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19화 (819/858)

번외 1-5

진씨와 주묘서는 순간 얼어붙었다. 잠깐의 침묵 후, 진씨는 조금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더듬거리며 물었다.

“어머니, 무슨 말씀이세요?”

“쿨, 럭……! 애가哀家의 몸이 무거워 정주로 가서 휴양을 할까 하는데, 태후가 제일 효심이 깊으니 애가는 태후와 함께 가려 한다.”

“뭐라고요?”

진씨의 눈앞이 캄캄해졌다.

“저, 애가도 가야 한다고요?”

매씨는 하얗게 센 눈썹을 찌푸렸다.

“태후는 가기 싫은가? 왜, 이제 태후가 되었으니 이 병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냐?”

“아니요, 애가의 말은 그게 아니라…….”

하얗게 질린 진씨는 부들부들 떨며 말을 제대로 잇지 못했다. 저 죽지도 않는 노인네가 정말……!

한편, 대신들은 그 상황을 보며 제각각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주운환이 즉위하는 것이 대세이고 민심이었지만, 여전히 적지 않은 귀족들이 내심 불복하고 있었다. 모씨 황실이 수백 년 동안 이 땅을 다스렸는데 어떻게 한순간에 모두 그에게 복종할 수 있겠나.

그들 중 상당수가 주운환을 역적이라 욕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아무리 경엽제가 황위를 주운환에게 선양했다 해도 주운환이 거절하는 것이 마땅했다. 모씨 왕조를 좋게 포장한 다음, 직접 모씨 가문을 찾아가 개중 현명한 이를 택해 황위에 오르게 했어야 순리대로 일을 처리한 셈이었다.

그리한 후에 주운환이 섭정을 했다면 뭐라는 사람이 없을 것이었다. 그런데 멀쩡한 모씨의 나라를 다른 성을 가진 사람이 찬탈한 것이다!

그리고 주운환은 운하공주의 아들이자 경엽제의 친외조카였다. 그래서 모씨 가문 사람들 중 완고한 몇몇은 경엽제가 황위를 모씨 가문이 아닌 자신의 친외조카에게 넘긴 것이 자기들끼리 좋은 것을 차지하겠다는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주운환이 병권을 쥐고 있었고, 호부와 사부, 공부 그리고 병부로 승진한 장찬을 비롯해 반이 넘는 대신들이 주운환을 지지하고 있었다. 지지하지 않는 나머지들도 부귀와 관직을 위해 아무 말 하지 않았다.

하지만 주운환이 즉위하면 분명 적모와 두 형을 태후와 왕으로 책봉할 터인데, 주운환은 그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그의 적모와 적매는 계속 요사스러운 수작을 부렸고, 특히 적모는 효를 내세워 주운환을 압박할 수 있었다.

하여 주운환의 즉위에 불만을 품고 있던 이들은 태후가 주운환 부부를 들볶고 괴롭히는 광경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가로막힌 것이다!

그랬다, 주씨 가문에는 노부인이 있었다! 노부인은 십수 년 동안 두문불출하고 있어, 사람들은 거의 그 존재를 잊고 있었다. 이제 드디어 세상으로 나왔는데, 나와서 처음 한 일이……!

엽연채는 억울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진씨와 주묘서의 언동, 그리고 조정 대신들의 떨떠름한 반응을 확인하고는 입꼬리가 올라갔다.

진씨는 이 순간, 정말로 어떻게 해야 좋을 줄 몰랐다.

“어머님, 셋째가 이제 막 즉위해서 어미인 제가 신경 쓰고 준비할 일이 아직 많이 있습니다.”

매씨는 두 눈을 부릅뜨며 정곡을 콕 짚었다.

“그래? 어째서 셋째가 어렸을 때는 저 아이의 일로 바삐 지내는 걸 본 적이 없을까?”

진씨가 예전에는 주운환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는 말이었다. 진씨의 가슴이 들썩였다.

“예전에는 집안에 별로 일이 없었으니까 그렇지요. 지금은 다릅니다.”

“뭐가 다르냐? 네 말은 셋째가 출세를 했으니 이제 와서 신경을 쓰겠다는 뜻 아니더냐?”

진씨는 화가 치밀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악에 받쳤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진씨의 모습을 지켜보던 온씨와 묘씨, 엽영교, 진 부인은 속이 시원했다.

“콜록, 콜록……!”

이때, 매씨가 또다시 기침을 했다.

“할머님, 괜찮으세요? 아니면 제가 할머님을 정주로 모시고 갈게요.”

엽연채는 몸을 돌려 매씨의 손을 잡았다.

“효심이 깊기도 하지.”

매씨는 엽연채의 손을 토닥이면서 부드럽게 거절했다.

“하나 국모가 되었으니 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나도 며느리가 있는데 어떻게 손주며느리를 데리고 가겠느냐. 그리하면 다른 사람들이 태후를 불효막심한 사람으로 보지 않겠더냐?”

진씨는 조금 전만 해도 살아온 중 가장 높은 감투를 쓰고 황홀경에 빠져 있었으나 지금은 금방이라도 피를 토할 것처럼 벌벌 떨고 있었다. 진씨는 효를 내세워 주운환을 압박할 생각이었다. 황제라고 해서 효자가 아니어도 된다는 법은 없으니! 그런데 저 노인네가 먼저 효라는 패를 꺼내 이쪽을 짓누르고 있었다!

매씨가 말을 이었다.

“그리고 주정, 비양 부부와 묘서도 같이 가자.”

주 백야가 어리둥절했다.

“네?”

“‘네?’는 무슨, 셋째가 즉위를 해서 우리 주씨 집안도 그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고향으로 돌아가 조상님들께 제사라도 올려야 하지 않겠나?”

주 백야가 입술만 움찔거리는 차에 주비양이 얼른 대신 대답했다.

“할머니 말씀이 맞아요. 조상님께 제사를 올려야지요.”

“그래. 셋째와 셋째 며느리는 이제 천자와 국모가 되었으니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너희가 대신 가거라. 애가가 정주로 가는 길이 마침 가는 길이니 며칠 후에 함께 출발하도록 하자. 먼저 조상님들께 제사를 올리고 나서 정주로 가자꾸나.”

“좋은 생각이세요, 할머님.”

강심설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 백야는 그저 입술만 달싹거렸다. 이제 막 태상황이 되었고, 아직 그 맛을 보지도 못했는데 도성을 떠나야 한다니? 조금도 내키지 않았으나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가기 싫기로는 그가 진씨를 어찌 따라갈까. 진씨는 눈앞이 빙빙 돌다가 아예 깜깜해졌다. 조상의 제사는 무슨 말이고 휴양은 다 무슨 말이더냐. 모두 자신을 도성에서 쫓아내려는 수작에 불과했다!

‘이렇게 떠나면 언제 돌아올 수 있을지 모른다.’

진씨는 결단코 받아들일 수 없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애가는…….”

매씨가 매섭게 눈을 번득이며 그녀를 나무랐다.

“주정이 아직 살아 있는데 너는 입만 열었다 하면 애가, 애가, 뭐 하는 짓이냐? 너는 배움이 짧으니 나가서 체면 깎이는 짓이나 하지 말아라!”

아래에 있던 대신들과 귀족들에게서 웃음이 터져 나오며 대전이 한바탕 웃음바다가 되었다.

주종과가 웃음을 참으며 진씨에게 설명해 주었다.

“어머니, ‘애가’는 부군을 떠나보낸 태후나 쓰는 말입니다.”

뭐라고? 부군이 죽어야 그렇게 부르는 거라고? 진씨는 얼굴이 새빨개져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다.

진씨는 태후나 태황태후가 자신을 ‘애가’라고 부르길래 그게 태후의 고귀한 전용 호칭인 줄로만 알았다. 그런 뜻일 줄은…….

“풉!”

주 백야도 입에 머금었던 술을 뱉었다. 그는 몹시 난처한 표정으로 진씨를 노려보았다.

“풍악을 울려라!”

분위기가 어색해지자 옆에 있던 환관이 크게 소리쳤다.

악사들은 바로 은은한 음악을 화려한 음악으로 바꾸어 연주하고 무희들이 들어와 춤을 추었다.

* * *

즉위식이 마무리되고 엽연채와 주운환은 침궁으로 돌아가 쉬었다.

엽연채는 봉의궁에 머물지 않고 널찍하고 화려한 궁을 골라 태극전이라 이름 붙였다. 해당화 나무 두 그루가 심겨 있는 그곳을 주운환도 무척 좋아했다.

주 백야를 비롯한 일가는 일찌감치 머무를 궁을 골라 놓았다. 매씨는 수안궁에, 주 백야와 진씨는 그 옆의 영녕궁에 머물렀다.

주묘서와 주묘화도 그곳에서 함께 지냈다.

주비양은 궁 밖의 백부에 남았지만 안왕부로 이름을 바꿨다.

원래 노왕부였던 곳에는 주종과가 살게 되었다. 하나 아직 전 노왕부의 정리가 끝나지 않아, 주종과는 주비양과 함께 지내고 있었다.

백 이낭과 비 이낭은 왕과 공주의 생모이므로 각각 정삼품 고명부인에 책봉되었다.

머리를 쳐들기 좋아하는 비 이낭은 당연히 의기양양했다.

하나 제일 신이 난 사람은 백 이낭이었다. 그녀는 즉위식이 끝나기 무섭게 주묘화의 궁으로 달려가 딸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어쩌면 이게 하늘이 정한 일인지도 몰라. 저것 봐라, 저 독한 여자가 너를 시집보내지 않겠다면서 노처녀로 말려 죽이려고 하더니. 결국 미루다 미루다, 내 아이가 공주가 되었어! 정말이지… 하늘이 정한 일이야, 하하하.”

주묘화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태자 측비니 황후니, 쯧쯧… 무엇 하나 공주만큼 귀한 자리가 없구나.”

백 이낭은 주묘서를 떠올리며 차갑게 웃었다.

“우리 묘화가 서출이어도 이제는 제일 귀한 공주야! 누가 황제에게 누이동생이 두 명이 있다더냐. 한 명은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인데. 고귀한 척 굴던 적출은 결국 폐인이 되었고 황제의 미움까지 샀지 않았니.

한데도 그 사람들은 아직까지도 모르지! 아무런 배경도 뒷배도 없으면 태후든 공주든 다 허울뿐이고, 그 영광은 모두 황제에게서 나온다는 걸 말이야. 황제가 싫다면 그 여자들이 뭐가 되겠어!”

“맞아요.”

주묘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묘화야, 잘 골라야 한다. 좋은 집을 잘 골라서 혼인해야 해.”

백 이낭의 만면에서 웃음이 떠날 줄 몰랐다.

전에 없이 기분이 좋은 백 이낭 모녀와는 다르게, 영녕궁에서는 진씨가 침상에 누워 눈물을 짜내고 있었다.

탁자에 앉아 있는 주묘서의 눈도 붉어져 있었다. 짓깨물고 있는 입술의 핏기가 점점 가시는 차에 마마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매씨를 모시는 장 마마였다.

“태후 마마, 공주 마마, 길을 떠날 날이 정해졌습니다. 유월 초하루입니다. 마마께서 나리… 아니, 태상황 폐하께 전해 주십시오. 그리고 그때 안왕 전하과 안왕비 마마도 궁으로 들어와 함께 동화문에서 출발할 것입니다.”

장 마마가 말을 마치고 나서려는데, 진씨가 벌떡 일어났다.

“기다려라.”

“태후 마마, 하실 말씀이 있으십니까?”

장 마마가 가식적으로 웃었다.

“지금 큰아이와 큰며느리라 했지? 그럼 둘째는? 묘화는?”

진씨는 불현듯 대전에서, 그리고 지금도 매씨가 주종과와 주묘화를 언급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소인은 모르겠습니다.”

장 마마의 단답에 진씨는 더는 참지 못하고 성큼성큼 수안궁으로 향했다.

그 시각, 수안궁.

매씨는 엽연채와 평상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가 진씨가 씩씩대며 들어오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며칠 후면 길을 떠날 텐데 짐을 챙기지 않고 뭐 하러 왔느냐?”

진씨가 굳은 얼굴로 대답했다.

“어머님께 여쭐 말이 있어 왔습니다! 이번 남행에 어째서 둘째와 묘화는 함께하지 않나요?”

엽연채가 매씨 대신 대답했다.

“아, 두왕과 영유공주는 아직 혼인을 하지 않아서요. 두 사람 모두 나이가 찼으니 폐하께서 혼인을 준비하고 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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