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72화
누군가 그녀를 찾으러 간다는 말에 엽연채는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배가 너무 아파서 그쪽에만 신경을 쓸 수가 없었다. 양수가 터지자 배 속의 아기가 계속 부딪치고 빙글빙글 도는 게 느껴졌다.
별장에 도착한 엽연채는 거의 의식이 없었다.
주운환이 엽연채를 안고 황급히 별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이곳은 엽연채가 혼수로 가져온 별장이었다. 예전에는 종종 가족들과 함께 찾아왔고, 가을에 대나무술을 빚기도 했던 그 별장 말이다.
마차가 대문 안으로 급히 들어섰다.
여종들과 수다를 떨고 있던 두 마마는 흑백 비단으로 감싼 마차가 빠르게 수화문을 들어서는 걸 보며 급히 뛰어나갔다. 두 마마가 따라잡기도 전에 주운환은 이미 마차에서 내려 엽연채를 안아 들고 처소 안으로 들어갔다. 걸음마다 핏방울이 떨어졌다.
“연채야…….”
“마님!”
제민과 혜연도 울면서 그 뒤를 쫓아갔다.
“무슨 일이에요?”
이 광경을 본 두 마마는 깜짝 놀랐다. 게다가 피까지 보였다. 그들도 주인의 임신 소식은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지금 이 모습을 보자 놀라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유산입니까?”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두 마마!”
혜연이 고개를 돌려 소리를 치자 두 마마는 얼른 말을 덧댔다.
“아니, 저는 불길한 말을 하는 게 아니라… 그런 것 같아서.”
두 마마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주운환은 엽연채를 안고 급히 침실로 들어섰다.
주운환이 후작에 책봉되자 아랫사람들은 엽연채를 더욱 극진하게 대했다. 이 별장에서도 갑작스러운 엽연채의 방문에 대비해 매일같이 주인의 침실을 청소하고 있었다.
먼지 하나 없는 침실에 들어간 주운환이 엽연채를 역시 깨끗한 침상에 눕혔다. 그러나 엽연채의 얼굴은 이미 핏기가 가시고 식은땀이 멈추지 않아 이대로 꼭 숨이 끊어질 것만 같았다.
“부인… 부인!”
주운환이 그녀의 얼굴을 살짝 두드리다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방금 누가 유산이라고 했느냐?”
두 마마가 어두워진 얼굴로 앞으로 한 발짝 나섰다.
“그게… 접니다.”
“와서 부인을 살펴보거라.”
주운환이 말을 하며 자리를 비켰다. 그러면서 뒤에 선 여양을 돌아보았다.
“가서 나 의정을 불러오고 산파를 찾아와라!”
“알겠습니다.”
여양이 급히 뛰어나갔다.
정선제의 출상이니 정선제의 ‘벗’인 나 의정도 당연히 행렬에 함께하고 있었다.
“부인, 부인!”
주운환은 다시 엽연채 곁으로 와 그녀의 손을 꼭 붙들었다. 그의 눈에서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
두 마마는 엽연채에게 이불을 덮어 주고 아래쪽을 걷어 살펴보더니 하얗게 질렸다.
“나리.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방법을 생각해라!”
주운환이 차갑게 명하자 두 마마는 떨며 식은땀을 흘렸다. 비록 산파는 아니지만 자신도 아이 셋을 낳았고, 오래전 온씨가 엽연채 남매를 출산할 때 곁을 지켰기 때문에 출산에 대해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것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후작 부인이다.
‘만에 하나 잘못되었다가는…….’
하나 지금 이 자리에 경륜이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니 나설 수밖에 없었다.
“혜연이는 가서 물을 끓여 오고, 청유는 가서 인삼을 편으로 잘라 챙겨 오고 소옥이에게도 인삼탕을 끓이라고 해라.”
소옥은 별장의 여종이었다.
두 마마의 분부에 따라 혜연과 청유는 지체할 새 없이 뛰어나갔다.
청유가 막 인삼을 가져오는데, 발소리가 들리더니 나 의정이 약상자를 지고 뛰어 들어왔다.
“의정.”
주운환은 나 의정을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부인을 좀 봐 주시게나.”
“네.”
나 의정이 침상으로 다가가 엽연채의 맥을 짚더니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게… 부인이 많이 놀라 양수가 터졌습니다. 지금 바로 아이를 낳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합니다.”
나 의정은 말을 하는 동시에 엽연채에게 침을 놓았다.
청유가 인삼 조각을 주운환에게 건네자 한껏 어두운 얼굴로 엽연채의 손을 꼭 잡고 있던 그가 인삼 조각을 그녀의 입에 넣어 주었다.
엽연채가 곧 깨어났다.
“부인.”
“부군…….”
여전히 창백한 엽연채는 숨을 크게 몰아쉬면서 배를 더듬었다.
“아앗……!”
“아파요? 겁내지 말아요. 곧 좋아질 거예요.”
주운환이 다급하게 위로했으나 엽연채는 뜻밖에도 아프지 않다고 했다.
“아니… 안 아파요…….”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입술을 깨물었다.
“그게… 그러니까…….”
배 속에 있는 것들이 거침없이 흘러내렸다.
“안 아프면 됐어요.”
상황을 깨닫지 못한 주운환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으나 나 의정은 안색이 단번에 나빠졌다.
“아프지 않습니까? 후야, 나가 계십시오!”
“의정, 무슨 일이에요……?”
엽연채는 나 의정의 얼굴빛을 보고는 놀라서 울기 직전이었다.
“왜 그러는데요?”
나 의정은 고민됐으나 알려 주지 않으면 그녀가 더욱 겁낼 것을 알았기에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아기가 움직이지 않는 것은, 양수가 다 빠져나와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엽연채는 눈앞이 캄캄해지고 하늘이 빙빙 도는 것 같았다.
“산파가 왔습니다.”
이때, 청유가 밖에서 아뢰더니 예순이 넘어 보이는 노파를 데리고 들어왔다.
그 산파는 침상으로 다가와 이불을 걷고 엽연채의 상황을 살폈다. 한동안 이리저리 만져 보더니 차갑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양수도 거의 다 빠지고 아기도 거꾸로 서 있어요. 이제 겨우 7개월이라니 너무 약합니다. 지금 출산하면 너무 위험해요.”
“그러면 일단 배 속에 두고 낳지 않아도 되는 것 아니오?”
“아닙니다, 후야.”
주운환을 이해시키는 나 의정의 얼굴이 더없이 딱딱했다.
“양수가 다 흘러나왔으니 아기가 죽으면 그때 빼낸다는 말입니다. 그게 부인에게 좋습니다.”
산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제일 안전해요.”
주운환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시선이 하얗게 질린 엽연채의 얼굴과 그녀의 배 속에서 계속 흘러나오는 것을 오갔다. 흘러나오는 것이 바로 아기의 생명이란 얘기였다!
한편, 엽연채는 고개를 저으며 고집을 부렸다.
“낳을 거예요. 낳게 해 줘요. 할 수 있잖아요.”
경험이 풍부한 의정과 산파이니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방법은 있지요. 하지만 모험이에요. 더 들으셔 봤자 거북하시기만 하겠지만, 제대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조금의 실수라도 있으면 부인까지… 그리고 달수가 차지 않아 낳는다 해도 잘 크리라는 보장이 없어요.”
“그럼 낳지 말아요.”
주운환은 엽연채의 손을 꼭 잡았다. 그도 아기를 많이 아껴 마음이 아팠지만, 지금 제일 중요한 건 부인이다!
엽연채는 고개를 울면서 흐느꼈다.
“낳을 거야! 낳을 거예요! 부군은 나가요, 어서!”
주운환의 몸이 미세하게 떨렸다.
“부인께서 낳으시겠다면 낳아야지요. 우리의 도움 없이 부인께서 억지로 출산하려 하시면 그게 훨씬 위험합니다.”
나 의정의 말을 들은 주운환의 눈가가 붉어져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소.”
주운환은 고개를 숙여 축축이 젖은 엽연채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부인… 괜찮을 거예요. 아기도 무사할 거예요.”
“네.”
엽연채가 고개를 끄덕이자 산파는 주운환을 재촉했다.
“후야는 나가 계십시오. 부인께서 아기를 낳으실 겁니다…….”
“같이 있겠소.”
“대인이 계시면 부인이 긴장해요. 부군에게 그런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으실 거고요. 부인께서 대인께 신경을 쓰면 더 위험해요. 그리고… 저도 긴장됩니다!”
주운환이 지키고 서 있으면 부담이 너무 크지 않은가.
“안심하세요. 제가 지켜보고 있을게요.”
제민이 나서자 잠시 생각하던 주운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의정, 만약 아이를… 그래도 부인에게 절대 무슨 일 생기면 안 되오!”
“네. 약속드리겠습니다!”
나 의정은 고개를 끄덕였고 옆에 있던 산파는 내심 감탄했다. 지금까지 보아 온 남편들은 다 아이를 택했기에 후야의 아내를 아끼는 마음에 놀란 것이다.
주운환은 밖으로 나와 복도에 서서 나무 문의 문양만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안에서는 한동안 아무 기척이 없다가 혜연이 약을 한 그릇 들고 들어가자 곧 고통에 찬 엽연채의 비명이 들렸다.
주운환은 이토록 고통스러운 그녀의 비명을 처음 들어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는 문에 바짝 붙어 서서 두드렸다.
“부인, 부인!”
“소리치지 말아요, 괜찮아요!”
제민이 안에서 소리쳤다. 하지만 그녀도 놀라서 까무러칠 지경이었다.
방금 가져온 것은 분만을 촉진하는 약이었다. 한 사발 들이켜기 무섭게 배 속의 아기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기가 거꾸로 있어서 이대로 낳을 수는 없었다. 발부터 나오면 엽연채와 아기의 생명 모두 위험했다.
산파는 그야말로 젖 먹던 힘까지 쏟아가며 죽어라 엽연채의 배를 밀었다.
보고 있는 제민과 혜연은 너무 놀라서 눈물까지 흘렸다. 엽연채가 아이를 갖고부터는 언제나 조심스럽게 아기를 보호해서 배에 어떤 충격도 가지 않게 했다. 그런데 지금 산파가 있는 힘껏 배를 누르고 밀어 대니 그녀들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아아악!”
“부인, 참으세요! 참아요! 아기가 돌고 있어요!”
산파는 굳은 얼굴로 소리쳤고 엽연채는 새파란 얼굴로 겨우 고갯짓만 했다. 너무 아파 숨도 쉬기 힘들었다. 입술도 진작에 모두 찢어져 버린 후였다.
“피……!”
이때, 혜연의 얼굴이 하얘졌다. 피가 철철 흘러 엽연채가 그대로 죽어 버릴 것만 같았다.
“인삼탕을!”
나 의정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제민이 재빨리 엽연채에게 인삼탕을 먹였다.
주운환은 복도에 놓인 의자에 앉아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를 듣고 있었다. 청유가 피로 가득한 대야를 들고 나오자 얼굴은 더더욱 새하얗게 변했다.
어느덧 해가 저물었다. 여양이 음식을 가져왔지만 주운환은 입도 댈 수 없었다. 그동안에도 울부짖는 소리는 커졌다 작아지고, 다시 커지고 또 작아졌다.
저녁 술시戌時(오후 7시~9시) 반 정도 되었을 때 안에서 놀라는 소리가 들렸다.
“부인! 부인!”
주운환이 황급히 문을 두드리며 외치니 ‘쿵’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청유의 창백한 얼굴에 땀이 가득 맺혀 있었지만,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한 표정이었다.
“축하드립니다, 나리. 마님께서… 공자님을 출산하셨습니다.”
“아, 태어났구나……! 부인은?”
주운환은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허겁지겁 방으로 들어갔다.
들어가자 비릿한 피 냄새가 물씬 풍겼다. 주운환은 굳은 표정으로 바깥방과 침실 사이의 주렴을 걷고 성큼성큼 걸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