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16화 (816/858)

번외 1-2

“하지만, 하지만 내가… 계후이든 아니든, 양왕이 조앵기를 사랑하건 말건 나를 그렇게 푸대접해서는 안 돼요! 여전히 그네를 사랑하고 있다 하더라도 나를 그렇게 대접해서는 안 된다고요. 부인으로 맞이한 사람은 나잖아요! 나를 데려왔으면 책임을 져야죠! 어떻게 그런 대접을 할 수가 있단 말예요!”

엽연채는 차가운 눈으로 상관운을 보며 한마디 했다.

“당신은 평범한 부인이 아니라 황후예요!”

“황후도 부인이에요! 황후도 여자라고요! 당신도 이제 황후잖아요, 부군의 사랑을 받아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이에요?”

엽연채는 실소했다.

“지금 자신의 처지를 나와 비교하는 건가요?”

상관운이 두 눈을 홉떴다.

“무슨 뜻이에요? 당신은 태어날 때부터 나보다 더 고귀하다는 말이에요? 내가 당신보다 비천한 신분이라는 뜻인가요? 난 상관 가문의 적녀예요!”

“신분 얘기가 아니에요. 하지만 네, 내가 살아온 삶은 당신보다 고귀하지요. 내 부군이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몰락한 가문의 서자였을 때부터 난 부군과 함께였어요. 부군이 전쟁에 나가 생사조차 알 수 없을 때도 난 제자리를 지켰지요.

반면, 당신은요? 폐태자가 권력을 쥐고 있을 때, 양왕이 수많은 역경을 헤쳐 나갈 때, 당신은 뭘 하고 있었나요?”

엽연채가 정곡을 찌르니 상관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엽연채는 봐주기는커녕 성큼 다가서며 그녀를 더욱 몰아세웠다.

“우리가 함께 인신매매범에게 잡혀갔을 때 양왕이 당신을 구했던 것은 상관수의 도움을 받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당신을 구해 준 다음에도 상관수는 꼼짝도 하지 않았지요. 그때 당신은 집에서 뭘 하고 있었나요? 양왕을 사모하고 있었다면서요? 양왕을 위해 한마디라도 거든 적 있나요?”

상관운의 낯빛이 변했다.

“난, 나 같은 어린 여인이 그런 바깥일을 어찌 알겠어요…….”

엽연채가 비웃었다.

“상관 소저, 나이가 몇이나 됐죠?”

상관운은 대답이 없었다.

“오, 생각해 보죠. 나보다 두 살이 많았던 걸로 기억하는데요! 양왕이 당신의 목숨을 구했을 때는 이미 열일곱이었군요!”

“그래서 뭐요?”

“그때 당신은 열일곱이었고 열아홉이던 작년까지 혼사를 미뤘지요. 혼기가 꽉 찬 나이에 혼인도 하지 않고 상관 가문에서 혼사를 알아보고 있다는 이야기도 들어 본 적이 없어요. 도대체 뭘 기다리고 있었던 거죠?”

상관운은 온몸의 솜털까지 곤두섰다.

엽연채는 그 아름다운 눈을 가늘게 뜨며 홀로 말을 이었다.

“당신이 기다린 것이 양왕과의 혼인이었나요, 아니면 황후가 되는 것이었나요? 그게 아니면 둘 다인가요? 양왕이 즉위하면 앵기의 신분으로는 황후가 될 수 없으니 분명 새로운 황후를 뽑아야 했겠지요. 당신은 그걸 기다린 거예요.”

상관운은 버럭 화를 냈다.

“무슨 이상한 소리예요? 누가… 황제가 될지 어떻게 알아요. 기다리려 했다 한들 우리 집에서도 원하지 않았어요……!”

“하하, 그거야 당신이 기다린 건 양왕이었지만 상관 가문이 기다리던 것은 황후의 자리였기 때문이겠지요. 그게 아니라면 열여덟, 열아홉이 되도록 혼기가 꽉 찬 처녀의 혼사를 내버려뒀겠어요?

양왕이 구해 준 후로 당신은 늘 그 사람을 사모해 왔다지만, 아뇨, 당신은 돌아가는 상황도 잘 알고 있었고 양왕과 혼인할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어요. 그러니 차일피일 미루며 아무것도 하지 않은 거예요.

상관 소저, 연모의 정은 진심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훨씬 뛰어났겠지요. 양왕이 승리하면 양왕에게 시집을 가고, 양왕이 실패하면 폐태자에게 시집을 갔을지도 모르지요. 결국 황제의 자리에 오르는 사람에게 시집가려던 것이었잖아요.”

마지막 말을 토하며 엽연채는 저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렸다. 상관운은 자신의 속내가 하나하나 드러나자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끝까지 포기하지 못하고 말꼬리를 붙들고 늘어졌다.

“설사… 설사 그렇다고 해도 내가 뭘 잘못했죠?”

“전부 다요! 양왕이 곤경에 빠졌을 때 당신들은 죽음이 두렵고 모험이 싫어 수수방관했지요. 그러다 황제가 되자마자 달려들어 황후 자리에 앉았고요. 잔뜩 실속을 챙기고 잘난 척하느라 바빴어요. 그런 황후, 그런 부인이 얼마나 남편의 마음에서 큰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상관운은 얼굴이 하얘져 뒤로 물러섰다.

“황제를 옹립한 공이 어떤 건 줄 알아요? 다른 사람들이 양왕과 함께 목숨을 걸고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만들기 위해 노력할 때, 그들은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잃고 심지어 온 가문이 몰살될 수도 있었어요. 그러다 결국 성공하니 당신들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심지어 남몰래 적을 지원하던 사람들이 모두 나서서 그들과 같은 것을 요구하고 안 주면 도리어 억울하다고 울고불고하다니요!”

상관운은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깨물고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렇다고 해도… 양왕이 나와 혼인하기로 선택한 거예요! 내가 선택한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이 날 택한 거라고요! 나를 부인으로 맞았으면 그렇게 냉대하면 안 돼요, 나에게 이럴 수는 없단 말예요…….”

“아니, 당신 스스로 선택한 거예요! 황후를 고를 때 후보가 당신뿐이었을까요? 설사 당신이 제일 적당해서 선택했다 하더라도, 당신들이 따져 보고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면요? 그래도 양왕이 반드시 당신이어야 한다고 고집했을까요?

아뇨, 정국을 안정시키려고 황후를 구한 거잖아요. 원치 않는 신하를 압박하여 괜한 소란을 피울 수는 없으니 양왕도 다른 사람을 아내로 맞았을 테지요!

분명 당신이 황후라는 말을 듣고 그 마음속에 조앵기가 있든 말든, 당신의 자리가 얼마나 되든 무작정 헐레벌떡 달려든 거죠. 그래서 나도 여유를 가지고 본분을 다하라 했지만 당신은 그러지도 않았지요.

만에 하나, 폐하가 결국 이렇게 끝날 운명이었다 해도 당신이 나쁜 마음을 먹고 끼어들지 않았다면 비구니로 쫓겨나는 신세는 면했을지도 모르고 상관 가문으로 돌아가 재가를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어쩌면 상관 가문의 승은공 작위도 유지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고요. 어쩌다 이렇게까지 된 거죠?”

상관운은 끝내 털썩 주저앉더니 울면서 엽연채의 옷자락을 잡아끌었다.

“맞아요. 인정할게요. 흑, 내가… 내가 생각이 짧았어요, 어리석었어요. 그렇지만… 연채… 으흑, 아무리 그래도 우리는 친자매 같은 사이잖아요…….”

엽연채는 시린 눈으로 그녀를 한차례 훑어보더니 딱 잘라 부정했다.

“아뇨,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연채… 우리는 생사를 같이한 사이예요……!”

“우리가 함께 인신매매범에게 잡혀갔던 일을 말하는 건가요?”

엽연채가 고개를 저으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 일을 말하자면, 네, 우리는 정말 생사고락을 함께한 ‘자매’겠네요! 내가 궁리를 해서 사람들을 풀어 주고 함께 도망쳤죠. 한데 당신은 도중에 넘어졌고, 그러면서 나까지 잡아당기는 바람에 난 발목도 삐었어요! 그런 상태로도 당신을 데리고 계속 도망쳤지요.

그런데 그 후엔요? 양왕이 와서 당신을 구해 주니 당신은 나를 그 자리에 내팽개쳤어요. 말에 오르고 나서 나도 구해 주라는 말을 했었나요?”

상관운은 가슴이 떨려 급히 둘러댔다.

“그때는 너무 황망하고 무서워서 그랬어요. 그리고… 양왕이 와서 구해 줬으니 분명 그를 따라온 사람들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사람이 나를 구했으니 그 뒤를 따르는 포졸과 병사들이 당신을 구할 줄 알았다고요!”

엽연채는 그 일을 떠올리면 여전히 그때의 두려움과 절박함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래요, 정말로 너무 황망해서 그럴 수 있어요! 하지만 그다음은요?”

“다음이라뇨?”

상관운의 두 눈이 커지는 모습이 엽연채는 너무나 우스웠다.

“만약 그때 내가 사람들을 풀어 주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진작에 어디로 팔려갔을지도 몰라요. 그때는 나도 살기 위해 그런 거긴 하지만, 어쨌든 내가 당신을 돕고 구해 준 것은 사실이에요. 그런데 이후에 나에게 한 번이라도 감사를 표한 적이 있나요?”

상관운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럼요! 그때 황궁 연회에서… 당신을 보자마자 제일 먼저 당신 손을 잡고 고맙다고 이야기했잖아요.”

엽연채가 소리 내어 웃었다.

“얼마나 지난 후였죠? 생각이 있었다면 그 일이 있고 바로, 늦어도 몸을 추스른 후에는 감사 인사를 오지 않았을까요? 명성이 자자한 상관 가문 적장녀가 사람 하나 찾지 못한다는 말이에요? 아예 찾아보지도 않았든지, 아니면 알아보니 내가 몰락한 가문 서자의 부인이라는 것을 알고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린 것 아닌가요?

거의 일 년이 지난 후에 우연히 만나 감사하단 말 한마디 하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죠? 그리고, 한 가지 짚고 넘어가죠. 그때 나는 이미 몰락한 가문 서자의 부인에서 장원 부인이 되어 있었어요.”

상관운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엽연채의 말 그대로였다! 자신은 그때 집으로 돌아오기 무섭게 사람을 보내 알아봤다. 그토록 아름다운 외모에 기품과 기개 역시 남달랐던 그 여인이 누군지.

당연히 어느 귀한 집안의 적녀일 것이라 생각했었는데 웬걸, 몰락한 가문 서자의 부인이라 했다! 괜히 찾아갔다가 엽연채가 자신에게 엉겨 붙을까 봐 걱정되어서 그대로 일을 덮어 버린 것이다…….

엽연채는 고개를 흔들며 웃었다.

“물론 난 당신이 사례를 하든 말든 마음 쓰지 않았어요. 하지만 나와 자매 같은 사이라느니 하는 말은 하지 말아요! 우린 그런 사이가 아니에요!

상관 소저는 장원 급제자들을 축하하는 연회가 열리고서야 날 아는 척하기 시작했고, 그때부터 크고 작은 연회에서 먼저 와서 인사하고 날 데리고 놀러 나가곤 했지요. 상관 소저, 이 교류가 내가 장원 부인이 된 것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나요?”

상관운의 얼굴색이 또 한 번 변했고, 지켜보는 엽연채의 눈도 한층 더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때는 내가 조앵기와 가까이 지내며 여기저기 같이 놀러 다닐 때였어요. 한데 이상하죠? 당신은 번번이, 그것도 굳이 뛰어와 빙글빙글 웃으며 왕비에게 인사를 했죠. 무슨 마음으로 그렇게 인사를 했는지 모르겠네요?”

상관운의 입술이 떨렸다. 무슨 마음? 장난, 조롱, 그런 낮잡아 보는 마음이 당연하지 않은가! 저 천한 여자가 어떻게 양왕비지? 왜 저런 것이 내가 사랑하는 사람을 차지하고 있는 거지? 그렇게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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