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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773화 (773/858)

제773화

산파와 두 마마가 엽연채의 몸을 깨끗이 닦아 주고 있었다. 엽연채는 베개에 파묻혀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핏기 하나 없는 얼굴에는 식은땀이 가득해, 두 마마가 열심히 땀을 훔쳐 주는 중이었다.

혜연은 나 의정과 함께 주렴 뒤에서 아기의 몸을 닦아 주고 있었다. 그곳에서 작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부인…….”

주운환은 침상으로 가 엽연채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걱정 마세요, 나리. 위험하긴 했지만 무탈하게 공자님을 출산하셨습니다.”

두 마마가 그를 안심시키며 말을 이었다.

“마님께선 탈진해서 정신을 잃으신 것뿐입니다. 하나 조산을 하면 몸이 많이 축나니 앞으로 몸조리에 신경을 쓰셔야 합니다.”

“알겠다.”

주운환이 침상 옆에 앉아 엽연채를 들여다보고 있는데,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으… 으아앙……!”

주운환은 그 소리를 듣자 몸이 굳었다. 이때, 혜연이 주렴을 걷고 나와 그에게 아기를 건네주었다. 주운환은 강보 속의 작디작은 아기를 보자 얼떨떨했다.

비단 강보에 싸여 꼬물대고 있는 아기는 온몸이 새빨갰다. 너무 조그마해서 겨우 새끼 고양이만 했다. 더구나 곧 숨이 끊어질 것처럼 울음소리에도 힘이 없었다.

주운환은 아기를 가슴에 품자 저도 모르게 눈물을 떨구었다. 손 위의 아기가 너무 가벼웠다. 겨우 네 근斤(약 2㎏)이 될까 말까 하게 느껴졌다.

이렇게 조그만 아기를 잘 키울 수 있을까?

“후야, 저도 한번 보여 주십시오.”

나 의정이 다가와 말했다.

“그래요.”

주운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기는 새끼 고양이처럼 가엽게 울고 있었다.

“후야는 나 의정과 잠시 나가 계십시오. 마님을 씻겨 드려야 합니다.”

두 마마의 이 말에 주운환은 엽연채에게 입을 맞추고 아기를 안고 나 의정과 침실을 나와 서차간으로 들어갔다.

청유와 제민이 벌써 서차간에 불을 지펴 놓아 방 안은 훈훈했다. 사월 말이라 날씨는 따뜻했지만 이제 갓 태어난 아기에게는 쌀쌀할지도 몰라서였다.

주운환이 얇은 이불을 펴 놓은 평상에 아기를 내려놓자 나 의정이 조심스럽게 아기를 살폈다.

“어떻소이까? 괜찮아 보이오?”

주운환이 긴장한 듯 묻자 나 의정이 고개를 저었다.

“별문제 없습니다. 그저 많이 허약하니 정성껏 보살피셔야 합니다.”

주운환은 그제야 안심하여 한숨을 내쉬고 고개를 숙였다. 아기가 하품을 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음이 따뜻해졌다.

“아가, 예쁜 우리 아가. 내가 네 아버지란다.”

혜연이 나 의정이 알려 주는 것들을 일일이 적어 두었다. 나 의정은 주의 사항 등을 꼼꼼히 일러 준 후에야 나가서 밥을 먹었다.

엽연채가 깨끗하게 몸을 씻었다고 알려 오자 주운환은 그 방으로 돌아갔다. 그녀는 깊이 잠들어 있었으나 주운환은 그 곁을 떠나려 하지 않았다. 죽 한 그릇만 먹고 엽연채와 아기를 번갈아 살펴보며 모자 곁을 내리 지켰다.

주운환은 긴 평상을 침실로 옮기고 거기에 아기를 내려놓았다. 방에도 화로를 피워 두고 하룻밤을 보냈다.

이튿날 아침, 엽연채가 드디어 깨어났다.

비몽사몽하여 몸을 뒤척이더니 이상하다 느꼈는지 배를 더듬었다. 배가 푹 꺼져 있었다!

“내 아가……!”

“여기 있습니다.”

주운환이 얼른 아기를 안고 다가갔다. 엽연채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그제야 자신이 아기를 낳았다는 것을 떠올렸다.

주운환은 그녀 곁에 아기를 내려놓았다. 엽연채는 모로 누워 아기를 바라보며 눈시울을 붉혔다. 기쁘고도 미안했다.

“아가… 미안해.”

어젠 정말 너무 놀라 마음을 추스를 수 없었다. 아기까지 그 충격을 받아 빨리 세상에 나오게 된 것이었다.

“이렇게 작은데…….”

결국 엽연채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얼마 전에 본 엽영교의 아이는 포동포동하게 살이 올라 있었는데, 자신의 아기는 그 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 같았다. 살결조차도 붉고 얇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미어졌다.

“의정이 괜찮다고 했습니다. 정성껏 잘 키우면 조금씩 나아질 거예요.”

“네.”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아기는 숨소리조차 미약했다…….

“참, 아들이에요, 딸이에요?”

“아들입니다.”

주운환은 고개를 숙여 침상에 누운 아기를 바라보았다. 다시금 마음에 훈기가 가득해졌다.

엽연채는 코끝이 시큰거렸다. 아기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착한 내 아가…….”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제민과 청유가 들어왔다.

제민은 엽연채 곁에 누운 아기를 보고 가늘게 한숨을 쉬었다. 아기가… 정말 작구나! 하나 옛말에 팔삭둥이는 못 살아남아도 칠삭둥이는 잘 산다 했다. 자신만 해도 마을에서 칠삭둥이로 일찍 태어났지만 잘 큰 아이들을 여럿 봤었다. 더구나 진서후부의 상황은 그런 촌마을과는 비교할 수도 없으니 아기가 살아남을 확률은 훨씬 컸다.

“득남을 축하드려요.”

제민이 두 부부에게 가장 먼저 인사했고 뒤에 섰던 청유와 두 마마, 별장의 두 여종도 환히 웃으며 축하했다.

“단번에 아들을 얻으셨으니 마님께서 복이 많으십니다.”

두 마마가 웃으며 이리 말하자 방 안에 드디어 기쁨이 흘러넘쳤다.

주운환이 조용히 웃었다.

“상을 내리겠다! 모든 사람들에게 육십육 냥씩 하사한다.”

“예? 육십육 냥이요?”

두 마마와 여종 둘은 잘못 들은 줄 알고 잠시 숨을 멈췄다. 자신들이 여기서 육칠 년을 일해도 모을 수 없는 큰돈이었다. 이렇게 큰 상을 받자 세 사람은 감격해서 쓰러질 뻔했다.

혜연과 청유는 이미 주운환의 통 큰 모습을 본 적이 있어 그들만큼 놀라진 않았지만 역시 입을 쩍 벌렸다. 엽연채가 아기를 가진 것을 알고 주운환이 진서후부의 모든 사람들에게 여덟 냥씩 나눠 준 전적이 었었다지만, 지금은.

주운환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부인이 출산하는 데 두 마마의 공이 크니 팔십팔 냥을 더 하사한다.”

“아앗……!”

두 마마는 감격해서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그 돈이면 내 몸값을 낼 수도 있어요. 아니, 아니지, 저는 속신贖身(노비·기녀 등이 대가를 지불하고 자유를 얻는 것)하지 않을 겁니다. 저는 평생 마님을 모실 겁니다.”

이런 주인 밑에 있으면 이런 큰돈을 벌 기회가 또 올지도 몰랐다! 아까워서라도 속신할 수가 없었다.

감격해 두서없이 떠들어 대는 두 마마를 보자 집 안에 있던 사람들이 한바탕 웃었다.

제민이 혀를 쏙 내밀며 주운환에게 물었다.

“제 몫도 있어요?”

“있지요.”

주운환의 대답을 듣고 제민은 헤헤 웃으며 다가갔다.

“아기 이름은 뭐라고 지었어요?”

“주요. 빛날 요曜예요.”

엽연채가 대신 대꾸하며 발그레한 아기의 얼굴을 살짝 어루만졌다.

“해가 뜨면 빛이 나잖아. 태양처럼 높이 올라 밝게 비추라는 뜻으로 지었어.”

이름을 수십 개도 더 지었다가 그중에서 아들 이름과 딸 이름을 하나씩 골라 두었다. 아들을 낳았으니 주요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때 나 의정이 들어와 다시 아기를 살피고 엽연채의 맥을 짚어 본 후 방 밖에서 약방문을 써 내려갔다.

“의정은 다시 폐하를 따라가야 하지 않소이까?”

주운환이 묻자 나 의정이 빙긋 미소 지으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후야가 가신 후 폐하께서 저더러 쫓아가 보라 하셨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이렇게 빨리 올 수 있었겠습니까?”

주운환은 조금 놀랐다. 그러고 보니 여양이 밖으로 나가자마자 나 의정과 함께 돌아왔었다. 알고 보니 도중에 만나 데려온 것이었다.

“폐하께서 부인께 문제가 생겼으니 조산이든 다른 일이든 제가 보살피라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폐하께서 도성에 돌아오시면 다시 이야기하라 하셨고요.”

나 의정은 말을 하면서도 손을 멈추지 않아 약방문을 완성했다.

“우선 이 약들을 드십시오.”

“고맙구려, 의정.”

주운환은 나 의정에게 받은 약방문을 여양에게 주어 내보냈다.

그리고 여한을 도성으로 보내 집을 볼 소월 하나만 남기고 엽연채를 모시는 여종과 어멈들을 모두 이쪽으로 불러왔다. 미리 준비한 유모도 데려왔다.

다행히 별장의 수입이 많지 않다뿐이지 집은 커서 그 많은 사람이 와도 지낼 곳은 넉넉했다.

혜연은 방으로 들어가 은자를 가져다 산파에게 주었다. 주운환이 하사한 육십육 냥의 은자를 먼저 주고 아기를 받은 수고비도 통 크게 주었다. 주운환이 아기도 잘 태어나고 엽연채도 무사할 수 있게 해 준 것이 고맙다며 무려 백팔십팔 냥이나 추가로 더 챙겨 준 것이다.

산파는 그야말로 희희낙락하며 몇 번이고 감사를 표하고 떠났다.

* * *

황릉은 도성에서 80리 정도 떨어져 있었다. 장례 행렬은 끝이 없었고 정선제의 관도 너무 무거워 행렬은 느릿느릿 이동했다.

황릉에 도착한 다음에도 절차가 길어 모두 마치니, 보름이 지나서야 행렬은 도성 근교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저 멀리서 주운환과 나 의정이 경위영을 이끌고 행렬을 마중하러 나왔다.

주운환과 나 의정은 말에서 내려 양왕 앞에 무릎 꿇었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어가에 앉은 양왕이 손을 들었다.

“일어나라.”

주운환은 일어서지 않고 대답했다.

“폐하를 황릉까지 모시지 못하였으니 소신은 죽어 마땅합니다.”

양왕이 손을 휘저었다.

“우리 사이에 무슨 그런 걸 따지느냐? 참, 부인은 어떤가?”

“폐하의 하해와 같은 은혜로 무사히 순산했습니다.”

“낳았느냐? 아들인가 딸인가?”

“아들입니다.”

“오? 자, 운환이의 아들을 보러 가자꾸나.”

양왕이 큰 소리로 웃자 잠시 얼떨떨해하던 주운환도 웃었다.

“네!”

양왕이 용가에서 내리자 환관이 곧 말을 준비했다. 양왕은 말에 올라타 채찍을 세게 휘둘렀다.

“이랴!”

말이 달려 나가자 주운환과 부하들이 그 뒤를 따랐다.

“폐하! 폐하!!”

뒤따르던 유 재상과 다른 부하들은 깜짝 놀라 황급히 마차를 돌려 뒤쫓아갔다.

주운환의 별장은 그다지 멀지 않아 반각도 지나기 전에 양왕 일행은 그곳에 도착했다.

수화문에 도착한 이들은 말에서 내려 안으로 들어갔다. 이 별장은 삼진원식 가옥이라 수화문을 들어서면 바로 본채와 뜰이 나왔다.

방 안에 들어가자 약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무슨 일이지?”

“요가 칠삭둥이라 많이 허약합니다. 며칠 동안 열이 났는데 아직 다 내려가지 않았습니다.”

양왕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묻자 주운환이 이리 답했다.

아이는 열이 나고, 토하고… 하루도 걱정이 없는 날이 없었다. 나 의정의 말대로 몹시 허약했다. 부부는 한시도 아기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양왕이 돌아보니 주운환은 확실히 초췌해지고 수척해진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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