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6화
주운환은 바로 다시 집을 나서서, 사람들을 데리고 도성을 벗어나 법화사로 향했다.
그는 어둠을 틈타 조용히 절 안으로 들어가 양왕이 머무르는 곳을 찾았다. 금위군이 침소를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지만, 안에는 기해 한 사람뿐이었다!
주운환은 얼음장처럼 차가워진 마음으로 법화사를 떠났다. 도로 도성에 돌아오니 이미 해가 떠 있었다.
아직 이른 새벽이었지만 도성 안은 일찍부터 시끌시끌했다. 어제 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생긴 탓이었다.
폐태자의 잔당이 진서왕의 세자를 죽였고, 인신매매꾼들이 또다시 나타나 도성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 게다가 이번에 사라진 것은 귀족 집안 아이들이었다.
길가 곳곳에서 식사를 준비하는 연기가 피어올랐고 아침을 먹던 손님들은 다들 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된 세상이길래 자꾸 이런 일이 일어나나.”
“그래, 인신매매꾼들이 서른 명도 넘는 아이들을 떼로 죽인 게 얼마나 됐다고.”
“멀쩡하던 진서왕의 세자도 죽었으니, 어휴… 불쌍하기도 하지. 한데 이번에는 귀족 집안 아이들도 사라졌다며?”
“설마 또 인신매매꾼일까?”
“인신매매꾼들이 한 짓이 당연하지. 설마 그냥 물에 떠내려간 거겠어?”
이번에 실종된 아이들은 총 다섯 명이었다. 여지의 적증손자, 영국후부의 적장손녀, 청평군왕의 아들, 그리고 다른 귀족의 아이 두 명이었다.
특이하게도 이번 실종에는 배에서 일어난 사고가 관련돼 있었다. 남쪽 지방에서 유명한 여도사가 도성에 들어왔는데, 그녀가 제일 잘하는 것은 운명을 읽는 것이고, 그중에서도 특히 아이들의 명을 잘 본다고 했다. 어제 그 여도사가 배 위에서 손님을 받아 귀부인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왔는데, 배가 강 중간쯤을 지날 때 갑자기 불이 난 것이다!
당연히 사람들은 혼비백산이 되어 너도나도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혼란 속에서 아이들이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누군가는 아이들이 살겠다고 물에 뛰어들었다 휩쓸려 간 거라고 했고, 누군가는 불에 타 죽어 강바닥에 가라앉았다고 했다. 또 누군가는 인신매매꾼이 다시 나타났다고 추측하면서 이른 시각부터 저잣거리가 시끄러웠다.
주운환이 이들 사이를 지나오는데 저기서 여양이 황급히 뛰어왔다.
“나리, 유 재상과 사람들이 모두 조정에 나갔습니다.”
“그래.”
주운환은 차갑게 대답하고 말에 올라 황궁으로 달려갔다.
대전에 들어가자 그곳 역시 몹시 혼란스러웠다.
사라진 아이들 모두 조정 대신들의 자식들이었기 때문에 여 상서를 필두로 모두 금위군 부통령인 수풍을 향해 소리치고 있었다.
“하룻밤이 지났는데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는 말이오?”
“물살이 너무 세서 수색에 속도가 나지 않습니다만, 최선을 다해서 건지고 있습니다.”
“건진다니…….”
수풍의 대답에 여 상서의 눈이 붉어졌다. 더 기다리다가는 아이들이 익사할 것이었다.
“진정하세요, 상서. 아이들은 강에 빠진 게 아니라 인신매매꾼들이 다시 나타난 겁니다.”
정 부윤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그를 진정시켰다.
“인신매매꾼? 얼마 전에 일당을 잡지 않았소. 얼마나 됐다고 또 일을 벌인다는 말입니까, 그럴 리 없소.”
유 재상이 차갑게 반박했으나 노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재상, 본왕 생각에도 이건 확실히 인신매매꾼의 수법 같소. 작년과 올해 정월 사라진 아이들 모두 더도 덜도 말고 딱 네댓 살 정도의 아이들이었소. 그리고 상서의 증손자도 그 정도 나이가 아니오. 내 기억에 대여섯 살 정도 됐던 것 같은데?”
“네, 다섯 살입니다.”
굳은 얼굴의 여 상서가 대답했다.
“우리 아이도 다섯 살입니다. 구월이면 여섯 살이 됩니다.”
영국후가 이리 말을 잇자 여 상서를 비롯해 아이를 잃은 다른 대신들이 깜짝 놀라며 각자 아이들의 생일을 말했다.
“제 증손자도 구월에 태어났습니다. 구월 초열흘이요.”
“맞습니다, 구월 초열흘이요!”
“다들 생일이 구월이라고?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노왕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곤혹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정 부윤을 향해 말했다.
“정월에 사라진 아이들을 다시 조사해 봐야겠소. 언제 태어난 아이들인지 알아봅시다.”
당시 인신매매꾼을 찾을 때 보고받은 명단에는 아이들이 몇 살인지 적혀 있지 않았다. 누구도 아이들 나이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범인들을 잡으면 아이들도 살릴 수 있을 줄만 알았다. 그런데 지금 보니 그 나이에 어떤 깊은 뜻이 있는 것 같았다.
“이 사건은 제가 수사하겠습니다.”
냉랭한 목소리가 울렸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주운환이 냉기를 뿜어내며 들어오고 있었다.
여지와 영국후를 비롯한 사람들은 주운환이 들어오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정 부윤의 능력은 다들 잘 알고 있었다. 그에게 맡겼다가는 저번처럼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질 터였다.
“이 일은 진서왕이 알아보는 것이 제일 합당합니다.”
흥분한 여지가 이리 말하기 무섭게, 차가운 목소리가 반대했다.
“기다리십시오.”
모두 그쪽을 돌아보니 흰 수염이 난 노인이 어두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병부상서 오봉이었다.
“이래서야 되겠습니까? 자기가 사건을 수사하겠다면 끝인 겁니까? 여기가 시장 바닥이라도 됩니까? 아니면 우리가 저속한 무리입니까? 폐하가 밖에 나가 계시지만 그래도 궁에는 지엄한 법도가 있습니다! 이 황궁에서는 누가 뭔가 하고 싶어 한다고 바로 그 사람을 내보내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진서왕?”
주운환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으나 오봉은 쉼 없이 말을 이었다.
“폐하가 떠나시기 전 이미 임무를 나누어 주셨습니다. 부윤의 말을 들으니 지난 인신매매 일과 같은 놈들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추포하지 못했던 윗선이 또 다른 인신매매꾼들을 통해 도성에서 사람을 잡아간 듯한데, 당시 폐하께서는 그 사건을 노왕 전하에게 맡기셨었습니다. 노왕 전하는 그걸 해결하셨고 폐하는 이후에 그 윗선을 계속 수사하라 명하셨습니다.
지금 다시 배후자가 다시 나타났으니 이건 단서입니다. 마땅히 노왕 전하가 계속 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일리가 있습니다.”
주변의 대신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난번 사건을 조사할 때 범인들은 잡았지만 아이들은 결국 모두 죽었습니다. 범인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백성들의 목숨도 중요합니다!”
관자놀이에 푸른 핏줄이 툭툭 튀어나온 여지가 사납게 쏘아붙이는데도 오봉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도리어 허허 웃으며 꼬투리를 잡았다.
“여 상서는 그토록 노왕 전하께 불만이 많고 폐하의 결정도 마음에 안 드셨던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 노왕 전하에게 잔당들의 수사를 맡긴다고 하실 때는 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던 겁니까? 폐하께서 궁을 비우신 차에 여 상서는 폐하의 뜻을 조금도 존중하지 않고 있군요.”
“이, 당신……!”
여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늘 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오봉인데 이제 꼬투리까지 잡았으니 놓칠 리가 없었다.
“됐습니다. 그만들 다투십시오.”
공부상서 종병이 말렸다.
“다들 제 가족이 실종되었으니 그러는 것 아니겠습니까. 여 상서도 단지 마음이 급해서 이러는 것이지 폐하의 뜻에 반하려는 것일 리 없습니다.”
주운환은 그들을 힐끗 보더니 주 선생과 유 재상을 향해 물었다.
“두 분의 생각은 어떠십니까?”
주운환이 경위영의 통령이긴 하지만 이미 모든 일을 하배와 다른 부통령에게 넘긴 후였다. 이렇게 실권을 부하들에게 거의 넘겼지만 원래 계획된 일이었기에 자신도 괘념치 않았었다. 다음 달이면 응성으로 떠날 것이니 경위영의 통령 직위도 곧 내려놓을 것이었다.
더구나 경위영의 소임은 황성을 지키고 황제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다. 자신이 많은 병사를 데려가려 한다면 제대로 된 절차로 진행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반역이니까!
반면, 오봉의 말대로 노왕은 사건을 수사 중이었기에 수하에 3천 명이 있었다.
주 선생은 당연히 주운환이 수사하기를 바랐다. 노왕의 능력은 평범하니 주운환에게 맡기는 것이 제일 믿을 만했다! 하지만… 황제는 이미 주운환을 경계하고 있으니 그가 끼어들게 하지 않을 터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신이 주운환이 이 사건을 수사하도록 동의한다면 분수를 잊고 황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것과 다름없었다! 황제는 분명 진노할 것이다. 주 선생은 다른 무엇보다도 주운환과 황제의 갈등이 더 심해질까 봐 염려스러웠다.
“주 태부. 폐하가 떠나시기 전 만반의 준비를 다 해 두셨지만, 궁을 비우는 동안 모든 정무를 주 태부와 유 재상 두 분께 맡긴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인신매매 사건은 노왕 전하가 지금껏 책임지고 계셨지만, 배후에 있는 윗선은 계속 사건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심지어 궁 안에서까지 사람을 잡아갔으니 이건 보통 사건이 아닙니다.”
주운환이 주 선생을 바라보며 다시 말을 이었다.
“뭐라고요? 궁 안에서 사람을 잡아가?”
대전이 일순 혼란에 휩싸였고, 주운환이 차가운 목소리로 알렸다.
“이 인신매매꾼들이 궁에서 제 아들을 잡아갔습니다.”
“세자는 죽은 것 아닙니까? 인신매매꾼들이 궁에서 세자를 잡아갔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오봉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그 입 다무십시오!”
주운환이 고개를 홱 돌려 살기등등한 눈으로 오봉을 노려봤다.
“내 아들뿐만이 아니라 어제저녁 실종된 다섯 아이들도 모두 인신매매꾼들이 한 짓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모두 단서를 가지고 추측한 것입니다. 하나 납치당한 것이 아니라면 다행이지만, 정말이라면 어떻게 합니까?
벌건 대낮에 황궁에서 아이를 잡아갔습니다. 이번에는 제 아들이지만 다음에는 누굴까요? 폐하의 안위는 누가 책임집니까? 오 상서가 책임지겠습니까?”
오봉은 주운환의 말에 놀라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이 사건이 평범한 인신매매 사건이 아닌 것은 분명합니다! 황궁에서 사람을 납치했습니다! 한 번으로 끝난단 보장은 아무도 못 합니다.
두어 달 전에 참수를 했는데 또 한 무리가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더욱이 이번에는 조정 중신들의 아이들입니다. 그런데도 다시 생각해 보고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말씀입니까?”
주운환이 조목조목 짚자 모두들 입을 다문 채 벌벌 떨며 그만 쳐다보았다. 주운환은 다시 유 재상과 주 선생을 바라보았다.
“황제께서 노왕 전하께만 이 사건을 맡긴 것은 인신매매꾼들이 그 흉악한 본새를 아직 드러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상황이 변했고 황제 폐하의 안위도 달려 있습니다. 폐하가 궁을 비우시면서 여러분께 대신 정무를 처리하라 맡기셨으니 두 분은 믿을 수 있습니다.
두 분께서는 번거로움을 걱정해서 일을 그르치지 마시고 맡은 바 책임을 다하십시오! 마땅히 상황에 맞춰 대책을 다시 세우고 사건을 처리해야 할 것입니다.”
유 재상, 주 선생, 그리고 여 상서를 비롯한 여러 다른 대신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주운환의 설득이 정말 그럴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