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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유서부-751화 (751/858)

제751화

상관수가 나가고 정 황후는 새파랗게 질려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급기야 털썩 무릎을 꿇고 울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입니까? 어찌 이런 일이? 폐하, 이게 무슨 일이란 말입니까? 황제를 찌른 것은 소 보림 아닙니까? 어떻게 그 삿된 불길이 태자에게까지 옮겨 붙는다는 말씀입니까?”

정선제는 정 황후의 말에 움칫했다. 정 황후는 눈물을 펑펑 쏟으며 계속 소자금에게 손가락질을 했다.

“오늘 밤… 폐하를 찌른 것은 저 여인입니다. 저 여자의 목을 베어야 합니다. 심지어 저 여자는 한사코 자신의 죄를 태자에게 뒤집어씌우고 있습니다……. 이 상황을 모면하려는 수작일 뿐입니다…….”

정 황후를 매섭게 노려보던 소자금의 눈에 비웃음이 스쳤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더니 더 이상 말이 없었다.

정선제는 입술을 깨물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정 황후는 체통도 내던지고 바닥에 엎어져 울었다.

“신첩은 폐하가 소 황후를 가장 총애하는 것을 깨닫고 아프고 힘들었던 적도 많았지만 결국 폐하 마음에 있는 건 저희 모자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신첩은 소 황후도 임 귀비도 두려웠습니다. 그들 때문에 폐하가 저희 모자를 버리실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폐하는 언제나 우리를 지켜 주셨습니다. 신첩도 이 세상에 폐하보다 저희를 아껴 주는 사람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지요. 신분이 높은 사람을 두려워한 적은 있었으나… 저렇게 보잘것없고 천한 것에게 모함을 당할 줄은 몰랐습니다. 감히 신첩을… 신첩을…….”

정 황후가 목 놓아 울자 정선제의 마음이 복잡해졌다. 정 황후의 말대로 자신은 그들 모자에게 있어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었다. 자신의 비호 아래, 정 황후는 한 걸음 한 걸음 가시밭길을 헤치며 여기까지 왔는데… 어떻게 한낱 양민 여자의 몇 마디 말로 그들 모자를 의심한다는 말인가.

정말로 늙어서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건가. 물론 정선제는 죽어도 인정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태자를 의심한 적이 없었다! 이토록 태자와 황후를 믿지 못했던 적이 어디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 그리고 이 모든 게…….

생각에 잠겼던 정선제는 불현듯 깜짝 놀라 매섭게 소자금을 바라보았다. 저 여자… 고작 두세 마디 말로 이렇게… 정말 대단한 여자다.

* * *

태자부.

태자는 서재에서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오늘 밤 그는 묘언헌도 다른 처첩의 처소도 찾지 않았다.

내일이면 거사를 치를 것이었다. 더구나 오늘은 소자금이 처음 시침에 드는 날이니 자신도 서재에서 정신을 맑게 하며 쉬는 게 맞을 성싶었다.

쾅쾅쾅. 야밤중에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곤히 자던 태자는 놀라 벌떡 일어났고 그의 얼굴은 금세 어두워졌다.

“전하! 전하!”

두려움에 휩싸인 목소리로 이계가 그를 연신 부르고 있었다. 태자는 입 밖으로 욕을 뱉을 뻔했지만 이계가 이러는 데는 반드시 그 이유가 있으니 겨우 참았다.

“무슨 일이냐?”

그새 일어난 태자는 맨발로 걸어 나와 끼익, 하고 문을 열었다.

곧 태자의 안색이 변했다. 이계와 송초 등 다섯 명의 수하들이 무거운 얼굴로 문 앞에 서 있었다.

부르지도 않았는데 이들이 한꺼번에 찾아오다니,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궁에서? 소자금이 시침하면서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가?

“너희들…….”

태자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우더니 이를 악물고 말했다.

“모두 들어와라!”

“네.”

송초와 부하들은 고개를 숙이고 서재로 우르르 들어갔다.

등불은 주변을 환히 밝혔지만 방을 따뜻하게 감싸 주지는 못했다. 태자는 검은색 중의를 갈아입지도 않고 머리는 산발인 채 서재에 서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부하들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말해라. 무슨 일이냐?”

“구, 궁에… 일이 생겼습니다.”

더듬거리는 이계의 이마에서 땀이 뚝뚝 흘러내렸다.

“소자금의 일이냐?”

태자의 목소리가 음산해졌다. 요즘 머릿속이 그 계획으로 가득 차서 늘 소자금의 일만 생각하고 있었기에 자연히 그녀부터 떠올랐다.

“그렇습니다…….”

이계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소자금이… 오늘 밤 폐하를 찔렀습니다.”

태자는 이미 예상했지만 실제로 듣자 노여워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 천한 것! 본궁이 내일 저녁이라 하지 않았더냐?”

태자의 고함 소리에 이계는 새파랗게 질려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죽었느냐?”

“…폐하는 경상만 입었습니다…….”

태자가 숨을 한껏 들이쉬더니 얼굴을 감싸 쥐고 뒤쪽 태사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차가운 얼굴로 이계를 응시했다.

“그리고?”

“황제 폐하는 크게 놀랐고, 태의와 경사방 사람들이 모두 불려 갔습니다. 홍앵이 먼저 황후 마마께 보고하여 마마가 몰래 전하께 소식을 전해 오셨습니다.”

“어마마마는 뭐라시더냐?”

태자의 목소리가 차가웠다.

“황후 마마가 폐하의 침궁으로 가시면서 소식을 보내신지라 그쪽 상황은 아직 모릅니다. 방 안에는 파리 한 마리도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이라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이계가 대답했다.

“전하께서 대비책이 있으시니 소자금이 잡혀 자백한다 해도 태자 전하까지 번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송초의 이 말에 푸른 옷을 입은 남자도 손을 모으고 말했다.

“맞습니다. 냉정을 찾으십시오, 전하! 황후 마마는 감히 아무나 함부로 대할 수 없는 분입니다! 분명 현명하게 대처하실 것이니 저희는 우선 사태부터 잘 살펴야 합니다.”

“사태를 살펴? 냉정? 멀쩡한 계획에 이런 크나큰 착오가 생겼는데 그런 말이 나오느냐! 소자금 그것의 머리가 어찌 된 것이 분명하다.”

태자의 노성에 수하들은 모두 고개를 조아리고 숨 소리도 내지 않았다.

그때,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리더니 시종 하나가 들어왔다.

“전하, 궁에서 전갈이 왔습니다. 상관수가 황제 폐하의 침궁을 나섰는데, 출궁하려는 것 같다 합니다.”

“출궁?”

일순 태자와 사람들의 낯빛이 변했다.

“아바마마가 찔렸다. 이런 상황에 상관수는 곁에서 아바마마를 보호하지 않고 뭐 하러 출궁을 한다는 말이냐?”

말을 하는 동안 태자의 표정은 몇 번이나 바뀌었다. 벌써 예상이 되는 것이다……!

“어쩌면 태자 전하를 찾아올지도 모르겠습니다.”

시종의 말에 송초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다른 사람들의 심장도 쿵쾅쿵쾅 방망이질하기 시작했고 얼굴이 티가 나게 굳어졌다.

태자를 데려가려고? 태자를 왜 데려가는 거지? 설마 소자금이 태자가 배후자임을 자백했다는 말일까?

“그럴 리가요! 그럴 리 없습니다. 소자금을 끌어들일 때 전하는 아무런 흔적도 남겨 두지 않으셨잖습니까. 당연히 배후에 있는 것이 양왕이라 알고 있을 것입니다. 출궁했다 하더라도 양왕을 찾으러 갔을 것입니다……!”

이계는 이리 부정했지만 그의 얼굴도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양왕은 도성을 떠난 지 오래입니다. 전하께서 진서후를 시켜 양왕을 도성으로 압송 중이라고 폐하께 보고했습니다! 폐하가 정말 양왕을 의심했다면 진서후에게 전서구를 보내 속히 도성으로 압송하라 하지, 상관수가 출궁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리고 폐하는 진서후가 벌써 양왕을 잡았다고 알고 있습니다. 양왕이 능주에서 분신술을 부리는 것이 아니라면 어찌 궁에 들어와 소자금에게 지시를 내릴 수 있겠습니까?”

이계의 말에 반박하는 송초의 안색은 파리하기 짝이 없었다.

태자의 수려한 얼굴도 일그러졌다. 듣고 보니 송초의 말대로였다. 소자금이 양왕을 지목했다 해도 황제는 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 다른 흑막을 찾는대도, 왜 나를 의심하는 거지?

서재는 적막에 싸였다.

태자가 부하들을 싸늘하게 훑어보며 입을 열었다.

“만약, 상관수가 정말 본궁을 찾아오면 어떻게 해야 좋겠나?”

부하들은 깜짝 놀랐지만 모두 입을 다물고 있었다.

“망할! 상관수가 오고 있다! 입을 풀질로 붙여 놓기라도 한 게냐!”

태자가 소리치자 송초의 눈이 차갑게 빛나더니 침착하게 대답했다.

“전하께서는 어떤 생각이십니까?”

누구도 이런 큰 결정에 대해 감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태자는 옆에 있는 항탁을 세게 내리쳤다.

“상관수가 본궁을 찾아온다면 이런 상황에서 어마마마와 내가 아무리 만회한다 해도 소용없다. 그 노인네는 더 이상 예전처럼 나를 믿지 않을 것이다.”

송초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신중할 따름이지, 겁쟁이는 아니었다.

“전하의 말씀이 맞습니다. 게다가 이번 일로 폐하는 주변을 더욱 경계할 것이니 다시 암살을 시도한다고 해도 훨씬 어려울 것입니다. 또한 아직 궁에는 수녀들이 더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폐하가 건강을 회복하신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소자금을 안으려 하지 않았을 겁니다.

이미 전하와 황후 마마를 향한 마음에 틈이 생겼으니, 수녀들과의 사이에 자손을 보시거나 새로 입궁한 수녀들에게 미혹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노왕이나 용왕이 이 틈을 파고 들어오면 전하의 세력이 약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흥분한 태자가 탁자를 내리쳤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고,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 본궁은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

서재에 있는 사람들이 숨을 멈추었다. 바로 병사를 일으키겠다는 뜻인가?

이계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안고 겨우 입을 뗐다.

“하지만… 진서후는 아직 도성에 도착하지 않았습니다! 능주 쪽에 큰비가 내렸답니다. 길이 여의치 않아 적어도 사흘은 더 있어야 도성에 도착할 것입니다.”

태자의 얼굴이 가라앉았다.

“그렇다면 상관수가 본궁을 잡으러 올 때까지 기다리고 있으라는 말이냐?”

“아뇨, 그래서는 절대 안 되지요.”

송초가 다급하게 부정했다.

“만약 이번에 상관수에게 잡혀 궁으로 끌려가면 언제까지 갇혀 있을지 모릅니다. 의심이 많은 폐하는 진서후가 전하와 가까우니 병권부터 확인할 것입니다. 그러면 전하는 고스란히 황제 폐하의 손아귀에 놓이는 것이니 진서후도 그대로 제압당하고 말 것입니다.”

순간 태자의 얼굴이 새까매졌다. 정선제의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가장 큰 지원군인 진서후의 병력마저 빼앗기면… 자신의 두 손이 잘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때 가선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러니 기회는 지금이다! 지금이 유일한 기회이다! 지금 바로 병사를, 당장 반정을 일으켜야 한다!

태자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나지막이 명했다.

“오성병마사를 준비시켜라.”

오성병마사로 금위군에 맞설 수는 없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태자와 그 수하들은 한데 모여 낮은 소리로 의논했다.

얼마 후 밖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전하, 상관 통령이 왔습니다.”

태자를 비롯한 모두의 표정이 변했다. 왔다! 정말 왔구나!

“들여보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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