이 부엌에서 음식을 들고나와 마당의 대추나무 아래 있는 팔선상에 내려놓았다.
요즘은 날씨가 더워 마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
금방 탁자에 음식이 채워졌다. 백채초랍육白菜炒腊肉(말린 고기 배추 볶음), 증계단蒸鸡蛋(계란찜), 청초초두각青椒炒豆角(고추 콩 볶음), 그리고 두부. 이렇게 네 가지 음식이었다.
다들 탁자에 앉았다.
조앵기의 부모와 조춘연, 조춘이는 평소에 그 작은 사각 팔선상에 서로 마주 보며 앉았었는데 오늘은 유씨까지 와서 자리가 부족했다.
조앵기가 그릇을 들고 가니 이미 앉을 자리가 없었다.
조씨댁은 만두 하나와 두부와 배추를 조금 덜어 조앵기의 그릇에 넣어 주고는 조카를 안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많이 드세요.”
조씨의 말이 떨어지자 저마다 수저를 들었다. 조앵기는 고개를 들어 그들을 한번 쳐다보고는 문가에 앉아 밥을 먹기 시작했다.
“아가씨 배가 점점 뾰족해지는 걸 보니 이번에는 분명 아들일 거예요. 우리 꼬맹이 위가 열심히 돕고 있는 게 분명해요.”
유씨가 웃으며 덕담을 건넸다.
“맞아요. 어서 먹어요, 새언니.”
자기 배가 뾰족하다는 이야기를 듣자 조씨댁은 기분이 좋으면서도 걱정됐다. 지난번에도 다른 사람들이 모두 그렇게 말했지만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