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22화 (822/858)

번외 1-8

옆에 있던 온씨, 엽영교와 그녀의 시어머니인 진 부인의 얼굴이 일제히 굳었다. 저게 다 무슨 소리지?

사실 이 세 여인을 포함해 여기 달려온 사람들 대부분은 진씨를 싫어했고 주씨 집안에서 그녀를 쫓아내면 모든 일이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다들 잠자코 있는 상황인데, 갑자기 진씨가 주운환의 생모에게 자기 자리를 내주겠다는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이럼 마치 주운환이 그 일로 적모를 압박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는가!

주운환은 여전히 차가운 눈으로 난동을 피우는 진씨를 묵묵히 주시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주 백야 역시 진씨의 속을 알아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셋째는 이제 황제였다! 만약 이 일로 괜한 의심을 사면 황위도 불안해질 것이고 온 집안이 화를 입을 것이었다!

“자, 자네! 지금… 무슨 헛소리요!”

“헛소리? 내가 무슨 헛소리를 한다는 말이에요? 방금 누가 나를 쫓아내겠다고 했는데요? 엉엉… 세상에……!”

“아버지… 엉엉… 어떻게 어머니를 쫓아낸다는 말씀을 하세요. 어떻게……!”

진씨가 목청을 높이자 주묘서도 기다렸단 듯 울기 시작했다.

“너희들……!”

주 백야는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방금은 내가 마음이 급해서 말실수를 했소. 그런데 지금 이게 뭐 하는 짓이요? 무슨 소란이요? 잘 지내다가 왜 목을 매는 거요?”

진씨는 주 백야의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듣고 기어가서 주운환 발밑에 무릎을 꿇었다.

“셋째야… 아니, 황제 폐하, 내가 죽을 테니 제발… 묘서를 도성 밖으로 내쫓지 말아 주세요! 묘서가 폐하를 위해 그렇게 많이… 공로는 없어도 고생은 했잖습니까. 그렇다고 묘서를 도성 밖으로 쫓아내 막다른 길로 내모는 것은 너무 박정한 것 아니니…….”

“그게 무슨 말이오!”

주 백야는 무슨 상황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진 노야 부부 또한 영문을 몰라 서로의 얼굴만 쳐다봤다. 하지만 어찌 되었든 주운환 때문에 진씨가 목을 맨 것 같았다!

진씨는 계속 주운환만 보며 또다시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려 했다.

“황제 폐하…….”

그런데 주운환이 차갑게 웃었다.

“태후 마마가 정신을 놓으셨구나. 이곳에 잘 ‘모셔’ 두었다 내일 아침 일찍 정주로 가서 요양하실 수 있게 해라.”

순간 진씨와 주묘서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이 상황에서도 정주로 보낸다고? 적모인 진씨가 아들에게 내몰려서 목매어 자살을 한다면 그것은 있어선 안 될 불효였다! 그런데도 겁을 내지 않는다고? 주운환은 황제가 되었으니 평판을 잘 관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아아… 오라버니, 어쩌면 그렇게 잔인한가요! 어머니가… 목을 매서 몸도 상하셨는데 다친 곳이 있는지 살펴보지도 않고 마차에 태워 고생하시게 하겠다니… 엉엉, 어떻게…….”

주묘서는 울면서 이를 악물었다. 일부러 말을 아끼려 한 것이 아니라, 마지막 말이 목구멍에 걸려 나오지를 않았다. 주운환의 얼음처럼 차가운 눈빛이 자신을 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깜빡이는 그의 눈에서 뼛속까지 사무치는 한기가 쏘아져 나왔다.

주묘서는 자기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그녀가 주운환이 본인의 뜻을 꺾지 않겠거니 암담해하는 찰나, 주운환은 뜻밖의 말을 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며칠 미루도록 해라! 태황태후 마마의 요양과 조상께 제를 올리는 날짜를 유월 초여드레로 바꾼다!”

그러고는 엽연채의 손을 잡고 돌아갔다.

온씨, 엽영교를 비롯한 사람들은 흠칫 놀랐다. 하지만 주운환과 엽연채가 말없이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는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들 역시 참견하지 않고 엽연채의 뒤를 따라 연회장으로 돌아갔다.

매씨는 멸시가 가득한 눈으로 진씨와 주묘서를 차갑게 흘겨보다 떠나갔고, 비 이낭과 주종과는 쯧쯧 혀를 차고는 몸을 돌렸다. 물론 이 심보 고약한 모자는 속으로는 ‘이거 참, 정말 재미있는 판이 벌어졌구나!’라며 좋아하고 있었다. 진씨 모녀의 소란이든 억울한 일을 당하는 주운환이든 두 사람에게는 하나같이 흥미진진한 구경거리일 뿐이었다.

침궁 안에는 진씨 모녀와 주 백야, 진 노야 부부만 남아 있었다.

주 백야는 답답해 죽겠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저것 봐라. 운환은 얼마나 의젓하냐. 너희는 하루 종일 난리에 난리를…….”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소매를 뿌리치며 자리를 떠났다.

진 노야는 진씨 모녀를 보며 입을 열었다.

“누이, 이게 뭐 하는 거야?”

주묘서가 울며 대답했다.

“삼촌은 저희가 도성을 떠나는 것을 보고 싶으신 거예요? 도성을 떠나서도 우리가 태후이고 공주일 것 같아요? 우리뿐만 아니라 오라버니도 도성을 떠나야 해요.

제사는 무슨? 하하하, 제사를 올리고 나면 할머니는 분명 아버지와 오라버니를 시켜 우리를 정주로 보낼 것이고 두 번 다시는 도성으로 돌아오게 하지 않을걸요. 이번에 떠나면 우리 적통 집안은 영원히 도성으로 돌아올 꿈도 꾸지 못할 거라고요! 꼼짝없이 정주에 갇히고 말 거예요!”

진 노야 내외의 얼굴이 굳었다.

“그럴 리가…….”

“아니라고요? 두고 보세요!”

부정하는 주묘서의 목소리는 비명에 가까웠다.

“공주는 무슨, 태후이건 왕이건… 전부 허울뿐이에요. 우리 모두 죄인이라고요! 엉엉……!”

진 노야 내외는 진씨와 주운환의 사이를 떠올리자 낯빛이 변했다. 주묘서의 말이 사실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 분명 사실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금 시점에 뭐 하러 정주에 간다는 말인가.

“그럼… 그럼 어떻게 한단 말이냐?”

진 노야가 이제야 말귀를 알아듣는 성싶자 주묘서는 차갑게 웃었다.

“안심하세요. 앞으로의 일은 이제 우리가 걱정할 필요 없으니까요! 이 세상이 알아서 우리를 제대로 대접해 줄 거예요! 돌아가세요! 또 우리 모녀가 무슨 못된 수작을 꾸미고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되니까요.”

진 노야 내외는 서로만 쳐다보다 금세 궁을 떠났다. 주묘서의 말을 듣고 나니 주운환이 자신의 평판에 금이 갈까 봐 노심초사하리란 생각이 들면서 절로 마음이 놓였다.

* * *

그날 궁의 연회는 그렇게 불쾌하게 끝나 버렸다.

주묘서의 말대로 진씨 가족이 걱정할 필요 없이 바깥에 금방 소문이 퍼졌다.

황제가 즉위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태황태후와 태상황이 도성을 떠나게 되었으니, 한가한 백성이나 조정 대신들, 다른 꿍꿍이를 가진 무리들 모두 하나같이 궁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었다.

반나절도 되지 않아 태후가 목을 매고 죽겠다고 했던 일과 그녀가 한 의미심장한 말들, 황제가 결국 출궁을 미룬 일 등 궁에서 있던 모든 일을 도성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주운환을 못마땅하게 여기며 그를 무너뜨릴 수 있는 약점을 찾느라 혈안이 됐던 사람들은 당연히 이 일을 빌미로 온갖 소문을 지어냈다.

불효한 황제! 용납할 수 없다! 일개 서자가 황제가 됐다고 적모를 존경하지 않다니! 핑계를 대며 적모와 적형, 가문의 사람들을 도성 밖으로 쫓아내고 그들을 그곳에 연금하려는 것이다.

뭐? 그럴 리가 없다고? 그렇다면 왜 적통 식구들만 도성을 떠나는 것인가? 어째서 주종과와 주묘화는 태황태후를 따라가지 않고, 적모와 주묘서만 따라간다는 말인가?

그 두 사람은 도성에 남아 혼인을 준비해야 하기에 갈 수 없다고?

주묘서도 혼인을 해야 한다! 세 사람 모두 혼인을 해야 하는데 두 사람만 도성에 남겨 둔다니! 요즘 주종과가 귀족 집안의 금지옥엽 같은 딸들을 고르고 있고, 주묘화도 고관대작의 아들들을 알아보고 있는 걸 모르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인가.

그런데 오직 주묘서만 불쌍하게도 혼인은 고사하고 도성 바깥으로 쫓겨나게 생겼다!

더 심한 사람은 이런 말도 했다.

“적통 가족이 없었으면, 주묘서가 없었으면 오늘 같은 날이 있었겠어? 애초에 주묘서가 폐태자에게 시집을 가서 부추겼으니 양왕도 거사에 성공한 거고, 그래서 지금의 주운환도 있는 거잖아.”

“주묘서는 처음부터 대의를 위해 자기를 희생할 요량으로 태자부로 시집간 게 틀림없어! 그런데 이제 공을 세우고 성공하니 토사구팽당하는 거지!”

“어찌 그랬다는 거야? 그때는 일개 서자였는데 주묘서와 진씨에게 명령을 할 수 있었다고?”

“왜 못 해! 그때 이미 진서후로 책봉받은 후였는걸! 그때도 주씨 가문에서 제일 능력 있고 힘이 있는 사람이었잖아! 그 말을 들어야 살길이 열리니, 누가 감히 명령을 거역하겠어!”

“하여간 주씨 집안 대소저만 불쌍하게 됐네. 결국 뜻을 이루고 나니 속 빈 강정 같은 작위만 받고 도성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니.”

도성에는 삽시간에 온갖 소문이 다 돌았다. 백성들은 대부분 믿지 않았지만, 별의별 말이 골목골목 퍼지니 그에 넘어가는 사람의 수도 점차 늘어났다.

이튿날 아침.

조회에서 왕성촌을 비롯한 어사들이 일제히 무릎을 꿇고 울며 간언했다.

“폐하는 적을 물리친 백성의 영웅이십니다. 하지만 밖으로 보이는 용맹함 말고도 안으로도 덕을 쌓으셔서 이 땅의 백성들에게 귀감이 되셔야 합니다!”

언관들은 눈물 콧물을 쏟아 가며 말했다.

대제 개국 초기에 설립된 어사대는 관리들을 감찰하고 황제를 감독하는 곳이었다. 잘못을 저지른 귀족이나 대신을 탄핵했고, 황제라고 해도 행실이 바르지 않으면 간언을 하는 곳이었다.

그들이 가장 활발히 진언했던 때는 대제의 두 번째 황제 대代였다. 태조가 임명했던 어사들이 두 번째 황제가 눈물을 뺄 정도로 질책해 댄 결과, 그에게 행실을 고치겠다는 약속을 받아 냈다. 이후 그는 정사에 힘쓰고 백성을 아끼는 좋은 황제가 되어 순식간에 미담으로 자리를 잡았다.

그래서 대대로 황제는 이들 언관을 없애지 않았고, 심지어 왼쪽 뺨을 때리면 오른쪽 뺨까지 내밀거나 적어도 그런 시늉은 했다. 언관이 충직하여 황제도 두려워하지 않는다고 칭찬을 받아야만 황제 역시 도량이 넓으며 그 덕에 조정이 흥성한다는 평가를 받으니 말이다.

진무와 장찬 등이 얼굴을 찌푸리며 언관들의 말을 반박하려 했다. 그런데 상석에 앉은 주운환이 차갑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짐은 왕 어사의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겠소만?”

주운환은 노여워하지도 않고 변명도 하지 않았다. 그 담담한 태도에 왕성촌이 화가 나서 대답했다.

“폐하, 설마 모르신다는 말씀입니까? 네, 폐하께서는 구중궁궐에 계시니 백성들의 소리를 금방 들으실 수는 없겠지요. 하나 폐하께서 어제 하신 행동들에 대해 어떤 기억도 없으시다는 말씀입니까? 폐하의 행동이 부적절했다고 조금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씀이십니까?”

주운환은 코웃음을 치며 질문을 되풀이했다.

“왕 어사, 짐은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어보지 않았소? 그런 말들을 왜 하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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