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791화 (791/858)

제791화

양왕이 고개를 숙이자 십이지신 모양의 전병들이 놓여 있었다. 한 접시에 한 가지 동물이 세 개씩, 총 열두 접시가 있었다.

양왕은 젓가락을 들어 토자포를 집었다 다시 내려놓고, 말 모양의 포자를 집어 상관운의 그릇에 담아 주었다.

“드시오.”

“고맙습니다, 폐하.”

상관운은 웃으며 음식을 집어 들고는 슬쩍 고개를 돌려 엽연채를 보았지만 엽연채는 이쪽을 보고 있지 않았다.

상관운은 엽연채가 일부러 안 보는 척한다고 생각해 코웃음을 쳤다. 예전에 자신이 직접 도움을 청했을 때 엽연채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나중에도 내 어머니 편에다 기다리라고, 느긋하게 기다리라고만 말했고!’

속내가 빤했다. 고소해하면서 구경하고 있던 것이다.

본궁 뜻대로 되지 않길 바라서였겠지! 하니 드디어 총애를 받게 된 지금, 엽연채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 줘야 했다. 그럼으로써 그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줘야 마땅했다.

그렇다. 오늘 연회는 그녀가 제안했고 황제가 그 즉시 허락한 자리였다.

한편, 엽연채는 탕을 마시고 있었고, 주운환은 곁에 앉은 언동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제민이 그들 자리로 다가왔다.

“연채야.”

“응.”

엽연채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방금 상관운이 널 두 번 쳐다봤어. 아주 으스대면서 우리를 보고 있던데.”

제민이 비웃자 엽연채도 픽 웃었다.

“괜한 데 신경 쓰지 말고 저길 좀 봐. 초빙풍이 왔어.”

제민이 고개를 들자 과연 유 재상 뒤에 앉은 초빙풍이 보였다. 자신이 현주가 된 후로 초빙풍과 유곡요는 조용히 지낸다고 들었다. 유곡요는 거의 바깥출입을 하지 않고 초빙풍도 관아에 등청하는 것 말고는 어떤 자리에도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이다. 하니 오늘은 극히 드문 경우라 할 수 있었다.

초빙풍은 제민과 눈이 마주치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제민이 대수롭잖게 입을 열었다.

“오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야. 그런데 듣자니 유곡요가 아들 쌍둥이를 낳았다던데. 지난달에 낳았대.”

소식을 뒤늦게 접한 엽연채는 눈썹을 꿈틀거리며 놀란 소리를 냈다.

“둘이나! 임무 완수했네!”

“하하하. 정말 그렇네.”

제민은 말뜻을 알아듣고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랬다. 초빙풍과 유씨 가문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음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초빙풍이 데릴사위가 되지 않는 대신, 본인의 둘째 아들을 유씨 가문의 계승자로 보내기로 약속한 것이었다. 다들 몇 년은 걸리겠거니 예상했는데, 유곡요가 한 번에 아들 쌍둥이를 낳았으니 벌써 임무를 완수한 셈이었다.

초빙풍이 숨지 않고 밖으로 나온 이유가 있었다. 그가 계속 숨어 있으면 유 재상이 다시는 그를 데리고 다니지 않을 것이었다.

“소식이 참 빠르네.”

“내 여종들이 하나같이 수다쟁이거든. 됐어, 너도 신경 쓰지 말아.”

제민은 코웃음을 치며 화제를 돌렸다.

연회가 파하고, 엽연채가 집에 돌아갈 채비를 하고 있는데 궁녀가 웃으며 다가와 인사했다.

“황후 마마께서 잠시 들르라고 하십니다.”

“그래.”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였고 제민과 함께 그 궁녀를 따라갔다. 봉의궁에 도착하니 상관운은 상관 부인과 한창 재미있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황후 마마를 뵈옵니다.”

두 사람이 인사했다.

“앉아요. 연채, 지난번 말이 틀리지 않았어요. 조금만 기다리면 될 거라더니 정말 그러네요.”

상관운이 입을 열었다.

“아이참. 마마, 원래 끝까지 기다리는 사람이 무지개를 본다지 않습니까.”

상관 부인이 얼른 거들고 나섰고 엽연채는 그저 조용히 웃으며 동조했다.

“축하드립니다, 마마.”

“앉아요.”

상관운이 자리를 권하니 엽연채와 제민은 각자의 수돈에 앉았다. 상관운은 주로 상관 부인과 이야기를 나눴고 엽연채와 제민은 이따금 몇 마디만 했다.

미시未時(오후 1시~3시) 반까지 머무른 후에야 엽연채와 제민은 봉의궁에서 나올 수 있었다. 마차에 올라탄 제민이 냉큼 불만을 토했다.

“뭐 하는 거야? 연회에서 우리가 자기를 보지 않으니까 아예 처소로 불러다 놓고 눈앞에서 자랑을 하겠다, 이거지?”

엽연채가 비웃으며 대답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쨌든 반년만 있으면 난 도성을 떠날 거야. 내가 도성을 떠나면 너를 괴롭힐 일도 없을 거야.”

제민은 상심해서 입을 삐죽거렸다.

“사실… 난 여기 있고 싶지 않아. 아예 우리 고향에 집이랑 땅을 좀 사서 지주 노릇이나 할까 생각했었어. 얼마나 자유롭겠어. 저렇게 역겨운 얼굴들도 볼 필요 없고.”

“그런 생활도 좋지만 혼자서 도성을 벗어나는 건 위험해. 황제에게서 멀어지면 아무리 네게 작호가 있다 해도 널 괴롭히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어. 그리고 초빙풍과 유곡요가 아직 앙심을 품고 있을 거야. 너 혼자 도성을 떠나면 그들이 ‘사고’를 가장해서 너를 죽여도 아무도 모를 거 아니야?”

제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 말이 맞아. …그럼, 나도 널 따라 응성으로 가면 안 돼?”

제민이 눈을 빛내며 이리 제안하자 엽연채는 크게 반색하면서도 한편으론 걱정스러워했다.

“우리야 좋지만, 그렇게 외진 곳에 가려고? 도성처럼 번화한 곳이 아니야.”

“외지면 어때. 우리 고향보다 가난할까? 그리고 도성이 아무리 번화해도 난 여기가 싫어.”

“좋아. 부군이 이미 장군들을 뽑아 놨다고 했는데, 혹시… 호호호!”

엽연채는 머릿속으로 젊은 남녀의 인연을 그리며 웃었다. 그곳의 군영에 제일 흔한 것이 남자다. 제민과 잘 맞는 젊은 인재가 있을지도 모른다.

“아. 고마워, 연채야.”

제민은 드디어 이 숨 막히는 도성을 떠날 수 있단 사실에 감격하며 엽연채에게 고마워했다.

* * *

칠석이 지나고 곧 중원中元(음력 칠월 보름날)이 다가왔다. 제를 지내는 날이니만큼 엽연채는 제민과 함께 물건을 챙겨 조앵기와 운 이낭을 찾았다. 주운환도 그 자리에 함께했다.

돌아오는 길에 엽연채가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이제 부군도 공을 세우고 명성을 얻었으니, 이낭이 본처가 아니라서 주씨 가문의 묘에 모실 수 없다 해도 좋은 곳을 찾아서 모셔야 하지 않겠어요.”

“내 생각도 그렇습니다. 장지는 벌써 골라 놨으니 두 사람을 함께 옮기려고요.”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이다 ‘참’ 하며 새로운 이야기를 꺼냈다.

“팔월 초하루에 아기를 데리고 법화사에 가서 불공을 올리려고 해요.”

아기는 태어난 후로 툭하면 아팠다. 태의에게도 보여 주고 도사와 스님들에게도 보여 줬는데, 그중 한 스님이 아기 상태가 좋아지면 불공을 올려 보라 조언했었다.

요즘 잔병치레가 덜해졌으니 엽연채는 이때 얼른 아기를 데리고 절에 가 치성을 드리고 싶었다. 하지만 뜻밖에 주운환이 반대했다.

“요즘 도성에 아이들이 사라지고 있으니 나중에 가면 좋겠군요.”

하나 엽연채가 입을 삐죽이는 것을 보고는 주운환은 살짝 한숨을 쉬며 말을 바꿨다.

“그렇긴 하지만 가요. 대신 나도 함께 가겠습니다.”

“그래요. 그런데 괜찮겠어요? 부군, 요즘 많이 바쁘잖아요.”

엽연채는 그제야 웃었지만 뒷말도 빈말은 아니었다.

주운환은 요즘 조정 일 때문에 바빴다. 그가 경위영에 있을 적에는 병영을 관리하거나 군사들을 훈련했었다. 그러나 다시 경위영 통령을 맡은 후엔 그 업무는 모두 하배에게 맡기고 조정에 나가고 있었다. 복잡한 도성의 수많은 일감이 모두 그에게 던져졌기에 조회가 끝나도 여전히 바빴다.

금린위가 도성을 떠난 후 양왕은 한동안 마음을 잡고 정무에 집중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또다시 마음이 다른 곳에 있는 듯, 조회에서도 “진서왕에게 물어보시게.” 아니면 “진서왕이 결정하게 해라.” 하고 대답할 뿐이었다.

* * *

팔월 초하루, 엽연채는 엽영교 부부와 함께 법화사에 가기로 약속한 날이 밝았다. 주운환은 백 명이 넘는 사람들을 데리고 호송했다.

법화사에 도착한 후, 주운환과 진지항은 전각 밖에 앉아 담소를 나눴다.

엽영교는 엽연채를 데리고 송자관음送子觀音(자손을 점지해 주는 관음)에 불공을 드리러 갔다. 아기를 안은 유모들, 여종들이 그녀들을 뒤따랐다.

앞서 걷는 엽연채가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우린 벌써 아기를 낳았는데도 송자관음에게 절을 해요?”

엽영교가 고개를 돌려 그런 엽연채를 가볍게 흘겨보았다.

“무슨 말이야? 우리 아이들 모두 송자관음이 주신 아이들이니 당연히 감사하다고 절을 올려야지. …그리고 불공을 올리면 내년에 하나 더 낳을지도 모르잖아.”

한마디 덧붙인 엽영교는 얼굴이 빨개지더니 활짝 웃었다.

두 부인은 송자관음이 있는 곳에서 불공을 드리고 불전도 냈다. 그런 후, 돌아가려고 채비를 하는데 멀리서 누군가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연채 아니야?”

엽연채가 멈칫하며 돌아보니 스무 살 정도 된 아름다운 부인이 다가오고 있었다.

“아… 육 측비! 아니, 실례했습니다. 혜비 마마라고 불러야겠지요.”

엽연채가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넸다.

“혜비 마마를 뵈옵니다.”

엽영교와 하인들이 예를 갖췄다. 엽연채는 품계가 혜비보다 높았기에 그 곁에 가만히 서 있었다.

“예를 거두세요.”

육 혜비가 조용히 웃으며 면례해 주자 엽연채가 다시 그녀에게 말을 붙였다.

“혜비 마마도 송자관음에게 불공을 드리러 오셨나요?”

“맞아요.”

육 혜비는 난처한 듯 웃었다.

대제의 비빈들은 황비 이상인 경우 한 달에 한 번 궁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육 혜비는 대답을 하면서 관음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궁녀들이 그녀에게 향을 건네주니 그녀는 절을 올리고 향로에 향을 꽂았다.

육 혜비는 일어서서 다시 입을 열었다.

“물론 우리는 불공을 아무리 드려도 소용없지만요.”

말끝에 살짝 한숨을 짓는 그녀에게 무어라 해 주어야 할지 몰라 엽연채와 엽영교는 그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아이참, 우리는 어찌해도 이렇게 어렵네요! 지금은 우리가 아기를 낳을 수 없었던 예전보다 더 심해요. 폐하가 우리 처소에 아예 오시지도 않거든요.”

육 혜비는 엽연채를 바라보며 이렇게 하소연을 했고 엽영교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궁궐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는 듣고 싶지 않았다.

엽연채도 난처하긴 마찬가지였으나 못 들은 척할 수도 없는 노릇. 그녀는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적당히 대꾸했다.

“아, 어떻게 그러죠!”

“저뿐 아니라 폐하는 후궁에 아예 오지 않으세요. 이제는 간혹 황후의 처소만 들르시지요. 갑자기 튀어나온 계비일 뿐인데… 선왕비도 아랑곳하지 않고 있어요.”

육 혜비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자 엽연채는 그녀를 흘겨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상심하지 마시고 천천히 하시지요. 시간이 늦었으니 저는 이만 가 보겠어요.”

“아… 그래요. 다음에 궁에 오면 제 궁에도 들러 줘요.”

육 혜비가 아쉬운 얼굴로 말했다.

엽연채와 엽영교는 돌아서 자리를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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