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20화 (820/858)

번외 1-6

“혼인?!”

두 눈이 붉어진 진씨가 소리쳤다. 혼인? 혼인!!

진씨는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주종과는 왕이 되고 주묘화는 공주가 되었으니 어느 집안이든 원하는 상대를 잡아 혼인할 수 있었다!

죽어도 보고 싶지 않은 꼴이었다. 이렇게 우스운 일이 정말 일어나다니! 하물며 주비양은 보잘것없는 강심설을 아내로 맞았고, 주묘서는 역적에게 시집을 가 신세를 망친 후였다!

그런데 주종과는 귀한 집안의 천금 같은 적녀를 맞이할 수 있게 되었다! 주묘화는 고관대작의 집안으로 시집갈 수 있게 되었다!

세상에! 어떻게 이렇게 잔인한 일이 벌어질 수 있는지! 자신들이야말로 적통인데 저런 비천한 서출들이 그들의 머리를 밟고 일어서다니! 어찌 이런 일이!

“안 된다!”

진씨가 두 눈을 부릅떴다.

“그래, 셋째와 셋째 며느리는 황제, 황후이니 궁을 나서기 어렵지. 하지만 조상께 제를 올리는 이렇게 중요한 일에 장남이 가는데 어찌 차남이 가지 않을 수 있느냐? 그리고 묘서가 정주에 따라가는데 왜 묘화는 가지 않는다는 말이냐? 그러면 다른 사람들이 그 아이들을 어찌 보겠니? 응?”

매씨가 흰 눈썹을 찡그렸다.

“금방 말하지 않았느냐. 그 둘은 도성에 남아 혼사를 정해야 한다고. 혼사를 더 미루다가는 나이가 지날 것이야.”

하나 진씨는 물러서기는커녕 숨을 몰아쉬며 목청껏 소리쳤다.

“아무리 황제라지만 그래도 제가 어미입니다. 그 아이들의 혼사는 제가 알아서 할 거예요!”

“무엄하구나!”

매씨가 차갑게 소리쳤다.

“정말 우습구나. 지금 황제가 혼사를 정할 거라고 하지 않았냐! 황제의 뜻이 무엇보다도 크다! 성지는 언제나 다른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야! 그리고 군신의 예를 떠나서라도 그 아이들의 혼사는 네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왜요?”

흥분한 진씨가 소리치자 매씨도 똑같이 되받아쳤다.

“왜라니? 예전에 너에게 맡겼을 때 그 아이들의 혼사를 알아보기나 했느냐? 지난번 묘화가 셋째 며느리에게 부탁을 하고 주정도 좋다 했는데, 결과가 어떻게 됐더냐? 집으로 돌아오자 네가 울며불며 죽겠다고 소란을 피워 기어이 묘화의 혼사를 그르쳤지. 그게 생각이 있는 어미가 할 일이더냐?”

진씨는 날카로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이를 악물었다.

“전… 그때는 국상을 치러야 했잖아요. 그래서 묘화의 혼사를 알아보지 않은 거예요.”

“그럼 그전에는?”

“전에는… 폐태자가 죄를 지어서, 묘서가 그리되고 나니 묘서를 돌보는 것으로도 너무 골치가 아파 묘화에게 신경을 쓰지 못했어요.”

“헛소리!”

매씨는 진씨를 향해 침을 뱉었다.

“폐태자가 죄를 짓기 전을 묻는 거다!”

진씨는 그대로 얼어붙었다.

“묘서가 폐태자에게 시집갔던 그 시간 동안 아주 그럴듯하게 지내지 않았더냐? 아주 즐겁게 보내지 않았어? 그 시간이 족히 반년은 넘는다! 그때 묘화가 벌써 열여섯이었는데 왜 혼사를 맺어 주지 않았더냐?

나도 너에게 조석으로 문안을 오라고 하지 않았고, 집안일도 많지 않았는데! 아, 그래. 매일같이 태자부로 쫓아가 한담이나 하며 노닥거리느라 바빴구나? 그래서 묘화의 혼사는 안중에도 없었고!”

진씨는 붉어진 얼굴로 떠듬거렸다.

“그때는… 놀러 간 게 아니라 묘서가 막 시집을 간 데다 부엌일도 신경 써야 하니 가서 이것저것 가르치느라 바빴습니다. 그러고는 묘서가 아이를 가졌으니 더 걱정이 되어 자주 찾아갔던 것이고요. 마음이 온통 그 아이에게 쏠려 있었어요. 그래서 묘화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던 거예요.”

“오? 그랬구나.”

매씨가 갸웃거리며 진씨를 보더니 웃었다.

“어느 집이 딸을 시집보내지 않는다더냐? 시집가 익히지 않는 딸이 어디 있고 처음부터 부엌일을 잘하는 아이가 어디 있다더냐? 어느 집안의 여식이 아이를 갖지 않더냐? 친어미가 그렇게 매일같이 쫓아다니면서 도와주고 끌어 줘야 한다는 말이냐?

온 마음이 묘서에게 쏠려 있어서 짬이 없었다고? 다른 사람들은 그러지 않는다. 혹여 그렇게 하더라도 집안일은 제대로 하면서 안팎으로 꼼꼼하게 잘하는데, 유독 너만 그렇게 ‘온 정신을 묘서에게 쏟느라’ 다른 일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말이냐? 그렇다면 네 능력이 그저 거기까지인 것이지!”

진씨는 낯빛이 붉으락푸르락, 뒤로 넘어가기 일보 직전이었다. 변명을 하다가 결국 스스로 무덤을 판 셈이었다. 집안을 다스릴 능력이 모자라다고 소리친 꼴이니 말이다.

“허허허.”

매씨는 헛웃음과 함께 고개를 젓더니 살짝 처지긴 했어도 여전히 영기英氣가 또렷한 눈으로 진씨를 쳐다봤다.

“됐다. 그런 능력으로 어떻게 아이들의 혼사에 끼어들겠다는 말이냐? 나중에 당시엔 막 태후가 되어 궁의 일에 신경을 쏟느라 바빴다는 말은 하지 말아야겠지.

그리고 지금은 예전과 다르다. 아이들의 신분도 달라졌고 황제가 혼사를 정할 것이야. 이건 이미 집안일이 아니라 나랏일이다. 네가 난장을 피우고 싶다고 피울 수 있는 줄 아느냐. 어서 돌아가 짐이나 잘 챙겨라. 며칠 후면 곧 출발할 터이니.”

진씨는 부들부들 떨면서 소리쳤다.

“혼인을 시킬 거면 묘서도 혼인을 시켜 줘야죠! 묘서도 혼인을 하지 않았으니 혼처를 찾아야지요! 왜 묘서는 정주에 가야 한다는 말이에요?”

매씨가 눈을 번득이며 노려봤다.

“묘서는 한번 하였는데 뭐가 급하단 말이냐. 또, 이번에 정주에 가는 길에 특별히 요양 차원에서 묘서를 데려가는 것이다. 아무리 몸이 크게 상했다지만 회복되지 못하리라는 법도 없다! 묘서는 이제 겨우 열여덟 젊은 나이이니 몇 년 조용히 몸조리를 하면 나을 수도 있지 않겠더냐? 그 후에 시집을 가도 늦지 않아.”

“하지만…….”

진씨는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말꼬리를 물고 늘어지려 했다.

쨍그랑! 매씨가 집어 던진 찻잔이 진씨의 발밑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한 번도 본 적 없이 엄숙하고 차가운 표정이었다.

“끝이 없구나! 그래, 기왕 말이 나왔으니 지금 다 터놓고 이야기해 봐라.”

진씨가 기다렸단 듯 고개를 들어 매씨를 보는 순간, 매씨는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진씨의 속을 숨김없이 드러내 버렸다.

“이 지경이 되었으니 숨길 게 뭐가 있느냐! 셋째가 황제로 즉위했으니 큰애보다 훨씬 얻는 것이 많을 것이다. 너는 적모로서 서자에게 밀린 것 같아 속이 심란하겠지. 내 말이 틀렸느냐?”

매씨는 얼굴이 새하얘진 진씨를 사정없이 몰아붙였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네가 셋째에게 준 것이 아니다! 주씨 가문에서 셋째에게 준 것도 아니지! 만약 그 모든 것이 주정이 허튼짓을 해서, 그 아이를 편애해서 준 것이라면 나도 분명 주정을 가만두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 아니다! 셋째는 주씨 가문에 그 무엇도 요구하지 않았다! 주씨 집안이 가진 것들은 모두 비양에게 주었다! 셋째는 하나도 원하지 않았어.”

진씨의 얼굴이 다시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이마에도 새파란 힘줄이 금방이라도 터져 버릴 듯 불거졌지만, 차마 반박할 말이 없어 그녀는 눈을 내리깔고 허벅지께로 내린 두 손을 불끈 주먹 쥘 따름이었다.

“그 아이가 장원 급제하고 후작이 되고 왕이 되고, 그리고 황위에 오르기까지 이 모든 것은 그 아이 스스로 이룬 것이다. 물론 셋째를 도운 사람이 있었지. 바로 양왕이다! 그 아이의 친외삼촌! 그 아이의 외가 친척이란 말이다!

말하자면 셋째의 황위는 그 아이의 삼촌이 남긴 자리야. 그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너도 비양의 삼촌에게 뭘 좀 남겨 달라고 해라. 네 친정에 도와달라 하란 말이야.”

“비양의 삼촌이 뭘 남겨 줄 수 있다는 말이에요!”

진씨가 화가 나서 쏘아붙였다.

“내 말이 그 말이다! 남겨 줄 게 없으면 다른 사람의 것을 탐해서도 안 되지.”

매씨는 차갑게 비웃었다.

“여하튼 셋째가 가진 것은 너나 우리 주씨 가문이 준 것이 아니다. 비양이의 것은 하나도 빼앗지 않았어.

어디 그뿐이냐? 이제 출세한 셋째가 주씨 가문을 돕고 있어. 우리 가문에 높은 관직을 내렸을 뿐만 아니라 적모인 너를 태후에 봉하고 형제자매 하나도 빼놓지 않고 왕과 공주로 책봉했다! 영지를 내리고 살길을 마련해 주고!

어느 것 하나 너희 적통을 섭섭하게 한 것이 있더냐? 이런 아들을 어디서 보겠어? 그런데도 아껴 주는 것은 고사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수작 부릴 생각만 하고 있으니!”

진씨는 그제서야 이를 악물고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게 되었다.

“이제 비양이는 왕이 되어 저렇게 많은 땅을 얻었고 부유해졌다! 그 아이 혼자 저렇게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었겠느냐?”

매씨는 말을 할수록 화가 나서 목소리가 점점 냉랭해졌다.

“너는 그런데도 불만이 있다는 말이냐?”

고개를 떨군 진씨를 향해 매씨가 차갑게 웃었다.

“너에게 할 말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 했으니, 너는 어서 돌아가 짐이나 싸서 정주로 갈 준비나 해라.”

진씨는 굳은 얼굴로 돌아서 나왔다.

걸음을 떼는데 참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진씨는 더는 참지 못하고 자신의 궁으로 뛰어 들어가 아예 대성통곡하기 시작했다.

주묘서는 그런 진씨를 보자 깜짝 놀랐다.

“어머니…….”

주묘서는 진씨가 이렇게 엉엉 목 놓아 우는 것을 처음 보았다. 손으로 계속 눈물을 훔치며 어린아이처럼 억울해하고 원통해하고 있었다.

“어머니, 이러지 마세요…….”

주묘서는 흐느끼는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러다 결국 자신도 울음이 터져 나와 진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모녀가 부둥켜안고 울부짖었다.

“으허어엉……!”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지,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잔인해……!”

진씨가 우짖으며 매씨가 방금 한 말을 떠올렸다.

매씨의 한 마디 한 마디가 모두 폐부 깊은 곳에서 나온 말이었다. 단 한 군데도 틀린 곳이 없었다.

그건 진씨가 늘 차마 마주할 수 없었던 사실이기도 했다. 주운환은 그들 적통 집안에 아무것도 빚진 것이 없었다. 단 하나도!

바로 그래서 더욱, 너무나도 미웠다.

도대체 왜 자신들은 이렇게 고통스러운데 주운환과 엽연채는 잘못이 없다는 말인가? 그래서 더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다!

그들이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빼앗는다 해도 말릴 구실이 없단 게,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이 모든 사실은 진씨 마음속의 증오만 키울 뿐이었다!

어떤 것들은 이유가 필요 없다. 주운환은 천한 종자가 아닌가! 서자! 저가 뭔데 적통 위에 올라선다는 말인가! 저가 뭔데 황제가 된다는 말인가?

황제가 된다 해도 주비양에게 양보해야 한다! 그들 적통의 손에 들어와야 하는 자리였다.

비양에게 왕의 자리를 주다니. 제까짓 게 뭔데! 저 위에 있는 사람처럼 이것저것 하사한다니? 고작 천한 서자 주제에 적자에게 작위를 하사한다고? 하하하, 그것보다 분통이 터지고 우스운 일이 또 있을까?

주운환은 형제와 가족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일부러 생색을 내는 것이다!

대범한 척하며 작위를 주고 땅도 주었지만 자기가 황제가 되었다고 적통 집안을 짓누르려는 것이다! 적자가 저까짓 것 앞에서 알랑거리며 환심을 사야 한다는 말인가? 그러면 만족할 건가? 그러면 적통의 체면은 어떻게 된단 말인가?

용서할 수 없었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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