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728화 (728/858)

제728화

태자가 태자부로 향하던 그 시각, 묘언헌은 어느 때보다 시끌시끌했다. 주씨 집안 사람들, 주묘서의 친구들, 주묘서가 측비가 된 후 사귄 귀부인들, 모두들 축하하러 와 선물을 건네고 있었다.

하나 주묘서의 기분은 썩 좋지 못했다. 따뜻한 춘풍이 불어 백화가 만발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집 안에만 있으려니 너무나 갑갑했다. 게다가 손님이 떼로 몰려와 모두 자신의 처소에 비집고 앉아 있으니 영…….

그에 주묘서는 장소를 옮기자고 했다. 하나 태자부에서 풍경이 제일인 경려원으로는 향하지 않았다. 지난번 그곳에서 화연을 열었을 때 태자가 그녀의 뺨을 때렸으니 어디 두 번 다시 걸음하고 싶겠는가.

이후로 주묘서는 자연스레 경려원을 멀리했고, 지금도 경려원 다음으로 울창하고 우아한 다른 정원으로 손님들을 이끌고 갔다.

주묘서와 진씨는 함께 정자에 앉았고 귀부인들이 그녀를 둘러싸고 연신 듣기 좋은 말을 해 주었다. 하지만 주묘서는 여전히 기분이 나지 않는 듯 그저 웃고만 있었다.

그러던 중, 바깥에서 낯선 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진서후 부인이 왔습니다.”

자리의 부인들과 소저들은 그 말을 듣자마자 소곤거렸다.

“어머, 진서후 부인이 오셨군요!”

그중 몇몇은 아예 일어나 그녀를 맞이하러 갔다.

주묘서는 그 자리에 앉아 꼼짝하지 않았으나 이미 얼굴은 흙빛이었다.

‘늘 이래! 언제나 이런 식이지!’

적응이 되고도 남으련만, 매번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증오와 질투가 주묘서의 마음속에 차곡차곡 쌓였다. 억눌린 그녀의 화와 분노는 증오가 되어 나날이 커졌고, 참고 참을수록 속에서 부풀어 갔다.

진씨 역시 얼굴이 굳을 대로 굳었으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도 많은 일을 겪으면서 조금은 참는 법을 익힌 것이다.

엽연채가 사람들에 둘러싸여 정자로 들어왔다. 엽연채는 금실로 해당화를 수놓은 분홍색 옷을 입고 머리에는 화려한 홍보석이 달린 금보요를 꽂고 있었다. 그녀는 회임한 지 벌써 반년가량 됐는데도 배가 좀 나온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었고, 오히려 나날이 아름다워져 그녀가 웃으면 주변까지 환해졌다.

엽연채가 웃으며 인사했다.

“어머님, 큰아가씨.”

“왔니.”

진씨는 담담히 인사를 받았다. 더는 조롱할 기운도 남아 있지 않은 듯했다.

엽연채가 자리에 앉기 무섭게 옆자리의 귀부인이 말을 걸었다.

“내 방석을 써요. 따뜻하고 편할 거예요.”

“감사해요, 낙 부인. 그런데 오늘은 날이 따스해서 방석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엽연채가 예의 바르게 대답하자 낙 부인이 웃으며 말했다.

“부인은 몇 달이나 되었어요?”

“곧 6개월이에요.”

엽연채의 대꾸에 주변에 있던 부인들도 웃으며 한마디씩 했다.

“벌써 그리되었군요!”

“우리도 슬슬 선물을 준비해야겠어요!”

그러더니 곧 어느 장신구 상점의 아기 용품이 좋다는 둥 수다를 떨었다.

“그런데 부인의 보요가 정말 예쁘네요.”

낙 부인의 이 말에 엽연채가 웃으며 대답했다.

“지난 생일에 황제 폐하께서 하사해 주신 거예요.”

“어머나, 어쩐지 무척 귀해 보이더라고요. 알고 보니 황제 폐하께서 하사하신 물건이었군요!”

“네.”

엽연채는 가볍게 웃으며 그렇다고 했다. 여느 때와 같은 극히 평범한 언행이었으나 주묘서와 진씨에게만은 몹시 다르게 와닿았다. 엽연채의 그 당당한 미소가 그들의 가슴을 짓이기는 것 같아서 두 모녀는 울분과 울화가 치밀었다.

이미 화가 단단히 난 주묘서는 냉랭한 미소만 띤 채 더는 대화에 참여하지 않았다. 다만 무릎에 올린 주먹을 단단히 움켜쥔 채 터져 나오려는 울분을 내리눌렀다.

정오가 가까워 오자 주묘서는 식사를 준비시켰고, 손님들은 점심을 먹고 떠났다.

주묘화를 먼저 돌려보낸 진씨는 묘언헌에 남아 주묘서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물론 방금 전 엽연채에 대한 이야기였다. 모녀는 마주 앉아 신나게 엽연채를 욕하고 헐뜯었다. 내뱉지 않고 마음속에 계속 담아 두었다가는 미쳐 버릴 게 분명했다!

“겨우 생일인데 그렇게 많은 선물을 보냈다뇨! 며칠 전 내가 회임했다고 알렸을 때는 겨우 옥 덩어리와 은장식 몇 개만 줬다고요. 죽지도 않는 노인네!”

진씨도 못마땅해 견딜 수가 없었다. 하지만 눈앞의 현실은 정선제가 든든하게 주운환과 엽연채의 뒤를 받쳐 주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주운환 부부가 저리 자신만만한 것도 다 그 늙은 황제가 자기들 뒷배라고 믿고 있어서 아니겠는가!

“묘서야, 지난번 말한 계획은?”

주묘서는 진씨를 흘겨보며 원망을 토했다.

“내 계획은 어머니가 다 망쳤잖아요! 어머니가 그 독한 것을 집에 들여서 사고를 치는 통에 내 계획은 시작도 못 해 보고 끝났어요.”

진씨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때는 갈란군주가 약속한 일을 해내기만 하면 주묘서가 서둘러 황후 자리에 오르지 못해도 상관없을 줄 알았다. 엽연채 부부만 짓밟아 줄 수 있다면 태자비만으로도 충분히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하지만 이젠…….

주묘서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어찌 되었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아니면 언제까지 허송세월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갈란군주의 사건 이후 태자가 저를 대하는 태도가 예전만 못했다. 말을 붙이는 것조차 어려울 때도 있었다. 기회를 놓치면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다는 것이 바로 이런 상황을 두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는 법.

주묘서는 진씨를 돌려보낸 후에도 어떻게 해야 태자에게 반란을 일으켜 황위를 차지하라 설득할 수 있을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그런데 이튿날 아침, 생각지도 못한 아주 완벽한 핑계와 방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다.

* * *

예부와 호부가 한바탕 난리를 치르며 문서를 준비해 각 주부에 명령을 하달하면서 황궁 전체가 황제의 수녀 간택을 알게 되었고, 이 소식은 자연히 궁 밖으로 퍼져 나갔다.

백성들에게는 또 좋은 이야깃거리가 생긴 것이다.

정선제가 그 나이에 젊은 처자들을 들이고 싶어 한다고 혀를 차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더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다.

“황제가 수녀를 간택한다면 원하는 처자들도 많겠지. 황제도 즐겁고, 처녀들도 원하고. 손해 보는 사람도 없는데, 뭐.”

“한데 수녀 간택은 한참만인걸? 황제의 옥체가 정말 강녕하신 게로군.”

회미천하.

이곳 대당의 한쪽 벽면에는 병풍 세 쪽으로 분리해 놓은 공간들이 있었다. 이렇게 하면 대당과 섞이지 않으면서도 2층의 내실처럼 너무 조용하지는 않게, 즉 개인적인 공간을 이용하면서 대당의 활기도 느낄 수 있었다.

그중 한 칸에서 주묘서가 아침을 먹고 있었다. 뜻밖에도 그녀는 아직 수녀 간택 소식을 접하지 못한 차였다. 그런데 바깥에서는 이미 너 나 할 것 없이 수녀가 어쩌네 하고 있었다. 주묘서보다 귀가 밝은 녹지가 먼저 토끼 눈을 떴다.

“폐하께서… 수녀를 간택한다는 말입니까?”

주묘서는 입 안에 든 매화고를 뱉을 뻔했다.

“쳇, 아침부터 역겨워 죽겠네! 반쯤은 벌써 땅속에 묻힌 다 늙은 노인네가, 나무 껍데기처럼 얼굴에 주름은 자글자글해서는, 옷이라도 벗으면……! 얼마나 역겹겠어! 그런데도 젊은 처녀들을 탐을 내?”

“그래도…….”

녹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염려스러워했다.

“수녀를 간택한다 하니… 폐하께서 정말 점점 더 건강해지시나 봅니다!”

주묘서의 안색이 변했다. 점점 건강해진다니? 아니, 정말로 십 년, 심지어 이삼십 년을 더 버티면?

이렇게 시름에 잠기나 싶던 주묘서의 두 눈이 반짝이더니 얼굴에도 희색이 가득해졌다!

자신마저 지금 그 노인네가 수십 년을 더 살면 어쩌나 하는데 하물며 태자는 어떻겠는가! 태자는 더는 기다리지 못할 터였다. 지금 그 노인네가 또 수작을 꾸미고 있으니 자신이 이 기회를 잡아야만 했다!

주묘서는 뛸 듯이 흥분해 두 발을 동동거렸고, 녹지는 깜짝 놀라 그녀를 말렸다.

“마마, 조심하십시오. 아직 초기이십니다!”

주묘서는 그 말에 금방 표정을 바꾸었다.

“녹지, 너는 어서 진서후부로 가 말을 전해라.”

“말을 전해요? 무슨 하실 말씀이 있으세요, 마마? 그러면 기왕 밖에 나온 김에 마차를 타고 바로 가면 되지 않을까요?”

“너는 말만 전하면 된다.”

주묘서가 귓가에 몇 마디 속삭이자 녹지의 두 눈이 커졌다.

“바로 가겠습니다!”

주묘서는 잠깐 차를 더 마셨지만 금세 일어나 마차를 타고 태자부로 돌아갔다.

* * *

그 시각, 진서후부.

엽연채는 서차간에서 온씨, 엽미채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미 날을 받았어. 유월 초사흘이나 유월 열이튿날 모두 그 아이들 팔자에 거스르지 않는 좋은 날이란다.”

온씨의 말에 엽연채가 웃으며 대답했다.

“어머니가 적당한 날로 정하세요. 할머니와 의논해서 적당한 날로 정하시면 저도 준비할게요.”

다름 아닌 엽균과 원남옥의 혼인 얘기였다.

온씨는 이미 이혼했으니 엽균의 혼사는 엽씨 집안의 일이었다. 하지만 어머니 된 마음으로 어디 가만 보고 있을 수만 있겠는가.

“오라버니의 일이 마무리되면 다음은 미채 차례예요.”

엽연채의 이 말에 엽미채는 움칫하더니 부끄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네, 언니. 안 그래도 할머니가 생각해 주고 계셔요.”

온씨도 엽연채처럼 이 소식을 처음 듣는지라 놀라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이혼했으니 피가 섞이지 않은 엽미채는 더 이상 자신의 딸이 아니고 그녀의 혼사도 자신이 신경 쓸 일이 아니었다. 혼담이고 신랑 물색이고 모두 엽씨 집안의 일이었다.

온씨와 엽미채는 엽연채와 이야기를 좀 더 나누다 돌아갔다.

엽연채가 하품을 하자 청유가 부축해서 엽연채를 눕혔다. 엽연채가 편히 눕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월이 들어왔다.

“마님, 녹지가 왔습니다.”

“또 무슨 생각인 걸까요?”

청유는 미간을 찡그리며 걱정스러워했지만, 엽연채는 그림 같은 눈을 반짝거리며 싱긋 웃어 보일 따름이었다.

“들어오라 해라.”

소월이 나가자 곧 바깥 주렴이 열리고 녹지가 환하게 웃으며 들어왔다.

“후 부인을 뵙습니다.”

“그래, 무슨 일이냐?”

인사를 마친 녹지는 들고 있던 작은 함을 꺼냈다.

“오늘 저희 측비 마마께서 궁 밖에 행차하셨다가 이 은팔찌를 보시곤 곧 태어날 조카에게 선물하려고 사셨습니다.”

“아.”

엽연채는 고맙단 말도 없이 그저 ‘아’ 소리만 냈다. 녹지는 그 냉랭한 반응이 기분 나빴지만 여기서 화를 내면 일을 그르치고 말 것을 알았다.

“측비 마마가 회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많이 답답해하시고 전보다 기분이 안 좋으신 것 같아요. 셋째 마님께서 태자부에 들러 마마를 위로해 주시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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