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36화
채결은 약방으로 뛰어가 직접 막북한련 두 뿌리를 가지고 진서후부로 출발했다.
그 시각, 주운환은 침상에 기댄 엽연채에게 죽을 떠먹여 주고 있었다.
엽연채는 주운환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입을 뗐다.
“아가 장명쇄를 그리고 싶어요.”
주운환은 고개 숙여 입을 맞췄다.
“착하지요? 마저 먹여 주게 해 주십시오.”
엽연채는 포기하고 입을 벌려 그가 떠 주는 죽을 한 입 더 받아먹었다.
그러고 있는데 밖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채 공공이 오셨습니다.”
엽연채가 바깥을 쳐다보자 채결이 들어왔다.
채결이 밖에서 얼핏 보니 엽연채는 침상에 누워 있고, 주운환은 옆에서 뭔가 먹여 주고 있었다. 그에 채결은 잠시 머뭇거리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이고……. 어디 편찮으십니까?”
“공공, 오셨군요. 힘들어서 누워 있습니다.”
엽연채는 채결을 한번 쳐다보고 맥없이 대답했고, 주운환은 일어서 채결에게 공수하고 인사했다.
“내자가 기운이 없어 그렇습니다. 언짢아하지 마십시오, 공공.”
“무슨 말씀이십니까, 몸도 무거운데 잘 쉬셔야지요.”
채결은 허허 웃으면서 임신증이 정말 심한가 보다 생각했다.
“부인의 임신증이 심해 진서후께서 나 의정에게 보양 음식을 물어봤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폐하께서 들으시고 바로 소인을 시켜 막북한련 두 뿌리를 보내셨습니다. 임신증에 몹시 효과가 좋고, 부인 건강에도 굉장히 좋다고 합니다. 이 한련은 막북 지역에서 십 년에 한 뿌리씩 자라는 것으로, 궁에도 다섯 뿌리밖에 없는 귀한 약재입니다.”
주운환은 몹시 감동한 표정으로 예를 갖추었다.
“폐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엽연채도 침상을 짚고 일어나려 하자 채결이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편히 계십시오, 부인. 성지도 아니고 그저 폐하의 마음입니다.”
“감사합니다, 황제 폐하.”
엽연채가 웃으며 다시 앉았고 주운환이 채결을 챙겼다.
“공공, 어서 차라도 한잔하시지요.”
“괜찮습니다, 후야. 궁 안의 일이 바빠 소인은 바로 궁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먼저 가 보겠습니다.”
채결이 사양하고 나가자 주운환이 수화문까지 그를 배웅하고 돌아왔다.
운연거로 돌아오니 엽연채는 서차간에 가 있었다. 그녀는 낮은 책상에 엎드려 장명쇄를 그리다가 고개를 들었다.
“배웅했어요?”
“네.”
주운환이 다가가자 엽연채가 입술을 살짝 내민 채 손가락으로 그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내 핑계를 댔군요?”
“아니요.”
주운환이 다가가 엽연채를 안았다.
“요즘 부인이 왼쪽 다리가 계속 저리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나 의정을 찾아간 겁니다. 그 김에 일도 처리하고요.”
“좋아요, 용서해 줄게요.”
엽연채는 세심히 신경 써 주는 말을 듣고 마음이 몽글몽글해져 부드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에 주운환도 빙긋 웃으며 그녀를 안았다.
“갑시다.”
“어딜요?”
“죽을 마저 먹여 줄게요. 한 그릇 다 먹어야 그릴 수 있다 했지 않습니까.”
“다 식었잖아요.”
“데워 주겠습니다.”
엽연채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그에게 안긴 채 방으로 돌아갔다.
* * *
막북한련은 몹시 진귀한 약재이다. 궁 안에 있는 다섯 뿌리도 태후나 정 황후가 병이 나면 쓰려고 준비한 것인데 정선제가 냉큼 진서후부에 두 뿌리나 보낸 것이다. 이 일은 딱히 비밀도 아니어서 금방 태자의 귀에 들어갔다.
쾅! 태자는 어두운 얼굴로 녹나무 책상에 주먹을 내리쳤다.
“이 늙은이가 야금야금 진서후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사소한 일일 뿐입니다. 진서후가 이미 전하를 향한 충심을 직접 밝히지 않았습니까.”
송초의 달래는 말에도 태자는 도리어 코웃음을 쳤다.
“사소한 일로 시작하지 않는 것이 어디 있더냐? 진서후는 원래 그 늙은이에게 충성하던 사람이다. 다만 자신이 가장 어려울 때 본궁이 믿어 주었기 때문에 감동해 충심을 바치는 것이다. 이러다간 진서후가 마음을 바꿀지도 모른다!”
주운환은 반드시 자기편에 묶어 두어야 했다. 그가 정선제에게 돌아간다면 노인네의 앞은 금위군이, 뒤는 경위영이 단단히 지키게 되니 그때는 반란을 일으키고 싶어도 불가능할 터였다.
‘노인네가 앞으로 십 년, 이십 년을 더 살면, 심지어 황자라도 몇 낳는다면, 나이 든 아비는 어린 아들을 예뻐하는 법이니 이 나라가 누구 손에 떨어질지 모를 일. 더 미루다가는 손도 못 댈 것이다.’
“더는 미룰 수 없다. 그 노인네를 당장 없애야 한다.”
태자의 얼굴이 얼음장 같았다.
“전하, 지난번 저희 사람들 세 명이 모두 떨어진 것도 너무나 공교롭습니다. 돌다리도 두드려 보고 건너라 하였습니다.”
송초가 다급히 말렸으나 안타깝게도 돌아온 것은 태자의 노성이었다.
“못난 놈!”
태자가 책상을 세차게 내려쳤다.
“그렇다면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그놈을 본궁 앞에 찾아다 놓아라! 이 일은 내가 너희 네 사람에게만 이야기했는데 너희 중 누가 나를 팔아넘긴 것이냐? 너냐?”
송초는 화들짝 놀라 새파랗게 질려 버렸다.
“송 공자.”
이계가 미간을 찌푸리며 끼어들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한데 모였다, 모두 송 공자가 한 말입니다. 송 공자는 지금이 기다려야 할 때라고 보십니까? 황제 폐하가 정말 진서후의 마음을 얻고, 다른 황자가 태어난 후에도 태자 전하가 계속 폐하의 총애를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나라의 명운이 걸린 대업이니 모험을 할 수는 없습니다. 이런 기회는 자주 오지 않습니다.”
송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기다릴 수 없는 것은 맞습니다. 소신은 그저 전하께서 냉정을 찾으시고 며칠 후에 다시 논하십사 하는 것입니다. 소신들이 어떻게 황제 폐하를 퇴위시킬 수 있을지 다시 계획을 의논해 보겠습니다.”
태자는 더는 기다릴 수 없었다. 안 그래도 그의 계획이 하루아침에 수포가 되어 분노에 가득 차 있었다. 정말 딱 한 발짝 차이이다! 그 한 발짝이면 저 자리를 손에 넣을 수 있다. 그런데…….
정선제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자 가까스로 참고 있던 분노가 솟구쳤다.
“쏘아진 화살은 돌아오지 않는다. 너희들은 바로 행동에 돌입해라!”
명하는 태자의 목소리가 음산했다.
“전하…….”
송초의 얼굴은 여전히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또 무슨 딴지를 거는 거냐?”
태자가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는 턱을 치켜들고 송초를 차갑게 훑어보았다.
“본궁이 왜 미처 몰랐을까. 네놈이 이렇게 쥐새끼처럼 겁만 많아 벌벌 떨 줄이나 아는 우유부단한 놈이었던 것을! 그런 네놈을 본궁이 그렇게 중히 여겼다니!”
이대로 태자의 신임을 잃는 것인가! 송초는 혼비백산했다.
“아닙니다, 전하! 지금 방법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생각할 필요 없다.”
태자가 손가락으로 책상을 두드렸다.
“수녀를 이용하자.”
준비된 세 명의 자객이 모두 간택에서 떨어지자 태자는 골똘히 생각했다. 앙심을 품은 수녀로 위장해 정선제를 죽이게 하려던 그의 완벽한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지만, 새로운 수녀를 찾으면 그만이다.
‘1차 심사 때는 송초의 말에 넘어가 이를 악물고 계획을 잠시 미뤘지. 하나 그게 바로 실수였다!’
지금 분노가 휘몰아치는 태자의 머릿속에는 오직 수녀 계획으로 가득했다.
“수녀라니요? 하지만 저희 사람들은…….”
태자는 어안이 벙벙해진 송초를 향해 냉랭하게 웃었다.
“우리 사람에 그리 목맬 이유가 무엇이냐. 이렇게 많은 수녀들 중에 적당한 사람 하나 찾을 수 없단 말이냐? 설마하니 본궁이 고작 양민 여자 하나 쓰지 못할 것 같으냐?”
태자는 다시금 남소제 일을 떠올렸다. 그 수녀도 결국 늙은 황제의 추한 모습이 소름 끼치게 싫어서 그런 것 아닌가.
“전하! 그것은 너무 위험합니다!”
“위험?”
태자는 반문하더니 음산한 눈으로 송초를 쳐다보았다.
“이 위험도 해결하지 못한다면 본궁에게 너희들이 왜 필요하지? 본궁이 너희를 가까이 두는 것은 본궁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 아니냐? 그런데 지금 나에게 위험이라는 말을 꺼내는 거냐!”
송초의 얼굴이 일그러졌으나 이미 답은 정해진 상황이었다.
“소신이 우둔하였습니다! 지금 바로 처리하겠습니다.”
태자는 이미 이쪽의 능력을 의심하고 있다. 이런 일조차 해결하지 못한다면 정말로 밥줄이 끊어질 것이다. 자신 같은 막료들은 태자의 말대로 그의 골칫거리를 해결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들이니까. 송초는 마음을 굳게 다지며 서재를 나섰다.
태자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차갑게 비웃었다.
“쓸모없는 밥벌레들!”
태자가 뒤편 의자에 기대앉자 이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황제 폐하께서 진서후에게 내린 물건을 전하도 보내시겠습니까?”
태자는 굳은 얼굴로 손을 저었다.
“아니다, 지금 이런 사소한 일로 어찌 진서후의 마음을 살 수 있겠나. 차후에 자리를 빌려 우의를 다지는 편이 낫다.”
“네.”
이계는 고개를 끄덕였다.
* * *
진서후부.
서차간, 엽연채가 주운환과 바둑을 두는데 여양이 들어왔다.
“나리, 태자 쪽 사람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선발된 백 명의 수녀들 명단을 살펴보고 있습니다.”
“흠. 실망시킬 수는 없지.”
주운환의 붉은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네.”
주인의 뜻을 이해한 여양이 급히 물러갔다.
엽연채는 검은 돌을 하나 쥔 채 주운환을 보고 있었다.
“태자가 뽑을 수녀를 준비해 둔 거예요?”
주운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긴 손가락으로 백옥 바둑알을 집어 들더니 ‘딱’ 소리가 나게 바둑판에 내려놓았다.
“태자가 실패하면 자객을 부르지 않고 남은 수녀 중에 암살할 사람을 고르리란 걸 어떻게 알았어요?”
주운환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노황제가 내 마음을 사려고 하니 태자의 마음이 급해진 겁니다. 그리고 태자의 머릿속에는 이미 수녀가 암살하는 것이 최고의 계략이라고 박혀 있고요. 우리도 지금 쓰고 있는 이 박달나무 책상이 망가지면 다음에도 박달나무를 찾겠죠. 갑자기 훨씬 좋은 물건을 발견하거나 다른 게 더 좋다고 설득당하기 전에는 말이에요. 그것과 같습니다.
더군다나 수녀의 암살은 노황제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죽음을 자연스럽게 보이게까지 하니, 일석이조죠. 늙어서 체통을 차리지 못하고 굳이 수녀를 들였다가 도리어 원한을 품은 수녀에게 죽임을 당하는 거니까요. 이보다 더 합리적이고 ‘떳떳한’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엽연채가 잠시 쳐다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바로 자객을 쓰면 대리시와 형부에서 계속 수사할 테고, 백성들도 태자가 손을 쓴 거라고 말할 테니까요. 수녀가 원한을 품고 황제를 죽이는 것이 훨씬 그럴듯해요.”
딱! 그 순간, 주운환이 엽연채 앞에 흰 돌을 놓았다.
엽연채의 표정이 홱 변했다.
“아… 딴생각하고 있는데.”
“후후. 그럼 한 판 더 합시다. 부인이 잘 가르쳐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