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776화 (776/858)

제776화

뒤에 선 혜연과 청유는 소리 내어 웃었다.

“공자님은 아직 한 달이 안 됐어요!”

혜연이 말했다.

“한 달이 되어야 웃을 수 있어요?”

청유가 물었다.

“두 달은 있어야 할걸.”

그래도 엽연채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하지만 우리 요는 방금 진짜 웃었는걸. 착하지, 우리 당이.”

“하하하, 요가 벌써 웃을 줄 아는 겁니까?”

마침 주운환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그는 관복을 벗지도 않고 엽연채의 품에 안긴 아기를 받아 안았다. 젖내가 폴폴 나는 아기가 그를 보며 침을 흘리고 있었다. 주운환은 기분이 좋아 눈이 가늘어졌다.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우리 철단이는 정말 똑똑하구나!”

엽연채가 정색했다.

“당이에요.”

주운환이 웃으며 엽연채를 살짝 꼬집더니 입을 맞췄다.

“아이도 철단이라고 불리는 걸 더 좋아할 거예요.”

“아앙… 우아앙……!”

주요가 그 작은 몸으로 주운환의 품에서 계속 버둥대며 울음을 터트리니 엽연채에게서 풉, 웃음이 터져 나왔다.

“봐요, 철단이라고 하는 거 싫어한다니까요. 자, 이리 오렴, 아가. 이 어미가 안아 줄게.”

그녀는 아기를 받아 살짝 입을 맞췄다. 제일 익숙하고 따뜻한 품에 안기자 주요는 울음을 그치고 계속 꼬물거리면서 엽연채의 옷을 헤집었다.

“응? 배고파?”

엽연채가 자세를 고쳐 앉고 아기에게 젖을 먹였다.

주운환은 엽연채가 콧노래를 부르면서 품속의 아기를 토닥거리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기를 내려다보는 그녀의 아름다운 눈이 유난히 따뜻하고 온화했다. 주운환의 마음에도 그 따뜻한 기운이 차곡차곡 쌓였다. 이 모자를 보고 있으면 주운환은 더할 나위 없이 행복스럽고 만족스러웠다.

요즘 그가 하루 중 가장 기대하는 시간은 집에 와서 부인을 안고 입을 맞추고, 다시 아기를 안아 보는 일이었다. 이게 바로 행복 아니겠는가.

“모레 즉위식에 난 안 가도 되죠?”

엽연채가 불현듯 고개를 들고 주운환에게 물었다.

“네, 폐하께 말씀드렸더니 집에서 잘 조리하라 하셨습니다.”

주운환은 얼마 나지 않은 부드러운 아기의 머리칼을 어루만졌다. 아기가 잘 먹는 걸 보니 미소가 절로 지어졌다.

다만 즉위식은 일생에 한 번뿐일지도 모르는 큰 행사인데 엽연채가 가지 못하게 됐으니 내심 아쉬웠다. 하지만 조앵기 일 때문에 엽연채는 양왕과 가까워질 수 없었다. 주운환은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 * *

새 황제의 즉위식을 앞두고 황궁뿐 아니라 온 도성에서 흰 비단과 흰 등을 걷어 내고 홍등과 오색 비단을 걸었다. 눈 닿는 곳마다 경사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했다.

그리고 사월 스무여드레가 밝았다. 하늘은 아직 어두웠지만 주운환은 벌써 자리에서 일어났다. 엽연채도 따라 일어나 그의 옷을 준비했다.

주운환은 원래 경위영 통령의 복장을 하고 즉위식에 참석해야 했지만, 양왕이 미리 정선제가 그에게 하사한 붉은 적염전갑을 입으라고 해 그것을 걸치고 있었다.

잠시 후, 주운환은 방을 나서 병사들을 이끌고 양왕부로 향했다.

휘황찬란한 등불이 양왕부를 밝히고 있었다. 주운환이 평정소축에 들어가자 주 선생, 하배, 그리고 노인 몇 명이 먼저 와 있었다. 노인들은 사주의 하 장군 일행으로, 예전 소씨 집안의 장군들이 모두 온 것이다.

그들 모두 평정소축 뜰에 무릎을 꿇고 있었고, 언동과 언서가 문을 지키고 있었다. 주운환이 그들에게로 가까이 다가서자 환관 하나가 안을 향해 아뢰었다.

“폐하, 진서후가 왔습니다.”

“들어와라.”

양왕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운환은 멈칫했다. 주 선생과 하배 일행은 모두 양왕과 모든 여정을 함께해 온 그의 충신이었다. 그들 모두 밖에서 어가가 나오길 기다리고 있었다. 자신도 그 자리에 함께 있어야 마땅하건만 양왕이 그를 안으로 불러들인 것이다.

주운환은 별수 없이 주 선생과 사람들을 지나 평정소축으로 들어갔다.

침실에 들어가자 등불이 방을 환히 밝히고 있었다. 양왕은 커다란 거울 앞에 서 있었고, 환관 몇 명이 옷을 입혀 주고 있었다. 샛노란 용포를 입은 그의 모습은 눈부시게 화려하고 위엄이 넘쳐흘렀다.

환히 불을 밝힌 방 안에서는 환관 둘이 양왕에게 옷을 입혀 주고 있었다. 그 뒤에는 쟁반을 든 궁녀들이 늘어서 있었다.

허리띠, 폐슬… 하나하나 착용하고 마지막 남은 것은 십이류旒(‘유(류)’는 옥玉을 꿰서 면冕의 앞뒤에 드리우는 줄을 가리킴) 면류관이었다.

칠흑같이 검은 머리를 높이 묶고 머리에 관모를 썼다. 관모의 앞이마 쪽과 뒤통수 쪽에 각각 열두 가닥의 유가, 양쪽에는 샛노란 관대가 늘어져 있었고 중앙에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용포의 자수는 얼마나 정교한지 옷자락에 수놓아진 파도가 용솟음치는 듯했다.

양왕은 거울 속, 조금씩 황제가 되어 가는 자신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었다. 눈썹이 살짝 올라가고 붉은 입술도 움직였다. 드디어 가장 원했던 모습이 되었다. 하지만 뭔가 부족한 것 같았다.

양왕은 그 기분을 지우며 고개를 돌려 주운환을 보았다. 운하공주와 너무나 닮은 얼굴을. 누님이 살아 있었다면 분명 기뻐했겠지. 어마마마가 살아 계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양왕은 다시 미소를 되찾았다.

“가자!”

“네.”

주운환도 살짝 웃었다.

양왕은 황제다운 풍채로 침착하게 걸음을 옮겼다. 머리에 쓴 면류관에도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

그가 계단으로 나가자 주 선생, 언서, 언동 그리고 하 장군 등 부하들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양왕의 붉은 입꼬리가 올라갔다.

“일어나라.”

양왕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문을 나섰다.

평정소축 문턱을 넘어서려 할 때, 양왕은 갑자기 고개를 돌려 익숙한 건물을 바라보았다. 어째서인지, 조금 쓸쓸해졌다.

“폐하?”

곁에 있던 환관들이 걱정스러운 듯이 불렀다.

평정소축, 이 문을 나서면 다시는 돌아보지 않을 곳이었다. 양왕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짧게 대답하고는 그곳을 나가 대문으로 향했다.

날은 아직 다 밝지 않았지만 육 측비를 비롯한 첩들은 모두 일찍부터 일어나 나와 양왕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양왕부의 모든 하인들도 두 줄로 늘어서 무릎을 꿇고 양왕을 배웅했다.

양왕은 문을 나가 어가에 올라 그대로 황궁으로 갔다.

동쪽에서 태양이 떠오를 무렵, 즉위식이 시작됐다.

모든 대신들과 귀족들, 오품 이상의 관원과 봉작을 받은 외명부外命婦들은 모두 온 집안 식구들을 데리고 참석했다.

예식이 진행되고 양왕은 어좌에 앉았다. 아래에 있던 조정 대신들과 귀족들은 삼궤구고두의 예를 올렸다.

양왕은 아래에 엎드린 조정 대신들을 보며 웃었다.

“일어나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모두 일어섰다.

양왕 옆에 선 사람은 그가 곁에 둘 환관으로 선택한 기해였다. 둥글둥글한 얼굴의, 마흔 정도 된 환관이었다.

기해가 황후 책봉을 낭독하려는 찰나, 양왕이 입을 열었다.

“짐이 순조롭게 황위를 이어받을 수 있었던 데 경들의 덕이 크다.”

대신과 귀족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황제가 작위를 내리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 보통 황제가 즉위한 다음에는 황후부터 책봉하지만, 대신들에게 먼저 작위를 내린다고 해도 안 될 건 없었다. 양왕이 얼마나 힘들게 보위에 올랐는지는 모두 알고 있었으니까. 그도 당연히 도와준 사람들이 고마울 것이었다.

어좌에 앉은 잘생긴 천자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주운환을 바라보았다.

“진서후 주운환.”

주운환은 앞으로 나가 한쪽 무릎을 꿇었다.

“예.”

양왕은 따뜻한 눈으로 그를 보고 있었다.

“주운환은 선황제를 구출한 공을 세웠고 그간 믿음과 충정으로 짐을 보필했다. 주운환을 정일품 진서후에서… 초일품, 진서왕에 봉한다. 또한 이를 영원히 세습하도록 한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놀라 숨을 들이쉬었다. 왕이라니?!

진씨는 화가 나서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숨도 안 쉬어져서 차라리 쓰러졌으면 했지만 원할 때는 또 그러지를 않았다. 저 천한 것이 왕이 되다니? 세상에, 어쩜 이렇게 황당하고 잔인한 일이 있는가?

주 백야는 깜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유 재상과 여지 등은 한술 더 떠 아예 턱이 빠진 것 같았다.

주운환이 황제를 구출한 공을 세웠다고는 하지만 선황제가 벌써 이품 후작에서 정일품으로 이미 올려 주었는데 거기서 더 올려 주다니?

대제에서는 한 번도 귀족을 왕으로 책봉한 적이 없었다. 황실 가문의 피가 흐르는 공주의 아들인 군왕들 말고는. 하지만 그것도 일대에는 군왕, 이대에는 국공, 그리고 삼대에는 후작에 봉한다. 강왕은 전쟁에서 공을 세워서 후작 작위로 내려가지 않은 것뿐이다.

그런데 주운환을 왕으로 책봉해 세습하게 하다니! 대대로 작위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대제가 멸망하지 않는 한, 주운환의 후손들이 화를 자초하지 않는 이상 작위는 계속 계승될 것이다.

“폐하…….”

유 재상이 입을 달싹이자 양왕이 그를 차갑게 쏘아봤다.

“무슨 의견이라도 있소, 재상?”

“아닙니다.”

유 재상은 황급히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말을 다시 삼켰다. 이제 새 황제의 시대이다. 아무리 자신의 지위가 높다 해도 주운환만큼 막대한 권력에 비할 바는 아니다! 주운환의 왕 책봉을 반대하면 반드시 주운환이 자신에게 앙심을 품을 것 아닌가. 그랬다가는…….

“하하, 그럼 됐군. 짐은 운환이 제일 좋구나.”

양왕이 시원하게 웃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주운환이 감사를 표했다. 양왕은 잠시 생각하다 다시 입을 열었다.

“주운환의 아들을 정일품 왕세자에 봉하고 진서후 부인은 초일품 진서왕비에 봉한다.”

주운환은 부인도 작위를 받자 기뻐하며 허리를 숙였다.

양왕은 희색이 만면한 주운환을 보자니 운하공주가 자꾸만 떠올라 마음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할 수만 있다면 누님의 신분을 회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많은 것을 알게 될 테고, 그때 가서 적공주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 비밀은 그저 땅속에 묻어 두자! 주운환이 잘 지내는 것이 누님에게는 최고의 보답일 것이다.’

양왕의 눈길은 주 선생에게 가서 멈췄다.

“언제나 짐의 은사였던 주심을 정일품 제사帝師(황제의 스승)에 봉한다.”

그 말에 대신들은 또 한 번 숨을 들이쉬며 임 국공을 보았다. 제사 자리는 늘 임씨 가문의 자리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에게 간 것이다!

그러나 임 국공은 주 선생을 보며 밝게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축하합니다.”

운하를 생각하면, 자신이 무슨 염치로 제사의 자리를 탐하겠는가.

사람들은 쾌활한 그 모습을 보고 얼떨떨했지만 별말은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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