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57화
도성의 분위기는 점점 무겁게 내려앉았고 백성들은 저마다 태자의 반역이 얼마나 불효한 짓인지 이야기했다.
해가 뜨고 달이 지고, 느리던 시간도 조금씩 조금씩 흘러갔다.
이튿날 오전, 사시巳時(오전 9시~11시) 일각. 저 멀리 한 무리의 기마 부대가 굉음을 내며 달려왔다.
성문을 지키던 금위군은 소리를 듣고 일제히 고개를 들었다. 그들이 선두의 기마병들을 발견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곧 시커먼 군대가 검은 구름처럼 온 성을 둘러쌌다. 금위군은 낯빛이 변했다.
“진서후가 돌아왔다!”
상관수는 성루 위에 서 있다 어두워진 얼굴로 소리쳤다.
“앞문을 닫아라!”
우르르르! 성문은 굉음을 내며 굳게 닫혔다.
잔뜩 긴장한 채, 상관수는 멀리서 다가오는 군대를 지켜보았다.
적염전갑을 입고 긴 머리를 올려 묶은 주운환이 선두에서 말을 달렸다. 말의 역동적인 움직임에 그의 머리, 눈썹도 휘날렸다. 그렇게 주운환은 엄청난 기세로 상관수의 코앞까지 다가왔다.
주운환이 성문 밖에 멈춰 서자 경위영 십만 대군도 따라 멈췄다.
주운환은 채찍을 든 채 위를 올려다보았다.
“상관 통령, 어떻게 하시려는 겁니까?”
성루 아래의 장군은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소년이었으나, 상관수는 간담이 다 서늘해졌다. 그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라 냉랭하게 말했다.
“물어볼 것이 있소. 진서후가 경위영 군사 십만을 이끌고 도성에 진입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오?”
주운환은 냉소를 흘렸다.
“경위영은 황성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대입니다! 황제 폐하의 안전을 보호하는 군대이지요. 폐하가 위험에 처하셨으니 당연히 제가 군사를 이끌고 궁에 들어가 폐하를 호위하려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러나 상관수는 주운환의 당당하고도 위험할 만큼 아름다운 얼굴을 보자 그가 정말 황제를 구출하러 왔다는 말을 조금도 믿을 수 없었다. 상관수가 아무런 대답도 않자 주운환의 수려한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웠다.
“상관 통령, 어째서 성문을 열지 않으십니까? 저를 믿지 못하시겠습니까? 구출이 지체되면 상관 통령께서는 그 큰 죄를 어찌 감당하시겠습니까?”
상관수의 표정이 변했으나 그는 여전히 침묵했다. 급할 것이 없는 주운환은 차갑게 웃었다.
“좋습니다. 보아하니 상관 통령도 역적과 한패인가 보군요. 그렇다면 성문을 최대한 굳게 걸어 잠그십시오. 하나 폐하를 지키는 일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으니 저는 상관 통령과 금위군의 시체를 밟고 갈 수밖에 없습니다!”
상관수의 몸이 얼어붙었다.
“감히……!”
“왜요?”
주운환은 손에 든 채찍으로 왼손을 살짝 두드리면서 보일 듯 말 듯 웃었다.
“상관 통령,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성문을 부수고 여러분의 시체를 밟고 지나가는 데는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상관수는 창백한 얼굴로 부들부들 떨었다. 그 스스로도 겁이 난 것인지 화가 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자신이 주운환을 전혀 믿지 않는다는 것뿐! 아무리 보아도 주운환은 정선제의 충신이 아닌 것 같았다!
‘하나 막는다고 막아질까! 그리고…….’
유 재상과 다른 사람들의 말처럼 주운환이 태자 쪽 사람이라 해도 막을 수 없었다. 더욱이 태자 쪽 사람이 아니라면? 구출 작전을 지체시켰다가 누가 그 책임을 질 것인가?
‘지금 주운환이 정말로 황제를 구출하러 왔다면, 만약 내 억측 때문에…….’
마음을 정한 상관수는 손을 흔들었다.
“문을 열어라!”
쿠구궁! 묵직한 굉음이 나며 천천히 성문이 열렸다.
“이랴!”
주운환이 손에 든 채찍을 세차게 내려치자 그의 준마가 길게 울며 내달렸다.
“안심하십시오, 상관 통령. 제가 황제 폐하를 구출하고 태자를 없앨 것입니다!”
상관수는 순간 어안이 벙벙했다. 태자를 없앤다니? 그럼 태자의 사람이 아니란 건가? 상관수가 주저하는 얼굴로 서 있는 동안, 저 아래 검은 군대는 일사불란하게 성문을 넘어 진격했다.
상관수는 황급히 성루에서 내려가 말에 올랐다.
“궁으로 간다! 이랴!”
그가 채찍을 세차게 휘두르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그 시각. 도성 사람들은 태자가 황위를 내놓으라고 궁에서 황제를 협박하고 있단 소식이 사실이네 아니네, 여전히 떠들어 대고 있었다. 아니, 한층 더 그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는 것처럼 엄청난 말발굽 소리가 들리더니 온 땅이 진동했다.
거리에 좌판을 펼쳤던 상인들은 혼비백산하여 좌판을 안으로 옮기기 바빴다. 만둣국 가게에서는 두 명이 탁자에 앉아 만둣국을 먹다가 화들짝 놀라 그릇을 들고 가장자리에 붙어 몸을 피했다.
여럿이 궁금함을 참지 못하고 목을 빼고 내다보니 저 멀리 시커먼 군대가 쏜살같이 달려오고 있었다. 영민하고 용맹한 소년 장군, 진서후가 선두를 지키고 있었다.
“와아아아! 진서후가 돌아왔다!”
“저렇게 많은 사람을 끌고 왔어!”
“경위영의 십만 대군이야!”
“십만을 전부 데려온 거야?”
“당연하지! 폐하의 생명이 위험한데 당연히 남김없이 총동원해야지!”
“우와!”
군대는 바람처럼 눈앞을 스쳐 갔다. 끝없이 이어지는 검은 군대는 승천하는 용처럼 태산도 흔들 듯한 위풍당당한 기세로 달려나갔다.
십만 대군은 성문을 들어서자 곧바로 대명가를 지나 황궁으로 전진했다. 대명가에 사는 온씨도 요란한 인마 소리를 듣고 황급히 길가에 나가 확인했다.
“저게 내 사위냐? 어디 있더냐?”
“진서후 대인은 벌써 지나갔어요. 제일 앞에 있는걸요! 걱정 마세요, 마님.”
하인의 대답에 온씨는 가슴을 꽉 부여잡았다.
“그래. 그래야지.”
십만 대군, 과장이 아니라 실제 숫자였다. 주운환은 벌써 궁문 앞에 도착했지만, 말미의 병사들은 아직도 성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주운환은 궁문 밖에 서서 크고 웅장한 궁전을 바라보며 입꼬리를 살짝 움직였다.
“여양, 장씨에게 사만 명을 데리고 따라오라고 해라! 다른 사람들은 조교에게 맡겨 황궁 전체를 포위하도록! 가자!”
주운환은 채찍을 휘두르며 궁으로 들어갔다.
“가자! 젊은 후야께서 큰일을 하신다! 껄껄껄!”
장씨와 수하들이 크게 웃으며 병사를 이끌고 그 뒤를 따랐다.
문을 지키던 금위군은 번개처럼 나타난 주운환과 그 뒤를 따르는 시커먼 군대를 보자 표정이 변해 길을 내주었다. 상관수가 미리 ‘주운환이 궁에 도착할 때까지 내가 다른 명을 내리지 않으면 길을 터 주거라.’ 하고 언질을 해 두었던 것이다.
아무도 주운환과 그 부하들을 막지 않아 궁 전체가 텅 비어 있는 것만 같았다.
그 시각, 대전.
“보고 올립니다!”
금위군 하나가 뛰어 들어왔다.
“진서후가 궁에 들어왔습니다!”
유 재상과 몇몇의 얼굴빛이 변했다.
“돌아왔구나! 상황은 어떠냐?”
금위군은 순간 난처해졌다. 상황이 어떠냐고? 정녕 몰라서 묻는단 말인가?
“수만 명을 이끌고 궁으로 들어왔습니다.”
“갑시다!”
유 재상과 대신들은 빠른 걸음으로 나갔다. 하나 그들이 이제 막 대전 입구에 도착했을 때, 이미 한 무리의 병사들이 그들 앞을 지나 정선제의 침궁으로 빠르게 향하고 있었다.
유 재상은 멈추지 않는 주운환을 보자 창백한 얼굴로 황급히 소리쳤다.
“갑시다! 폐하의 침궁으로 갑시다.”
* * *
정선제의 침궁.
정선제와 채결은 의자에 묶인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
정 황후는 침상에서 잠이 들어 있었고, 그 곁의 태자는 침상에 기대어 역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계는 조용히 서성이며 밖의 동정을 유심히 듣고 있었다. 그때 불현듯 땅이 흔들리는 듯 웅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란 이계는 바로 안으로 달려 들어가 태자를 흔들어 깨웠다.
“태자 전하! 밖에서 큰 소리가 들립니다.”
태자는 황급히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정 황후도 침상에서 후다닥 내려왔다.
“무슨 일이냐?”
유심히 들어 보니 말발굽 소리와 발소리, 그리고 고함 소리가 들렸다. 이계와 정 황후의 표정이 변했다.
정선제와 채결도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은 차렸지만 지난 며칠간 심하게 고생한 탓에 여전히 축 늘어져 있었다. 정선제는 며칠 새에 훨씬 수척해진 상태였다.
태자는 잠시 멈칫하다 반가워했다.
“진서후다!”
정 황후는 믿지 못하는 것 같았다.
“정말 진서후겠느냐?”
“당연하지요. 소리를 들어 보니 밖에 있는 것은 군대가 틀림없는데 금위군일 리는 없습니다. 저 늙은이가 우리 손에 있는 이상 그들은 경거망동할 수 없으니까요. 지금 상황에서 이렇게 떠들썩하게 나타날 수 있는 것이 진서후 말고 누가 있겠습니까?”
“맞아! 이계, 밖을 좀 살펴보아라.”
정 황후가 정신을 차리려 자신의 뺨을 때렸다.
“알겠습니다!”
이계는 얼굴이 붉어져 뛰어나갔다.
태자는 바깥채까지 나가 벽에 걸린 보검을 꺼내 칼을 뽑아 정선제의 목에 겨누었다. 만에 하나, 주운환이 온 것이 아니라 상관수가 장난질을 친 것일 수 있으니 그도 준비를 해야 했다.
예리하고 날카로운 칼날이 목에 닿자 정선제에게는 다시 노여움과 증오가 차올랐다.
“네 이 역적! 역적 놈!”
태자의 눈빛이 차가워지더니 칼날을 더욱 바짝 들이댔다.
“또 소리쳐 보시지요!”
“으아아아악!”
정선제는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쳤고, 목에서는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정선제는 절망스러웠다. 이대로 주운환이 들어오면 자신에게 남은 것은 죽음뿐이었다! 지금 태자에게 용서를 구한다 해도 자신을 기다리는 것은 역시 죽음일 터! 자신이 죽고 나면 절대적인 무력 앞에 충성스러운 신하들은 떼죽음을 맞을 것이고, 불충한 신하는 태자에게 붙어 부귀영화를 누릴 것이다.
‘그런 후에 태자는 즉위해서 본인이 저지른 대역죄를 조금씩 씻어 내고, 끝내는 좋은 말로 덮어씌우겠지!’
정선제는 생각할수록 절망스럽고 노여워서 소리쳤다.
“역적……!”
그러나 목소리가 너무나도 심하게 떨리는 탓에 저주스러운 소리는 더 이어지지 못했다. 정 황후와 태자는 차갑게 웃을 뿐 정선제를 상대도 해 주지 않았다.
한편, 이계는 건물에서 나와 입구로 뛰어갔다. 입구도 겹겹이 잠겨 있어 상대방이 보이지는 않았으나 그 너머에서 들려오는 발소리만으로도 머릿수가 상당함을 추측할 수 있었다.
이계는 잔뜩 긴장했다. 곧 성공할 수 있을까? 정말 진서후일까? 이제 곧 알게 될 것이다!
하나, 둘, 셋. 그는 가장 위쪽의 빗장을 풀고 문을 열어젖혔다!
덜컹! 커다란 소리가 나며 육중한 궁전의 문이 활짝 열렸다.
불꽃처럼 선명한 적염전갑을 입은 장군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날카로운 눈썹 아래 날카로운 눈빛은 서슬 퍼렇게 빛나고 있었고, 붉은 입술에는 미소가 걸려 있었다. 이계는 그 아름다운 웃음에서 무한한 선의를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