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07화 (807/858)

제807화

“진서후의 말에 일리가 있습니다.”

여지가 가장 먼저 동조했고 진무와 장찬, 영국후를 비롯한 사람들도 잇달아 찬성했다. 주 선생은 주운환과 양왕의 관계가 걱정되었지만 마침내 그도 고개를 끄덕이며 유 재상을 보았다.

“재상, 이건 심상치 않은 사건입니다. 더 이상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유 재상도 주운환에게 맡기는 것이 가장 적절할 것 같았다. 황제가 주운환을 경계한다 해도 이번 일은 모두가 찬성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같은 마음이니 추후에 자신만 딱 짚어 처벌할 수도 없을 것이다.

유 재상이 입을 열려 하는데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안 됩니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려 보니 금위군 부통령 수풍이었다. 그는 황제의 최측근이었다!

“수풍!”

어두워진 얼굴의 주운환이 수풍을 보았다. 매서운 눈빛이 날아드니 수풍은 미간을 찌푸렸지만 여전히 의연한 표정이었다. 수풍과 언동 형제는 조정 대신이기 이전에 양왕의 호위대였다.

그래서 다른 조정 대신과는 달리, 처세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고 자신의 이익 또는 가족의 이익 관계가 얽혀 있지도 않았다. 그들의 몸에 흐르는 것은 단지 황제에 대한 절대적인 충성의 피였다.

궁을 떠나기 전, 양왕은 수풍에게 자신이 떠나 있는 동안 몇 가지 큰일이 생길 거라 귀띔했다. 무슨 일이라고는 정확히 말하지 않았지만 사안의 경중을 떠나 주운환이 끼어들게 해서는 절대 안 된다는 엄중한 명령을 내렸다.

주요가 실종되어 수풍이 수색을 펼치고 있을 무렵, 황제는 그에게 비밀 서신을 보내 나중에 돌아와 모두 설명할 테니 지금은 모르는 척하라고도 전했다.

“폐하께서 궁을 떠나시면서 말씀하시기를, 진서왕 전하는 다음 달이면 응성으로 떠나셔야 하니 도성의 안위는 방 통령과 하 부통령, 그리고 그 부하들에게 맡기라 하셨습니다. 무슨 일이든 전하에게만 의지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수풍은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이건 실로 엄중한 사건이니 소관이 직접 수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주 태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풍의 말에 주 선생은 입술을 움찔거렸다. 언동 형제나 수풍 모두 전부터 양왕을 모셨던 사람이다. 이건 곧 그들이 모두 능력이 뛰어난 최정예란 말이었고, 특히나 수풍이 주로 맡았던 임무는 바로 정찰이었다.

주 선생이 무어라 말하려는 찰나, 주운환이 냉소했다.

“고 부통령이 온 황궁을 철통처럼 지키고 있었는데도 사람을 잃어버렸고 아직까지 실낱같은 흔적 하나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작년 폐태자가 퇴위를 강요할 때와 같은 상황 아닙니까? 금위군? 금위군이 무얼 할 수 있다고요? 하하하!”

수풍은 여전히 단호한 모습이었지만 상관수는 몹시 곤란한 듯 얼굴이 붉어졌다. 그때 본인이 경비에 소홀한 탓에 폐태자가 선황제를 공격할 수 있지 않았던가.

이렇게 생각해 보니 상관수 자신도 어떤 의미에선 공신이었다. 만약 자신이 유능했다면 어떻게 새 황제가 즉위할 수 있었겠나. 하나 설령 이게 사실일지언정 어찌 공을 주장할 수 있을까. 그랬다간 자신의 무능함을 온 천하에 선포하는 셈이었다.

“수풍!”

주 선생은 차갑게 수풍을 노려보았다. 지금은 충성심에 눈이 멀 때가 아니라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넘겨야 할 중요한 때였다. 그에게도 뛰어난 능력이 있다지만, 이 일에 있어 주운환을 능가하는 적임자는 되지 못했다.

그러나 수풍은 냉랭하게 말하면서 노왕에게 시선을 돌렸다.

“아무튼 소관은 전하께 금위군을 맡길 수 없습니다! 노왕 전하도 일전에 황제 폐하의 명을 받드셨으니 수하의 군사를 진서왕 전하께 내드릴 수 없습니다!”

노왕의 온화한 얼굴에는 난처한 기색이 가득했다.

“우리 대제에 진서왕 한 사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 부통령과 노왕 전하가 함께 수사하는 것이 가장 적당합니다.”

오봉이 수풍의 편을 들고 나섰고, 대전은 두 파로 나뉘어 다투기 시작했다.

상황을 지켜보던 주운환의 얼굴이 무겁게 침전했다.

양왕이 도성을 떠나기 전 주 선생과 유 재상에게 정무를 맡겼지만 금위군은 특별한 기구라 그들 손아귀에 있지 않았다. 금위군의 우두머리인 수풍이 병력을 손에 꼭 쥐고 내놓으려 하지 않는다면 다른 사람들도 방도가 없었다!

주운환의 청수한 얼굴이 이렇게 어두웠던 적이 없었다. 분명 사전에 명령이 있었던 것이다! 그의 가슴이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너무 분하고 억울하니 도리어 웃음이 났다.

“좋습니다. 고 부통령의 충심이 대단하군요. 그렇다면 폐하께 직접 물어봅시다! 내일은 사월 초나흘, 선황제 폐하의 기일입니다. 폐하와 황후 마마는 내일에나 정식으로 불경을 외고 축원을 올릴 것입니다. 지금 바로 법화사로 가면 늦지 않습니다!”

“아니, 뭐라고요?”

대전에 있던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법화사로 폐하를 찾아간다고?”

“그게 아니라면요? 주 태부와 유 재상 두 대인께 결정을 맡기셨는데 결단을 내리지 못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폐하께서 직접 결정하실 수밖에요! 이건 황실의 안위가 달린 일이니 한시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법화사는 도성에서 한 시진이면 닿을 수 있는 곳입니다.”

주운환은 고개를 돌려 수풍을 보았다.

“고 부통령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풍은 차가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가 꼭 그러셔야겠다면 직접 폐하께 청을 드리시지요!”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몰랐다. 황제는 그들을 만나 주지도, 주운환에게 이 사건을 맡기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면 모두 입을 다물 수밖에 없다.

“갑시다!”

주운환이 몸을 돌려 나섰다.

대신들은 서로 바라보다 황급히 주운환을 따라 나갔다.

동화문에 도착한 주운환은 말에 올라 궁을 나서며 여한에게 일렀다.

“장씨에게 부하들을 이끌고 법화사로 가라고 알려라.”

장씨 일행은 주운환의 친위대로, 천 명의 친위대는 모두 주운환이 직접 고른 정예군이었다.

“알겠습니다.”

주운환은 여한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그길로 떠났다.

주 선생, 유 재상, 여지 등 상서 여섯 명, 수풍과 노왕 등은 각자 말을 타거나 마차를 타고 금위군의 호위를 받으며 궁을 나섰다.

* * *

행렬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법화사로 향하고 있었다. 가는 길은 눈 닿는 곳마다 아름다웠다. 녹음이 우거지고 꾀꼬리가 지저귀니 곳곳이 나들이를 나온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러한 즐거운 광경을 마주하는 지금 주운환의 마음은 어찌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하나 차차 조급함이 가시고 놀랍도록 침착한 냉정이 찾아왔다.

한 시진 후, 그들은 드디어 목적지에 다다랐다. 금위군들이 법화사를 겹겹이 에워싸고 있었다.

산 입구를 지키고 있던 금위군이 주운환 일행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깜짝 놀라 달려와 무릎을 꿇고 인사했다.

“대인들을 뵈옵습니다.”

“일어나게!”

주운환이 침착하게 인사를 받았고 금위군이 일어서서 물었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유 재상이 앞으로 나섰다.

“방 통령은 어디 있느냐?”

금위군은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방 통령은 폐하의 곁을 지키고 계십니다.”

주운환은 냉랭한 얼굴로 곁에 서서 말이 없었고 유 재상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리는 폐하를 뵈러 왔으니 안에 가서 알려라.”

금위군이 난색을 표했다.

“대인, 폐하께서 산에 오르시기 전 누구도 접근하지 못하게 하라 명령하셨습니다.”

유 재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가서 아뢰라 하지 않았더냐?”

그제야 수풍이 나섰다.

“가라!”

금위군은 자신의 부통령을 보고서야 뒤돌아 산을 올라갔다.

사람들이 삼각을 기다렸을 무렵, 총채를 든 기해가 미소를 지으며 비틀비틀 걸어 내려왔다.

“전하, 유 재상, 어쩐 일이십니까?”

인사한 기해가 난처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게… 폐하는 내일부터 전각에 들어가십니다. 어제부터 이미 재계를 마치시고 들어갈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요명대사도 산에 들어왔으면 속세의 사람을 만나 속세의 일에 개입하지 말라 하셨습니다. 그래야만 선황제 폐하가 빨리 극락왕생하실 수 있다 하셨습니다.”

주운환은 이렇다 할 반응을 보이지 않았고 조정 대신들은 서로 얼굴만 쳐다보았다.

이게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역대 황제들 중에서는 새로 즉위하고 법화사에 직접 오지 않았던 사람도 있고 궁에서만 제를 올리고 마는 사람도 있었다. 그저 선황제를 위해 불경을 낭독하는 의식일 뿐인데, 황제는 이리 공을 들이지 않으면 선황제가 18층 지옥에라도 떨어질 것처럼 굴고 있었다.

어쩌겠는가, 황제의 효심이 너무나 지극하다고 할 수밖에!

“미룰 수 없는 긴요한 일이 있소.”

보다 못한 주 선생이 나서서 궁에서 주요가 사라진 일과 인신매매꾼이 다시 나타난 이야기를 했다.

“이번엔 귀족 집안의 아이들을 잡아갔네. 수많은 단서들이 이 사건이 작년과 연초에 있었던 인신매매, 그 윗선의 소행이라고 말하고 있소이다. 궁 안까지 손을 뻗어 사람을 잡아가고 흔적도 남기지 않았다는 것이 정말 무서운 일이요. 본디 이 사건은 노왕 전하께 맡겨야 하지만…….”

차마 노왕을 믿을 수 없다고 말할 수는 없어 주 선생이 말꼬리를 흐렸더니 눈치 빠른 노왕이 앞으로 나섰다.

“진서왕이 본왕에게 힘을 보태야 합니다. 이번 일은 여러 의견이 대립하고 있어 폐하의 결단이 필요합니다.”

지금으로선 수중의 금위군을 주운환에게 내어 줄 수 없다. 황제의 윤허를 받지 않고 임의로 그리한다면 반역이라는 죄명을 뒤집어쓸지도 모른다.

“아이고… 어찌 그런 일이. 알겠습니다. 소인이 폐하께 아뢰도록 하겠습니다.”

기해가 바삐 되돌아갔다. 주운환은 아무 말도 없이 그 뒷모습을 보고만 있었다.

다시 반 시진 정도가 지났을 무렵, 기해가 숨을 헐떡이며 걸어 내려오더니 주운환과 사람들에게 예를 갖추고 말했다.

“폐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 사건은 보통 일이 아니니 반드시 제대로 수사하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보통 사건이 아니기에 진서왕께서는 더더욱 도성에서 명을 대기하고 계셔야 한다 하셨습니다. 이 일은 노왕 전하와 고 부통령이 함께 맡으시라 하셨습니다.”

기해가 성지를 전하자 유 재상과 주 선생 모두 얼굴을 찡그렸다.

“내가 직접 폐하를 뵙겠소!”

이마에 푸른 핏줄이 솟은 여지가 참지 못하고 먼저 외쳤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노왕 전하는 이런 사건의 적임자가 아닙니다. 지난번 노왕 전하께서 신속하게 사건을 해결했다면 그 아이들이 죽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진무도 화가 난 말투로 동조했다.

“이 사건은 경위영에 맡기는 편이 옳습니다.”

유 재상까지 말을 보태자 기해가 소리쳤다.

“대인들, 이건 폐하의 뜻입니다!”

“폐하를 뵈어야겠소! 지금 당장 폐하를 봬야겠단 말이요!”

여지는 화가 잔뜩 나서 소리치며 산을 뛰어 올라갔다. 그러나 산을 지키던 금위군이 재빨리 검을 뽑아 들어 그 앞을 가로막았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