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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761화 (761/858)

제761화

엽연채가 가까이 가 보니 조앵기의 본래도 작은 몸은 침상에 붙은 것처럼 왜소해져 있었다. 조막만 한 얼굴은 젖살도 보이지 않을 만큼 수척해져 뾰족한 턱만 남았으며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로 두 눈을 꼭 감고 있었다. 그나마 눈가를 덮은 긴 속눈썹이 계속 떨리는 걸 보니 어느 정도 정신은 있는 듯했다.

“음…….”

조앵기는 신음과 함께 눈을 뜨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앵기야……!”

엽연채의 걱정스러워하는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지, 조앵기는 그저 입술을 꼭 깨물고 고개를 가로젓더니 다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머리가 한쪽으로 떨어지더니 이마에서 비 오듯 땀이 흘렀다.

주 선생이 재차 맥을 짚다 움찔하더니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엽연채의 염려가 한층 깊어지는 찰나, 갑자기 방 안에 ‘톡톡’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리가 희미하게 퍼졌다. 이어 조앵기가 누워 있는 침상의 이불 밑으로 피가 새어 나왔다.

“무슨 일이에요?”

엽연채가 놀란 소리를 내자 양왕도 고개를 돌려 벌컥 이불을 젖혔다. 그 순간, 엽연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조앵기의 치마가 피로 흥건했다.

엽연채는 너무 놀라 그대로 굳어 버렸다. 조앵기는 한사코 고개를 돌리고 이불을 뒤집어쓰며 안쪽으로 몸을 웅크렸다.

화가 난 양왕이 소리쳤다.

“이 천한 것, 뭐 하는 거냐? 움직이지 말고 가만있거라!”

양왕은 한 손으로 조앵기를 누르고 주 선생을 향해 소리쳤다.

“살려 내라!”

주 선생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전하도 아시다시피… 불가능합니다.”

양왕의 얼굴에 그림자가 졌다.

“진작 알고 있었으면서 왜 말하지 않았더냐!”

양왕이 멱살을 움켜쥐자 주 선생은 창백한 얼굴로 한 자 한 자 곱씹듯 말했다.

“알면 뭐가 다르겠습니까, 어차피… 지킬 수 없는 것을요.”

양왕이 주 선생을 내동댕이쳤다.

“약을 지어 와 반드시 살려 내라!”

말을 마친 양왕은 소매를 세차게 휘둘렀다. 그러고는 잠시간 침상 위의 조앵기를 차갑게 바라보다 방을 나섰다.

주운환도 백지장처럼 질린 엽연채를 부축해 방에서 나왔다.

“여기 있지 않는 것이 좋겠군요.”

“어떻게 된 일이에요?”

엽연채는 이런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왕비 마마는…….”

유산한 걸까?

주운환이 엽연채를 품에 안고 위로했다.

“놀라지 말아요, 괜찮을 겁니다.”

배 속의 아이도 어머니의 충격을 느낀 듯 이리저리 움직였다.

“앉아요.”

주운환이 엽연채를 부축해 정원 등나무 의자에 조심히 앉혔다.

“일단 진정합시다. 지금 부인이 해 줄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너무 놀라면 아기에게 해로워요.”

엽연채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녀 자신도 배 속에 아기를 가지고 있는지라 조앵기의 그런 모습을 보는 것이 너무나 힘들었다.

이때, 언동이 다가와 말을 전했다.

“진서후 대인, 전하가 서재로 부르십니다.”

“알겠다.”

주운환은 그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이고는 엽연채의 머리를 토닥였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리십시오. 혜연, 마님을 잘 보살피거라.”

“네.”

혜연이 얼른 대답하자 주운환이 자리를 벗어났다.

잠시 후, 엽연채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님, 이런 일은 보지 마세요!”

혜연이 다급하게 만류했으나 엽연채는 마음을 이미 먹은 후였다.

“난 괜찮아. 보지 않으면 더 괴롭고 걱정될 것 같아.”

혜연은 머뭇거리다가 더는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이미 그 모습을 본 후였다. 여기서 혼자 애를 끓이고 있느니 차라리 가서 보는 편이 더 나을 것 같았다.

두 사람이 방에 들어가니 청아한 말리화 향이 피워져 있었다. 엽연채가 침상으로 다가가니 벌써 시녀들이 이불을 갈아 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조앵기는 여전히 눈을 꼭 감고 안쪽으로 고개를 돌린 채 시름시름 앓고 있었다.

엽연채는 침상 곁에 앉아 나지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앵기야.”

조앵기가 창백한 얼굴을 돌려 엽연채를 보더니 주룩주룩 눈물을 흘렸다.

“연채… 연채야……. 흐엉! 드디어 만났구나!”

조앵기가 몸부림치며 안기자 엽연채는 깜짝 놀랐다.

“함부로 움직이면 안 돼, 몸을 살펴야지.”

조앵기는 닭똥 같은 눈물을 떨구면서도 고개를 세차게 흔들며 엽연채에게 더, 더 머리를 묻었다. 엽연채도 하는 수 없이 자신의 다리에 그녀의 머리를 올려놓고 조심스럽게 쓰다듬었다.

“걱정 마, 이제 돌아온 거야.”

조앵기는 그녀를 안고 울었다.

“연채야… 토자포가 먹고 싶어…….”

엽연채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방금 유산했는데 이런 때에도 토자포 생각이 난단 말이야?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잠자코 혜연을 불렀다.

“청유를 시켜 회미천하에서 사 오라고 하렴. 거기가 궁에서 만든 것과 제일 비슷해.”

“네.”

혜연이 나갔다.

토자포를 사러 간다는 이야기를 듣자 조앵기는 그제야 훌쩍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씩만 먹어. 이런 때에는 몸조리를 잘해야 해.”

조앵기는 눈을 감고 엽연채의 옷을 꼭 쥐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싫어… 이번이 다섯 번째였어……. 늘 사라지는 걸……. 아기는 더 이상 갖고 싶지 않아…….”

그녀의 가냘픈 얼굴 위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다섯 번째? 엽연채는 놀라 눈을 찢어질 듯이 크게 떴다.

“어떻게 된 거야?”

“처음엔 열세 살 때였어……. 그 사람이 다른 여자랑 붙어 지낼 때 너무 속상해서 그 사람 옷자락을 붙들고 못 가게 했더니 나를 밀쳐서 넘어뜨렸어…….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마마도 놀라고, 나도 무서웠어……. 이후에 아기를 가졌었다는 말을 듣기 했지만 그때는 어려서 아무렇지 않았어.

열네 살 때 또 생겼어. 그 2년 동안은… 그 사람 성격이 제일 안 좋을 때라 매일같이 자려는 통에 잃었어. 열여섯 살에 다시 생겼을 때는 낳고 싶었지만 저절로…….”

엽연채는 그 말을 들으면서 놀랍기도 하고 화도 났다. 양왕도 당시엔 어려서 뭘 몰랐겠지만, 조앵기는 더 어렸으니 두 번의 유산으로 몸이 크게 상한 것 같았다. 그래서 아기를 가져도 지키지 못하는 것이고 양왕이 스물여섯이 되도록 슬하에 자식이 없는 것이었다.

엽연채의 몸이 떨려 왔다. 그 시간 동안 얻었다가 놓치고, 다시 얻었다가 또다시 놓치고… 만약 자신이라면 벌써 미쳐 버렸을 것이다.

그때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시녀 하나가 백자 그릇을 올린 쟁반을 들고 들어오자 쓰고 진한 약 냄새가 몰려왔다.

“왕비 마마, 약 드십시오.”

조앵기는 몸을 웅크리고 엽연채에게 기대 고개를 저었다.

“그냥 거기다 내려놓아.”

“앵기야, 어쨌든 약부터 먹자.”

엽연채가 나지막이 권했지만 조앵기는 몸을 한껏 웅크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왕비 마마, 소인을 난처하게 하지 마시고 어서 약을 드십시오.”

시녀가 다시 권유했지만 조앵기는 모로 누워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엽연채도 몇 번이나 권했지만, 떨리는 조앵기의 몸을 보고 더 이상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결국 시녀는 약을 내려놓고 나갔다.

얼마 후. 무거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 엽연채가 고개를 들어 보니 보라색 망포로 갈아입은 양왕이 굳은 얼굴로 들어왔다. 엽연채는 일어나 허리를 숙였다.

“전하.”

“밖에서 운환이 널 찾는다.”

양왕이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

“네.”

엽연채는 걱정스러운 눈으로 조앵기를 한번 보고는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나갔다. 조앵기는 떨리는 몸으로 돌아누우며 그녀를 불렀다.

“연채야…….”

엽연채가 돌아보자 이불 속의 조앵기는 창백한 얼굴을 반쯤 드러내 놓고 있었다. 눈물이 잔뜩 고여 속눈썹까지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그런 채로 이불을 꽉 붙들고 저를 보며 흐느끼고 있었다.

엽연채는 마음이 편치 않았다. 하지만 양왕이 조앵기를 보러 왔다는 건 적어도 그 마음속에 조앵기가 있다는 뜻이었다. 더구나 주운환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니 지금은 그녀와 헤어지는 게 맞을 듯했다.

엽연채의 뒷모습이 멀어지자 조앵기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목 놓아 울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양왕의 얼굴은 더욱 일그러졌다. 침상으로 성큼성큼 다가와 앉아 이불을 걷어 내고 차갑게 말했다.

“뭐 하는 짓이냐?”

그러나 조앵기는 두 눈을 감고 그를 전연 모른 척했다. 아름다운 양왕의 얼굴이 얼음장처럼 굳더니 그는 약을 들어 숟가락으로 떴다.

“자, 마시거라.”

조앵기의 입가에 약을 들이댔지만 그녀는 홱 하고 고개를 돌렸다.

“마시래도!”

익숙한 약 냄새가 코끝을 스치자 조앵기는 몸을 더욱 오그린 채 바들바들 떨었다. 이런 약을 벌써 몇 년이나 먹었는지 모른다. 그러곤 몸조리를 한 후에 임신을 하고 다시 잃고… 그만하고 싶었다…….

양왕은 조앵기가 자신에게서 고개를 돌리자 대로해 그녀의 몸을 돌려 약을 입에다 억지로 밀어 넣었다. 조앵기는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발버둥 쳤다.

“싫어요……! 우욱……! 콜록콜록… 흐어엉……!”

손을 뻗어 약사발을 밀어내자 그릇이 엎어지면서 양왕의 몸에 약이 다 쏟아졌다.

“이 몹쓸!”

양왕이 벌떡 일어나 그녀의 멱살을 잡았다.

“아악……!”

조앵기는 연신 흐느끼면서 그의 손을 붙들었다.

“전하!”

밖에서 언동이 급한 목소리로 불렀다.

“태자… 아니, 모정건의 잔당들이 그를 빼냈습니다.”

굳어진 양왕의 눈빛이 잠시 방황하다가 조앵기에게 멈췄다. 두 눈을 꼭 감은 채 우느라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모습이 버림받은 새끼 고양이처럼 가련하고 불쌍했다.

그러나 언동이 밖에서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다. 짙은 안개가 드리운 양왕의 눈이 조금씩 맑아지더니 곧 얼음장처럼 차가워졌다.

“하. 내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양왕이 손을 놓자 조앵기는 침상으로 털썩 떨어졌다. 양왕은 차가운 한마디만 남기고 나갔다.

“마음대로 하거라!”

조앵기는 가냘픈 몸을 있는 대로 움츠린 채 흐느끼고 또 흐느꼈다.

한편, 엽연채가 평정소축에서 나오니 주운환이 문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괜찮아요?”

그는 엽연채를 보자마자 다가가 그녀의 허리를 안아 부축했다. 엽연채는 고개를 흔들며 맥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어요.”

잠시 조용히 있던 주운환이 말했다.

“배고파요. 우리 집에 가서 밥 먹어요.”

“네.”

엽연채는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이 수화문에 도착하자 청유가 작은 음식 상자를 들고 뛰어왔다.

“마님.”

엽연채는 청유가 든 음식 상자를 보고 살짝 놀랐다.

“이제야 오는구나.”

청유는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토자포가 없는데 묘자포도 괜찮을까요? 맛은 똑같아요!”

엽연채는 얼굴을 살짝 찡그렸으나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거라도 가져다주렴! 꼭 전해 줘야 해.”

“네.”

청유는 급히 평정소축으로 향했다. 그녀는 이불 속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는 조앵기를 보더니 희미하게 한숨을 쉬고 입을 뗐다.

“왕비 마마, 저희 셋째 마님께서 보내신 전병입니다.”

그러곤 침상 곁 낮은 탁자에 상자를 올려놓고 방을 나섰다.

조앵기는 엽연채가 토자포를 사 보냈다는 말을 듣고 힘겹게 이불 속에서 기어 나와 상자를 열었다. 전병 세 개가 들어 있었는데, 토자포가 아닌 묘자포였다.

조앵기는 고양이 모양의 전병을 보자 불현듯 백주에서 만난 새끼 고양이가 떠올랐다. 심장이 갈가리 찢기는 듯한 절망이 덮쳐 오자 그녀는 다시 이불 속으로 들어가 정신을 잃고 잠에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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