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03화
상관운의 표정이 변했다. 그녀의 말대로였다! 고원이 실제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을 돕기 싫어서 할 줄 모른다 잡아뗄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정녕 자신이 틀렸단 말인가?
그런데 고원의 입에서 나온 뒷말은 뜻밖의 내용이었다.
“하하, 좋습니다. 마마는 처음부터 우리 남강 사람이 주술을 부릴 줄 알고 밀법密法을 가지고 있다고 믿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폐하는요?”
상관운의 눈이 번쩍했다.
“그러니까 당신 말은?”
“폐하가 양왕비를 다시 부활시키겠다 하시니 부활시키면 될 것 아니겠습니까!”
고원이 살짝 웃으며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상관운의 코끝을 가리켰다.
“바로 마마를 양왕비로 바꾸는 겁니다!”
상관운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무슨 뜻이에요? 미쳤군요!”
그녀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고원은 그 표정을 보면서 도리어 깔깔 웃었다.
“황후 마마, 스스로의 표정이 어떤지 보셔야 할 텐데요. 절 못 믿으십니까?”
상관운은 가슴을 움켜쥐고 고원을 매섭게 노려봤다.
“알겠어요.”
“이제야 제 말뜻을 아셨네요.”
“하지만 폐하가 믿으실까요?”
고원이 또다시 깔깔댔다.
“사람이 깊은 절망에 빠졌을 때는 한 줌의 빛만 비춰 줘도 미친 듯이 쫓아오게 마련입니다. 이건 황후 마마도 마찬가지 아닙니까?”
정곡을 찔리자 상관운은 수치스럽고 분했다.
“왜 나를 도우려는 거죠?”
고원은 눈썹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저도 황후 마마의 도움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평생 측비로 지내고 싶진 않습니다! 네, 전하께서 저를 총애하고 우리 근이도 많이 아끼시는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뿐이죠.”
상관운은 이해했다. 고원은 공주라지만 남만의 공주. 더구나 대제는 이민족에게 친절한 곳은 아니었다. 다른 귀부인들이 그녀를 핍박하지는 않아도 그녀 곁에 서지도 않았다.
고원은 고작 측비인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게 분명했다. 위로는 노왕비, 아래로는 노왕세자 두 모자가 태산처럼 버티고 있으니. 분하지만 본인 세력이 없으니 총애만 가지고는 신분을 높일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만약 일이 성사된다면 고원을 노왕비 자리에 앉히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고원은 상관운 곁에 더욱 바짝 앉아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참 밀담密談을 나누고 고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때를 기다리십시오! 폐하께서 철저하게 실망하고 절망했을 때가 올 때까지. 그리고 그때, 폐하가 저를 떠올리게 해 주십시오.”
말을 마친 고원이 나갔다.
상관운은 고원의 말을 기억했다. 기다려라!
‘좋다, 이젠 기다릴 수 있다!’
그때 양왕도 기다리고 있었다!
흠천감에 머무르는 승려들과 도사들이 조앵기를 되살릴 방법을 생각해 내기를 기다리고 있었고, 금린위가 좋은 소식을 가져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것이라고 자신만만했다. 그래서 금린위를 출병시킨 후 양왕은 상태가 많이 괜찮아져서 매일 장계를 확인하고 바쁘게 정무를 보았다. 양왕비가 돌아오면 가장 멋진 모습으로 그녀를 맞이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루하루 기다릴수록 희망은 절망으로 변해 갔다.
유월 말, 양왕은 결국 병이 났다.
상관운은 기회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양왕이 병으로 침상에 앓아누워 있는 동안, 상관운의 명을 받은 환관 둘이 복도를 지나면서 이런 이야기를 흘리듯 주고받았다.
“이런 날씨에는 정원에 벌레가 너무 많아서 아무리 없애도 사라지질 않아.”
“하하하, 맞아! 노왕비가 주술을 부릴 줄 아니까 그건 정말 노왕부가 부럽다니까. 남강의 독충 주술을 들어 본 적 있어? 쯧쯧, 온 왕부에 모기 하나도 없다니까.”
“정말이야?”
“누가 알겠어, 하하. 가자고!”
두 환관이 지나가자 복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방 안 용상에 누워 있는 양왕의 마음은 진정이 되지 않았다!
‘주술! 남쪽 오랑캐들의 독충 주술! 그래, 그게 있었지! 그런 게 있었어! 왜 지금껏 생각하지 못했을까?’
흥분한 양왕이 벌떡 일어나 갈라지는 목소리로 외쳤다.
“기해! 기해!”
밖에서 졸고 있던 기해가 소스라치며 입가의 침을 닦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가 일어나려는 양왕을 부축하며 뭐든 대령하겠다고 하는데.
“깨셨습니까, 폐하. 물을 드릴까요, 아니면…….”
“남… 남만 공주를 불러라!”
“남만 공주?”
양왕은 헐떡이면서도 즉시 분부를 내렸고, 이 뜻밖의 지시에 기해는 멀뚱멀뚱 눈을 굴리다가 이마를 탁 쳤다.
“아아, 노왕 측비 말씀이십니까?”
“그래… 쿨럭, 어서 불러라!”
“알겠습니다.”
기해가 밖에 대고 소리쳤다.
“진구, 어서 노왕 측비를 불러라.”
밖에 있던 환관이 대답하고 밖으로 나갔다.
양왕은 몸이 쇠약해졌음에도 희망이 생기자 즉시 자리를 떨칠 수 있었다. 기해에게 약을 가져오라고 하고 음식을 챙겨 먹었다. 그리고 기해를 재촉해 몸을 씻고 어서방으로 갔다.
얼마 후, 고원이 천천히 들어와 인사했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양왕이 고개를 숙여 내려다보았다. 고원은 평범한 대제의 귀부인처럼 치장을 하고 있었다. 그녀는 대제에 시집온 후 늘 조용히 지내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그녀의 존재를 잊어버릴 만큼 아주 조용히.
“일어나라.”
양왕의 어두운 눈이 또렷해졌고, 그 차가운 눈빛이 고원의 얼굴에 멈췄다.
“소문에 너희 남강에 독충술이라는 주술이 있다고 들었다.”
양왕이 뚫어져라 고원을 응시했다. 고원의 몸이 떨리더니 미간을 찌푸렸다.
“독충술이요? 어찌 그런 것이 있겠습니까? 그저 떠도는 헛소문일 뿐입니다. 저희 남강 역시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오니 안심하십시오, 폐하.”
말투를 보니 신비한 독충술 때문에 대제가 남강을 경계할까 봐 그녀가 두려워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양왕은 눈을 내리깔았다.
“안심해라. 짐은 너희에게 무슨 짓을 하려는 것이 아니다. 너도 독충술을 할 줄 아느냐?”
“저는…….”
“사실을 말해라! 만약 거짓을 고하면 짐이 대군을 풀어 너희 남강을 짓밟아 버릴 것이다!”
고원이 털썩 무릎을 꿇었다.
“폐하… 어찌 감히 폐하를 속이겠습니까. 독충술이란 것은 존재하는 주술입니다. 하지만 독충을 쓰면 역살을 맞을 수 있습니다. 가벼운 경우에는 수명이 줄고 심하면 목숨을 잃을 수 있습니다. 이렇듯 주술사에게 큰 부담을 지우기 때문에 저희 남강에서도 진정으로 독충술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열 명이 채 안 됩니다.
그러니 부디 안심하십시오, 폐하. 저희는 이 주술을 이용해 대제에 해가 되는 일은 꾸미지 않을 것입니다.”
“정말 있다는 말이냐?”
흥분한 양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도 할 수 있냐?”
고원은 난처한 표정이었다.
“남강의 공주이다 보니 어려서부터 사부에게 독충술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됐다, 됐어!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느냐?”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요?”
고원이 눈썹을 찡그리며 다시 물었다.
“죽은 지 얼마나 됐습니까?”
양왕은 손을 꽉 쥐었다.
“두 달이다.”
고원은 고개를 저었다.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만약 7일 이내라면 혼령 독충을 사용해서 살려 낼 수 있었는데 말입니다. 지금은 시체마저 썩어서 백골이 되었을 것이니 부활은 불가능합니다!”
양왕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해 의자에 도로 주저앉았다.
“하나.”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고원의 두 눈이 반짝였다.
“저에게 한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무슨 방법이냐?”
“시체를 이용해서 혼령을 부활시키는 것입니다!”
양왕의 두 눈이 번쩍였다.
“시체를 이용해서 혼령을 부활시킨다고? 그래, 그러면 되겠구나! 짐도 지괴志怪(중국 위魏·진晉·육조六朝 시대의 기괴한 일들을 적어 놓은 소설) 소설에서 본 적 있다! 정말 그런 방법이 있었던 거야! 그렇지 않으면 어찌 그런 것을 쓸 수 있겠어.”
“황제 폐하께서 부활시키고자 하시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앵기, 조앵기다!”
고원이 짐짓 놀란 척을 했다.
“아, 양왕비 말입니까?”
“그렇다!”
양왕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그렇다면 그분의 사주팔자를 알아야 하고 그 영혼이 아직 남아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일단 묘에 가서 살펴보겠습니다.”
양왕은 고원이 무슨 말을 하든 다 동의했고 와병 중임에도 불구하고 직접 조앵기의 묘로 그녀를 데려갔다.
그렇게 조앵기의 묘를 돌아보고 도성에 돌아오니 어느새 날이 저물어 있었다.
고원이 집에서 생각을 해 보겠다며 돌아간 후, 양왕은 밤새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튿날 아침, 고원이 다시 궁에 들어왔다.
“황제 폐하께 아뢰옵니다. 소인이 살펴보니 다른 몸을 이용해 왕비 마마의 혼을 다시 살려 낼 수 있겠습니다.”
“정말이냐!”
양왕이 벌떡 일어났다. 요즘 들었던 소식 중 가장 좋은 소식이었다!
“그저…….”
고원이 머뭇거리다 다시 입을 뗐다.
“다른 몸을 이용해 영혼을 부활시킬 때 필요한 ‘몸’은 죽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 반드시 산 사람이어야 합니다.”
양왕은 생각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된다! 지금, 당장, 살려 내라.”
고원이 미간을 찌푸렸다.
“폐하, 사람을 되살리는 일은 쉽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준비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 그래야 혼령을 불러들이는 환혼충이 제대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뭐가 필요한지 다 말하거라!”
남몰래 고원의 눈에 비웃음이 스쳤다.
“왕비 마마의 탄신일이 구월 초열흘이니 구월 초열흘에 태어난 다섯 살짜리 사내아이와 여자아이들이 각각 쉰 명씩 필요합니다. 주술을 거행하는 그날, 아이들의 목숨을 제물로 바칠 것입니다.”
“알았다.”
양왕이 차갑게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단계가 제일 중요합니다.”
고원은 강조하듯 눈썹을 치켜세우며 말을 덧댔다.
“왕비 마마가 세상을 떠날 때 태어난 아이의 목숨으로 마마의 혼을 끌어내야 합니다! 하니 왕비 마마께 행운이 따른다 할 수 있습니다. 이미 그런 아이를 만났으니 말이지요! 바로 진서왕의 세자, 주요입니다!”
양왕은 크게 놀라며 처음으로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무슨 소리냐? 자소를 얘기하는 것이냐? 그 아인 안 된다!”
고원이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럼 못 하는 거지요.”
그림 같은 양왕의 얼굴이 얼음처럼 변했다.
“왜 꼭 자소여야 하는 거냐?”
“왕비 마마가 죽던 그 순간 진통이 시작된 아이입니다! 아닙니까? 그 아이가 없으면 왕비 마마는 부활할 수 없습니다. 방법은 이것뿐입니다. 원치 않으신다면 그만두십시오.”
양왕이 잠시 침묵하다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이 일로 네 원한을 풀고 싶은 거냐?”
예전에 주운환이 병사를 이끌고 남강을 공격해서 남강은 대제에 고개를 숙이고 굴복해 신하가 되었고 고원을 첩실로 내어 주며 굴욕적인 화친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