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792화 (792/858)

제792화

송자관음 사당을 나서자 엽영교가 뒤를 돌아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뭐 하는 거야?”

뒤에 선 혜연이 눈을 흘기며 소곤거렸다.

“듣자니 궁에서 총애를 받지 못하신대요. 폐하의 신경이 모두 황후에게 가 있으니까요. 우리 마님이 돌아가신 양왕비와 사이가 좋았으니 일부러 이런 이야기를 해서 마님이 황후 마마를 미워하게, 그리고 자신을 돕게 하려는 거죠.”

엽연채는 말없이 코웃음만 쳤고 엽영교는 다급한 얼굴로 그녀에게 당부했다.

“저런 얕은 수에 넘어가면 안 돼. 황후 마마가 너에게 잘못하시는 게 없다면 너도 절대로 어느 편에 서지 말아.”

“알아요, 고모. 나도 바보는 아닌걸요. 먼저 건드리지 않으면 저도 건드리지는 않을 거예요. 자, 그만 가요!”

전각에서 나온 일행은 방으로 들어가 잿밥을 먹고 잠시 쉬다 도성으로 돌아왔다.

도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저 멀리 출상 행렬이 보여 주운환은 사람들을 이끌고 다른 길로 돌아갔다.

관아를 지나가는데 멀리서 신문고를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엽영교가 가장 먼저 휘장을 걷고 밖을 내다봤다.

“어머, 관아 앞에 사람들이 많아.”

엽연채가 쳐다보니 정말 수십 명이 관아 문 앞에 모여서 울며 소리치고 있었다. 그녀는 미간을 찌푸리며 주운환을 불렀다.

“부군, 무슨 일이에요?”

말에 탄 주운환이 마차 창가로 다가갔다.

“어제 부윤이 도성에 십여 명의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상소를 올렸거든요. 도성에 또 인신매매꾼이 나타난 것 같아요. 폐하는 부윤에게 철저하게 조사를 하라고 하셨고요.”

엽영교는 품속의 아기를 꼭 끌어안았다.

“천하의 나쁜 놈들! 그런데… 그치들은 다들 바보인가요? 겁도 없이 도성에서 유괴를 한단 말이에요?”

“도성이 값이 비싸니까 그렇습니다.”

주운환이 차갑게 웃자 엽영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이를 파는데도 장소를 따져요?”

“그런 사람들이 있더라고요.”

엽연채가 담담히 그녀에게 알려 주었다.

“아이를 사는 사람들은 부귀한 집안의 아이일수록 팔자가 좋아 가문이 출세할 수 있다고 생각한대요. 그리고 처자를 더러운 곳에 팔 때, 기루도 그렇고 아가씨를 사는 사람들도 도성의 여자가 제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나요. 위험을 감수해야 부귀영화를 이룰 수 있으니 인신매매꾼들도 위험을 불사하고 도성까지 와서 사람을 유괴하는 거죠.”

하나 배운 엽영교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는 욕을 해 댔다.

“때려죽여도 시원치 않을 것들.”

“그러니까 염염이도 당분간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 게 좋아요. 귀족의 아기만 골라서 납치하는 사람들도 있대요.”

“그래.”

엽연채의 조언에 엽영교가 심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운환은 엽영교 부부를 진씨 가문에 데려다주고 진서왕부로 돌아갔다.

* * *

이튿날 아침, 주운환은 별일 없으면 나가지 말라고 엽연채에게 신신당부한 후에 조정에 나갔다.

인신매매꾼이 아직 잡히지 않자 양왕은 제대로 수색하라며 정 부윤을 호되게 질책했다.

주운환은 마음이 답답했다. 아이가 사라지면 그 부모가 얼마나 애가 타고 절박할지. 아버지가 되고 나니 더욱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폐하, 인신매매꾼이 창궐하고 있으니 금위군과 경위영의 도움을 받아 수색 범위를 넓혀야 합니다.”

주운환의 진언에 상석에 앉은 양왕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럼 금위군 천을 더 배치해서… 승은공 상관수가 정 부윤과 함께 수색하도록 하라.”

선황제의 ‘구출’ 과정에서 판단이 흐려져 실수를 범했던 전직 금위군 통령 상관수를 새 황제가 다시 기용한다? 황후 때문일까?

자신에게 맡길 줄 알았던 주운환은 황제가 상관수에게 일임하자 움칫 놀랐다. 하지만 그는 조금 의외라고 생각했을 뿐 이견은 없었다. 황제가 과거를 잊고 황후를 총애하기 시작했으니 그녀의 가족이 혜택을 받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상관수는 선황제의 구출 일 말고는 십여 년 동안 금위군 통령으로서 맡은 바를 잘해 낸 능력 있는 사람이었다.

조정 대신들도 이견을 내지 않아 곧 조회가 끝나고 주운환은 어서방으로 향했다.

“운환, 무슨 일로 짐을 찾아왔지?”

상석에 앉은 양왕이 담담하게 주운환을 바라보며 물었다.

주운환이 고개를 들자 양왕은 냉랭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서리가 내린 듯 차가운 그 얼굴에서 주운환은 속을 읽어 내지 못했다. 예전보다도 한층 더 어려웠다.

“아뢸 일이 있습니다. 소신은 내년 이월이면 응성으로 갑니다. 하여 다음 달에 제 생모인 운 이낭의 묘를 이장하려 합니다. 그리고 양왕비 마마가 이낭과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함께 이장하려 하는데 어떠신지요?”

아무래도 왕비이니 양왕이 황릉으로 옮길 계획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양왕은 잠시 말이 없다가 허락했다.

“둘이 같이 있는 것도 좋지.”

“그러면 한 곳으로 이장하겠습니다. 다음 달 초아흐레가 길일이니 제가 그날 일찍 이장하겠습니다.”

그러나 양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막아섰다.

“안 돼. 내년 사월 중순에 이장해라. 묻은 지 일 년이 되기 전에는 이장해서는 안 된다.”

주운환은 흠칫 놀랐다. 일 년이라면, 조앵기는 작년 사월 열하루에 세상을 떠났으나 내년 사월 열하루가 지나야 옮길 수 있다.

“운환 너도 내년 오월에 떠나라! 참, 사월 열하루는 자소의 생일이기도 하니 돌잡이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국상 때문에 만월연도 열지 못했는데 돌은 제대로 챙겨야지.”

“알겠습니다.”

주운환이 고개를 끄덕이자 양왕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고 보니 자소를 본 지도 오래되었구나. 아이는 잘 지내느냐?”

“벌써 살도 많이 오르고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곧 제 당고모보다 클 것 같습니다.”

“하하하, 자소가 보고 싶구나. 내일 데리고 들어와 짐에게 보여 다오.”

“네.”

얼마 후, 주운환은 궁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엽연채는 서차간의 긴 평상에 앉아 아기에게 물을 먹이고 있었다.

“부군, 늦었네요?”

주운환이 다가와 아기에게 입을 맞추고서 겉옷을 벗었다.

“폐하께 이장을 말씀드리느라 그렇게 됐습니다. 양왕비도 함께 이장하겠다고 했어요.”

엽연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겠네요. 황릉에는 모두 황족들뿐이니 앵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없고 앵기가 좋아하는 사람도 없으니까요. 거기서까지 괴롭힘당하게 할 수는 없어요.”

“그런데 아직 일 년을 채우지 못해 이달에는 이장할 수 없어요. 내년 사월 중순에 날을 다시 잡아야 합니다. 그러니 우리도 내년 오월에 응성에 갑시다.”

“미뤄진 거예요?”

엽연채는 나직이 한숨을 지었다. 여기 있으면 늘 숨이 막히는 기분인데. 하나 조앵기의 일이 얽혔으니 받아들이는 수밖에.

주운환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른 얘기를 꺼냈다.

“내일 아기를 데리고 궁에 들어가야겠습니다. 폐하께서 보고 싶다 하시네요.”

엽연채는 탐탁지 않아 했다.

“요즘 인신매매꾼이 얼마나 기승인데! 그리고 폐하가 자소를 뭐 하러 만나고 싶으시대요.”

“그러게요.”

주운환이 손가락을 내밀자 아기는 있는 힘껏 그 손가락을 잡았다. 주운환이 슬며시 웃었다.

“하하, 철단이 힘이 아주 세졌네.”

철단이. 정말 포기를 안 하는구나. 엽연채가 신음하듯 물었다.

“내일 언제요?”

주운환은 웃으며 아기를 안은 엽연채를 무릎에 앉히고 대답했다.

“내일 정오요. 회의가 끝나고 데리러 오겠습니다.”

“번거롭게 뭐 하러 그래요. 사람을 좀 많이 데리고 여양과 같이 가면 돼요.”

황제가 보겠다면 거절할 수 없다는 것은 엽연채도 알고 있었다.

“아니, 인신매매꾼이 기승이니 내가 직접 와야 안심이 됩니다. 회의가 끝나면 집으로 데리러 올게요. 궁에서 멀지도 않으니 말입니다. 부인, 이리 와 봐요.”

주운환은 엽연채의 얼굴에 뺨을 마주 대고 비볐다. 엽연채의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아이, 뭐 하는 거예요. 아기한테 해요.”

“안 돼요. 조금만 비벼도 살결이 찢어질 것 같아서.”

“철단이라고 부르지 않았어요? 철처럼 단단한데 어떻게 찢어져요.”

엽연채가 깔깔 웃으며 일어나자 주운환도 씩 웃으며 받아쳤다.

“아기에게도 하고 부인에게도 할 겁니다.”

* * *

이튿날 엽연채는 일찌감치 채비를 했다. 오시午時(오전 11시에서 오후 1시 사이) 무렵엔 아예 아기를 안고 유모 등 시종들과 함께 수화문에서 주운환을 기다리고 있었다.

곧 말발굽 소리가 들리고 엽연채가 사람들과 마차에 올라탔다. 관복을 입고 입구에서 기다리던 주운환은 엽연채가 마차에서 고개를 내밀자 활짝 웃었다.

“갑시다!”

주운환 일행이 황궁 동화문에 도착하자 가마가 나와서 부부를 맞이했다.

두 사람이 아기를 안고 가마에 올라타자 가마가 움직였다. 엽연채는 가마가 향하는 곳이 봉의궁 쪽임을 알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가슴에 뭔가 걸린 듯 답답했다.

과연 가마는 봉의궁에 멈춰 섰다.

주운환이 엽연채를 부축해 가마에서 내렸는데, 엽연채는 정말 봉의궁에 도착하니 가슴이 조마조마해져 얼굴이 더욱 굳었다. 주운환이 그런 그녀를 보더니 안심하란 듯 웃으며 볼을 살짝 꼬집자 엽연채는 입을 삐죽이면서도 내심 긴장이 좀 풀렸다.

봉의궁에 들어가자 양왕과 상관운이 평상에 앉아 있었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황후 마마를 뵈옵니다.”

주운환과 엽연채가 한소리로 인사를 올렸다.

“일어나라!”

양왕은 두 사람을 흘깃 쳐다보더니 바로 아이부터 찾았다.

“자, 자소를 데려와라.”

주운환이 아기를 안고 다가가 양왕에게 건넸다.

양왕은 고개를 숙여 주요를 가만 들여다보았다. 몇 달 동안 무럭무럭 자란 모양인지 어느새 육칠 근은 족히 나갈 성싶었다.

아기는 포도알처럼 동글동글한 눈을 굴리며 양왕을 바라보고 있었다. 굽실하고 긴 속눈썹과 토실토실한 볼이 특히 눈길을 끄는 아기는 무척이나 뽀얗고 사랑스러웠다.

아기를 보자마자 빙산 같은 양왕의 얼굴에 웃음이 번지더니 그는 손가락으로 아기의 턱을 간지럽혔다.

“아가, 자소야, 짐을 알아보겠느냐?”

주운환도 웃었다.

“지난번 폐하께서 안으셨을 때는 아직 눈도 뜨지 못했었습니다.”

“그래?”

양왕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와아……!”

주요가 양왕의 손을 꼭 잡고 까르륵 웃었다.

“하하하, 이것 봐라. 짐을 알아보는구나.”

양왕의 눈이 웃느라 둥글게 휘었다.

“자, 할아버지라 불러 봐라.”

아래에 서 있던 엽연채와 주운환의 몸이 동시에 굳었다. 할아버지는 무슨? 나중에 양왕에게 아기가 생기면 주요보다도 어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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