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805화 (805/858)

제805화

이렇듯 서로 다른 마음을 품은 친인척들이 진서왕부로 잔뜩 몰려갔지만, 모두 문 앞에서 가로막혀 아무도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혜연이 직접 나와 사람들을 돌려보냈다.

“저희 마님은 시름에 잠겨 계십니다. 모두의 마음은 이미 알고 계시고 감사해하십니다. 하나 모두들 들어와 울면서 심란하게 하시면 무슨 위로를 하시든 마님의 상심만 더 커질 것입니다. 모두들 집으로 돌아가 계시는 것이 저희 마님을 돕는 겁니다.

마님은 정말 미치지 않으셨으니 안심하십시오! 죽은 아기는 세자가 아니세요. 세자는 어제 엉덩이에 습진이 생겼는데, 제가 오늘 아침에 옷을 갈아입힐 때까지만 해도 그 습진이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죽은 아기의 얼굴은 못 알아볼 정도로 엉망이었지만 엉덩이는 멀쩡했는데 습진은 전혀 없었습니다.

의정도 습진은 죽었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는다 했습니다. 그러니 소문은 믿지 마십시오. 정말 세자가 아닙니다. 저희 나리께서 반드시 세자를 찾으실 겁니다! 만일 여러분께서 도우려 하신다면 집에 돌아가셔서 사람을 풀어 함께 세자의 행방을 찾아 주십시오!”

“그래, 그래!”

온씨가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바로 돌아가서 사람을 풀어 찾아보마.”

손씨와 엽이채는 비참한 꼴의 엽연채를 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워 무어라 입을 열려는데 묘씨가 한발 먼저 그녀들을 노려보았다.

“사람 말 못 알아들어? 모두 돌아가라잖느냐!”

손씨와 일행들은 굳은 얼굴로 못마땅해하며 돌아갔다.

혜연은 모두가 떠나고 나서야 집으로 들어갔다.

엽연채는 날이 어두워질 때까지 창가에서 주운환을 기다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혜연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너무나 죄스러워 죽음으로 용서를 구하고 싶었지만 이런 때에 그녀마저 상황을 혼란스럽게 만들 수는 없었다. 아기를 찾고 난 후에 용서를 구하는 게 옳을 것이다.

갑자기 발소리가 들리더니 소월이 주렴을 걷고 들어와 엽연채 앞에 섰다.

“마님… 나리의 편지가 도착했는데 오늘은 들어오실 수 없다고 하십니다.”

엽연채는 눈물을 참기 위해 입술을 꼭 깨물고는 다만 고개만 끄덕였다.

이때, 청유가 차를 들고 들어와 식사를 권유했다.

“마님, 차라도 좀 드시고 밥이라도 한술 뜨십시오! 이럴 때일수록 굳건히 버티셔야 합니다.”

엽연채는 코끝이 시큰해져 잔을 들고 한 모금 마시더니 쟁반에 올려놨다. 엽연채의 눈길이 다시 소월에게 닿았다.

“밖에 나간 사람들에게서 소식이 있니?”

집안의 호위 무사, 시종, 어멈들 등 나갈 수 있는 사람들은 모두 밖으로 내보낸 참이었다. 그러나 소월은 난처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아직 없습니다. 엄청난 현상금도 걸었는데. 그런데 정말 이상한 것은 사람들이 모두…….”

“모두 뭐라더냐?”

엽연채가 차가운 목소리로 채근했다.

“궁의 우물 안에 있던 것이 세자라고, 진작……. 뭘 찾느냐면서 왕비가 미쳤다고…….”

엽연채는 소리 없이 냉소했다. 이 판을 짠 사람은 아직도 그런 거짓말을 꾸며 대고 있는 건가? 배후를 떠올리자 엽연채의 마음속에 안개가 일었다.

“어서 사람을 풀어 누가 이런 헛소문을 퍼뜨렸는지 알아보거라!”

소월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소월이 막 뜰로 나오자 시녀 하나가 뛰어 들어와 말을 건넸다.

“소월 언니, 돌잡이를 할 붓은 호필胡筆로 할까요 남아필南雅筆로 할까요? 그리고 오후에 양왕비 묘에 갈 때는 어떤 꽃을 준비할까요? 세자의 생일과 양왕비의 기일이 같은 날이라 바빠서 쓰러질 지경이에요, 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소월은 그 아이의 뺨을 때리며 소리쳤다.

“이 모자란 것아! 지금 상황을 보고도 그런 말이 나오니! 그렇게 할 일이 없으면 너도 밖에 나가 세자를 찾아봐!”

맞은 아이는 얼굴을 감싸 쥐고 울며 뛰어나갔다.

바깥에서 난 목소리는 작았지만 엽연채는 모두 들었다. 마음이 더더욱 무겁고 괴로워지면서 끝내 눈물을 억누르고 있던 빗장이 풀려 버렸다.

‘우리 요의 돌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어떻게…….’

혜연과 청유는 차마 다가가 위로를 할 수도 없었다. 이럴 때에는 무슨 말을 하든 듣는 사람은 마음만 더 아파질 뿐이었다. 두 사람은 그저 조용히 반청에 음식을 차렸다.

한데 뜻밖에도 엽연채가 그들이 부르러 가기도 전에 반청으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털썩 자리에 앉아 우걱우걱 음식을 입에 쑤셔 넣었다.

목에 뭔가 턱 걸린 것처럼 삼키기 어려웠지만 억지로 먹었다.

‘이런 때 쓰러져서는 안 된다. 체력이 있어야 사람도 찾을 수 있어!’

엽연채는 음식을 먹고 방으로 돌아가 매 시진 자신에게 상황을 보고하라고 분부했다.

해시亥時(저녁 9시~11시), 소월이 황급히 들어왔다.

“마님, 관아에서 저희더러 더 돌아다니지 말라고 합니다!”

“부군이 관아에 말을 해 놓은 것 아니었어?”

엽연채의 가슴이 쿵쾅대기 시작했다.

“경위영과 금위군은 계속 찾으러 다닌답니다. 다만 저희 왕부와 엽씨 가문, 자당 쪽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리고 도성에 또 소란이 일어났어요. 아이들 몇이 사라졌다는데 여 상서와 영국후부… 아무튼지 세도가의 아이들이 여럿 사라졌습니다. 원한을 품은 누군가에게 보복을 당한 것인지 아니면 인신매매꾼이 다시 나타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소월의 말을 들은 혜연과 청유의 얼굴에 근심이 가득 내려앉았다. 일순, 청유가 이를 악물더니 분노를 토해 냈다.

“아이들이 또 사라졌다고? 인신매매꾼은 다 잡아들이지 않았어? 도성에서 또 사건이 일어났다고?”

청유는 화가 나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 죽일 놈의 인신매매꾼들이 우리와 무슨 원수가 졌나? 전에는 마님을 잡아가더니 도대체… 또 이런 일을! 정말 우리랑 무슨 원한이 있나?”

“청유야.”

혜연이 청유를 저지하고 엽연채를 돌아봤다.

“나리께서 아직 밖에서 찾고 계시니 마님은 나리를 믿으셔야 해요.”

엽연채의 온몸에 전율이 일었고 두 눈이 커졌다.

“그래, 인신매매꾼… 인신매매꾼… 그래, 그 사람……!”

그녀는 말을 하다가 전신에 오한이 느껴져 두 손으로 자신의 어깨를 꼭 감쌌다. 겁에 질린 얼굴로 온몸을 떨고 있는 그녀를 보고 혜연을 비롯한 시녀들이 놀라 물었다.

“마님… 왜 그러세요?”

엽연채가 고개를 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분부했다.

“가… 가서 부군을 모셔 와라! 어서!”

“하지만…….”

소월이 머뭇거렸다.

“어서 가!”

청유가 말을 가로채며 소월을 문 쪽으로 밀어냈다.

“내가 같이 갈게. 어서 가자.”

두 사람이 문을 나서자 혜연이 다가가 엽연채를 부축했다.

“마님…….”

엽연채는 멍한 눈을 하고 있다가 갈라진 소리를 냈다.

“혜연아, 내려가서 뭐 좀 먹으렴.”

혜연은 입술을 움직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네.”

혜연이 떠나자 방 안은 적막에 휩싸였지만 엽연채의 마음은 가라앉지 않았다.

얼마나 기다렸을까, 밖에서 풀벌레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밤은 깊어만 갔다.

불현듯 밖에서 긴박한 발소리가 들려왔다. 엽연채는 주운환이 온 것을 알아채고 자리를 떨쳤다.

곧 차가운 밤이슬을 잔뜩 맞은 주운환이 내실로 들어왔다. 쉼 없이 돌아다닌 탓에 얼굴은 피곤에 찌들었고 두 눈은 잔뜩 충혈되어 있었다.

엽연채가 일어서 그를 보더니 눈물을 왈칵 쏟았다.

“부인, 무슨 일입니까?”

주운환의 마음이 철렁했다. 그녀가 이런 긴박한 상황에 아무 이유 없이 자신을 불러들일 리가 없었다. 소월과 청유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고 그저 얼른 가 보시라고만 했다. 더구나 방에 들어오자마자 엽연채가 눈물을 쏟으니…….

‘설마, 주요가……!’

주운환이 다가가 그녀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손을 꼭 잡았다.

“부군…….”

엽연채는 고개를 들어 간절한 눈으로 주운환을 바라봤다.

“제가 지금부터 하는 말이 듣기 싫을 수도 있고, 오히려 저를 비난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이게 우리 아이가 살아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에요.”

주운환은 제 손 안의 그녀의 손이 더 차갑게 얼어붙으며 미세하게 떨리는 것을 느꼈다.

“말하십시오.”

“이 일은 황제가 벌인 일이에요.”

주운환의 수려한 얼굴이 서리가 내린 듯 차가워지고 동공이 일순 수축했다.

“우리 아이는 철통처럼 경계가 삼엄한 황궁에서 사라졌어요. 전에도 황제는 인신매매꾼 일을 꾸며 나를 곤경에 빠뜨린 적 있죠. 그리고 작년 칠월과 올해 초, 오늘 저녁에 사라진 아이들도 모두 황제의 짓이에요.”

주운환은 고개를 저으며 부정했다.

“그럴 리가요. 부인, 왜 그런 의심을 하는 겁니까?”

“오늘 소월이 누굴 혼내면서 사월 열하루 이야기를 했어요. 그날은 우리 아이의 생일일 뿐만 아니라 앵기의 기일이기도 해요. 한 사람의 생일이자 한 사람의 기일. 어찌 보면 불길한 날이라서 주술이 떠올랐어요.”

주술을 언급하면서 엽연채의 온몸이 더욱더 뻣뻣해졌다.

“황제는 작년 스님들과 도사들을 궁으로 불러들이더니 금린위를 내보냈지요. 모두 조앵기를 살리려던 것이었어요.

하나 흠천감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금린위에게서도 별다른 소식이 없었죠. 그런데도 황제는 조금씩 절망에서 벗어나 상관운에게 잘해 주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단지 시간이 약이라서 황제의 마음이 변한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이 모든 것이 눈가림이었어요! 황제는 이미 조앵기를 부활시킬 방법을 찾은 거예요! 칠월 중순에 아이들이 사라졌어요! 그리고 우리 아이도, 모두… 제물이에요!”

주운환의 온몸이 굳어 버렸다.

“너무 황당한 이야기 아닙니까. 어떻게 그런 일을…….”

“황제는 미쳤으니까요!”

주운환이 그래도 믿지 못하자 엽연채는 마음이 더욱 조급해지고 화가 치밀어 그를 힘껏 밀쳤다.

“황제는 도사들과 승려들을 불러들였을 때부터 이미 미쳐 있었어요! 아니, 조앵기가 죽은 그 순간부터 그는 미쳤어요! 벌써 제정신이 아니었다고요!”

주운환은 머릿속에서 번개가 치는 것 같았고 마음이 아파 손끝까지 시려 오는 듯했다.

“흐흑…….”

엽연채의 눈물이 솟구쳐 고개를 숙이고 연신 소매로 눈가를 닦았고 한 손으로는 제 가슴 앞섶을 붙들고 있었다.

“부군… 아기, 아기는 황제의 손에 있어요. 우리 아이를 구해 줘요……!”

엽연채의 목소리는 잔뜩 갈라졌고 우느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주운환은 고개 숙인 채 눈물을 훔쳐 내는 그 작고 힘없는 손을 보고는 그녀를 품에 안았다.

“안심해요. 꼭 구해 낼 겁니다. 아무 일도 생기지 않게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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