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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801화 (801/858)

제801화

주운환의 왼팔에 작은 옷가지가 걸쳐져 있는 걸 보고 엽연채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호랑이가 수놓아진 연청색 옷, 바로 주요가 입고 있던 옷이었다.

한데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왜 움직이질 않지? 엽연채의 머릿속이 텅 비었다. 왜 안 움직이지? 엽연채의 몸이 계속 떨렸고 우물 가장자리를 붙잡은 손이 창백해졌다.

주운환이 우물에서 완전히 빠져나오기 무섭게 엽연채는 그가 들고 있던 옷을 낚아챘다. 옷가지에서 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천과 그 아래의 몸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아가, 아가… 아니지? 이 어미를, 놀리지 말아…….”

엽연채의 눈에서 눈물이 멎지 않았다. 그녀는 허둥지둥 천을 젖혀 보더니 날카롭게 비명을 내질렀다.

“아악!”

주변에 있던 사람들 모두 덩달아 소리를 질렀다. 태황태후와 궁녀들은 소스라치게 비명을 지르며 뒤로 물러났고, 특히 태황태후는 하마터면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

“어떻게……!”

주운환이 급히 바닥에 쓰러진 붙잡아 일으켰다.

“부인…….”

엽연채는 정신을 잃고 그의 품에 쓰러졌다. 주운환이 고개를 숙여 보니 엽연채가 안고 있는 아기는 얼굴과 가슴이 모두 짓이겨져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요야…….”

주운환은 엽연채를 부축해서 바닥에 앉히고 떨리는 손으로 아기를 쓰다듬었다.

“어머나, 어쩜…….”

“어쩌면 저리 독할까!”

궁녀들은 무섭고 놀라서 쳐다보지도 못했다.

아이가 울고불고 난리를 피울까 걱정은 되고 칼은 준비하지 못했으니 급한 대로 주변에 있던 돌덩이를 들어 아기의 얼굴을 짓뭉갠 것이 분명했다. 멀쩡히 살아 있는 아기를 돌로 짓이겨 죽인 후에 우물에 버린 것이다.

“요야, 요! 철단아!”

주운환은 울먹이며 이름을 거듭 불렀지만 품속의 아기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주운환은 아기의 맥박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슬픔과 분노가 한꺼번에 밀려와 아기를 조심스럽게 바닥에 내려놓고는 수풍 허리춤의 검을 뽑아 들고 성큼성큼 영지에게 다가갔다.

“마님! 마님!”

한편, 혜연은 엽연채를 부축하면서 계속해서 그녀의 인중을 힘주어 눌렀다.

“셋째 마니임… 흑, 제발 정신 차리세요…….”

엽연채는 강한 통증에 순간 정신이 들었다. 유모가 아기 옆에 무릎을 꿇고 애간장이 끊어질 듯 울고 있었다.

“세자 전하… 엉엉, 어떻게 이럴 수가! 내가 죽어야지! 내가 죽어야 해!”

유모는 울부짖으면서 자신의 뺨을 마구 때렸다.

엽연채는 온 세상의 색깔이 사라지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그녀는 겨우 몸을 가누어 다시 아기에게 다가갔다.

“그럴 리가 없어! 우리 아기가 죽을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이 애는 절대 우리 요가 아니야… 절대로!”

“마님…….”

혜연은 입을 막고 흐느꼈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죽을 듯이 자책하고 있었다. 만약 자신이 옷을 갈아입으러 가지 않고 계속 유모의 곁을 지켰다면 아기를 잃어버리지 않았을 것이고, 그러면…….

혜연은 우물에 빠져 죽음으로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런데 엽연채가 정신을 놓아 버린 것 같은 상황을 보니 차마 자리를 비울 수가 없었다.

“이 아이는 내 아기가 아니야… 절대로 아니야! 우리 아가가 나를 떠날 리 없어……!”

엽연채는 울면서 아기의 옷을 벗겼다.

하지만 아기는 그야말로 고깃덩어리나 다름없었다. 다리만 성하고 그 위는 내장까지 다 흘러나와 주변에 있던 궁녀들은 차마 똑바로 보지도 못했다.

“아니야…….”

참혹한 모습을 보자 엽연채의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아무리 부정해도 목에 걸려 있는 호신부는 눈에 익은 것이었다. 그건 바로 작년에 자신이 직접 구해다가 아기에게 준 부적이었다.

엽연채는 아기의 작은 손목을 잡았다. 그녀가 정성껏 먹이고 돌봐 토실토실 살이 오른 바로 그 손목이었다. 죽은 아이에게서 주요의 모습을 발견할 때마다 엽연채는 점점 무너져 내렸다.

“마님… 보지 마세요…….”

혜연이 울먹였다. 아이의 시신을 볼수록 그녀의 마음도 고통스러웠다. 저건 세자가 분명하다. 혜연도 알아봤다. 똑같은 체형에 손과 배꼽 생김새도 똑같았다…….

엽연채의 머리가 위잉 울렸지만 믿고 싶지 않았다. 아기의 바지까지 마저 벗겨 앞을 보고 다시 뒤를 확인했다.

“아, 진서왕비…….”

태황태후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좀 진정하게! 내가… 내가 잘못 가르쳤어!”

자책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아니에요! 하하, 아니야! 아니에요!”

엽연채는 울먹이다 갑자기 웃기 시작했다. 목소리에 기쁨과 흥분이 묻어 있었다.

태황태후와 사람들은 당연히 엽연채가 미쳐 버린 줄 알고 당혹스러워했다.

“마님, 왜, 이러지 마세요…….”

혜연은 더욱 가슴이 미어져 울면서 엽연채를 잡아당겼다.

그러나 엽연채는 혜연을 밀치고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비틀거리며 주운환을 향해 뛰어갔다.

주운환의 얼굴은 잔뜩 일그러져 있었고, 영지의 몸은 벌써 모습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난도질되어 있었다.

엽연채는 주운환을 붙잡고 울다 웃다 하며 말했다.

“부군, 아기는 아직 살아 있어요. 저건 우리 아기가 아니에요! 아니란 말이에요!”

“부인…….”

주운환은 멍하니 엽연채를 바라봤다. 정신을 놓은 듯한 엽연채를 보고는 그녀를 꼭 끌어안고 흐느꼈다.

“부인, 내가 부인과 우리 아기를 지키지 못했습니다.”

“아니에요, 정말이라니까요! 난 미치지 않았어요!”

엽연채는 그를 밀어내고는 손을 잡고 우물 쪽으로 끌고 가다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주운환이 보자 아기의 웃옷과 바지가 모두 벗겨진 채 엎드려 있었다. 상체는 모습을 확인할 수 없었지만 하체는 여전히 희고 부드러웠다. 주운환은 가슴이 칼에 베이는 것 같아 부들부들 떨었고 눈물을 쏟아 냈다.

“부군, 아니에요! 우리 아기가 아니에요!”

엽연채는 주운환의 손을 잡고 아기의 엉덩이에 가져다 댔다.

“어젯밤 우리 요에게 붉은 점이 생겼었어요… 바로 어제 붉은 점이 생겼다고요. 그런데 이 아기는 없어요, 없다니까요!”

혜연이 깜짝 놀라 보니 정말로 아기의 엉덩이는 점 하나 없이 매끈했다. 혜연이 흥분한 목소리로 동조했다.

“맞아요, 세자 전하의 엉덩이에 습진이 생겼었어요!”

주운환은 두 눈을 부릅뜨고 기억을 떠올려 보았다. 그랬다! 어제 자기 전에 엽연채가 날씨가 더워지다 보니 기저귀 때문에 아기 엉덩이에 습진이 좀 생겼다고 투덜거렸었다.

“맞아요, 어제 세자 전하에게 습진이 났습니다!”

유모도 헐레벌떡 기어와 맞장구를 쳤다. 어제 습진이 갑자기 생겼었다. 그래서 아이를 잘 돌보지 않았다고 엽연채가 뭐라고 할까 걱정했는데, 그녀는 흔히 있는 일이니 다만 신경을 좀 더 쓰라고 몇 마디만 하고 넘어갔다!

“혜연, 가서 나 의정을 불러와라! 어서!”

흥분한 주운환이 소리쳤다. 목숨을 잃으면서 어제 생긴 습진이 사라질 수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니 의정을 불러서 확인해야 비로소 마음을 놓을 수 있을 터였다.

“아니에요! 부군, 아니에요! 우리 아기가 아니라고요!”

엽연채는 울면서 주운환에게 안겼다. 주운환은 이를 악물고 수풍을 보았다.

“수풍, 계속 찾아 주게. 반드시 찾아야 하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수풍은 곁에 있던 금위군에게 명했다.

“계속 수색하되, 궁문을 잘 지켜라. 누구도 나가거나 들여보내서는 안 된다!”

그때 저 멀리 나 의정이 약상자를 지고 다가오자 엽연채가 달려갔다.

“의정, 생전에 아기에게 습진이 생겼는데 죽고 나서… 사라질 수 있나요? 그럴 수 있어요?”

“요절한 지 얼마나 됐는지 봐야 합니다.”

“금방이에요! 바로 조금 전에! 한 시진도 안 됐어요.”

엽연채가 다급히 대답했다.

“그럼 아닙니다. 한 시진 사이에는 변화가 생기지 않습니다.”

나 의정도 서둘러 아기 곁에 와서 섰고, 엽연채가 급히 아기의 엉덩이를 가리켰다.

“어젯밤 우리 아기에게 습진이 생겼어요. 그런데 이 아이는 없어요! 없다구요!”

나 의정이 아기의 몸을 자세히 살폈다.

“이 아이에게는 습진이 생겼던 적이 없습니다.”

“흐윽… 천지신명이시여, 감사합니다! 우리 아기가 아직 살아 있어요! 분명 아직 살아 있어요!”

요동치던 엽연채의 마음이 조금 가라앉고 그녀는 이번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주운환도 나 의정의 설명을 듣고 크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엽연채가 벌떡 일어서더니 태황태후를 보며 물었다.

“그럼 도대체 누가 아기를 데리고 간 거죠? 영지는 어떻게 된 거고요?”

태황태후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왜 나를 보는 것이냐? 나도 무슨 일인지 모른다.”

“전하, 왕비 마마.”

장 마마가 태황태후를 부축했다.

“태황태후 마마 탓이 아닙니다. 영지라는 아이는… 죽기 전에 한 말을 미루어 보면 폐태자를 생각해서, 오직 폐태자의 복수를 하기 위해 목숨을 건 도박을 하고 진서왕 전하의 세자를 해한 것 같습니다…….”

“아기는 죽지 않았어요! 살아 있어요!”

엽연채는 두 눈을 부릅뜨고 반박했다.

“영지가 말한 대로 목숨을 걸고 아기를 해치려고 했다면, 왜 다른 사람에게 넘겨서 시체를 숨긴다는 말입니까! 바꿔치기할 가짜까지 구하고요!”

엽연채는 흥분해서 숨이 찼지만 말을 멈추지 않았다.

“이 가짜는 굉장히 닮았습니다. 체중은 물론이고 팔, 배꼽까지 닮았어요. 굳이 돌로 얼굴과 몸까지 짓이긴 걸 보면 굉장히 악독한 복수처럼 보이지만, 아뇨, 실은 증거를 없앤 겁니다.

게다가 죽기 전에 남긴 말로 저 아기를 우리 아기로 오해하게 했지요! 우리 아기가 죽었다고 오해하게 만들었으니, 분명 불순한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 아니라 전부터 준비한 겁니다! 어쩌면… 우리 아기는 벌써 궁을 빠져나갔을 겁니다!”

엽연채는 두 눈을 홉뜬 채 뒤로 돌았다.

“부군! 부군……!”

주변을 돌아봤지만 주운환은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여양이 다가와 바로 설명했다.

“나리는 마님과 같은 생각을 하셨습니다! 사람도 너무 많고 촌각을 다투는 일이라 긴 설명 하지 않으시고 황급히 떠나셨습니다! 나리를 탓하지 마십시오, 마님.”

엽연채는 창백한 얼굴을 끄덕였다.

“아니다! 잘하셨다! 지금 내 머리가 너무 복잡해서 나에게 설명하려면 나는 질문만 많아질 거야! 아기가 급하다! 난 그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을 뿐이야.”

몹시 흥분해 횡설수설하던 엽연채는 다시 태황태후를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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