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796화 (796/858)

제796화

이튿날 아침, 진서왕부. 청유가 소식을 듣고 엽연채에게 알렸다.

“이런 때에 무슨 국상이니 상복을 걸고넘어지나요.”

엽연채는 비웃으며 대수롭잖게 대꾸했다.

“내년 사월까지 기다리지 뭐. 나와 부군은 오월 중순에 출발하니 한 달이면 충분하지 않겠어? 혼사를 정하고도 백 이낭이 지켜 내지 못하면, 그건 그쪽에서 해결해야 하는 거지.”

이쪽이 두 모녀의 어머니도 아닌데 늘 그들 곁에서 보살펴 줄 이유가 하등 없었다. 누군가 힘을 빌려줬어도 잘 살고 싶으면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나리, 오셨군요.”

밖에서 소월의 목소리가 들렸다.

엽연채가 돌아보자 주렴 너머로 눈을 잔뜩 맞은 주운환이 보였다. 그는 바깥방에 멈춰서 검은 담비 외투를 벗고 주렴을 걷고 들어왔다.

엽연채의 품에 안긴 아기는 주운환의 목소리를 듣고 벌써부터 신이 난 모양이었다. 고개를 세운 아기는 주운환을 바라보며 무어라 옹알이를 해 댔다.

“철단이, 아버지가 보고 싶었구나?”

주운환이 주요를 안고 높이 들어 올렸다가 품에 안고 입을 맞췄다.

“인신매매꾼 일은 어떻게 됐어요?”

주운환은 주요를 안은 채 엽연채 곁에 앉으며 대답했다.

“금위군 말이 이미 최선을 다해서 찾고 있지만 몇 가지 실마리가 모두 끊어졌답니다.”

말끝에 주운환은 낮게 신음했다. 무능한 인간들!

“하지만 부군, 칠월에 발생한 사건이잖아요. 벌써 몇 달이나 수색했는데, 진척이 없으면 언관이 탄핵해야 하지 않나요?”

엽연채도 화가 났다.

“부윤은 그렇다고 해도 국구 상관수가 직접 사람들을 이끌고 수색하고 있으니 어느 언관이 감히 탄핵하겠어요.”

주운환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의 이 말을 듣고 엽연채는 얼굴을 잔뜩 찡그렸다. 상관운이 벌써 그 정도로 총애를 받고 있다는 걸까? 상관운이 총애를 받아 조정이 안정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공과 사가 구분되지 않는 지경에 이르러서는 안 될 터였다.

“이제 새해가 될 때까지 관인을 봉인하니 두 사람을 탄핵한다고 해도 내년이 되어야 할 수 있네요.”

한편, 내일이 섣달그믐이라 집집에선 춘련을 붙이고 새해를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다.

주운환 내외는 저녁에 정국백부로 향해 다 같이 식사를 들었다. 진씨는 어둡고 냉랭한 모습이었지만 별말은 없었다.

식사 후, 엽연채는 아기를 안고 매씨를 보러 갔다. 매씨는 눈처럼 뽀얀 주요를 보자 얼굴에 웃음꽃이 만개하더니 두둑이 세뱃돈을 주며 증손자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정월 초하루, 두 사람은 점심을 먹고 진서왕부로 돌아갔다.

정월 초이튿날, 엽연채와 주운환은 엽씨 가문으로 갔다.

엽학문은 지난번 엽연채에게 관직을 달라고 했으나 보기 좋게 거절당한 일로 창피해하고 있었다. 그에 반해 묘씨와 나씨 등은 엽연채와 주운환이 들어와 새해 인사를 건네자 ‘아이구’ 탄성까지 내며 둘을 에워싸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녕당.

손씨와 엽승신은 가장자리에 앉아 바득바득 이를 갈고 있었다. 그때, 밖에서 여종이 소리쳤다.

“장 부인께서 오셨습니다.”

엽이채였다. 그녀가 아기를 데리고 유모와 함께 들어왔지만, 나씨와 엽씨 집안의 출가한 두 고모는 엽연채 곁에 붙어 이야기하느라 문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손씨와 엽승신은 역정이 나서 넘어갈 것 같았다. 엽연채가 올 때는 모두 한걸음에 달려가 반가이 맞이하더니 엽이채가 오니 아는 척도 하지 않았다.

엽이채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누르고 아기와 함께 엽학문에게 인사를 올렸다.

하나 엽학문도 엽이채를 흘깃 쳐다보며 한마디만 할 뿐이었다.

“저기 가서 앉아라!”

엽학문도 엽이채가 정말 미웠다. 그녀에게 그렇게 많은 기대를 걸었는데 결국…….

엽이채는 엽연채와 주운환을 보고 있는 게 너무 힘들어 잠시 앉아 있다가 아기를 안고 손씨와 함께 손씨의 처소로 갔다.

엽연채는 두 고모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나씨와 함께 난각으로 가 주운환에게 들은 소식을 전했다.

나씨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네 부군이 수색을 한다면 이럴 일이 없었을 텐데……. 지금 부윤이든 전 금위군 통령이든… 인신매매꾼 하나 잡지 못하는구나.”

“죄송해요. 남쪽에 메뚜기 떼가 심각해서 폐하가 부군을 남쪽으로 보냈었어요.”

“아휴, 네 부군을 탓하는 게 아니야. …이 인신매매꾼들이 사람을 잡아서 어떻게 하는 것 같아?”

나씨는 눈물을 닦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엽연채는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 잡아간 것은 고작 나이가 대여섯 정도 된 아이들이니 운이 좋으면 양자로 팔려 가겠지만… 운이 나쁘면 험한 곳으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 엽연채는 나씨의 심경을 걱정해 나쁜 경우는 굳이 입에 담지 않았다.

“아이를 찾는 집에 팔아넘기겠지요! 하지만 아직 수색하고 있으니 인신매매꾼들이 소문을 듣고 일단은 숨어서 팔지 않고 있을지도 몰라요.”

나씨가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점심시간이 다 됐어.”

사람들은 점심을 먹고 흩어졌다.

주운환 부부도 문을 나와 대명가의 온씨 집으로 갔다. 엽균과 원남옥은 일찍 처가에 들러 이곳에 와 있었다.

새 식구인 원남옥도 있고 귀여운 주요도 있어 집안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엽연채와 주운환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 * *

정월 초사흘, 엽연채는 엽씨 가문 식구들과 엽영교를 보러 갔다. 그리고 초나흘, 진서왕부에서 연회가 열렸다. 음식도 차리고 공연도 준비하고, 친척들뿐만 아니라 많은 귀족이 참석하는 성대한 연회를 열었다.

이때부터 며칠 동안 대신들의 집에서도 연회가 이어졌고 모두들 진서왕부에 첩자를 보내 엽연채와 주운환도 이 연회들에 참석했다. 정월 대보름까지 정말 하루도 한가하게 쉬는 날이 없었다.

갓 정월 대보름이 지나 아직 관인의 봉인이 풀리기 전인데도, 관아 문 앞의 신문고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백성 한 무리가 관아 문 앞에 엎드려 울부짖고 있었다.

“작년 칠월의 인신매매 사건을 새해까지 끌고 왔는데 아직도 잡지 못했습니다!”

“어제 정월 대보름에 인신매매꾼이 또다시 나타났어요, 우리 집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우리 둘째도 사라졌어요.”

“어서 관아의 봉인을 풀어 주십시오! 지금 당장 쫓지 않으면 언제까지 기다리라는 말입니까!”

정 부윤은 백성들이 밖에서 소란을 피우자 얼굴색이 변해 황급히 궁에 보고를 하고 상관수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하지만 장계를 궁에 보낸 후 이튿날 아침이 될 때까지도 궁에선 아무런 기별이 없었다.

애가 타고 화가 난 백성들은 사납게 목청을 드높였다.

“당장 인신매매꾼을 잡지 않으면 도망가 버릴 겁니다!”

“부모 같은 관리가 웬 말이고, 국구가 무슨 말입니까! 일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데! 진서왕이 잡게 해 주십시오!”

“진서왕을 내보내십시오!”

백성들은 진서왕이 응성을 지켜 내고 대제의 강산을 되찾은 영웅임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이후, 비적이 백성들을 위협할 때 나라에서 몇 년을 쫓았지만 그들을 섬멸하지 못했었고 당시 경위영 통령도 그들을 잡지 못했는데, 결국 진서왕이 그 비적들을 일망타진했던 일도.

어디 그뿐인가. 작년 남쪽 지방에 메뚜기 떼가 나타났을 때도 역시 진서왕이 해결했다! 한마디로 진서왕은 그들의 수호신이었다!

작년 칠월만 해도 사라진 아이들이 서른 명이 넘었다. 그에 부윤이 수색에 나섰으나 아무런 성과가 없으니 백성들은 황제가 진서왕을 내보낼 줄 알았는데 국구 상관수에게 맡겼다.

그러나 이때만 해도 백성들도 별 불만이 없었다. 큰일이나 작은 일이나 모두 진서왕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을 알고 있었고, 국구 상관수도 금위군 통령을 오래 지냈던 사람이니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반년을 쫓아도 아무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인신매매꾼이 또다시 나타났다! 정월 대보름 등불 축제에서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어제 신문고의 북소리가 온 관아를 뒤흔든 후, 오늘 아침까지도 부윤이든 국구 상관수이든 아무런 소식도 없었다. 백성들은 정말이지 더 이상은 기다릴 수 없었다. 이번에도 빨리 대처하지 않으면 인신매매꾼들은 지난여름처럼 또 도망갈 것이다.

자식을 잃은 백성들은 아예 진서왕부 문 앞으로 몰려가 울며불며 사정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엽연채는 황급히 주운환을 찾아 방으로 들어갔다. 벌써 관복으로 갈아입은 주운환이 엽연채를 보곤 다가와 그녀를 품에 안았다.

“부인도 들었군요. 전 지금 궁으로 들어갈 겁니다. 부인은 걱정 말고 집에서 아기랑 놀고 있어요.”

“네.”

주운환이 지나쳐 나간 후에 엽연채는 나직이 한숨을 쉬었다. 지금 나타난 인신매매꾼이 지난번과 같은 놈들인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이번에는 절대 놓쳐서 안 될 것이었다.

주운환이 문을 나서자 그 앞에서 울고 있던 백성들이 그를 향해 무릎을 꿇었다.

“전하, 우리 아이들을 구해 주세요……!”

주운환은 그들을 보니 몹시 괴로웠다. 자녀를 잃은 고통이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주운환은 아무 말 없이 그들을 슥 돌아보고는 가마에 올라타 황급히 궁으로 향했다.

황궁. 주운환이 어서방 입구에 도착하자 입구에 서 있던 여지와 유 재상이 한소리로 인사를 해 왔다.

“전하도 오셨군요.”

“예.”

주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서방에서 들어오란 말이 없는 것을 보니 황제는 아직 도착하지 않은 것 같았다.

이미 도착한 이들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고 곧 대신들이 속속 도착했다.

주 선생, 각부의 상서, 정 부윤과 상관수가 뒤늦게 도착했다. 정 부윤과 상관수가 오자 사람들이 일제히 그들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몹시 부끄러운 듯 고개를 푹 숙였다.

대신들뿐 아니라 노왕과 용왕, 그리고 새해를 맞이하러 도성에 돌아와 있던 강왕까지 도착했다.

모여든 관리들 중 일부는 황제가 아직 관인의 봉인도 풀지 않았는데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생각했다.

하지만 주운환, 수보와 상서를 비롯한 중신들이 속속 입궁했다는 소식이 들려오니 가만있을 수도 없었다. 만약 이 자리에 빠졌다가는 백성을 아끼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도 몰랐다.

어서방 문 앞에 사람들이 빽빽이 들어섰다. 조회에 참석할 자격이 있는 대신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고 얼마 후, 환관 하나가 뛰어나왔다.

“폐하께서 부르십니다.”

대신들은 그제야 평소대로 두 줄로 늘어서 천천히 서재로 들어갔다.

“폐하를 뵈옵니다.”

“일어나게.”

모두 고개를 들자 황제는 용이 조각된 커다란 단향목 책상에 앉아 있었다. 그는 짙은 자색 평상복을 입고 의자 등받이에 기대어 앉은 채, 한가득 늘어선 사람들을 보고 눈썹을 찡그렸다.

“왔는가?”

침통한 표정의 여지의 가슴이 들썩거렸다. 이 무슨 한가한 말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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