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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794화 (794/858)

제794화

엽씨 집안 가족들이 둘러앉아 있는데 마침 주운환도 돌아왔다. 모두 함께 식사를 한 후, 엽씨 식구들은 곧 떠났다.

창피를 당한 엽학문은 묘씨가 이만 가겠다고 하자 제일 먼저 수화문으로 뛰어가 기다렸다.

반면, 나씨는 엽연채를 반청 옆의 난각으로 끌고 들어갔다. 조용히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있는 모양이었다.

“숙모, 무슨 일이에요?”

“칠월에 인신매매꾼이 나타나지 않았니?”

나씨는 살짝 눈썹을 찡그리며 대꾸했다.

“그랬죠. 왜요? 부윤이 계속 수색하고 있어요. 부군이 그러는데 금위군 통령을 지낸 승은공이 금위군 천 명을 이끌고 수색하고 있다 했어요.”

엽연채도 처음 그 일이 일어났을 때는 한동안 걱정하다가 집안일도 바쁘고 상관수가 금위군을 이끌고 수색한다니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었다.

“아이, 나는 무슨 군인지 뭔지는 모르겠고, 인신매매꾼을 하나도 못 잡았단 것만 안단다. 우리 외조카가 칠월에 사라졌는데 아직까지 못 찾았어. 금위군이 찾는다는 이야기를 듣고 겨우 안심했지만, 그러곤 아무런 소식이 없어서…….

내 동생은 할 수 있는 것도 없고 대단한 사람을 아는 것도 아니거든. 다들 진서왕이 나라와 백성을 구한 영웅이라고 하니까 진서왕은 무슨 소식 들은 게 없는지 나더러 알아봐 달라 했어.”

나씨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나씨의 친정은 엽씨 가문보다도 못한 평범한 집안인 데다 나씨와 그 여동생 모두 서녀였다. 그나마 나씨는 당시엔 세도가였던 엽씨 집안의 서자에게 시집을 갔지만, 그녀의 여동생은 상인에게 시집을 갔으니 당연히 지금처럼 힘든 일이 있을 때는 언니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한번 물어볼게요.”

“그래, 부탁할게.”

나씨가 한숨을 쉬는데 밖에서 그녀를 찾는 전 마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마님, 마님.”

“아, 그만 가야겠다. 연채야, 이만 갈 테니 꼭 좀 부탁하마.”

나씨는 말을 마치고 수화문으로 걸어갔다.

엽연채와 주운환은 일행을 수화문까지 배웅해 마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고 돌아갔다.

한데 부부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소월이 뛰어 들어왔다.

“정국백부에서 백야와 백 이낭, 둘째 아가씨가 왔습니다.”

엽연채는 뜻밖의 방문에 조금 놀랐으나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안으로 모셔라.”

곧 발소리가 들리고 주 백야가 뒷짐을 지고 들어왔다. 그리고 오랜만에 보는 백 이낭과 주묘화가 그 뒤를 따라 들어왔다.

“셋째 나리, 셋째 부인.”

백 이낭이 웃으며 인사했다.

“셋째 오라버니, 셋째 새언니.”

주묘화도 따라 인사를 건네더니 부끄러운 듯 두 사람을 쳐다봤다.

엽연채는 오랜만에 보는 주묘화가 퍽 반가웠다. 얼마 못 봤다고 주묘화는 전보다 훨씬 성숙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러고 보니 주묘화도 올 오월이 지나면 열일곱 살이었다!

“이낭, 둘째 아가씨, 어서 오세요. 자, 얼른 자리에 앉아요.”

엽연채가 웃으며 자리를 권하기 무섭게 주 백야가 본론을 꺼내 들었다.

“셋째야, 응성에 간다 들었는데 어찌 된 일이냐?”

주 백야는 물으며 미간을 찌푸렸고 주운환도 눈썹을 살짝 움직였다.

“무슨 일은요. 폐하가 보내시는 건데요.”

“아니, 그 이야기가 아니라, 안 가도 되는 것 아니냐! 변방이 조용하고 안전한 걸 보면 장군들이 잘 지키고 있다는 것 아니겠냐. 그런데 힘들게 왕이 된 네가 굳이 갈 이유가 무어 있더냐?”

흥분한 주 백야를 보는 주운환의 눈이 냉랭해졌다.

“아버지, 저는 저에게 명예를 가져다준 곳으로 돌아갈 뿐입니다! 조상 대대로 아버지처럼 모두 목숨이 아까워 도성에만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더구나 지금은 변경이 안전하다지만 그 이유를 정녕 아버지가 모르셔서 물으시는 겁니까? 서노가 대장군을 여럿 잃어 잠시나마 조용한 것입니다. 우리가 방심하고 있는 사이, 만약 서노에서 군사를 키워 변경을 함락하려 한다면 그때는 원군을 보내기에도 이미 늦었을 것입니다!”

주 백야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주운환의 말대로였다. 주운환이 직접 그곳을 지킨다면 변방에서 치고 들어올 것인지를 신중하게 결정할 것이니 이 평화도 오래도록 유지될 터였다. 여기까지 생각하자 주 백야는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아버님, 식사는 하셨나요?”

엽연채가 말을 돌렸다.

“셋째 나리가 떠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오느라 아직 못 하셨어요.”

백 이낭도 웃으며 엽연채를 도와 분위기를 수습했다.

“청유야, 어서 식사를 준비해라.”

엽연채가 분부해 청유 등이 상을 차리러 나간 사이, 백 이낭이 쑥스러운 듯 입을 열었다.

“부인, 실은 부탁드리고픈 일이 있어요. 둘째 아가씨가 벌써 열일곱이 다 되어 가요. 부인과 겨우 세 달 차이인데 부인은 벌써 세자까지 얻으셨잖아요. 하니 둘째 아가씨에게 적당한 사람을 좀 찾아봐 주실 수 있을까요?”

엽연채와 주묘서, 주묘화는 모두 같은 해에 태어났다. 각각 이월, 삼월, 오월 생으로 달로 치면 정말 얼마 차이 나지 않았다.

백 이낭이 말을 이었다.

“사실 주인마님께서 애를 써 주셔야 하는 일인데 큰아가씨 일도 있고 마님 몸도 편치 않으시니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서요.”

그녀는 기대가 가득한 눈으로 엽연채를 바라보았다.

진씨는 애초에도 주묘화에게 좋은 혼처를 찾아 줄 생각이 없었는데, 이제 주묘서가 저 모양이 되었으니 절대 주묘화가 잘되는 꼴을 두고 볼 리 없을 것이다. 그래서 백 이낭은 하는 수 없이 진씨를 건너뛰고 이리 직접 찾아온 길이었다.

주 백야는 백 이낭이 이런 부탁을 할 줄은 몰랐던 차라 조금 놀라운 기색이었다. 하나 이내 살짝 한숨을 쉬며 자신도 말을 덧댔다.

“그래, 며늘아가 네가 좀 도와주거라.”

엽연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그런데 저는 혼인이니 뭐니 아는 것도 없고 아기를 돌보느라 바빠서요. 이러면 어떨까요? 매파 고씨에게 부탁해서 혼처를 찾아보도록 할게요.

그리고 아버님, 어머님은 몸도 편치 않으시고 큰아가씨도 돌보셔야 하니, 둘째 아가씨 혼사는 백 이낭에게 맡기는 것이 어떨까요? 매파가 혼처를 알아보면 제가 바로 백 이낭과 의논하도록 할게요. 아버님도 딸의 혼사에 신경 좀 써 주세요. 많이 바쁘시지도 않잖아요, 어떠세요?”

백 이낭은 엽연채가 직접 나서지 않겠다는 말에 조금 실망했다. 하지만 엽연채는 집안도 관리하고 아기도 봐야 하니 정말 정신이 없을 터였다. 더구나 엽연채가 직접 부탁한다는데 매파가 당연히 좋은 혼처만 골라 오지 않겠나?

상대편에서도 당연히 이 혼사를 원할 것이었다. 매파 고씨가 적당한 가문을 찾아가 ‘진서왕비의 부탁으로 혼처를 찾고 있다.’라는 말 한마디만 해 주면 일은 술술 풀릴 터였다. 다들 주운환의 매부가 될 수 있단 생각에 금방 승낙할 테니까.

더구나 엽연채가 생모인 자신에게 일임해 주면서 주 백야한테도 신경 써 달라고 부탁했으니, 다른 사람들도 꼬투리를 잡지 못할 것이었다. 생각을 마친 백 이낭이 얼른 엽연채에게 인사를 올렸다.

“감사합니다.”

주묘화는 수줍어서 고개를 숙인 채 가슴께까지 땋아 내린 머리칼만 배배 꼬고 있었다.

상전들의 대화가 끝나자 시녀들은 주방에서 미리 준비해 둔 더운밥과 저녁 식사 거리를 내놓았다. 엽연채 부부는 배가 불렀지만 손님들과 함께 한술 떴다.

식사를 마친 후 손님들은 돌아갔다. 그들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청유가 한숨 돌리며 혜연에게 말했다.

“주씨 집안 혼사는… 정말 걱정되네요. 저희 마님이 돕기는 하실 테지만, 아무래도 자기들이 직접 하는 게 좋을 텐데요.”

엽연채가 하나부터 열까지 도맡아 했다가는, 혼인 후에 부부 사이가 안 좋거나 하면 모두 엽연채 탓을 할 것 아닌가. 생각을 하던 청유가 미간을 찡그리며 다시 말했다.

“다만 마님이 저 사람들에게 잘해 주지 않았다가 가난한 친척을 모르는 척하는 것처럼 보일까 봐 걱정이에요. 사람들이 주묘화만 불쌍하다고 동정할 수도 있잖아요.”

혜연이 코웃음을 쳤다.

“가난한 친척을 모른 척한다고? 우리 마님이 갓 시집와서 아무 힘이 없을 때 백 이낭이 우리 마님에게 잘해 준 줄 아니? 우리 마님이 고생할 때 백 이낭과 둘째 아가씨가 한마디라도 거들었어? 뿌린 대로 거두는 거야. 자기들 앞길만 챙겼으니 이제 와 우리 마님에게 뭘 바랄 처지가 못 돼.

영교 아가씨랑은 경우가 달라. 영교 아가씨는 은정랑 때문에 한참 힘들었을 때, 다른 식구들이 협박하는데도 망설임 없이 우리 마님을 도와주셨잖아. 그래서 영교 아가씨의 혼사가 어려워졌을 때 마님도 크게 힘을 보태신 거지.”

청유가 멋쩍은 얼굴로 대답했다.

“언니 말이 맞아요. 제가 마님이 시집오셨을 때를 잘 몰라서 착각했네요.”

두 사람이 방으로 돌아가니 엽연채와 주운환이 서차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 다시 복도로 나갔다.

주운환은 아기를 높이 들어 올렸다. 신나게 노는 부자의 모습을 보자 엽연채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그러다 뭔가 떠올라 입을 열었다.

“참, 부군. 칠월 중순에 나타난 인신매매꾼은 어떻게 됐어요?”

주운환이 흠칫하더니 팔을 내려 주요를 품에 꼭 안았다.

“부인이 이야기하지 않았으면 생각도 못 했을 겁니다. 상관수가 금위군 천 명을 이끌고 수색을 시작한 후에 남쪽에 메뚜기 떼가 나타나는 바람에 그걸 처리하느라 바빴거든요. 게다가 상관수는 국구인데 폐하께서 그자에게 일을 맡겼으니 내가 참견하기도 곤란합니다.”

엽연채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주운환은 왕에 책봉된 데다 세습까지 보장받았으니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많은 눈이 시기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르는 상황. 이 상황에서 직무와 권한을 넘어서는 행동을 하면 이를 빌미로 수작을 부리는 사람이 나타날 게 틀림없었다.

“한데… 숙모가 외조카가 사라졌다고 물어봐 달라셨거든요.”

그럼에도 엽연채는 아이를 잃은 부모의 심정이 어떨까 싶어 결국 이 말을 꺼냈다.

“내일 가서 알아보겠습니다.”

주운환은 그녀의 어깨를 어루만졌다.

하나 이튿날, 주운환은 별다른 정보를 얻지 못했다. 시간이 이렇게 많이 흘렀으니 인신매매꾼들은 진작 종적을 감춘 후였다!

‘메뚜기 일에 정신이 팔리기 전까지 부윤에게 몇 번 물어봤을 때는 상황이 그런대로 괜찮아 보였었는데, 왜 이리됐지? 당시 물어볼 때마다 부윤은 단서를 잡았다고 했잖아. 한데 그 이후로 진척이 하나도 없다니?’

주운환은 부윤과 상관수의 무능함에 분노가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반년 가까이 쫓았는데 아무 소득도 없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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