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30화 (830/858)

번외 1-16

“짐이 알려 둘 말이 있소. 서노 공주는 성품이 고약하고 제멋대로요.”

주종과는 가슴을 두드리며 대답했다.

“공주라면 당연히 제멋대로인 부분이 있겠지요. 소신은 마음에 듭니다!”

공주라면 거만한 성격에 못된 구석이 있어야 공주답지! 그토록 고귀하고 자존심 센 공주를 정복하는 것이 또 한 가지 묘미 아니겠나.

“좋소, 두왕 그대가 스스로 선택한 거요.”

주운환이 말했다.

주 선생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서노 공주는 우리 대량에 시집올 날만 기다리고 있고, 두왕 전하는 공주를 원하시니 모두가 만족하는 큰 경사입니다. 아주 보기 좋습니다.”

“그렇소.”

주운환은 붉은 입꼬리를 또 한 번 올렸고 대신들도 모두 웃으며 축복했다. 이번 통혼通婚은 양쪽 모두 만족하니 흔치 않은 경우였다.

주종과의 혼사는 이렇게 결정되었다.

주종과는 집에 돌아와 비 이낭에게 알렸다.

“어머니, 제 혼사가 드디어 정해졌습니다. 저는 서노의 장공주를 아내로 맞이할 겁니다!”

“뭐라고? 세상에!!”

비 이낭은 믿을 수가 없어 벌떡 일어났다.

“내 아들이 정말 좋은 팔자를 타고났구나, 공주를 부인으로 맞이하다니! 원남옥이니 제민이니 그게 다 뭐란 말이냐, 쳇! 그것들이 내 아들을 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내 아들이 그것들을 부인으로 맞지 않은 거야! 내 아들은 공주를 맞이할 사람이다! 어서, 공주를 맞이하려면 어서 왕부를 뜯어고쳐야지.”

주종과가 서노 공주와 혼인한다는 소식을 듣자 주 백야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비 이낭은 잔뜩 신이 나서 매일같이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아는 사람을 볼 때마다 붙잡고 이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종과가 공주와 혼인을 하게 됐어요. 호호호. 정말이지 그렇게 신분이 높은 공주와 혼인을 하는 데다 화친을 위한 국혼인지라 혼사를 대충 준비할 수가 없네요.”

곧 온 도성이 주종과가 공주와 혼인하는 일을 알게 되었다.

이 소식을 들은 제민은 우스워서 바로 엽균의 집으로 달려갔다. 원남옥은 다섯 달이 된 배를 받치고 정원의 흔들의자에 앉아 혀를 찼다.

“그 찌질이한테 그런 운이 있었어?”

제민이 깔깔 웃었다.

“비 이낭이 일부러 우리 집까지 쫓아와 처음부터 끝까지 이야기를 늘어놓으면서 혼례를 올릴 때 꼭 오라고 하더라고. 나야말로 그 찌질이가 그런 복을 제대로 받을 수 있는지 가서 꼭 보고 싶어.”

* * *

보름도 채 되지 않아 두왕부의 수리가 끝났다.

주종과와 비 이낭은 얼른 이사해 들어갔다. 이사한 후로 주종과는 매일매일 혼인하는 그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서노는 서신을 보낼 때 이미 혼수를 챙겨 공주를 도성으로 보냈다.

한 달 후, 서노 공주가 드디어 도성에 입성했다!

조정에서는 대량과 서노의 통혼을 몹시 중요하게 생각했다. 하여 특별히 주종과의 혼례를 궁에서 열어 주기로 하였다. 웃어른들에게 절을 올리는 의례도 대전에서 올린 뒤, 모든 예식을 치른 신랑 신부는 두왕부의 신방으로 이동하게 될 것이었다.

그날 등을 밝히고 화려하게 단장한 궁에는 경사스러운 기운이 넘쳐흘렀다.

문무백관과 귀족들이 모두 모였고 주운환과 엽연채는 황좌에 앉아 있었다. 그 양쪽에는 주 백야와 매씨가 착석해 있었다.

대량으로 시집을 오는 서노 공주는 대량의 혼인 풍습에 따라 봉관에 하피 차림으로 성문에 들어와 대명가를 통해 도성을 가로질러 궁문을 지나 대전에 도착했다. 신부의 행렬이 길게 늘어지자 도성이 떠들썩했다.

대신들은 멀리서 하인들을 대동하고 대전으로 들어오는 서노 공주를 보자 그 화려한 모습에 놀랐다.

주종과는 천천히 다가오는 서노 공주를 보자 흥분해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그녀와 나란히 서자 잠시 멍해졌다. 서노 공주의 키가 저만 한 것이다!

‘내가 키가 크고 늘씬한 미인을 좋아하지만 이건 너무 큰 것 아닌가?’

“하늘과 땅에 일배一拜!”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의례를 담당하는 사의司儀 환관이 외쳤다.

부부가 절을 마치자 사의 환관이 외쳤다.

“예식이 끝났습니다!”

주운환 곁에 있던 총관 환관이 입을 열었다.

“서노 공주 아이나를 두왕비에 봉한다. 두왕비는 천자를 알현하여 감사를 드리십시오.”

서노 공주가 몸을 돌려 주종과와 마주 섰다. 주종과가 이편의 머리에 쓴 붉은 수건을 걷으면 두 사람이 함께 주운환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붉은 수건이 치워지고, 문무백관과 연회에 참석한 모든 귀족들 그리고 주종과마저 숨을 멈췄다.

눈앞에 선 여인은 관우처럼 눈이 가늘게 쭉 찢어졌으며 넓적하고 각진 남자 얼굴을 하고 있었다!

주종과는 놀라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으며 하얗게 질려 소리쳤다.

“깜짝이야! 웬 남자가 있어?”

“세상에! 저렇게 못생기다니……!”

비 이낭도 놀라서 소리쳤다.

서노 공주 뒤에 서 있던 대사가 황급히 말했다.

“무엄합니다. 무슨 남자란 말입니까? 우리 공주는 분명한 여인입니다! 우리 서노에서 추종자가 제일 많은 서노 최고의 미인이란 말입니다!”

주종과는 눈앞이 핑핑 도는 듯이 화가 나서 새파래진 얼굴로 몸을 일으켰다.

“최고의 미인은 무슨… 나는, 난……!”

“무엄하오!”

황좌의 주운환이 차갑게 소리쳤다.

“두왕은 실례를 범하지 마시오. 아이나 공주는 서노 최고의 미인이 맞소.”

엽연채가 고개를 끄덕였다.

“마술과 궁술을 좋아하는 서노에서는 아가씨들도 용감하고 건강한 것을 제일 아름답게 여기지요.”

눈앞이 캄캄해진 주종과가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주운환의 계략에 넘어간 것만 같아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주운환이 차갑게 웃었다.

“둘째 형님, 어서 둘째 형수님에게 사과하세요.”

손님들은 숨을 멈췄다. 사과를 하면 집안에서 주종과와 아이나 공주의 지위가 결정된다! 하지만 그러면 대량이 서노에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가는 것 아닌가?

주종과는 한마디 반항도 못 하고 잔뜩 울상이 되어 서노 공주를 보았다.

“공주…….”

“호칭을 바꾸세요!”

주운환이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말허리를 잘랐다. 아이나 공주가 ‘서노 공주’의 신분으로 주종과의 사과를 받게 할 수 없었다.

주종과는 죽고만 싶은 심정이었으나 하란 대로 하는 수밖에는.

“부, 부인… 내가 실례했소.”

“좋소.”

주운환은 웃으며 서노 공주를 바라봤다.

“두왕은 늘 하는 것도 없이 한가롭게 보내는 사람이니 서노 공주가 많이 보살펴 주십시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얼굴에 근심이 가득하던 대신들은 그제야 활짝 웃었다.

“서노에서 가장 존귀한 장공주 마마, 잘 부탁드립니다.”

서노 공주와 사신 일행의 표정이 달라졌다. 주종과가 소리 내어 사과했고 ‘부인’이라고 불렀으니 서노가 유리한 위치에 선 것이다.

게다가 주운환이 ‘하는 것도 없이 한가롭게’ 지낸다고 덧붙이다니! 서노에서 제일 귀하고 제일 아름다운 장공주가 대량에서 제일 능력 없는 왕에게 시집을 왔으니 애초에 고개를 숙이고 시작한 것이다!

체면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주종과와 달리 주운환은 서노를 평정한 남자였다. 주운환이 직접 응성을 지키지는 않았지만 그가 발탁한 두 부장 또한 용맹한 장수여서 서노는 연달아 몇 명의 장수를 잃고 난 후 자연히 저자세로 지냈다.

‘비록… 나랏일에는 복종했지만, 부부간의 일은…….’

서노 공주는 그렇게 생각하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주종과를 보았다.

자기도 모르게 들들대는 주종과를 두고 서노 공주는 주운환을 향해 예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주운환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신방으로 가십시오.”

주종과는 뻣뻣하게 굳어 사나운 서노 공주를 데리고 궁을 나섰다.

* * *

두왕부에 돌아온 후, 주종과가 죽어도 신방에 들어가려 하지 않자 자신을 모욕했다고 생각해 몹시 화가 난 서노 공주는 뛰어나와 주종과의 멱살을 잡고 한바탕 매질을 퍼부었다.

주종과는 서노 공주와 비슷한 신장을 가지고 있었지만, 글공부만 해 온 주종과는 닭을 잡을 힘조차 없었다. 용감하고 힘이 센 서노 공주를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제대로 혼쭐이 난 주종과는 어쩔 수 없이 신방에 들었다.

이튿날 아침, 주종과는 두어 마디 불만을 쏟아 냈다가 또다시 서노 공주에게 호되게 맞았다.

궁에 들어가 차를 올리고 난 후 주종과는 울며 주 백야에게 일러바쳤지만, 주 백야는 정말이지 그 사이에 끼어들 엄두가 나지 않아 셋째에게 이야기하라고만 할 뿐이었다. 그에 주종과는 옆에 앉은 주운환에게 흑흑대며 원망을 털어놓았다.

“아우, 아우가 나… 나를 계략에 빠뜨린…….”

주운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처음부터 말하지 않았습니까. 서노 공주는 제멋대로이고 성격이 고약하다고요. 그런데도 짐이 허락을 하지 않을까 걱정이라도 하듯이 서둘러 대답한 건 형님입니다.”

주종과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난, 난…….”

“왜요? 정말 몰랐습니까? 과거를 준비하는 형님은 십수 년 동안 성현들의 책을 읽었으니 서노의 풍속을 모를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주종과는 화를 참느라 얼굴이 새까매졌다. 물론 조금도 몰랐다! 그렇다고 그걸 인정하면 그동안 헛공부했다는 말이 되지 않겠는가?

“아우… 이 혼사는 내가 하겠다고 한 것이네. 하지만… 막 사람을 때렸네! 아무것도 바라지 않을 테니 그저 혼이나 내주게.”

주운환은 눈썹을 움찔하며 차갑게 웃었다.

“짐은 공정하고 사리에 밝은 사람입니다. 형님이 아무 짓도 하지 않는데 공주가 형님을 때린다는 말입니까? 아무 이유도 없이 소란을 피우는 것이라면 당연히 짐이 관여하겠지만, 형님이 빌미를 제공한 것이라면 짐도 공주의 편에 설 것입니다.”

비 이낭은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바닥에 주저앉아 울었다.

“세상에, 이런 법은 없는 거야…….”

하나 그녀가 아직 통곡을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주운환의 얼굴이 굳었다.

“끌어내 뺨을 스무 대 쳐라!”

두 명의 환관이 얼른 뛰어 들어와 비 이낭을 끌어냈다.

철썩, 철썩! 큰 소리가 나도록 스무 대를 때리자 비 이낭은 얼굴은 피범벅이 되었고 이까지 빠졌다. 그럼에도 그녀는 울고불고하다 부인의 지위까지 잃어버릴까 무서워 차마 울 수조차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두왕부의 생활은 더욱 흥미진진해졌다!

건장한 서노 공주는 생긴 것만 남자 같은 것이 아니라 행동도 남자들 같았다. 손을 쓸 수 있으면 말로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못된 짓을 하는 데 도가 튼 주종과는 하루에 한 번은 싸우고 사흘에 한 번씩 맞았다.

툭하면 눈물 바람을 자아내는 비 이낭은 맞을 때마다 통곡을 했다. 물론 서노 공주가 비 이낭을 때리는 것은 아니었다. 서노 공주는 여자는 괴롭히지 않으니 주종과가 그 억센 손을 감당해야 했다.

이렇게 두왕부는 지붕이 날아가기 직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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