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27화 (827/858)

번외 1-13

진씨는 하늘이 캄캄하고 온 세상이 빛을 잃어버린 것 같았다. 자신의 인생이 전부 끝난 것 같았다! 아니, 끝났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다는 말이냐! 너무나 고통스러워 죽고만 싶었다.

진씨는 주비양을 붙들고 때리기까지 했다. 하나 주비양은 꿋꿋이 꿇어앉아 주운환을 올려다보며 계속해서 사정했다.

“폐하, 저들은 이미 폐위되었고, 아버지도 처를 내쫓으셨습니다. 저들이 큰 잘못을 저질렀다고는 하나 제 친어머니입니다. 제발… 귀양은 보내지 말아 주십시오.

그저 도성에서 쫓아내시면 제가 영지로 돌아가 봉양하면서 평생 저들이 한 발짝도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하겠습니다. 저도 한 발짝도 나오지 않겠습니다. 그저 한 번만 용서해 주십시오.”

주운환이 냉랭한 눈길로 진씨와 주묘서를 쳐다보았다.

“좋습니다. 만약 저들이 한 발짝이라도 영지를 벗어난다면 가차 없이 처벌할 것입니다!”

주비양이 주운환에게 머리를 조아렸다.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주운환은 뒤쪽의 환관들에게 말했다.

“태황태후 마마를 수안궁으로 모셔라. 가자!”

그러고는 엽연채의 손을 잡고 자리를 떠났다.

“아아아… 안 돼! 이럴 수는 없어!!”

진씨는 금방이라도 미쳐 버릴 것처럼 주운환을 향해 달려들다 금위군과 환관들에게 가로막혀 바닥에 또다시 쓰러졌다.

진씨는 일어나지도 못한 채, 주운환의 뒷모습을 보며 원망의 눈물을 하염없이 흘렸다.

“엉엉… 난 공주야……!”

주묘서는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고함을 질렀다.

자신은 공주가 되고 싶었다! 공주! 모든 여자가 원하는 신분 아닌가!

원래 몰락한 집안의 딸이었다. 그동안 고관대작들의 딸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는지 모른다. 신분을 높이는 것이야말로 언제나 갈망해 온 소원이었다.

드디어 공주가 되었는데… 이렇게 폐위되고 서인으로 떨어지다니!

주 백야는 끝까지 뉘우치지 않는 모녀의 모습을 보면서 경악과 분노에 겨워 씩씩거렸다.

“저런 돼먹지 못한 것들! 진작 내쫓았어야 할 것을.”

주 백야도 떠나 버렸다. 결국 바닥에 앉아 울부짖는 악독한 모녀와 아직도 무릎을 꿇고 있는 주비양 내외만 그 자리에 남았다.

수안궁.

환관과 궁녀들이 매씨를 침상으로 옮겼다.

“다행히 넘어지실 때 받쳐 준 사람이 있어 가볍게 접질린 것뿐이니 요양만 잘하시면 되겠습니다.”

치료를 마친 나 의정이 말했다.

“고맙네, 의정.”

엽연채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의정, 내가 약을 받으러 따라가겠소.”

주 백야는 나 의정과 같이 궁을 나섰고, 엽연채는 침상 곁에 앉아 매씨의 손을 잡았다.

“할머님, 아시면서 일부러 당하신 거죠?”

엽연채는 늘 진씨 모녀 때문에 노심초사하며 그들에게 사람을 붙여 놓고 지켜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매씨가 그럴 것 없이 자신에게 맡겨 달라 하는 게 아닌가. 하여 엽연채는 모녀를 지켜보던 사람에게 진씨 모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매씨에게 알리라 했었다.

매씨가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그래, 맞다.”

“아시면 넘어지실 때 알려 주시고 현장에서 잡았으면 될 일인데, 일부러 넘어지실 것까지는 없었잖아요.”

매씨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내가 정말 다치지 않으면 내쫓기는 힘들 것 아니냐.”

매씨는 강인하고 정직한 성정의 소유자였다. 하여 그녀는 자신이 그런 지경까지 되지 않고는 진씨 모녀를 확실히 처리하기가 어려울 것 같다고 생각한 것이다. 또한 그래야만 진씨 모녀에게 그만한 벌을 줘도 양심에 떳떳할 것 같기도 했다.

“셋째야.”

매씨가 침상에 누워 주운환을 바라보았다.

“네 어미가 우리 집에 들어오던 그 순간, 난 누구인지 알아봤다……. 그랬음에도 네게 한 번도 말하지 않았지. 널 특별히 챙기지도 않고 적통 집안과 이낭 가족들이 너를 괴롭히는데도 그냥 내버려두었다……. 내가 미우냐?”

주운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저는 서자인걸요. 어릴 때부터 특별한 보살핌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다만… 그분의 신분을 알게 되고 나서 많은 생각을 했어요.

그분은 당시 상황이 나빴으니 도성에 돌아오고 나서도 직접 삼촌을 찾아가거나 궁으로 가지 않으셨던 거겠지요. 본인 때문에 삼촌이 더 궁지에 처할까 봐 걱정하셨던 걸 겁니다.

그렇다고 이낭이 세상을 떠난 후 할머니께서 저를 달리 대해 주신다면 의심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겠지요. 그리고 할머니도 몸이 오래 편찮으셨잖습니까.”

주운환의 말을 듣고 매씨는 살짝 한숨 지었다.

운하가 집안에 들어왔을 때는 주씨 집안이 몰락하기 전이었다.

아들이 기루에서 웬 여인을 데려왔다는 소식을 듣자 매씨는 몹시 화가 났지만 정작 여인을 보자 놀라서 굳어 한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그녀를 보자마자 사라진 운하공주라는 것을 알아챈 것이다.

소씨 가문과 사이가 좋았던 매씨는 자주 궁을 찾아 소 황후와 시간을 보냈고, 그때마다 운하공주를 보았으니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리고 운하공주 역시 매씨가 눈치챈 것을 안 모양이었다. 애원하는 듯한 그 눈빛에 매씨는 군말하지 않고 집에 그녀를 들이고 신분을 감춰 줬다.

운하의 처지는 양왕을 더욱 힘들게 할 것이었다. 더구나 그녀는 알고 지내던 사람에게 지금의 처지를 절대 보여 주고 싶지 않을 터였다. 만신창이가 된 자신의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이느니 차라리 죽는 편이 낫다고 생각할 여인이었다.

‘그렇다면 우리 주씨 가문에서 쉴 곳을 내어 주자!’

이리 마음먹었으나 주운환이 태어나고 얼마 후 운하는 세상을 떠났다.

매씨는 양왕의 거사를 주목하였지만 보아하니 그것도 어려울 것 같았다. 하여 소씨 집안의 마지막 핏줄인 주운환이 서자로서 조용히 살다가 그에게 어울리는 며느리를 맞으면 적은 재산이나마 나누어 줘서 바깥에서 제 본분을 하며 살아갈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소씨 집안에 대한 마지막 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오늘날, 주운환이 황제가 된 것이다.

“오늘 비양이의 일은… 잘했다.”

주비양이 진씨를 위해 사정하자 주운환이 허락한 일을 말하는 것이다.

“큰형님은 저에게 늘 잘해 주셨어요.”

주비양은 마음이 타 버려 재가 된 듯, 무슨 일에도 아무런 신경도 마음도 쓰지 않았다. 주운환에게도 매한가지로 관심이 없었지만, 적어도 주종과처럼 괴롭히지는 않았다.

하여 주운환은 주비양이 나서면 그때 허락하겠다고 이미 상황을 머릿속에 그려 둔 후였다. 주비양이 진씨와 주묘서를 데리고 도성을 떠나면 이후로 영지에 가둬 두면 되었다.

“비양이에게 그렇게 잘해 줬으니… 나중의 일은 나에게 맡기고 안심하거라.”

매씨의 이 말에 주운환이 차가운 눈을 살짝 반짝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래, 늦었으니 너희도 돌아가라. 이 늙은이는 걱정할 것 없다.”

“네.”

매씨가 웃자 주운환이 엽연채의 손을 잡고 나갔다.

두 사람이 나간 후, 매씨는 허리 통증을 참느라 숨을 훅 들이마시고는 분부를 내렸다.

“가서 주정을 불러와라.”

“알겠습니다.”

장 마마는 즉시 밖으로 나갔고, 곧 장 마마와 주 백야가 함께 들어와 매씨를 향해 손을 모았다.

“어머니, 좀 어떠십니까?”

“진씨 그 물건, 내가 사람을 제대로 볼 줄 몰라서 네가 그런 여자를 부인으로 얻었구나.”

매씨가 담담하게 이야기하자 주 백야는 눈썹을 찡그렸다.

“제대로 보고 말 것이 있겠습니까……. 누가 그런 사람인지 알았겠습니까.”

매씨가 괴로운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다. 진씨도 사실 처음에는 괜찮았지. 학자 집안의 귀한 딸이었으니. 처음 시집왔을 때는 온순하고 예의 바르고 집안일도 잘 챙겼는데. 부족한 것이 있어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도였어.

하지만 가세가 기울어지고 나니 본성을 남김없이 드러내더구나. 집안의 변고는 사람의 본성을 비추는 거울이지. 쿨럭……!”

“어머니, 좀 쉬십시오.”

매씨의 창백한 얼굴을 본 주 백야는 얼른 그녀를 부축했다.

“아니다, 이야기를 끝내야지. 그때 그 아이를 선택한 내가 경솔했다. 하지만 그동안 그 물건에 내리 휘둘린 너도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다. 특히 묘서가 저렇게 변한 데는 방임한 네 책임이 제일 크다.”

“이제 내쫓지 않았습니까.”

얼굴빛이 변한 주 백야가 웅얼거리며 대답했으나 매씨는 싸늘하게 그를 바라보았다.

“아까 진씨 눈을 보지 못했느냐? 독이라도 먹은 것 같더구나. 도성에서 멀리 떠나보내더라도 다른 생각을 품은 사람에게 이용당해 또 농간을 부릴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면 이 나라도 휘말려 화를 입을지도 모르지. 비양이든 운환이든 모두 그 물건 때문에 곤란해질 것이야.”

잔뜩 일그러진 주 백야의 얼굴에서 식은땀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그도 내심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진씨가 곱게 포기하고 얌전히 지낼 리가 없다! 30년 세월 가까이 부부로 지낸 자신보다 진씨를 더욱 잘 아는 사람은 없었다.

“흥, 나가 봐라!”

매씨가 냉랭하게 내뱉었고 주 백야는 이마의 식은땀을 닦으며 나갔다. 그가 밖으로 걸음 하니 자신을 ‘태상황’이라고 부르는 궁녀와 환관들이 서 있었고, 넓은 궁전이 펼쳐져 있었다!

‘이 모든 것을 진씨가 망쳐 버릴지도 모른다.’

주 백야는 도망가고 싶었다. 하지만 한평생 도망만 친 끝에 이제 더 이상은 도망갈 곳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 뿌리 뽑지 않으면 진씨가 주씨 가문 전체에 재앙을 가져와 버릴 것이다.’

주 백야는 이를 악물었다. 방으로 돌아온 그는 대복을 시켜 무언가 사 오라며 궁 밖으로 내보냈다.

대복이 물건을 들고 돌아오자 주 백야는 대복과 환관 몇을 데리고 진씨의 처소로 향했다.

주운환과 매씨 등이 떠난 후, 진씨와 주묘서는 궁에 갇혀 있었다. 날은 이미 저물었고, 내일이면 도성을 떠날 것이었다.

주 백야는 대복과 환관 몇을 데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진씨는 바닥에 앉아 목 놓아 울고 있었다. 주 백야가 들어오는 것을 보고 흠칫 놀랐지만 곧 들입다 달려들어 힘껏 주 백야를 밀쳤다.

“이 양심도 없는 인간! 이 머저리 같은, 악!”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엔 주 백야가 그녀를 밀었다. 안 그래도 참을 수 없었던 주 백야는 진씨가 욕까지 하자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어 매섭게 외쳤다.

“먹여라!”

대복이 진씨에게 달려들어 힘껏 바닥에 그녀를 내리눌렀다.

“아아악……! 뭐 하는 거냐? 이 천한 노비가, 감히 나에게 손을 대다니! 저리 가라! 주정, 이 개자식! 이 머저리, 이게 무슨 짓이야?”

공포에 질린 진씨가 고함을 치기 시작했다. 대복은 병을 쥔 손을 조금 떨고 있었다. 어쨌거나 진씨는 오랫동안 그가 모신 주인마님이었다.

주 백야는 고함치는 진씨의 모습을 보자 혐오감이 차올랐고, 결국 참지 못하고 직접 달려들어 대복의 손에 있던 하얀 도자기 병을 잡고 진씨의 입에 들이댔다.

“아… 으웁……! 쿨럭… 악, 사람 살려……!”

진씨는 있는 힘을 다해 발버둥 쳤으나 주 백야도 죽을힘을 다해 약병에 든 액체를 강제로 먹였다. 진씨는 비리고 쓴 무언가가 입으로 들어오는 것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이게 뭐지? 설마? 아니, 분명 독약이다! 이 머저리가 감히 나에게 독약을 먹이다니!’

진씨는 분하기 짝이 없었지만 이내 그를 압도하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이 약을 마셔서 안 되는 줄 알지만, 대복에게 제압된 탓에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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