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788화 (788/858)

제788화

화가 난 양왕이 윽박지르는데도 백발 도사는 안색 하나 바꾸지 않고 다만 몸을 굽혔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 폐하. 하나 우화등선 역시 전설일 뿐. 소인의 미천한 능력으로는 신선이 될 수도 왕비 마마를 다시 살릴 수도 없습니다.”

불끈 쥔 양왕의 주먹이 창백해졌다. 그는 입을 앙다문 채 뒤에 있는 도사들을 바라봤다.

“소인… 소인도 그리 큰 능력은 없습니다.”

“빈승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같이 기대를 저버리는 대답이었다.

“망할! 쓸데없는 놈들, 할 줄 아는 게 무에 있느냐!”

요명대사와 도사들은 고개를 숙이고 말이 없었다.

“쓸데없는 것들, 모두 가서 목을 베어라!”

대로한 양왕이 불호령을 내리고서야 요명대사가 고개를 들었다.

“폐하……!”

속세를 떠난 사람도 죽음은 두려웠다!

언서의 표정 역시 변했다.

“폐하. 요명대사나 청허도사 모두 도성에서 유명한 이들입니다. 모두 죽는다면… 백성들은 충격을 받고 조정도 흔들릴 것입니다. 심사숙고하셔서 행동하십시오, 폐하.”

백성들에게 이 승려와 도사들은 신불神佛을 대표하는 사람들이니 다 죽이는 것은 고사하고 이 중 한두 명을 죽인다 하더라도 백성들은 황제가 하늘에 도전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거기서 멍하니 뭐 하는 거냐? 끌어내라!”

하나 양왕은 도리어 음산한 눈빛으로 언서를 쏘아볼 뿐이었다.

“너마저 짐의 명령에 불복하는 것이냐?”

언서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등 뒤의 금위군들이 뛰어나와 요명대사와 도사들을 끌고 갔다. 탄식하는 도사들과 승려들의 얼굴에 절망과 불안이 가득했다.

“폐하!”

뒤에 서 있던 기해의 얼굴이 새파래졌고, 이마에서는 땀이 흘러나왔다. 정말 어렵게 대내총관大內總管의 자리에 올랐는데, 이제 겨우 광명을 찾았다고 여겼는데, 황제라는 사람이 이렇게 악행을 일삼으니… 기해는 죽고 싶은 심정마저 들었다.

“폐하……! 병이 나도 의원이 단번에 고치지 못하는 때도 있잖습니까. 돌아가서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다 보면 비방을 새로 만들어 내기도 하지요. 대사와 도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당장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아도 시간을 좀 주시면 분명히 생각해 낼 것입니다.”

뒤에 서 있던 승려와 도사들이 서둘러 외쳤다.

“폐하, 빈승이 돌아가서 최선을 다해 방법을 강구하겠습니다……!”

“좋다. 그동안 모두 흠천감欽天監에서 지내도록 해라. 참 요명대사, 요공대사는 어디 있는가?”

요명대사는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놀라서 얼굴이 백지장이 되어 대답했다.

“사형은 구름처럼 유랑하고 있습니다.”

“어디를 유랑 중인가?”

“사형은 늘 바람처럼 나타났다가 또 사라지는지라 급한 일이 있어도 빈승 또한 연락이 닿지 않습니다…….”

요명대사는 난처한 얼굴로 어쩔 줄 몰라 했다. 하나 그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자네들은? 본 적이 있는가?”

양왕이 아래쪽의 승려와 도인들을 훑어보았다.

“보지 못했습니다.”

“모두 썩 나가거라!”

양왕의 얼굴이 한층 어두워졌다. 그나마 요공의 능력이 뛰어난데 하필 지금 자리를 비우다니.

승려와 도사들은 모두 안도하며 조용히 나갔다. 그들이 나가는 모습을 보고 있는 양왕의 마음이 점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쓸데없는 것들, 못 미더운 것들 같으니라고!

“언서.”

“네.”

언서가 중앙으로 달려가 공수했다.

“사람을 보내 요공대사를 찾아라. 그리고 어떻게 왕비를 살릴 수 있을지도 알아봐라.”

정말 그녀를 다시 데려올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리가 있는가. 온 천지를 뒤지면 분명 있을 것이다!

언서는 비통한 마음이 들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명령을 받들었다.

“네.”

황제가 갑자기 도사와 승려를 불러들인 것은 굳이 숨긴 일도 아니었기에 반나절도 되지 않아 온 도성 사람들이 모두 이 일을 알게 되었다.

대부분은 폐태자와 정 황후의 망령이 황제를 괴롭힌다고 입을 모았고, 일부는 양왕비의 망령이 떠돈다고 하기도 했다. 어쨌든 모두 궁에서 악령을 몰아내기 위해 도사와 승려들을 불러 법사를 준비하는 줄로만 알았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조정에서는 또 큰일이 있었다.

새 황제가 갑자기 자신의 금린위를 만들겠다고 한 것이다!

선황제가 세상을 떠나면 조정의 금린위는 철수하거나 없애든가 또는 분산시켜 다른 부대에 합류시켰다. 그런데 새 황제는 자신의 금린위를 조직하겠다고 한다.

그러면서 새 황제가 금위군 통령 방언서를 금린위 총지휘사에, 금위군 부통령 방언동을 금위군 통령으로 임명한 것도 의외였으나, 금린위의 수는 더욱 뜻밖이었다! 금위군에서 천 명을, 경위영에서 2만 9천 명을 선발해 총 3만 명의 금린위를 조직한다는 것이다.

금린위의 수가 3만이나 되자 대신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제의 금린위는 만이 넘은 적이 없었다. 금린위를 가장 많이 사용했던 현종顯宗 평창제平昌帝의 금린위도 만 명이 넘지 않았다.

새 황제는 대체 3만이나 되는 금린위를 조직해 뭘 하려는 걸까?

대신들은 자연스럽게 평창제를 떠올리고 전율했다. 평창제가 가장 잘하던 것은 암암리에 움직이는 일이었다. 그의 일만 금위군은 매일 조정 대신들을 지켜보았고, 그 시절 역심을 품었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은 별별 ‘사고’로 죽었다.

일순간에 대전의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특히나 여지와 유 재상은 세 명의 황제를 모셨던 노신이었기에 이런 기억이 생생했다!

여지의 얼굴 근육이 떨렸다.

“폐하… 3만 명의 금린위는 수가 너무 많지 않습니까?”

상좌에 앉은 양왕의 눈이 차갑게 빛났다.

“문제가 있소?”

여지는 얼굴이 얼어붙었으나 다시 입을 뗐다.

“그게, 즉위하신 지 이제 겨우 한 달이라 백성들의 민심이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많은 금린위를 모으면 공포를 불러올 수 있습니다.”

양왕이 냉소했다.

“자네들이 겁내는 거겠지.”

여지와 대신들은 큰일 났다 싶었다. 이 황제는… 언제나 말 속에 가시가 있었다!

이러다 미움만 사는 게 아닐까 싶어 여지는 치밀어 오르는 화를 꾹꾹 눌렀다. 유 재상과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안심하시오, 짐은 자네들을 지켜보려는 것이 아니니. 이만 끝냅시다.”

양왕은 시원하게 웃더니 나가 버렸다.

양왕은 대전을 나와 바로 어서방으로 갔다. 그가 자리에 앉자마자 밖에서 환관의 목소리가 들렸다.

“폐하, 진서왕이 왔습니다.”

“들어오게 하라.”

양왕이 고개를 들자 금색 망포를 입은 주운환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폐하를 뵈옵니다.”

“그래.”

양왕은 차분히 주운환을 바라보았다.

“마침 잘 왔다. 방금 짐이 조회에서 한 말을 너도 들었겠지. 언서와 3만 명을 선발하거라.”

주운환이 고개를 들어 보니 양왕은 무척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수려했지만 그의 눈은 어느 때보다 차갑고 어두웠다.

“폐하, 갑자기 금린위를 만드시겠다는 게 양왕비 때문입니까?”

양왕의 마음을 제일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바로 주운환이었다. 무덤에 며칠이나 엎드려 있더니 도사와 승려들을 잔뜩 불러들이고, 이제는 갑자기 대규모의 금위군을 조직하겠다고 하는데… 이 괴팍한 행보의 이유를, 주운환은 양왕비가 아닌 다른 이유는 정말 생각해 낼 수 없었다.

양왕이 소리 내어 웃었다.

“역시 짐의 마음은 운환이 네가 제일 잘 아는구나.”

“폐하께서 왕비 마마를 잘 보내 드리려고 도사와 승려들을 부른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금린위는 왜 만들려 하시는지요?”

“그게 아니다. 너는 혼이 있다고 믿느냐?”

양왕의 강렬한 시선이 쏟아지자 주운환은 머뭇거리다 대답했다.

“신이나 부처는 믿으면 있고, 믿지 않으면 없겠지요. 있는 듯 없는 듯 미묘한 일들은 경외심을 가지고 멀리서 지켜보면 될 일입니다.”

주운환은 귀신을 믿지는 않지만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 하나 양왕은 기대와 다른 말을 듣자 조금 불쾌해졌다.

“신령이 머리 석 자 위에서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주운환, 혼은 있다!”

주운환의 눈썹이 살짝 움직였다.

“폐하…….”

양왕의 정신이 불안정해 보였지만, 주운환은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예,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 있겠지요.”

“왕비는 죽었지만 그 영혼은 아직 있다.”

“그래서요?”

“아직 여기 있으니 돌아올 수 있어.”

자리에서 일어난 양왕의 눈빛은 호수처럼 고요했다. 붉은 입술을 움직여 말을 이었다.

“이 세상이 모두 짐의 영토이다! 그녀를 살려 낼 방법이 없을 리 없다.”

주운환이 깜짝 놀랐다.

“폐하, 무슨 말씀을 하고 계신 겁니까? 죽은 사람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양왕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네가 뭘 아느냐! 고승이 입적하면 사리가 나오고, 도사가 득도하면 신선이 된다! 한데 어째서 왕비가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것이냐? 설마하니 특별할 것 없는 보통 사람을 살려 내는 것이 신선이 되는 것보다 더 어렵단 말이냐?”

“폐하, 그것은 전설일 뿐입니다.”

“전설? 그런 일이 없는데 전설이 있겠냐?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겠느냐!”

냉소하던 양왕이 갑자기 손가락으로 서쪽을 가리켰다.

“봐라, 저게 뭐지? 우리 황실의 종묘가 저기에 있다! 저기에 수백의 황실 조상들을 모셔 놓고 매일 향을 올리고 불경을 외고 있다! 정말 신령이 없다면 왜 저런 짓을 하겠느냐. 세상을 떠난 사람에게 우리 모씨 가문의 강산을 살펴 달라 할 필요가 있겠느냐!”

“폐하, 그건…….”

주운환은 그저 소망을 표출하는 방식일 뿐이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무너져 내리는 양왕의 얼굴을 보고는 모든 말을 삼켰다.

“폐하 말씀이 맞습니다. 금린위를 시켜 왕비를 살릴 방법을 찾으시려는 겁니까?”

양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리고 요공대사를 찾아내면… 그자는 가장 명성 높은 사람이니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정말… 정말 할 수 없어도… 적어도 내 꿈에 돌아오게는 할 수 있을 거야.”

주운환은 아무 말 없이 그를 바라봤다.

“즉위하던 날 꿈에 나타난 후 다시는 꿈에서 만날 수 없었어. 운환, 그거 아느냐? 그 꿈속에서, 그녀가 거기 있는 게 분명히 느껴졌다. 그 손을 잡았을 때는 온기도 느낄 수 있었지. 존재를 확실히 느꼈어! 하지만… 그날 이후 다시는 나타나지 않더군.”

만약 지금 양왕에게 그리움마저 없다면 버틸 수 없을 것이다. 이리 판단한 주운환은 차분히 말을 받았다.

“폐하, 그러면 언서에게 시켜 보십시오. 하지만 관례대로라면 금린위는 만 명을 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또 갑자기 이리 많은 병마를 뽑으시면 대신들이 공포에 질리기 쉽습니다. 아직 폐하의 기반이 확고하지 않으니 금린위의 용도를 설명하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금린위를 출병하여 태자의 잔당을 추격한다고 말씀하시어 그들을 안심시켜 주십시오.”

“그럼 그렇게 하지. 물러가라, 언서에게 병사들을 이동시키라고 해.”

책상에 도로 앉은 양왕은 어두운 얼굴로 태양혈을 문질렀다.

“폐하, 옥체를 잘 보존하십시오.”

주운환이 공수하고 인사를 올렸다.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