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95화
엽연채는 소월을 시켜 매파 고씨에게 주묘화의 혼처를 찾는 일을 부탁한다는 첩자를 보냈다. 그런데 매파 고씨가 첩자를 받기도 전에 정국백부에서 소란이 일었다. 당연히 일상원 쪽에서 일으킨 소란이었다!
주묘서는 낙태를 하다 죽을 뻔한 후로는 아기를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이 일을 알게 된 주묘서는 목을 매겠다느니 호수에 뛰어들겠다느니 며칠이나 난리를 쳤고, 진씨는 그런 딸을 뜯어말리느라 고생을 있는 대로 했다. 그 후로 주묘서는 얌전해지긴 했지만, 매일 침상에 누워 눈물로 세수를 하고 있었다.
진씨는 매일같이 눈물 바람인 주묘서에게 온 신경을 쏟고 있었지만 백 이낭과 주묘화에 대한 경계도 늦추지 않았다.
진씨는 주묘서가 황실로 시집갔을 때도 주묘화에게는 좋은 혼처를 찾아 줄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주묘서가 이제 이런 꼴이 되고 나니… 이제는 주묘화를 어느 거지에게라도 붙여 줘야 쌓인 한이 조금이나마 풀릴 것 같았다.
요즘 백 이낭은 주묘화 혼사에 신경 쓸 필요 없다며 전처럼 진씨에게 충성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진씨는 늘 그들 모녀가 엽연채에게 혼사에 대해 부탁하지 않을까 대비하고 있었다.
다만 상황이 예전 같지는 않으니 먼저 소동을 일으킬 순 없고, 지켜보고만 있었다. 이상한 움직임이 보이면 그때 바로 막으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런데 진씨가 낮잠을 자고 깨어나니 한 여종이 이리 알려 오는 것이었다.
“마님, 나리와 백 이낭, 둘째 아가씨가 함께 그곳으로 갔습니다.”
순간 진씨는 화가 치솟아 온몸의 털이 다 쭈뼛 곤두섰다.
두말할 것도 없었다. 그 천한 것들이 엽연채에게 혼사를 도와 달라 하려고 쫓아간 것이 분명했다!
진씨는 주 백야와 일행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가 여종이 소식을 전해 오기 무섭게 수화문으로 뛰쳐나갔다.
보니 저 멀리서 주 백야와 주묘화가 먼저 마차에서 내렸고 백 이낭은 여종의 손을 잡고 활짝 웃으며 내리고 있었다. 백 이낭의 웃음이 눈꼴시었던 진씨는 쿵쾅거리며 뛰어가 그녀의 따귀를 세차게 올려붙였다.
“너 이 천한 년!”
“악!”
백 이낭의 몸이 휘청하더니 그대로 쓰러졌다.
“이낭!”
혼비백산한 주묘화는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백 이낭을 부축했다.
“뭐 하는 짓이오? 왜 오자마자 사람을 때리는 것이오?”
주 백야도 깜짝 놀랐다.
“나리야말로 무슨 짓이에요? 첩실 하나 때문에 나에게 소리를 치다니, 첩을 총애하느라 본처를 냉대하는 거예요?”
“무슨 헛소리요, 오자마자 사람을 때리는데 말도 못 한다는 말이오? 나는 까닭을 묻지도 못한단 말이오?”
주 백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암요, 물어봐야지요! 물어봅시다! 어딜 다녀온 거예요?”
진씨가 차갑게 웃으며 쏘아붙이자 주 백야는 급히 얼버무렸다.
“가긴 어딜 가. 셋째가 응성으로 간다는 말을 들어 다녀온 것이지. 이야기도 좀 하고 당부할 일도 있어 다녀왔는데 그것도 안 된다는 말이오?”
“하하, 나리가 셋째네에 당부하는 거야 잘못이 아니지만 지금 누굴 데리고 다녀온 거예요? 감히 첩을 데리고 다녀와요? 내가 죽기라도 했어요?”
하도 악을 써 대느라 진씨의 목소리는 거의 비명에 가까웠다.
주 백야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아까는 주운환이 응성으로 간다는 이야기를 듣자 마음이 워낙 급해져 별다른 생각을 하지 못했다. 하여 백 이낭이 불쑥 주묘화를 끌고 나타나 주운환을 만나야겠다고 할 때도 그저 알겠다 했을 뿐이었다.
“단순한 외출이오. 백 이낭과 묘화도 셋째를 보고 싶어 했을 뿐인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이러시오?”
주 백야의 이 말이 떨어지자 백 이낭은 얼굴색이 확 변했다.
“나리…….”
백 이낭은 어물쩍 넘어가느니 차라리 주묘화의 혼사 이야기를 정식으로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런데 주 백야가 그리해 주기는커녕 이편에서 나서서 엽연채를 찾아갔다고 솔직히 털어놨으니…….
“그게 무슨 대수냐고요? 하하, 셋째는 내 아들이에요! 그 아이가 응성에 간다니 나리가 아비로서 걱정되어 당부하러 가는 건 괜찮죠. 한데 그 길에 나 대신 이낭을 데려갔다뇨! 당신한테는 저 천한 것이 본처라는 말이에요? 내가 죽기라도 했어요? 첩 때문에 나를 내치려고요? 첩 때문에 나를 내치는 거네!”
진씨는 날카롭게 소리치더니 돌아서서 백 이낭을 매섭게 노려봤다.
“오, 그래! 내 아들이 멀리 떠나는데 천한 네년이 감히 나를 대신하려 한단 말이냐, 네가 주씨 집안 안주인이라도 된 것 같아? 한 쌍인 양 나리에게 찰싹 달라붙어 내 아들과 내 며느리를 만나러 가? 내 아들과 내 며느리에게 당부를 해? 네가 뭔데, 퉤!”
진씨는 백 이낭의 얼굴에 침을 뱉고 다시 주 백야를 쳐다봤다.
“자, 이제 제가 손찌검을 한 이유를 아셨지요? 이 천한 것이 맞을 만한가요 아닌가요?”
주 백야는 기세에 눌려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맞을 만하지. 내가 잠시 정신이 나가 법도에 신경을 쓰지 못했소……. 그래도 이미 때렸으니 그만합시다!”
“하, 아직 내 말 안 끝났어요.”
진씨는 백 이낭 모녀를 뚫어져라 노려봤다.
“거길 가서 뭘 하고 왔어? 응?”
백지장처럼 하얗게 질린 백 이낭은 무능한 주 백야가 원망스러웠다. 몇 마디 말도 못 하고 속절없이 진씨에게 당하고 있었다.
애초에 진씨가 이편의 뺨을 때렸을 때, 그때 바로 주 백야가 나섰어야 했다. 그저 아버지로서 주운환이 떠나기 전에 동생인 주묘화에게 좋은 사람을 소개해 주길 부탁하려 했다고 말했으면 끝날 일 아닌가. 진씨도 요즘 피곤해 보이니 이낭을 대신 데려갔다고 정리했으면 진씨도 할 말이 없었을 텐데 굳이…….
“하하, 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안다. 나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으니까 따라나선 것이고, 또 가서 셋째 처에게 묘화 혼처를 찾아 달라 했겠지!”
진씨가 백 이낭을 죽일 듯이 쏘아봤다. 백 이낭은 벗어날 수 없는 함정에 빠진 기분이었다. 지금에 와선 자신이 무슨 말을 해도 모두 틀린 답이 됐으니, 그저 이를 악물고 있을 뿐이었다.
“부인, 어허. 묘화도 나이가 찼고…….”
“조용히 하세요!”
진씨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주 백야는 깨갱 소리도 못 내고 입을 다물었다.
“묻고 있잖아! 말 못 해?”
진씨가 계속 노려보며 쏘아붙이니 백 이낭도 어쩔 수가 없어 결국 입을 열었다.
“부인… 둘째 아가씨도 나이가 찼어요. 오월이 지나면 열일곱이니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요. 그런데 큰아가씨 일도 있고 부인이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니 폐를 끼칠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셋째 부인은 아는 사람도 많으니 대신 혼처를 알아봐 달라 부탁했던 거예요.”
“나에게 폐를 끼칠 수 없었던 거냐, 아니면 내가 안중에도 없었던 거냐? 내 딸의 일이다. 내 딸 혼사는 너처럼 천한 이낭이 신경 쓸 일이 아니야!”
진씨가 차갑게 웃었다.
“내가 저 아이를 섭섭하게 할 것 같으냐? 응?”
백 이낭은 털썩하고 무릎을 꿇고 머리를 땅에 찧었다.
“부인, 제가 잘못했어요, 잘못했습니다! 제가 어리석었어요, 엉엉……. 부인 뜻대로 하세요. 둘째 아가씨의 혼사에 제가 끼어들어서는 안 되는 건데… 나리와 부인이 하실 일이에요. 오늘 일은 제 잘못이에요, 셋째 부인 말이 맞아요. 주인나리께서 챙기실 일인데 제가 분수를 모르고…….
셋째 부인이 벌써 매파 고씨에게 부탁을 했으니, 부인, 나리, 혼사를… 잘 부탁드려요. 저도 부인이 절대 둘째 아가씨를 섭섭하게 하지 않으실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백 이낭은 잘못을 인정하고 진씨를 치켜세울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매파 고씨는 엽연채의 부탁을 받았으니 이상한 사람을 소개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진씨가 신랑 후보들 중에서 제일 못한 사람을 고른다 해도 크게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이다.
진씨는 차갑게 웃었다.
‘그래, 감히 나를 무시하고 일을 꾸미다니 간도 크지!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벌써 예상하고 있었으니 다행이지!’
“혼사? 네가 감히 혼사를 말하는 것이냐? 반년은 더 있어야 선황제의 상복을 벗을 수 있다. 그런데 감히 이런 시기에 묘화의 혼담을 꺼낸다는 말이야? 나리, 우리 주씨 가문이 그렇게 불충하고 의도, 효도 모르는 집안이란 말이에요?”
“뭐요?”
주 백야는 그 점은 생각 못 했던지라 화들짝 놀라 안색이 변했다. 백 이낭이 입술을 깨물고 급히 반격에 나섰다.
“부인, 폐하께서는 칠월에 상복을 벗으셨어요……. 폐하께서 그때 양으로 음을 대신한다 하셨으니, 상복을 입는 기간은 벌써 끝난 거죠.”
황제가 먼저 법도를 깼는데, 이제 와 국상을 핑계 삼다니!
그러나 여기서 물러날 진씨도 아니었다.
“그건 궁에 이런저런 일이 많으니 옥체를 생각해서 어쩔 수 없이 상복을 벗으신 것이다. 다들 아직도 상복을 입고 있다! 여 상서 집안, 유 재상 집안을 비롯한 대신들은 물론이고 신양공주부까지! 한데 우리 주씨 가문만 충심이 부족하단 말이냐? 나리, 제 말이 맞지 않습니까?”
진씨가 또다시 자신을 걸고넘어지니 주 백야는 미간을 찌푸리며 그 말에 동조했다. 그는 그저 어서 이 상황을 정리하고 싶을 뿐이었다.
“맞소, 맞아. 그럼 지켜야지. 어차피 겨우 몇 달 남았는걸!”
백 이낭의 얼굴이 변했다.
“나리!”
그 몇 달 후면 주운환 부부가 도성을 떠난다! 그러면 누가 주묘화의 버팀목이 되어 준다는 말인가?
“됐소, 시끄럽게 뭐 하는 거요! 몇 달 더 미룬다고 어떻게 되겠어?”
주 백야는 황급히 주묘화를 끌어들였다.
“묘화, 네 생각은 어떠냐?”
눈물만 흘리던 주묘화는 갑자기 자신에게 질문이 돌아오자 덜컥 겁이 났다. 게다가 자신의 혼사 얘기를 하는 것이 아직도 부끄러웠다. 어떤 처녀가 그걸 못 기다리겠다고 할 수 있겠나? 그저 고개만 끄덕일 수밖에.
“그… 아버지 말씀이 맞아요……. 급하지도 않은걸요…….”
“잘됐네, 저것 봐. 묘화는 말도 잘 듣고 도리도 잘 아는 아이지. 그런데 너는 천한 이낭 주제에 감히 집안의 주인 노릇을 하려 들어! 감히 하늘을 거스르는 거냐! 여봐라, 저 분수도 모르는 년의 얼굴을 스무 대 쳐라!”
말을 마친 진씨는 홱 돌아서 나갔다. 놀란 백 이낭은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고 그 소리에 진씨가 다시 돌아보더니 차갑게 비웃었다.
“나중에 거기 가서 고자질하지 말아!”
“고, 고자질이라니. 어허, 됐소. 싸우지들 말아. 백 이낭이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지.”
주 백야는 소란이 일어나는 것이 제일 무서운 사람이었다.
고개를 숙인 백 이낭의 눈에 증오가 가득했다.
어려서부터 진씨의 심복으로 늘 충성을 바쳐 온 자신이었다. 이낭이 되고 나서는 옳고 그름과 상관없이 언제나 진씨의 편에 서서 왼손이 되고 오른손이 되었다.
‘살면서 단 한 번도 헛된 꿈을 꾼 적이 없다. 유일한 바람이 있다면 그저 내 배로 낳은 딸이 좋은 집안에 시집가는 것뿐인데 그것마저도 안 된다니!’
백 이낭은 한이 맺혔으나 차마 진서왕부에 고자질을 할 엄두는 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게 큰 소란이 났으니 누군가의 입을 통해 밖으로 새어 나가기 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