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730화 (730/858)

제730화

송초는 태자가 이미 결심을 세운 것을 알아채고 맞장구를 쳤다.

“전하 말씀이 맞습니다. 소신들이 너무 신중했습니다. 전하께서 결정을 내리셨으니 어서 저희에게 역할을 맡겨 주십시오. 세간의 상황이 빠르게 변하고 있고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하늘과 땅과 사람의 때가 하나로 모이는 기회가 언제든지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랬다. 이미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로 모아진 후였기에 송초는 태자의 계획에 동의할 수 있었다.

정선제가 허세를 부리고 있지만 조정 대신들의 마음속에는 벌써 새 주인이 있었다. 반정을 꾀한다면 태자에게도 무력은 충분했다. 경위영이 주운환의 수중에 있고, 주운환은 태자의 사람이니 태자는 얼마든지 금위군과 맞설 수 있다!

승리 후 황실에 대한 충성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북연과의 경계를 지키는 것은 외가인 정씨 집안이고, 서남쪽 응성은 주운환의 부하가 지키고 있었다. 서북의 강왕과 허 장군이 걱정되기는 하나, 그들만으로는 주씨 집안 군대와 정씨 집안 군대에 대적할 수 없다.

전후로 모든 수를 생각해 놓았고, 이제 승리가 눈앞에 있으니 태자는 그야말로 손만 뻗으면 되었다! 그러나, 그래도 신중은 기해야 하는 법.

“하나 전하, 대사를 거행한다고 하더라도 가장 안전한 방법을 사용해야 합니다.”

송초는 말을 이어 갔다.

“마지막 순간에도 무력을 동원해서는 안 됩니다! 첫째는 너무 위험하고, 둘째는 출병할 명목이 없습니다. 오명을 남겨서는 안 됩니다.”

“폐하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폐하께서 붕어하시면 전하는 바로 보위에 오를 수 있습니다.”

노인도 송초에게 동조했으나 태자는 콧방귀만 뀌었다.

“본궁도 벌써 계획을 세워 두었다. 하지만… 갈란군주 그 독한 것, 그것 때문에 아바마마가 독과 약을 전보다 조심하고 계시다! 입 안에 들어가는 것뿐만 아니라 갈아입는 옷과 박고재 위의 분경까지 매일매일 검사하고 바꾸고 있단 말이다.”

송초 일행은 미간을 찌푸리며 어떻게 해야 쥐도 새도 모르게 노황제를 죽일 수 있을지 모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밤중까지 의논을 해도 이거다 싶은 계략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태자는 초조감을 내비치기는커녕 도리어 숨을 크게 쉬었다. 마음속의 체증이 내려갔단 듯이.

요 며칠 그는 계속 마음을 졸이고, 분노하고, 고통스러워했다! 하지만 이제 결정을 내렸다. 먹구름이 물러가고 맑은 날을 맞은 듯 마음이 가벼웠다.

밤이 깊어 태자는 묘언헌으로 돌아갔다. 그때까지 잠자리에 들지 않았던 주묘서가 뛰어나오며 그를 반겼다.

“전하!”

그에게 결정적인 동기를 준 사람이 주묘서이기에 태자는 못 견디게 그녀가 사랑스러웠다.

“묘서, 아직 안 잤군.”

“전하를 기다렸어요.”

주묘서는 태자의 품에 매달렸고, 태자도 두 팔을 벌려 주묘서를 그러안았다.

“묘서, 언젠가 본궁이 보위에 오르면 너를 황후로 책봉할 거야.”

“전하……!”

주묘서는 잠시 멈칫하더니 눈물을 왈칵 쏟아 냈다. 물론 그녀도 언젠가 자기가 황후가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사람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태자와 황후는 그녀에게 한 번도 이런 약속을 해 준 적이 없었고, 하다못해 태자가 정세의 흐름을 이야기해 준 적도 없었다. 그런데 오늘 태자가 직접 그녀에게 앞으로 황후에 책봉하겠다고 한 것이다!

크게 감동한 주묘서는 태자의 품에 폭 안겨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전하… 신첩……. 감사합니다, 전하! 신첩은 이렇게 해야 할 것을… 벌써 알고 있었어요!”

“이렇게 해야 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

“전하, 신첩은 늘 하늘이 정해 주는 일이 있다고 믿고 있어요.”

태자가 놀라 되묻자 주묘서는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

“그렇지 않으면 저희 집이 어렵던 시절에 제가 어찌 태자부를 드나들 수 있었겠어요. 바로 이곳이 제가 있어야 할 곳이기 때문이에요. 신첩의 혼사가 순탄치 않아서 진지항과도, 서 공자와도 이어지지 않아 모두 저를 비웃었지만 저는 결국 전하께 시집을 오지 않았나요!”

태자는 여전히 어리둥절한 얼굴이었으나 주묘서는 확신에 차 눈을 반짝였다.

“신첩은 늘 제 앞길이 막막하다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전화위복이 된 셈이죠. 모든 과정이 마치 전설 같지 않나요.”

태자는 어쩐지 가슴이 벅차올랐다.

그렇다. 어떤 일들은 이렇게 매 순간 삶의 방향을 알려 주었다. 주묘서가 자신에게 시집와 측비가 되고 황후, 그리고 태후까지 올라가는 이 모든 과정이 그녀의 전설이다.

그렇다면 그녀에게 그러한 영광을 가져다주는 자신은! 태자는 너무 기뻐 크게 웃었다.

“그래, 그래. 묘서는 정말… 보석 같은 사람이야! 네 덕분에 내가 결심을 할 수 있었다. 내가 널 꼭 황후로 만들어 주마! 그리고 태후까지. 전설이 되어 보거라!”

흠뻑 감동한 주묘서는 태자의 가슴에 더더욱 파고들었다.

“전하!”

그녀는 뛸 듯이 기뻤지만 그보다는 우쭐한 마음이 훨씬 컸다. 머릿속에는 자연스레 엽연채가 떠올랐다.

‘언제나 멋지고, 기품 있고, 큰 권력을 손에 쥐고 있으니 누구나 우러러봐 주지! 하나 두고 봐라. 엽연채 넌 네가 그 누구보다 잘나간다고 생각하겠지만, 실은 내 디딤돌일 뿐이다. 내가 차근차근 원하는 것을 손에 넣고 나면 헌신짝처럼 버려질!’

태자는 그날 주묘서의 처소에 머물렀다. 주묘서는 이제 태자에게 못 할 말이 없었다.

“전하는 모두 넋을 잃을 만큼 눈부시게 멋지시니 그야말로 일국의 황제에게 어울리는 풍채시죠. 수녀를 간택한다 하니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기대하는지 몰라요. 황제 폐하가 전하처럼 잘생긴 줄 착각하는 거죠!

실은 제대로 움직일 수도 없는 노인이란 건 궁에 들어온 후에야 알게 될 테니까요. 얼굴은 쭈글쭈글 주름투성이에, 몸도 나무껍질 저리 가라일 테니 다들 깜짝 놀라 죽어 버리고 싶을걸요.”

이런 말까지도 했다.

“하하하하!”

태자는 주묘서의 한 마디 한 마디가 자신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듯해, 들을수록 통쾌했다. 감탄한 태자가 그녀의 손을 살짝 두드렸다.

“하하. 이거 참, 재미있군. 묘서의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단 말이야.”

“네?”

주묘서는 조금 놀란 눈치였으나 곧 따라 웃었다.

“전하, 여기 이름을 왜 묘언헌妙言軒이라고 지으신 거예요?”

“이곳을 보자마자 네 생각이 났어. 어쩐지 머릿속에 갑자기 그 세 글자가 떠올라서 묘언헌이라고 지었지.”

“호호, 정말 그렇게 정해져 있던 거네요!”

주묘서는 호호대며 그의 품에 기댔다.

태자는 미칠 듯이 기뻤다. 당시 특별히 무언가를 생각하고 이름 지은 건 아니었으나 결국 주‘묘’서의 ‘말’ 덕분에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과언 어떤 일들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다. 묘언헌, 이것부터 하늘의 암시일지도 몰랐다!

단꿈에 젖은 두 사람은 좀 더 이야기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이튿날 아침.

태자가 활기차게 나갈 채비를 마치고 수화문으로 향하니 뜻밖에 송초가 그곳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하, 기왕 결정을 내리셨으니 진서후에게 확실한 답을 들으셔야 합니다.”

그의 당부에 태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다. 돌아가 봐라!”

“네.”

태자는 곧장 궁으로 갔다.

결정도 내렸고 자신도 준비가 되어 있었다. 하늘까지도 자신의 편이란 생각에 태자는 더 이상 방황하지 않았고 걸음걸이마저 위풍당당했다.

반면 조회에서 정선제는 의자에 맥없이 앉아 있을 따름이었다. 눈은 축 처지고 몸은 비쩍 마른 정선제에게 어좌는 손톱만큼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 허약한 모습을 흘깃하는 태자의 눈에는 비웃음이 가득했다.

‘늙은이, 진작 양위를 했어야지! 그토록 넘길 수 없단 말이지? 그렇다면 내가 직접 가져오겠다! 당신은 이미 바람만 불어도 쓰러질 만큼 쇠약해졌으니!’

조회가 끝난 후 정 황후의 환관이 태자를 찾아왔다.

“전하, 황후 마마께서 찾으십니다.”

“알았다.”

태자는 시원스레 대답하고 봉의궁으로 걸음을 돌렸다.

봉의궁.

정 황후는 평상에서 향로의 향을 고르고 있다가 발소리가 나자 고개를 들었다.

“태자가 왔구나.”

정 황후는 성큼성큼 걸어오는 태자를 보곤 잠시 멍해졌다. 새까만 운금雲錦 망포를 입고 금관을 쓴 태자가 늠름하게 걷는 모습이 오늘따라 위풍당당했다.

“어마마마.”

태자가 다가와 황후 곁에 앉았다.

“오늘 태자의 기분이 좋아 보이네. 네가 드디어 마음을 잡았구나.”

정 황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네. 소자 드디어 깨달았습니다!”

태자는 큰 소리로 웃으며 말을 덧댔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으니 기회를 놓칠 수 없습니다. 어마마마, 소자는 움직이겠습니다!”

정 황후는 튕기듯 벌떡 일어섰다.

“그게 무슨 소린가, 움직이다니?”

정 황후는 대경실색해 표정을 관리하지 못했다. 그 말이 무슨 뜻인지는 자신도 물론 알지만, 제대로 들었는지 두 귀가 의심스러웠다.

“황제가 되겠습니다.”

태자가 한 글자 한 글자 힘주어 말했다.

“안 될 말이다!”

정 황후가 다급하게 소리쳤으나 태자는 더없이 단호했다.

“어마마마는 이런 대사에 관여하지 마십시오!”

태자는 굳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어마마마, 3년, 5년이 아니라 30년이 된다면 어떻게 하실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이 태의를 믿으십니까? 그자의 말이 맞았더라면 지금 그 자리에는 벌써 제가 앉아 있었어야 합니다! 한데 보십시오, 죽어야 할 사람을 나 의정이 기어이 살려 내지 않았습니까. 만약 5년이 지난 후에 나 의정이 다시 살려 내면 그땐 어떻게 하실 겁니까?”

정 황후의 표정이 변했다. 정 황후도 조바심이 나는 건 사실이었지만 그들 모자의 처지가 나쁘다고는 할 수 없었고, 위급한 상황은 더더욱 아니었다! 하지만 태자의 말대로 5년 후, 어쩌면 그 이상의 앞으로의 일은…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어마마마, 하늘과 땅과 사람이 모두 한데 모였습니다. 지금이 아니면 앞으로는 손을 쓰고 싶어도 할 수 없습니다!”

정 황후는 흠칫했다. 과연 천지인이 지금 자신들의 편에 서 있었다. 태자는 이미 충분한 힘을 가졌고, 정선제의 건강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불안정하며, 조정 대신들은 새로운 주군을 기다리고 있었다……!

“주운환 쪽은 어떠하더냐?”

여기에 주운환의 충심만 확실하다면, 뒤집을 수 있다!

“안심하세요, 어마마마. 주운환은 제 편입니다.”

태자는 어제 주묘서가 한 이야기, 엽연채와 같이 복중 아이들에게 장명쇄를 만들어 주기로 했단 이야기를 정 황후에게 들려주었다.

곰곰이 듣던 정 황후의 미간에 얕은 천川이 흘렀다. 복중 아이들을 정혼시키자는 얘기까지 나왔다면 주운환이 어디에 줄을 섰는지야 명백하다 할 수 있겠으나, 그래도 지금 이야기하는 것은 애들 장난이 아니라 반역이라는 큰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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