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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781화 (781/858)

제781화

태자가 폐태자가 된 후, 주묘서는 울면서 그의 씨를 떼어 버리려 했다. 하지만 태자부에는 상주하는 의원이 없었다. 자칫 자신의 목숨까지 잃게 될까 봐 겁이 났다.

그렇게 어영부영하다 지금까지 끌고 온 것이다! 주묘서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 아기…….”

“폐태자의 핏줄입니다. 폐하, 폐하께서 셋째 나리를 생각해서 겨우 아가씨를 살려 주셨는데 어떻게 아기까지 낳아 또 셋째 나리를 곤란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저…….”

춘산이 다급하게 말하는데 주운환이 냉랭하게 그 말허리를 잘라 버렸다.

“곤란할 것 없다. 폐하께서는 인자하시게도 기왕에 묘서를 살려 주기로 했으니 이미 생긴 아이도 낳으라 하셨다. 폐태자에게도 최소한의 혈육을 남겨 주는 것이 그에 대한 마지막 형제의 정이라고 하셨다.”

주묘서의 얼굴이 굳었고, 진씨의 얼굴은 그녀보다도 더욱 어두웠다. 주묘서는 아기를 떼어 내려 하고 있었는데… 새 황제는 도리어 자신의 인자함을 과시하려 그녀에게 아기를 낳으라 했다!

“아니, 아니에요. 내가 어떻게 낳을 수 있겠어요! 낳지 않을 거예요! 낳을 수 없어요!”

주묘서가 놀라서 소리치더니 엽연채와 주운환을 무섭게 노려보았다.

“일부러 이러는 거야, 일부러……!”

역적이자 불효자의 혈육을 어떻게 낳을 수 있겠나!

주요를 낳아 어머니가 된 엽연채는 아이에게 해가 되는 일은 듣고만 있을 수 없었다. 주묘서가 아기를 낳을 생각이 없는 것을 벌써 알고 있었지만 그 입으로 들으니 역시 화가 치솟았다.

“뭐라고 지껄이는 거냐!”

주 백야는 하얗게 질려 주묘서의 뺨을 호되게 때렸다. 여기 계속 있으려면 주운환을 더 화나게 해서는 안 된다.

“가자, 나가, 집으로 가.”

진씨는 창피하고도 분해 냅다 주묘서를 끌고 나갔다.

진씨와 주묘서가 떠난 후 온씨는 침실에 앉아 있었다. 주운환은 오랜만에 만난 모녀의 사이에 오래 있기 무엇해 서재로 들어갔다.

주운환이 나가고 엽연채는 아기에게 젖을 먹였다. 온씨는 젖을 조금 먹고는 곧 토해 내는 외손자를 보며 한숨을 지었다.

“참, 유모는? 어째 집 안에 시종만 늘어나고 정작 유모는 보이지 않는구나.”

“사람을 구할 때 마땅한 사람이 없어 이번 달에 다시 구하려고 했는데 조산을 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래? 내가 아는 사람이 하나 있다.”

온씨가 웃으며 사람을 추천해 주려는 찰나.

“엽씨, 장씨, 진씨 가문 사람들이 오셨습니다.”

밖에서 청유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어서 모셔라.”

엽연채는 옷을 걸쳐 입고 아기를 안고 나갔다.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엽씨, 장씨 그리고 진씨 가문 사람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문 사람들이 거의 모두 온 듯했다. 남자 손님들은 밖에 있고 여자 손님들만 안으로 들어왔지만 친정 식구인 엽학문과 엽승강은 따라 들어왔다.

엽연채가 웃으며 한 명씩 인사를 건네자 묘씨가 얼른 그녀를 앉혔다.

“일어나지 말고 얼른 앉거라.”

나씨가 웃으며 다가왔다.

“아이고, 정말 낳았네. 출상 행렬이 도성에 돌아올 때 연채 네가 조산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단다. 바로 오고 싶었지만 도성이 어수선하니 황제 폐하의 즉위식이 끝나길 기다렸다 오늘 아침에야 온 거야.”

진 부인도 다가와 엽연채 품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기를 보며 칭찬했다.

손씨, 엽이채 그리고 맹씨는 굳은 얼굴로 마지못해 그 뒤에 서 있었다. 엽이채와 맹씨는 정말 오고 싶지 않았지만 장찬이 윽박지르니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선 것이었다.

“참, 아들인가 딸인가? 조산한 건 들었는데 아들이라는 사람도 있고 딸이라는 사람도 있으니 알 수가 있어야지.”

진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그녀는 주운환 덕분에 남편이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상서에 올랐고 아들도 3년도 되지 않아 한림원에서 나와 요직에 한발 다가서게 됐다고 생각했다. 당연히 엽연채와 주운환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고 엽영교도 더욱 아끼게 됐다.

“아들이에요.”

온씨가 대신 대답하자, 진 부인은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어머나! 단번에 아들을 보다니 정말 복도 많지.”

엽이채와 손씨 일행은 속이 부글거렸다. 엽이채는 벌써 수차례 엽연채에게 졌고 이제 내세울 것이라고는 단번에 아들을 낳은 것뿐이었다. 그래서 엽영교가 딸을 낳자 며칠 동안은 즐거웠다. 그런데 엽연채 저게…….

“전 아들도 좋고 딸도 좋아요.”

엽연채의 말에 진 부인이 웃었다.

“그럼, 그럼. 아들은 아들대로 좋고 딸은 딸대로 재미가 있지. 우리 염염이도 얼마나 예쁜지 몰라.”

“연채야, 아기 이름은 뭐라고 지었니?”

묘씨가 화제를 바꾸자 엽연채가 웃으며 대답했다.

“주요예요, 아명은 당이라 부르기로 했어요.”

뒤에 서 있던 엽이채가 비웃었다. 주요? 무슨 이름이 저렇담! 게다가 아명이 당이라니 천박하게!

“아가, 이 할머니가 홍포紅包를 주마.”

묘씨가 아기의 몸에 홍포를 내려놓았고 엽연채는 주요의 작은 손을 잡고 말했다.

“할머니께 고맙습니다 해야지.”

물론 갓 태어난 아기가 어떻게 인사를 하겠나. 주요는 하품을 하더니 고개를 떨구고 다시 잠에 빠져들었다. 그 사랑스러운 모습에 묘씨와 일행들은 저절로 웃음이 나왔다.

진 부인, 나씨와 다른 사람들도 봉투를 건넸다.

손씨와 엽이채, 맹씨도 내키지는 않았지만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리며 엽연채에게 들고 있던 봉투를 건넸다.

엽이채 일행은 그제야 아기를 제대로 볼 수 있었다. 태어난 지 겨우 보름 정도 된 아기인데도 벌써 잘생긴 외모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꼭 감은 두 눈조차 아주 아름다웠다.

아기를 보자 세 사람은 더욱 속이 뒤틀렸다. 엽이채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탄식했다.

“아기가… 쯧쯧, 어쩜 이렇게 작아? 우리 아기가 갓 태어났을 때보다도 작네.”

“조산했다는 말 못 들었니?”

온씨가 노려보자, 엽이채가 비웃듯 말했다.

“아무리 조산이라지만… 아기가… 너무 작네요. 전에… 우리 친척도 칠삭둥이를 낳았는데 그래도 이 아기보단 컸어요. 큰언니 아기는 태어난 지 보름이나 됐잖아요!”

“그래, 맞아. 그 앤 우리 친척인데 건강하거든요.”

맹씨가 맞장구를 쳤고, 손씨는 손수건으로 눈가를 누르며 혀를 찼다.

“조산한 아이는 키우기 힘든데. 우리 질손 좀 봐요. 쯧쯧, 불쌍한 새끼 고양이같이… 아유, 앞으로 어떡하니?”

묘씨와 온씨는 그들의 말을 듣고 화가 나 얼굴이 새파래졌다.

“무슨 뜻이에요?”

엽연채가 차가운 눈으로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엽이채, 손씨, 맹씨가 흠칫 놀랐다.

“큰언니, 우린 아기를 걱정한 것뿐인데 왜 그래요? 우리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어요?”

엽이채가 미간을 찌푸렸다.

“뭘 잘못했냐고? 내 아이 걱정은 할 필요 없어. 누굴 정말 바보로 아는 거니? 지금 저주하고 있는 걸 모를까 봐? 아님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내버려 둘 것 같아?”

엽연채가 차갑게 웃자 세 사람의 얼굴이 굳었다.

“아이고, 연채 성질 대단하네. 우린 그저 걱정이 되니까 그러지. 원래 좋은 충고는 귀에 거슬리는 법이야. 왜 그렇게 안 좋게 받아들이니…….”

손씨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한마디 하자 엽연채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맞는 말이에요. 제 성질 대단하지요! 여봐라! 엽이채, 손씨 그리고 맹씨를 끌어다 뺨을 스무 대씩 쳐라!”

방 안은 찬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특히 엽이채 일행은 멍해져 아무 반응도 보이질 못했다. 밖에서 어멈 몇이 들어와 세 사람을 끌어내자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엽이채가 두 눈을 부릅떴다.

“무슨 짓이에요? 언니가 뭔데 나를 끌어내요? 무슨 구실로 때린다는 거예요?”

“구실? 내 아이를 저주했잖아.”

엽연채의 눈빛이 한층 차가워졌다.

“우린 저주하지 않았어요. 우리가 아기에게 뭘 어떻게 하겠다고 했나요? 언니가 속이 좁으니까 우리가 걱정하는 마음을 그렇게 생각하는 거죠!”

엽이채가 고래고래 악을 쓰자 엽연채는 더 크게 웃었다.

“내 두 귀로 들었어. 그리고 걱정이든 아니든 내 기분이 상했고! 그래서 때리고 벌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지?”

엽이채가 더 크게 악을 썼다.

“기분이 나쁘다고 사람을 때려? 네가 뭔데!”

“초일품 왕비다!”

엽연채의 눈에 비웃음이 스쳤다. 엽이채는 머리를 한 대 맞은 듯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얼굴이 새파래졌다.

“이, 이……!”

왕비! 이 두 글자에 엽이채는 이를 악물었다. 주운환이 왕이 되고 엽연채가 왕비가 되다니……!

왕비. 자신은 감히 꿈도 꿔 보지 못했던 신분… 이런 작호, 이런 신분을 가진 사람의 명령을 누가 감히 거스를 수 있겠나. 엽연채가 원한다면 바로 자신들을 끌어내 매질을 할 수 있었다! 이것이 황제가 준 권리였다.

엽이채는 그러나, 그녀가 왕비가 됐단 걸 일부러라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엽연채는 나랑 함께 자랐는데 어떻게……!’

어멈들이 들어와 엽이채, 손씨 그리고 맹씨를 밖으로 끌어냈다.

“너, 너! 내가 네 숙모야, 윗사람이야……!”

손씨가 목청이 찢어져라 소리치자 엽연채가 차갑게 웃었다.

“처음엔 신분이더니 이젠 혈연을 들먹이는군. 끌어내라.”

“아악!”

손씨의 비명이 귀를 찔렀다. 그녀는 이 상황이 미칠 듯이 아니꼽고 망신스러웠다.

세 사람이 끌려 나가자 온씨는 통쾌한 기분마저 들었다.

반면 엽학문의 얼굴은 새파래졌다. 그는 엽연채가 자신에게 몹시 불손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만약 자신이 뭔가 잘못한다면 그도 이렇게 인정사정없이 끌어낼 것 아닌가? 하지만 이런 말은 감히 입 밖에 낼 수 없었다.

엽이채와 손씨, 맹씨가 끌려나가 뺨을 맞은 소식은 금방 바깥에 머무르던 장찬과 장굉의 귀에 들어갔다. 그들은 기가 막혀 쓰러질 뻔했다. 그 세 사람이 무슨 이상한 소리를 해서 엽연채의 성미를 건드린 것이 분명했다. 엽연채가 이제 어떤 신분인지도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장씨 가문 사람들이 무슨 낯짝으로 이곳에 더 머무를 수 있겠는가. 그들은 식사를 마치자마자 달려가 맹씨와 엽이채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 무렵, 묘씨와 진 부인도 돌아갔다. 엽연채는 진 부인 편에 물건을 한 아름 챙겨 엽영교에게 보냈다. 사월 초에 출산한 엽영교는 아직 조리 중이라 함께 오지 못했다.

오늘 찾아온 이들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선물을 보내왔다. 주운환의 봉작을 축하하는 선물, 아들 출산을 축하하는 선물 등 다양한 첩자와 선물이 도착했다.

하지만 선황제가 세상을 뜬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인지라 주운환의 봉작 기념이든 아기의 만월滿月 기념이든 축하연을 열 수는 없었다. 엽연채는 아쉬웠지만 다른 한편으론 이 평온함을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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