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10화
“어쩌면 지금 주술을 부리러 간 걸지도 몰라!”
“그렇다면 아이들이 아직 살아 있다는 말이야?”
“주술은 언제 시작되는 건데?”
“그거야 모르지. 어쩌면 주술은 벌써 끝났을지도……. 아직 행해지지 않았으면 아이들이 아직 살아 있을지도 모르고.”
그 일은 한 명이 두 명에게, 두 명이 세 명에게 알렸고 반나절도 걸리지 않아 온 도성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
백성들은 말할 것도 없고 유 재상과 여지, 장찬 같은 사람들도 소문을 믿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모든 것이 사리에 맞았다. 예전에 이해가 되지 않던 것들이 모두 하나로 이어져 밝혀진 셈이었다. 아무리 수색을 해도 단서들이 모두 툭툭 끊어졌던 이유는 황좌에 앉아 있는 사람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리 추측하니 모두들 놀라면서도 대로했다. 심지어 귀족 가문의 아이들까지 잡아다 죽였으니, 앞으로 황제가 어느 누구에게 칼을 들이대지 않으리라고 그 누가 장담할 수 있겠나.
온 도성 사람들이 황제를 두려워하고 또 황제에게 분노했다. 사라진 아이들의 부모들 중 간이 큰 사람들은 궁 앞으로 달려가 울며 소리치다가 금위군에게 쫓겨났다. 이성을 잃은 사람 한둘은 궁에 난입하려다 문을 지키던 금위군에게 중상을 당하기도 했다.
백성들은 진서왕부 문 앞으로 몰려가 도움을 청했지만 왕부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노왕이 급히 민심을 수습하고자 아이들이 죽었든 살았든 반드시 그들에게 답을 줄 것이라고 알렸다.
한편, 주운환과 엽연채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수색을 이어 갔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사월 초열흘이 되었다. 하루가 더 지나면 이제 사월 열하루였다.
주운환은 군대를 이끌고 도성에서 30리 떨어진 숲에서 갈 길을 상의하고 있었다.
“지금 우리가 알아본 바로는 전방 칭주로 가는 방향과 남쪽의 태항산, 동쪽 하합의 동래산이 있다.”
의논하고 있는데 경위영 병사가 뛰어왔다.
“전하, 노왕 전하가 오셨습니다.”
주운환이 고개를 들었다.
“모셔라.”
곧 노왕이 말을 달려 다가왔다. 그는 말등에 앉아 숨을 헐떡이면서 힘겹게 인사해 왔다.
“진서왕.”
“전하.”
주운환이 손을 모으고 답례하니 노왕은 난색을 표하며 입을 열었다.
“찾은 것이 있소?”
“단서를 잡았습니다.”
“잘됐군, 정말 잘됐어.”
노왕은 잠시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진서왕, 도성의 소문을 들었소? 몹시 불경스럽게도 폐하가 정말 이번 일과 관련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고 있소이다. 소문이 사실이든 아니든 피해자는 있고,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역시 아이들이오!”
“노왕 전하,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편히 하십시오.”
엽연채가 나섰다. 노왕이 여인의 목소리를 듣고 깜짝 놀라 내려다보니 가녀린 몸집의 사람이 주운환 곁에 서 있었다. 경위영 군사의 차림을 하고 얼굴을 새까맣게 칠하고 있었으나 자세히 살펴보니 엽연채였다. 노왕은 그녀에게 알은체를 한 다음, 마저 소식을 전했다.
“진서왕 자네는 폐하의 행적을 찾고 있고 우리는 사라진 아이들의 향방을 찾고 있지 않소. 한데 정말 단서를 잡았소. 어제 회미천하에서 호랑이 고기 세 근을 왕부로 보내왔는데, 바로 여기에 실마리가 있지 뭔가. 진서왕도 도성에 있었다면 역시 받았을지도 모르지.
잡설은 그만하고, 호랑이 고기는 귀한 것인지라 본왕도 먹으면서 어디서 난 것인지 물어봤네. 음식을 올린 시종이 회미천하에서 보내온 것인데, 저도 자세히는 모르고 어느 시골 사람이 팔았다 들었다고만 하더군. 폐하와 사라진 아이들의 일로 바쁜데 어디 그런 것에 신경 쓸 틈이 있겠나. 본왕도 집사에게 더는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
그런데 집사가 찜찜했는지 직접 회미천하에 가서 고기의 출처를 물어봤다는 것이오. 오늘 아침을 먹는데 집사가 남은 호랑이 고기를 가져오면서 하는 말이, 이 고기는 회미천하에서 30리 떨어진 백석촌에서 사 온 것이라 하더군.
듣자 하니 그 호랑이는 원래 태항산에 사는 호랑이였다고 하오. 원래 산에서 내려오지 않았는데 새끼를 낳고선 갑자기 마을로 와 눌러앉았다고 해. 마을 사람들은 처음엔 겁이 나서 모두들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나오지를 않았다더군. 하루 이틀이면 사라질 줄 알았던 거지.
한데 마을에서 엿새, 이레를 내리 있으면서 사람들을 공격하니 더 이상 참지 못한 마을 사람들은 결국 검을 뽑아 들었다네. 다들 목숨을 내놓고 덤벼든 건데 알고 보니 이 맹수는 등에 이미 깊은 상처를 입은 후라 사람들에게 맞서지 못했고, 그래서 어렵잖게 죽였다는군.
호랑이가 죽은 후에 사람들이 안심하고 나무를 하러 산에 올라가려 했는데, 산기슭에 도착하니 또 호랑이 울음소리가 들려 그대로 도망쳤다고 하오. 회미천하 사람 말로는 이렇듯 호랑이가 많으니 다음번에도 고기를 구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했소.
본왕은 들을수록 이상했소. 하나의 산에는 호랑이 두 마리가 함께 있을 수 없는 법이니 처음 나타난 호랑이가 새로 온 호랑이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산에서 내려와 마을에 피해를 준 것인지도 몰라. 한데 호랑이는 원래 깊은 산에서 지내는데 왜 산기슭에 마을 사람들이 도착하자마자 울부짖었을까?
본왕이 다시 회미천하에 호랑이 가죽을 어디에 팔았는지 물어봤더니 강왕부의 이공자가 사 갔다고 하더군. 내가 강왕의 이공자를 찾아 그 호랑이 가죽을 한번 보여 달라고 했더니 호랑이 가죽에 정말 상처가 있는 게 아니겠소. 그런데 가만 보니 칼에 맞은 상처였소!
미심쩍어 사람을 불러다 살펴보니 호랑이 등에 굉장히 깊은 칼자국이 하나 있었고, 그것 말고 다른 것들은 호미나 낫 같은 농기구에 맞은 상처였소.”
한참을 집중해 듣고 있던 엽연채의 눈이 반짝였다.
“그러니까, 노왕 전하 말씀은 태항산에 두 번째 호랑이가 있는 것이 아니란 거군요! 호랑이가 산에서 내려온 것부터가 사람에게 공격을 당해 쉴 곳이 사라졌기 때문이란 거죠! 말씀하신 대로 분명 산에는 많은 인마가 대기하고 있을 겁니다! 호랑이가 있는 것처럼 꾸며 마을 사람들이 산에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고요!”
“그렇소!”
노왕이 고개를 끄덕이며 엽연채를 보았다.
“진서왕비는 정말 총명하군. 아이들의 일과 폐하의 실종은 정말 하나의 사건 같기에 진서왕에게 알리러 왔소. 도성은 몹시 혼란스러우니 어찌 되었든… 어서 이 사건을 해결하는 것이 제일 좋겠소.”
주운환은 이미 의심스러운 세 곳을 뽑아 두었는데 태항산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노왕의 말을 들어 보니 태항산이 단연 가장 의심스러운 장소로 부상했다.
내일이 바로 사월 열하루이니 한시도 지체할 수 없었다. 주운환은 엽연채와 곧바로 행장을 꾸려 태항산으로 바삐 이동했다.
* * *
태항산. 이 산은 도성 근교에서 40리 정도 떨어진 평범한 산이다.
20여 년 전 이곳에 도교 사원을 지었지만 유명한 곳이 아니라 참배객이 많지 않았고, 결국 몇 년 만에 도사들이 모두 떠나 버렸다.
하니 지금까지는 근처 마을 사람들이 올라와 땔감을 해 가는 정도의 산이었다. 다만 산에 사나운 호랑이가 나타나면서 마을 사람들도 접근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태항산은 원래 나무가 빽빽하고 수풀이 우거진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은 대지가 살아나는 사월이니 유독 녹음이 우거지고 푸르렀다.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갔던 평범한 백성들 중 그 누구도 그 초록빛 속에 숨어 있는 군대를 발견하지 못한 것도 당연했다.
산 정상.
20여 년 전의 도교 사원은 오랜 세월의 풍파를 겪었지만 지붕의 창 몇 개만 망가졌을 뿐 꽤 멀쩡한 모습으로 산꼭대기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사원 앞 공터에는 높이와 너비 모두 족히 석 장은 되는 제단이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이른 새벽, 산 정상의 봄바람은 따스하기는커녕 사람의 마음도 차갑게 만들었다. 그 바람에 상관운도 꿈에서 깨어났다. 낡고 허름한 이곳은 창문도 없어 저녁 내내 모기에 물렸다.
어디 그뿐일까. 상관운은 제대로 못 먹고 제대로 못 자며 지내고 있었다. 어젯밤만 해도 자정이 넘어 겨우 잠이 들었는데 밖에서 웬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상관운은 들고 있던 베개를 던지고 창밖을 내다봤다.
울창한 대나무 숲에서 양왕이 주요를 안고 앉아 있었다. 그는 아기에게 죽을 먹이려 했지만 주요는 발버둥 치며 울기만 했다.
“시끄러워 죽겠네!”
상관운은 귀를 막으며 나지막이 욕지거리를 해 댔다.
법화사를 떠나온 후 그들은 태항산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납치된 아이들은 사원 대전에 갇혀 있었다. 항상 입에 재갈을 물리고 있다가 밥을 먹을 때만 입을 막은 천을 풀어 주었다.
상관운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하며 양왕에게 뛰어와 물었다.
“폐하, 어째서 여기에 저리 많은 아이들이 있는 거죠?”
양왕이 차갑게 대꾸했다.
“제사에 필요한 아이들이다.”
“무슨 제사요?”
상관운은 화들짝 놀라는 모습을 연기했다.
“몇 년 동안 짐에게 아기가 생기지 않았는데. 이번 제사를 올리면 앞으로 우리도 다복하고 화목해질 것이다.”
“아, 그런… 그랬군요.”
상관운이 난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폐하에게 계속 자손이 생기지 않더라니요. 그리고 저와도 늘……. 그런데 노왕 측비는 왜 여기에 와 있는 거죠?”
“제사를 도울 거다.”
상관운은 양왕에게 더 캐묻지 않았다.
이후로 그들은 이곳에 죽 머물렀다. 생활은 갖가지 이유로 불편했지만, 무엇보다도 상관운을 괴롭게 하는 것은 지내는 곳이 너무 낡고 허름하단 것, 곁에서 시중을 들어 줄 수족이 없단 것, 이 두 가지였다.
그동안 양왕은 주요를 정성껏 보살피며 매일 품에 안고 어르고 달랬고, 밥도 직접 먹였다. 하지만 주요는 하늘이 무너질 듯 울어 아무리 달래도 소용이 없었다.
주요는 오늘 아침에도 역시나 울고 있었다. 상관운은 간단하게 치장을 한 다음, 아이를 어르느라 정신없는 양왕 곁으로 다가갔다.
“으아앙… 콜록……!”
주요는 목소리마저 갈라져 있었다. 너무 지친 탓에 숨을 몰아쉬며 흐느끼는 소리엔 맥이 없었다.
양왕은 나무 그릇을 들고 숟가락으로 죽을 떠먹였다.
“자, 조금만 먹어 봐.”
“으앙…….”
몹시 굶주렸던 아기는 울면서도 작은 입을 벌려 죽을 삼켰다.
“하하하, 착하기도 하지.”
양왕이 주요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주요가 죽 한 그릇을 뚝딱 비우자 양왕이 입을 닦아 줬다.
지친 아기는 잠이 몰려와 하품을 몇 번 하더니 두 눈을 감고 양왕의 품에 기대어 잠에 빠졌다. 긴 속눈썹에는 아직도 눈물이 맺혀 있었다.
양왕은 얼굴을 어루만지며 웃었다.
“아가, 너는 정말 짐을 많이 닮았구나.”
상관운의 낯빛이 어두워졌다. 깊이 잠이 든 주요의 얼굴을 보다 가슴이 철렁했다. 정말 닮은 얼굴이었다. 주운환이 그렇게 능력 있고 세력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저 아이가 양왕의 씨가 아닐지 의심했을 것이었다.
정말 잘생긴 아기로, 지금껏 본 아이들 중에 가장 예뻤다.
‘하지만 아무리 예쁘게 생겼어도 오늘 밤이면 죽을 운명이지.’
상관운의 눈에 조롱과 비웃음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