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외 1-11
진씨는 금세 눈이 시뻘게져 펄쩍 뛰어올라 주 백야를 힘껏 밀쳤다.
“쫓아내요! 할 수 있으면 쫓아내라고요! 내가 목을 매든 뭘 하든, 모두 묘서를 도성에 남겨 두려던 것이었어요! 내가 무슨 죄를 지었어요?”
주 백야는 화가 치밀었다.
“자, 자네는 정말……!”
“자네는 뭐요? 난 나리와 수십 년 동안 부부로 지냈어요! 주씨 집안이 제일 쇠락했을 때도 나는 그 자리를 지키고 나리를 위해 아이들을 낳고 기르고 집안을 보살폈다고요.
한데 이제 출세했다고 나를 쫓아내겠다니! 셋째에게 잘 보이려 나를 쫓아내고 운 이낭에게 자리를 내주려는 거잖아요!”
거칠게 소리치는 진씨의 눈에서 쉬지 않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주 백야는 억울하고 갑갑한 마음에 눈앞이 다 어질어질했다.
“무슨 헛소리요! 자네가 이상한 수작을 부리지만 않았으면, 나라고 일을 벌이고 싶은 줄 아시오? 나는 언제나 조용히 평온하게 지내는 것을 제일 원하는 사람이오! 식구들끼리 화목하기만 바란다고! 그런데 끝도 없이 매일 사고를 치지 않소.”
“화목하게 지내려고 나를 내쫓는다고요? 네?”
진씨는 울부짖으면서 주 백야를 밀었다.
“거짓말 마세요! 운 이낭에게 내 자리를 넘겨주려는 거잖아요.”
진씨가 호통을 치자 주 백야가 새파래진 얼굴로 뒷걸음쳤다.
“자리를 내주기는 무슨, 이건…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는 걸 어찌 두고 본다는 말이오!”
“내가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았다고요? 하하핫! 내가 언제 순종하지 않았어요? 정말 그랬다면 나리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내가 왜 상복을 입고 상을 치렀겠어요! 시부모의 삼년상도 치렀어요. 그랬던 나를 내쫓겠다고요!
아들이 황제가 되고 나니 그런 예의와 법도는 상관도 없나 보군요. 운 이낭에게 자리를 내주려고 이렇게 나를 밀어내다니.”
주 백야는 진씨에게 떠밀려 문지방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복이 황급히 주 백야를 부축해 일으켜 세웠다. 그러고도 성에 안 차는지 진씨가 계속 쫓아와 때려 대자 대복은 그를 부축해 도망가듯 자리를 피했다.
“이 막돼먹은 여자 같으니!”
“태상황 폐하, 어찌할까요… 쫓아낼까요?”
주 백야는 뛰어가며 욕을 퍼부었고 대복은 헐떡이며 그에게 물었다.
주 백야의 얼굴이 잔뜩 굳어 있었다.
“안 그래도 저렇게 난리를 쳤는데 아직 모자라겠느냐? 이렇게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으니 자기들도 도성에 남아 있을 수 없겠지. 어머니도 말씀하셨으니 계획된 날짜에 도성을 떠나 정주로 간다.”
주종 두 사람은 이리 주고받으며 헐레벌떡 자리를 피했다.
진씨는 문가에 서서 그들의 뒷모습이 사라지는 것을 보고 있다 결국 주저앉고 말았다. 주묘서는 이미 엉엉 울고 있었다.
“이제 어떻게 해요? 그 난리를 치지 않고 할머니를 따라 정주로 갔으면……. 네 이년! 모두 다 천한 네년 때문이다.”
주묘서가 소리치면서 또다시 정 마마를 붙들고 때리기 시작하니 정 마마도 인제는 고통에 못 이겨 울부짖었다.
“살려 주세요, 공주 마마! 그때는… 소인도 그저 공주 마마를 도우려 했을 뿐이에요. 태후 마마와 공주 마마가 얌전히 정주에 따라갔대도 정말로 태황태후 마마께서 정말 몇 년 요양하고 공주 마마를 도성으로 돌려보냈을까요?
아뇨, 정주행은 유배나 다름없어요! 그 아무것도 없는 정주에서 시집을 갈지도 모르지요. 그러고 싶으세요? 한평생 도성으로 돌아올 수도 없고요. 소인은 그저 태후 마마와 공주 마마를 위해서… 황제 폐하가 그렇게 교활하고 염치가 없을 줄은 몰랐어요.”
이 말에 주묘서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어린애처럼 펑펑 울었다.
“어떻게 이런… 으아앙! 왜 세상은 이렇게 나에게 불공평한 것이냐! 어머니, 무서워요… 평생 정주에 갇혀 지내고 싶지 않아요. 아버지도 어머니를 내쫓겠다 하셨는데…….”
겨우 정신을 차린 진씨가 그녀를 꼭 안았다.
“그럴 리 없어! 감히 못 할 거야! 저렇게 콩알만 한 간으로 나를 어떻게 쫓아내겠어! 다 저 죽지도 않는 노인네 때문이지! 저 노인네가 아니었다면 우리가 왜 이 꼴이 되었겠니!”
진씨의 마음속, 매씨를 향한 증오가 하늘을 찔렀다.
전에 저 노인네는 두문불출 공거에만 머무르며 무엇에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튀어나오더니 이것저것 참견하며 사람을 못살게 구는 데 맛이라도 들린 듯 굴었다!
저 노인네가 나서지 않거나… 사라져 버린다면 자신이 이 황궁에서 제일 높은 윗사람이 되는 것이다! 누구도 효를 앞세워 자신을 억누를 수 없어지면, 그러면 정주건 뭐건 병간호를 하며 효도를 다할 일도 없을 것이다. 설령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그건 자신이 아니라 엽연채가 감당해야 할 덕목이었다!
주정은 원래 제 손바닥 위에 있었다. 저 죽지도 않는 노인네가 주정의 간을 키워 주지 않는다면, 그도 이쪽을 감히 내쫓겠다는 둥의 말은 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태후다! 하나 태황태후가 없어야만 진정한 태후가 될 수 있다! 마흔이 넘어서도 시어머니의 눈치를 봐야 하는 그런 며느리가 아닌 진정한 태후!’
그래야만 자신이 주운환 부부, 그리고 황궁 전체를 손아귀에 쥘 수 있었다.
생각에 잠긴 진씨의 두 눈이 핏빛으로 물들었다!
’더는 지체할 수 없다! 이번에 황궁을 떠나면 다시는 상황을 바꿀 기회가 없다! 이 단 한 번의 기회를 놓칠 순 없다!’
* * *
왕성촌은 정말로 직위가 강등돼 백성들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궁 안에서 또 한바탕 소란이 있었다는 소식 역시 민가로 전해졌다. 태상황이 태후에게 쫓아가 태후를 혼냈고, 태황태후도 몹시 화가 나서 계획대로 떠날 때 태후와 흔설공주가 반드시 따라나서야 한다는 엄중한 명을 내렸다는 소식 말이다.
얼마 후. 황제가 유언비어를 꾸며 낸 사람들을 잡았더니 모씨 성을 가진 사람들이 수두룩했다고 한다. 황제는 대로하여 그들의 작위를 빼앗고 도성에서 쫓아내며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게 했다.
그 무렵, 궁에서는 태후와 흔설공주 둘 다 온순하고 조용하게 지내고 있었다. 매일 태황태후의 궁으로 가서 음식을 차리고 안마를 하는 등 태황태후의 생활을 보살피고 있었다. 남들 눈에는 꼭 뉘우친 자들처럼 보였다.
이날, 엽연채는 매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진씨는 어두운 얼굴로 매씨의 등을 주무르고 있었다.
“셋째가 요즘 많이 바쁜 모양이다. 네가 매일 한가한 걸 보니.”
매씨의 말에 엽연채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막 즉위해서 할 일이 많아요.”
두 사람은 담소를 나누다 식사를 했다.
수저를 내려놓은 매씨는 밖으로 나가 산보를 하자고 했다. 이는 매씨의 식후 습관이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엽연채도 여느 때처럼 그녀를 부축해 화원으로 향했다.
엽연채와 주묘화가 양쪽에서 매씨를 부축했고 진씨와 주묘서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머리 위에 먹구름이 드리운 주묘서와 달리 주묘화는 밝게 빛나고 있었다. 곱게 차려입은 주묘화는 봄바람처럼 따스하게 웃고 있었다. 주묘화는 길가의 돌멩이도 예쁘고 재미있다는 듯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주묘서는 그런 주묘화 때문에 마음이 더더욱 쓰라렸다! 그에 이가 부서질 만큼 이를 악물었다!
왜 자신을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가! 어째서 자신들이 수모를 감내해야 하는가.
전에는 뒤에서 조심스럽게 네네, 대답만 하고 감히 말도 붙이지 못하고 숨도 크게 못 쉬던 서녀 주제에, 지금은 의기양양하게 웃고 있었다.
‘절대 용서할 수 없다!’
주묘서와 진씨는 마음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세 사람의 뒷모습을 보는 그들의 눈에 조롱 섞인 증오가 차올랐다.
일행은 화원을 따라 반질반질한 청석로靑石路를 향해 가고 있었다. 매씨는 매일 청석로를 한 바퀴 산책하고 돌아왔다.
진씨와 주묘서가 지켜보는 가운데 매씨가 이제 막 청석로로 들어섰다.
그 순간, 진씨가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소매에서 희끄무레하고 손가락만 한 주머니를 하나 꺼내 매씨의 발밑으로 던졌다. 정 마마를 시켜서 특별히 만들어 온 기름이 들어 있는 주머니였다!
그 주머니를 밟으면 주머니가 터지면서 기름이 새어 나오게 되고, 밟은 사람도 벌러덩 나자빠질 것이다. 옷으로 땅에 묻어 있는 기름을 닦아 내면 증거도 남지 않는다!
어차피 저 노인네는 몸 상태도 좋지 않은 데다 오랜 지병도 앓고 있는지라 자칫하다 넘어져 다칠까 평소에도 아주 조심스럽게 지내고 있었다. 그러니 이렇게 심하게 넘어지면 죽지는 않아도 적어도 반신불수는 될 것이다. 그 상태로 고생하다 보면 얼마 버티지 못하고 저승길을 떠날지도 모른다!
진씨와 주묘서는 흥분이 가득한 눈빛으로 매씨의 발을 향해 기름 주머니를 굴렸다.
매씨가 다리를 들어 그들이 기대한 대로 기름 주머니를 밟고 쭈욱 미끄러져 뒤로 자빠졌다.
“앗……!”
엽연채와 주묘화가 깜짝 놀라 소리쳤다. ‘쿵’ 하는 소리가 들리고 정신을 차려 보니 매씨는 이미 넘어져 있었다. 그런데 그 아래, 열 몇 살 정도 된 어린 궁녀가 매씨의 몸을 받치고 있는 게 아닌가!
진씨와 주묘서의 얼굴이 어두워졌고, 엽연채와 주묘화는 서둘러 매씨를 부축했다.
“할머님!”
“아… 괜찮다.”
매씨는 굳은 얼굴로 엽연채의 손을 잡고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몸을 움직이자마자 매씨는 ‘아이고’ 고통스럽게 신음했다.
엽연채는 황급히 매씨를 도로 자리에 앉혔다.
“움직이지 마세요, 할머님. 청유야! 가서 가마를 불러오고 의정도 불러라.”
“알겠습니다.”
청유가 뛰어갔다.
“할머니, 어디가 안 좋으셔요?”
“허리를… 삐끗한 모양이다…….”
주묘화의 걱정 어린 물음에 매씨는 이리 대꾸하며 창백해진 얼굴로 굵은 식은땀을 흘렸다.
진씨와 주묘서는 매씨가 넘어져 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허리를 다친 것을 보고 조금은 속이 시원했다. 그래도 이쯤에선 염려하는 척을 해야 했다.
“아이… 어머님, 어찌 조심하지 않으시고…….”
“이 못된 것! 네가 한 짓이 아니더냐!”
진씨가 말을 다 마치기도 전에 매씨가 노성을 내질렀다. 뜻밖에도 그녀는 한기가 도는 매서운 눈으로 진씨를 쏘아보고 있었다.
“어머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가서 폐하와 태상황을 모셔와라. 그리고 비양과 종과도… 식구들을 전부 불러와라.”
매씨는 진씨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고 무섭게 소리쳤다.
뒤에 서 있던 마마와 궁녀들이 바로 나가고 엽연채는 매씨를 부축해 화단 근처로 옮겨 앉혔다. 엽연채를 돕던 주묘화가 안절부절못하며 매씨에게 수안궁으로 돌아가자고 했으나 매씨는 냉랭한 목소리로 거절했다.
“아니다, 여기 있겠다.”
주묘화는 그대로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