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13화 (813/858)

제813화

주요는 엽연채와 주운환을 보고는 작은 입을 달싹이더니 금세 울며불며 그쪽으로 손을 휘저었다.

“아아……! 으앙……!”

“아가! 아가!”

주요가 울며 자신들을 향해 몸을 버둥대니 엽연채의 억장이 무너졌다. 마음이 갈가리 찢기는 것 같았다.

“주운환! 짐은 이것을 제물로 정했다!”

양왕은 말을 하며 들고 있던 검으로 돌연 아기의 허벅지를 베었다. 새빨간 피가 솟구쳤다. 주요가 날카롭게 울음을 터트렸고 하늘마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으아아앙……!”

“아아……!”

엽연채는 당장이라도 숨이 멎을 것 같았다.

“모명쟁!”

주운환의 마음에 피눈물이 흘렀다. 누군가 심장을 쥐어뜯는 것처럼 숨을 쉴 수조차 없었다. 이런 분노를 느껴 본 없었던 주운환은 처음으로 양왕의 이름을 불렀다. 격정에 정신이 아득해질 지경이었으나 독하게 마음을 가다듬고 엽연채에게 말했다.

“부인, 가서 아이들을 풀어 주십시오!”

“싫어요, 안 돼! 우리 아기가… 아기가……!”

엽연채는 주요와 한순간도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요가, 피를 흘리고 있어요! 지혈하지 않으면 죽을 거예요!”

“말 들어요! 어서!”

주운환은 엉엉 우는 그녀를 힘껏 밀었다. 밀려난 엽연채는 휘청거리다 땅에 넘어져 그를 올려다봤다.

“요는 아직 괜찮아요. 지금은 요를 죽이지 않을 겁니다! 당신이 여기서 요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더 초조해져서 나도 실수하고 말 겁니다.”

주운환이 다급하게 까닭을 설명했고 엽연채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제야 비틀거리며 제단으로 다가갔다. 그녀는 허리춤에서 단검을 꺼내 아이들을 하나하나 풀어 줬다.

“하하, 짐은 정말 죽이고 싶지 않다. 하나… 네가 나를 독촉하고 있구나!”

양왕은 얼음장 같은 눈으로 주운환을 보았다.

“이제 보니, 이건 네가 방해해서 안 될 것 같구나. 그렇다면 다른 방법을 생각해야지!”

주운환은 이를 악물고 양왕에게 경고했다.

“아이를 놔줘라! 마지막 기회다!”

“마지막 기회?”

양왕은 잔혹한 동시에 조롱이 가득한 눈으로 주운환을 보았다.

“넌 나를 뭐라고 생각하는 거냐? 너의 무공, 너의 기마술, 너의 재능, 모두 내가 가르친 것이다!”

“으아앙……!”

주요는 아직도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있었고 다리에서는 선혈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주운환은 그런 아들의 모습을 보자 누군가에게 가슴이 난도질당하는 양 이루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웠다. 원래 허약하게 태어난 아이였다. 당장 지혈을 하지 않는다면, 피를 더 흘린다면… 금방 목숨을 잃을 것이다!

‘우리 아이, 우리 철단이가……!’

“요야!”

주운환은 시위를 떠난 활처럼 달려나갔다. 손에 쥔 청풍검이 은빛으로 반짝이며 양왕을 공격했다. 양왕은 한 손에 주요를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검을 들고 방어하면서 반격했다.

이게 대체 얼마 만에 두 사람이 검을 맞대는 것인지 몰랐다.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대련을 하지 않았다.

아니, 아니었다. 실은 그렇게 오래되지는 않았다. 작년, 주운환이 출정하기 전 그들은 양왕부의 연무대에서 하루 온종일 대련을 했었다.

그때도 양왕의 검술은 주운환을 사지로 밀어 넣으려는 듯 모든 동작 하나하나가 맹렬하고 날카로웠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정반대였다.

“전쟁터에서는 아버지도 아들도 없다. 적을 사지로 밀어 넣지 못하면 사지로 떨어지는 것은 너다.”

그는 이렇게 주운환을 가르쳤다.

그때 그가 주운환을 그렇게 몰아붙인 것은 주운환이 돌아오지 못할까 봐 걱정이 되어서였고, 그를 지키기 위해서였다.

그때는 주운환도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양왕이 주었던 가르침들을 모두 그를 향해 쓰게 될 줄은.

챙! 주운환은 돌아서며 양왕의 얼굴을 향해 날카로운 검을 뻗었다. 하지만 양왕의 검에 가로막혔다.

부딪치는 검 너머로 양왕의 차가운 살기가 느껴졌다.

“주운환, 본왕이 손수 키워 낸 네가 나에게 칼을 휘두르다니! 이 배은망덕한 놈!”

양왕은 한이 맺힌 듯 크게 소리쳤다. 물처럼 맑은 주운환의 얼굴이 어두워져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저는 폐하의 가르침과 보살핌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저는 폐하의 가르침에 보답했고 폐하의 온정에 보답했습니다. 폐하가 시킨 것은 모두 해냈습니다! 폐하를 도와 원수들을 없앴고, 폐하를 위해 이 땅을 손에 넣었습니다! 이 나라는 모두 폐하의 것입니다……!”

주운환은 포효하듯 마지막 말을 뱉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뚫어져라 바라본 끝에 절로 눈물을 떨구었다.

“하하…….”

양왕에게서 차가운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나 싶더니 그 웃음은 곧 울음이 되었다.

“지금… 나라가 무슨 의미가 있냐! 그네가 없는데… 모든 것이,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양왕은 낮은 목소리로 울부짖으며 주운환을 밀쳐 냈다. 하나 주운환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몸을 틀어 양왕의 왼손을 힘차게 공격했다.

“으아앙……!”

아이의 놀란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주요가 날아갔다. 엽연채는 일찌감치 이쪽을 지켜보고 있다 득달같이 달려가 아기를 받아 안았다. 다행히 아기는 잡아챘으나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몇 바퀴를 굴렀다.

“아앙……!”

아기는 하늘이 무너지기라도 할 것처럼 소리 높여 울었다.

드디어 아기를 다시 제 품에 안은 엽연채는 감격해 아들을 끌어안고 달랬다.

“주운환!!”

주요를 뺏기다니! 주요가 자신의 희망, 자신의 빛이거늘, 지금 이 순간 모두 사라졌다! 양왕의 날카로운 검이 엽연채를 향해 날아들었다.

땅! 주운환이 양왕을 막으며 엽연채를 향해 소리쳤다.

“어서 뛰십시오! 여한에게 가는 겁니다!”

엽연채가 발길을 돌려 뛰어가려는 순간, 그녀는 제단에 엎드린 그림자를 발견했다. 다름 아닌 고원이었다. 그녀는 툭 튀어나온 나무 손잡이에 손을 올리고 작은 소리로 외쳤다.

“아무도 도망 못 간다!”

그러더니 힘껏 나무 손잡이를 당겼다! 그건 바로 주변을 에워싸고 무성한 수풀 덤불에 숨겨 놓은 석궁의 발사 장치였다!

아이들을 모조리 죽이고 말겠다며 그녀가 손수 배치한 것이다. 그러니 고작 세 사람의 목숨을 취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손잡이를 당긴 고원은 어느 순간보다도 통쾌했다.

양왕은 자신과 상관운이 그를 속였단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상관운도 본인이 속은 것을 모르고 있었다!

노왕비를 죽이고 그 자리에 앉고 싶다는 둥, 자신의 아들을 노왕 세자로 만들겠다는 둥의 이유는 핑계에 불과했다.

‘내가 원하는 것은 고작 그런 게 아니다. 나는, 내가 황후가 될 거다!’

황제의 만행은 이미 온 세상에 낱낱이 밝혀졌다. 이 상황에서 황제와 주운환이 죽으면 주운환의 친위대들은 발작을 할 것이고 언동을 비롯한 충성심 깊은 양왕의 수족들도 좌절할 것이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신들과 백성들은 노왕을 황제로 추대할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처음부터 양왕을 사지로 밀어 넣고 노왕을 즉위시키려는 계획이었다!

고원이 장치의 손잡이를 당기자마자 수많은 화살이 일제히 날아왔다!

웅웅거리는 소리가 사방에서 들려왔다!

주운환은 너무나 익숙한 소리에 일순 멍해졌다. 전쟁터에서 석궁의 활시위를 당기는 소리, 꿈속에서도 대응할 수 있는 소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사방이 포위되어 도망갈 곳이 없었다!

그래도 그의 몸은 벌써 반응해서 엽연채 모자를 향해 달려가 그들을 바닥으로 밀었다.

한바탕 웅웅 대는 소리가 귓가를 스치고 곧 사라졌다.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난 일이었다. 주운환은 이미 삶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버렸다. 하지만 모두 지나간 후 보니 겨우 팔뚝에 찰과상만 입었을 뿐이었다.

주운환이 벌떡 일어나니 그 앞에 양왕이 서 있었다.

어느새 날이 밝아져 있었다. 양왕의 얼굴에 아침 햇살이 비쳤다. 초췌한 얼굴, 너무도 준미한 그의 눈은 여전히 어두웠고 생기 없이 흐릿했다. 입가에서는 선혈이 흐르고 있었다. 대여섯 발의 화살이 가슴을 뚫고 나와 그의 발치에는 벌써 피 웅덩이가 고여 있었다.

주운환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운환…….”

양왕이 그의 이름을 부르더니 휘청하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주운환은 달려가 그를 부축했다.

“폐하… 도대체 뭘 하신 겁니까!”

자신들은 조금 전까지도 목숨을 걸고 상대방과 치열하게 검을 맞댔다. 그러다 화살이 발사되자 자신은 자기 몸으로 엽연채를 감쌌다. 그리고… 양왕도 그의 몸으로 이쪽에 쏟아지는 화살을 막아 주었다…….

주운환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왜 그러신 겁니까?”

“글쎄… 하하… 쿨럭……!”

양왕이 웃자 그의 입에서 붉은 피가 울컥울컥 쏟아져 나왔다.

“정말… 어쩌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보고 싶었는지도 몰라……. 진짜로 돌아오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돌아올 수 있게 노력하고 있으면… 쿨럭… 아직 같이 있는 것 같았다.

난 아바마마가 정말 싫었어. 제일 미워했는데… 한데 하필이면 내가 제일 아바마마와 닮았네. 아바마마처럼, 내가 제일 싫어하는 모습으로 살았어. 하지만… 어쩔 수 없었어. …알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할 수밖에는…….”

주운환은 아무 말도 귀에 들어오지 않아 그저 양왕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방금 이 나라가… 내 것이라고 했지. 아니, 이 나라는 너의 것이야! 너에게 줄 거다!”

주운환은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아 이를 악물었다.

“저는 나라도 땅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부인과 아들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폐하가 평안하고 행복하길 바랄 뿐입니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필요 없습니다……!”

“하하, 알지. 하나… 나는 싫다! 노왕이든… 용왕이든 그들의 손에 이 나라가 넘어가는 것이 싫다. 너만이…….”

양왕은 또다시 울컥 피를 토했다.

“즉위하는 날… 황후와 대혼을 올려 줘. 알고 있다. 네가 늘 나 때문에…….”

“폐하!”

주운환이 놀라 소리쳤다.

“의정을 불러라! 의정!”

“아니… 폐하라고 부르지 마라.”

“전하…….”

“그것도 아니야. 하하… 삼촌, 이라고 불러 다오…….”

주운환의 마음이 크게 흔들렸다. 그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미안하다… 자소가… 정말 나를 많이 닮았어…….”

양왕의 몸이 풀썩 꺾이더니 두 눈이 감겼다. 피로 가득한 그의 손도 주운환의 손에서 미끄러졌다.

“삼촌…….”

주운환이 넋이 나간 채로 중얼거렸다. 곧 눈물이 터져 나왔고 가슴이 찢어져 그는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아아악……!”

엽연채의 품에 안긴 주요도 목이 찢어져라 울었고 엽연채도 울고 있었다.

제단 밖에 있는 언동은 정신이 아득해졌다가 곧 바닥에 주저앉았다.

“폐하… 폐하! 폐하! 흐흑……!”

팔척장신의 남자가 통곡을 했다.

뒤에 서 있던 금위군들도 모두 무릎을 꿇었다.

여한 형제와 장씨를 비롯한 주운환의 친위대들도 모두 놀라 창백해진 얼굴로 들고 있던 무기를 우르르 땅에 떨구고 천천히 무릎을 꿇었다.

곧 하늘 저편에서 봉화가 피어올랐다. 봉화는 도성까지 연달아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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