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1-17
참견하기 좋아하는 할 일 없는 사람들은 아예 두왕부 근처에 쭈그리고 앉아 우스갯소리를 듣고 극장이나 찻집에 가서 소문을 퍼뜨렸다.
온 도성에 즐거운 분위기가 흘러넘쳤다. 기분이 좋지 않은 사람에게도 두왕부의 일을 이야기해 주면 바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모두들 두왕을 ‘웃긴 두왕’이라고 불렀다.
엽연채와 혜연은 이 소식을 듣고 ‘헉’ 소리를 냈다. 예전 사찰에서 요공대사가 주종과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열심히 살고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 주거라.”
주종과는 ‘웃음거리가 되는’ 역할을 아주 잘 수행해서 온 도성을 즐겁게 했다.
주 백야는 궁에서의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다. 하여 주종과와 함께 살 생각이었지만 두왕부가 난장판이 되자 놀라서 그 생각을 접고 얌전히 궁에서 지내고 있었다.
* * *
그렇게 한 달이 흘러 주운환과 엽연채가 희소식을 발표했다.
온씨와 엽영교 등 일가보다 조정 대신들이 더 기뻐했다. 황후 마마에게 다시 기쁜 소식이 생겼으니 이제 드디어 정정당당하게 후궁을 들이라고 말할 수 있겠구나!
이튿날 아침, 조정 대신들은 우선 입을 모아 주운환의 둘째 소식을 축하했다.
“황후 마마께서 다시 회임하셨으니 후궁을 채울 비들을 간택하셔야 합니다.”
“맞습니다.”
유 재상의 말에 대신들이 호응했다. 그들은 벌써부터 집안에서 적당한 나이의 딸을 골라 궁에 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주운환이 뜻밖의 말을 했다.
“짐은 경들에게 후궁을 들여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소.”
순간 대신들은 멍해졌다. 후궁을 들이는 게 후궁을 들이는 거지 무슨 이유가 필요한가? 이유야 물론 황제의 시중을 들고, 황제의 환심을 사는 것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런 말을 입 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그러면 황제가 무절제하고 방탕한 사람처럼 보일 것이다!
황제의 태도를 보아하니 후궁을 원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기회를 놓쳐서야 안 될 노릇! 대신들은 깊이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럴듯한 이유를 둘러대기 시작했다.
“후궁이 가득 차야 자손을 많이 얻을 수 있습니다.”
여지가 말했다.
“하지만 자손이 많다는 것이 꼭 좋은 일은 아니오. 짐은 대제 정선제 시기에 있었던 형제의 난이 떠올라 아직도 걱정이 되오. 짐은 태자와 적통 가족들을 키우는 데 집중하려 하오. 다른 것은 모두 필요 없소!”
주운환의 말에 조정 대신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정선제 시절 노왕, 요절한 평왕, 폐태자, 경엽제와 용왕, 제각각 다른 마음을 품었던 다섯 형제는 너무나 안 좋은 모습으로 끝난 것이 사실이었다! 대제 정선제만 아니라 모든 왕조, 아니, 집안에 형제들이 많은 세도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형제가 많으면 형제들 사이의 분란은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은 황제나 귀족들이 정말로 후손을 많이 원해서 싸움이 일어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저 첩을 들이고 싶었을 뿐이고, 첩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하고자 했다.
하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뱉을 수는 없었다! 자신들은 품위 있는 군자니까!
누군가 황급히 말했다.
“태자 전하를 키우는 데 집중하시는 것은 물론 좋은 일입니다만, 자식이 많으면 복이 많다 했으니 당연히…….”
“무슨 말이오?”
주운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태자가 죽으라고 저주하는 거요?”
대신들이 화들짝 놀랐다.
“아닙니다, 소신들은 그런 뜻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태자 전하는 큰 복을 누리실 것입니다.”
“그게 아니라, 후궁을 들이면 정국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다른 대신이 급히 말을 덧붙였다.
“정국을 안정시킨다? 지금이 안정이 필요한 정국이요? 그 말은 경들 모두 다른 마음을 품고 있어 안정되지 않았다는 말이오? 그러니 서노 공주와 화친을 한 것처럼 여러 대신들의 여식들을 궁에 들여 정국을 안정시켜야 한다는 말이오? 이 시랑, 그대는 그런 불충한 마음을 품었소?”
대신들은 놀라서 하얗게 질렸다. 주운환이 하하 웃으며 아래에 있는 대신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자, 나라에 만족하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딸을 궁으로 들이시오!”
조정 대신들은 새파랗게 질렸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딸을 후궁에 보내겠는가! 사람을 보내면 자신이 불충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 아닌가?
“폐하의 말씀이 옳습니다. 후궁을 채울 필요는 없습니다.”
진무가 말했다.
“옳습니다.”
장찬도 맞장구쳤다.
유 재상과 여지를 비롯한 다른 대신들은 마음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당신들은 이미 친척이니 당연히 필요 없겠지!
주운환의 눈길이 후궁을 들여 조정을 안정시켜야 한다고 말한 이 시랑에게 멈췄다. 이 시랑이 무릎을 꿇었다.
“소신이 실언을 하였습니다. 폐하를 향한 제 충심은 천지가 모두 알고 있습니다.”
“짐은 이 시랑의 충심을 알아볼 수가 없소. 대리시경, 이 시랑의 집에 가 짐에 대한 이 시랑의 충심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 보시오.”
놀라서 다리가 풀린 이 시랑은 바닥에 주저앉았다. 어느 귀족이든 얼마간 선을 넘는 일이 있게 마련이다. 나쁜 짓을 했든 아니면 옷감이든 도구든 가져서는 안 될 물건들이 있든, 걸리는 건 분명 있게 마련이었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으니 군주라면 한쪽 눈은 감아 줄 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주운환이 철저하게 조사하겠다고 했으니 모든 것이 죄목이 될 수 있었다. 주운환은 이 시랑을 본보기로 삼기로 했다. 일벌백계가 있어야 대신들은 더 이상 후궁을 들이라는 말을 꺼내지 않을 것이었다.
* * *
회의가 끝나고 주운환은 태극전으로 갔다.
들어가니 대전 안에서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동글동글한 작은 그림자가 보였다. 짤막한 다리를 내디디며 그를 향해 팔을 벌리고 뛰어왔다.
“히히, 아버지!”
주운환의 얼굴에 웃음이 번져 번쩍 아들을 안아 들어 어깨에 앉혔다.
“우리 철단이는 정말 행복한 아이로구나. 가자, 아버지가 증속고蒸粟糕(찐 떡의 일종)를 주마.”
주요가 주운환의 어깨에 앉아 까르륵 웃었다.
소리를 들은 엽연채는 문가로 나와 웃으며 그들을 보고 있었다. 주운환은 엽연채에게 다가가 주요를 내려 엽연채의 품에 안겨 주었다.
“자요.”
“왜요?”
엽연채가 살짝 놀라며 주요를 감싸 안았다. 채 반응을 하기도 전에 주운환은 그녀의 허리를 감싸며 웃었다.
“나는 부인을 안을 거라서요.”
엽연채가 웃으며 그의 어깨에 기댔다.
“부군, 고마워요.”
주운환은 잠깐 멈칫했지만 곧 입꼬리가 올라갔다.
“부인과 철단이가 매일매일 즐겁고 행복하면 좋겠습니다.”
만약 후궁을 들여 서자들을 잔뜩 낳는다면, 부부 사이도 부자 사이도 지금과는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질투와 경계심이 그 사이를 채울 것이고… 별별 이해관계와 갈등으로 어지러워질 것이다.
주운환은 가족들 사이가 그렇게 변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가 원했던 것은 언제나 그녀뿐이었다.
이 시랑의 조사 결과는 금방 나왔다. 그는 법을 어기고 몇 가지 물건들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그가 평민 여자 몇 명을 강제로 첩으로 삼은 것이었다. 심지어 그중 두 사람은 이 시랑의 집에 들어온 후 스스로 목숨을 끊어 버렸다.
주운환은 양가의 여인을 강탈한 죄명으로 이 시랑의 관직을 파면했다.
그 일로 주운환이 후궁을 들이지 않기로 한 일을 도성 전체가 알게 되었고, 모두 깜짝 놀랐다.
신하들 중엔 불만을 가진 자도 여럿이었다. 하나 지난번 진씨와 주묘서의 일로 주운환이 헛소문을 퍼뜨리던 사람을 잡아내는 걸 똑똑히 봤기에, 사람을 시켜 엽연채의 질투가 심하다는 소문을 퍼뜨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이에 어떤 사람들은 오히려 황제와 황후의 정이 깊다며 칭송하기도 했다.
* * *
이튿날 아침 엽영교는 궁에 들어와 엽연채에게 보약을 전했다.
두 사람은 서차간에 있는 주요의 놀이 융단에 앉아 있었다. 고모와 조카는 가운데서 장난치는 아기들을 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엽영교는 엽연채의 배를 보면서 부러워했다.
“내년에 또 토실토실한 아기를 보겠네.”
엽연채가 소리 내어 웃었다.
“저와 부군 모두 딸을 바라고 있어요. 고모도 곧 생길 거예요!”
엽영교가 얼굴을 붉히며 끄덕였다.
“노력하고 있어.”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웃다 엽영교가 불쑥 목소리를 낮췄다.
“폐하께서 후궁을 들이지 않는다며, 앞으로도 그런 거야?”
“네.”
엽연채는 대답하며 더없이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엽영교는 엽연채가 더 부러워졌고 마음 또한 한층 흔들렸다.
“자소야.”
갑자기 밖에서 주운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엽영교가 얼른 일어나 밖을 보니 주운환과 진지항이 함께 들어오고 있었다.
엽연채와 엽영교가 일어나 그들을 맞이하니 진지항이 웃으며 다가왔다.
“부인, 부인이 궁에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함께 집에 가려고 왔어요.”
엽영교는 진지항의 곁으로 다가가며 이리 대꾸했다.
“연채가 식사를 하지 않았어요.”
주운환이 고개를 돌렸다.
“식사하고 가세요.”
네 사람이 함께 식사를 마치고 엽영교와 진지항은 돌아가는 마차에 올랐다. 엽영교는 그를 살짝 흘겨보며 운을 뗐다.
“얼마 전 이 시랑이 관직을 파면당했다면서요.”
“맞아요! 정말 멍청한 사람이지요.”
진지항이 고개를 끄덕이기만 하니 엽영교는 눈을 굴리더니 입을 삐죽였다.
“연채가 그러는데 폐하께서 후궁을 들이지 않겠다고 하셨대요. 앞으로도 후궁 없이 한평생 두 사람만 함께하기로 했대요! 하, 세상에 어쩜 저렇게 좋은 남자가 있죠! 게다가 황제라니요.”
진지항이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는 언제나 최고셨어요! 내가 본 남자 중 제일 훌륭한 분이세요.”
“폐하는 이 세상의 모범이시니 당신도 황제를 보고 잘 배워야 하지 않겠어요?”
“그럼요, 당연하지요.”
“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할 거예요?”
엽영교가 애교를 부리듯 물었고, 진지항은 그 사랑스러운 얼굴을 보자 그제야 그녀의 말뜻을 깨닫고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나는 폐하께서 하는 대로 전부 다 따라 할 거예요.”
엽영교는 그의 다리를 꼬집었다.
“그러니까, 어떻게 할 건데요?”
“아이고오…….”
진지항이 쩔쩔매면서 애원했다.
“첩을 들이지 않을 거예요! 절대!”
엽영교는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
“바보, 그래도 눈치는 있네요!”
“언제나 그런걸요. 자, 입을 맞춰 줘요.”
그는 엽영교를 끌어안으면서 웃었다.
“황후 마마께서 아이를 가지셨잖아요. 우리도 뒤처질 수는 없죠, 하하.”
엽영교가 그를 밀어내며 눈썹을 찡그렸다.
“만약… 다음에도 딸을 낳으면 어떻게 해요?”
“딸도 예쁘기만 한걸요? 그리고 정말 안 되면 데릴사위를 들이면 어때요.”
“부모님들께서 허락하지 않으실 거예요.”
엽영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으나 진지항은 여전히 웃는 낯이었다.
“당신 뒤에 연채와 운환이 버티고 서 있는데, 당신에게 감히 뭐라고 하겠어요?”
“저에게 어떻게 하지는 못하신다고 해도 속상해하실 거 아녜요.”
엽영교는 그래도 걱정이 되었다.
“부모님이 좋아하지 않으면 좀 덜 보면 돼요. 노력해도 아들이 생기지 않으면 우리가 분가해도 되고요.”
진지항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엽영교는 그에게 머리를 기댔다.
“좋아요.”
진지항은 그녀에게 자신의 어깨를 내주며 웃었다.
“아직 아기가 생기지도 않았는데 벌써 무슨 걱정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