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726화 (726/858)

제726화

“천한 것이 아직도 저렇게 오만방자하게 굴다니!”

“그러니 말이에요.”

정 마마의 표정도 곱지 않았다.

“저 거들먹대는 꼴 좀 보세요.”

주묘서의 희소식이 알려지자 엽연채가 곧장 함께 가자고 이야기를 꺼냈다. 함께 축하 인사를 하러 가자는 것 자체는 특별할 것 없는 일이지만, 상대가 엽연채였다! 엽연채가 벌이는 모든 일은 평범과는 거리가 멀었다.

더구나 엽연채는 언제나 자신들을 최대한 멀리했는데, 지금은 먼저 다 같이 방문하자고 제안을 해 왔으니. 진씨의 눈에 엽연채의 행동은 바로 잘난 척이었다!

요즘 진씨는 하는 것마다 제대로 풀리는 일이 없는데, 엽연채는 고개를 빳빳이 치켜들고 점점 더 높이 날아올랐다. 그까짓 생일 연회에 황제가 선물까지 내리고, 그것도 황제의 총애를 받는 채결이 직접 찾아가 전해 주지 않았던가! 그러니 지금 주묘서에게 함께 축하하러 가자는 것은 엽연채가 그저 자신을 과시할 기회를 또 한 번 포착한 데 불과했다!

“마님, 군주의 일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으니 참으셔야 해요.”

정 마마의 조언에 진씨는 코웃음을 치더니 더는 말이 없었다.

한편, 청유는 정국백부에서 나와 작은 마차를 타고 진서후부로 돌아왔다.

운연거로 들어가니 서차간에서 주운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보니 과연 그가 엽연채를 안고 평상에 비스듬히 누워 책을 읽어 주고 있었다.

청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옆에 있던 소월에게 물었다.

“셋째 나리는 언제 오신 거야?”

“방금.”

쟁반을 든 소월이 살짝 웃더니 서차간에 들어가 항탁 위에 차를 내려놓고 나와서 청유와 마당의 해당화 나무 아래 앉았다.

“나리가 조정에 볼일이 있어 오셨대. 참, 정국백부는 어땠어?”

“한결같지 뭐.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건 전부 잘난 척 같은가 봐.”

청유가 웃자 소월도 함께 깔깔댔다.

“잘난 척 좀 하면 또 어때서. 자기들은 안 그런 줄 알고? 자기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눈을 하늘에 두고 자랑하더니, 다른 사람이 그러는 건 못 보겠나 보네. 맞다, 측비 마마의 복중 아기는 아직 3개월이 안 됐지?”

“응, 아직. 한데 황실에 그런 일이 있었으니 어떻게든 눈을 가리려고 서둘러서 발표한 거겠지.”

청유가 목소리를 낮춰 말을 받는데 문 앞에 혜연이 나타났다.

“얘들아, 어서 와서 식사 준비하자.”

“네.”

청유와 소월은 재빨리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엽연채와 주운환은 이미 식탁에 앉아 있었고 정성스러운 음식이 하나씩 식탁에 차려졌다. 엽연채는 주운환이 집어 주는 음식을 먹으며 말했다.

“조정에는 왜 간 거예요?”

“전염병 때문에 남쪽에 폭동이 일었거든요.”

엽연채가 묵어병墨鱼饼을 맛있게 먹자 주운환이 하나를 더 집어 권했다.

“많이 드십시오, 부인.”

그러나 엽연채는 폭동 얘기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입맛이 싹 사라져 버렸다.

“또 진압하러 가야 해요?”

주운환은 희미하게 웃으며 그녀를 안심시켰다.

“나라에 폭동이 있을 때마다 도성 병영의 통령이 직접 나서면 도성은 누가 지키겠습니까? 조정에 가서 방법을 제안한 것뿐이에요.”

한숨 돌린 엽연채는 주운환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당부했다.

“부군, 조정에서 처신을 잘해야 해요. 무슨 일이든 한 발은 빼놓고 있어요. 부군이 쓸모 있다고 생각되면 폐하는 부군을 도성에 남겨 두고 매일 부르실 거예요.”

엽연채가 응원하는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자 주운환은 그만 소리 내어 웃었고 그녀의 부드럽고 뽀얀 볼을 살짝 꼬집었다.

“내 부인은 어쩌면 이리 똑똑할까요?”

“으응.”

엽연채는 덩달아 기분이 좋아져 나른하게 웃어 보였다.

“셋째 나리.”

이때, 소월이 들어왔고 그 뒤에 어린 환관이 따라 들어왔다. 엽연채와 주운환은 늘 채결의 곁에 있던 그 환관을 알아보았다.

“진서후를 뵙습니다. 부인을 뵙습니다.”

어린 환관이 웃으며 인사했다.

“편하게 말씀하세요, 공공.”

주운환이 그를 추켜세워 주자 환관은 웃으며 말을 전했다.

“황제 폐하께서 어서방에서 장계를 확인하시던 중 갑자기 진서후 대인이 돌아왔는지 궁금해하셨습니다. 도착하셨을 거라 말씀드리니 대인께 입궁하시란 말을 전하고 오라 하셨습니다.”

주운환은 엽연채와 함께 황제의 과분한 총애에 일순 놀란 얼굴을 하더니 바로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마침 식사를 마쳤으니 지금 바로 입궁하지요.”

“네. 감사합니다, 후야.”

주운환은 자리에서 일어서서 엽연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궁에 다녀오겠습니다.”

“그래요…….”

엽연채는 헤어지는 게 아쉬워서인지 아련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주운환은 웃으면서 다시 한번 엽연채를 어루만지더니 집을 나섰다.

자신을 데리러 온 환관을 따라 궁에 도착한 주운환은 어서방에 들어갔다. 정선제는 책상에 앉아 장계를 확인하고 있었다.

주운환은 정선제를 꽤 오랜만에 봤는데, 그는 그사이에 훅 늙어 버린 듯했고 많이 초췌해진 모습이었다. 그의 책상에는 장계가 산처럼 높이 쌓여 있었다.

정선제는 갈란군주 때문에 화병으로 앓아누웠다가 그 일이 얼추 정리될 무렵 날이 추워져 또 한바탕 앓았다. 그나마 요 며칠은 좀 나아져 정무를 보고 있는 것이었다.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주운환은 무릎을 꿇고 예를 갖췄다.

정선제는 고개를 들어 그의 호리호리하면서도 다부진 몸을 살펴보았다. 시선은 점차 위로, 얼굴로 향했다. 주운환의 수려한 미간에는 매서운 기개가 어려 있었고, 그를 마주하고 있자니 정선제는 어째서인지 몽롱하면서도 간담이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정선제는 곧 정신을 차리고 웃으며 그를 맞았다.

“왔군, 어서 일어나라.”

“감사합니다, 폐하.”

주운환은 일어서서 고개를 숙였다.

“황제 폐하, 무슨 일로 소신을 부르셨는지요?”

“하하, 별일 아니다. 짐이 오늘 장계를 보다가 갑자기 작년 일이 생각났네. 자네가 장원 급제했을 때 짐이 종종 고문을 맡겼었지 않나.”

“네.”

주운환이 미소를 머금으며 답하자 정선제는 자기도 모르게 그를 다시금 훑어보았다. 장원 급제한 소년 장수, 푸르른 대나무처럼 청아하고 고독한 그는 싱그럽고 날카로웠다. 처음에는 이 소년을 조정에서 조금씩 다듬으면 세상에 다시는 없을 아름다운 보석으로 만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고작 일 년 사이에 소년은 칼집에서 부드럽게 빠져나오는 예리한 검처럼 변했다. 관옥 같은 외모는 변함없었지만 고독하고 어두워진 그의 눈빛은 무쇠처럼 무겁고 얼음처럼 차가웠다. 그가 웃을 때면 미간에 바람과 구름이 소용돌이치는 듯했고, 우아한 겉모습도 그 강인한 기개를 감추지 못했다.

정선제는 한순간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랬다. 그를 볼 때면 늘 소 황후가 떠올랐다! 채찍질하며 말을 달리던 그녀의 대범한 기개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녀는 결국 후궁의 아름다운 비단 치마 속에 그 인생의 빛을 가두었다.

주운환은 반대로 고아한 학자였다. 그러나 세상을 호령하는 장수로 변한 그는 소 황후의 원래 모습과 몹시 닮아 있었다.

그래서 정선제는 주운환이 더더욱 운하의 환생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여길수록 용서받았다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정선제는 얕게 한숨을 쉬더니 웃었다.

“짐은 어쩐지 자네를 보자마자 무척 가깝게 느껴졌어. 그러한 까닭에서 전에 자네가 『효경』을 읽어 주거나 짐의 고문을 맡아 주는 게 특별히 좋았네. 그러다 자네는 천하를 호령하는 대장군이 되어 짐의 가장 큰 걱정거리를 해결해 줬어. 참 기쁘지만 옛날의 자네가 더 그립군.”

“소신은 지금도 폐하께 『효경』을 읽어 드릴 수 있습니다.”

주운환의 대답에 정선제는 잠시 멈칫했지만 곧 소리 내어 웃었다.

“하하하. 좋다, 가져오게나!”

주운환은 익숙한 듯 서가에서 『효경』을 꺼내와 정선제 옆에서 읽기 시작했다.

『효경』을 몇 번 읽자 날은 저물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선제는 아직도 책상에 붙어 앉아 장계를 읽고 있었다.

“폐하께서 백성을 아끼시는 것은 알지만 쾌차하신 지 얼마 안 되었으니 옥체를 살피십시오.”

주름이 자글자글한 정선제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스쳤다. 마음속에 무력함과 조급함이 차올랐다.

죽다 살아난 후로 정선제는 황제 자리가 더욱 소중했다. 하지만 사람 일은 마음 같지 않아 며칠 동안 앓고 나니 신하들 모두 자신이 금방 죽기라도 할 듯 굴었다. 어서 저를 보내 버리고 새 주인을 섬기고 싶어 하는 모양새였다.

주운환이 또 그의 병을 들먹이며 몸을 살피라 하니, 정선제는 민망하고 분했지만 그저 껄껄 웃었다.

“짐은 아주 좋아! 할바마마께서도 내 나이쯤에 가뭄이 들어 며칠이고 눈도 붙이지 못하셨지만, 몸조리 조금 하시고는 끄떡없으셨다.”

“폐하 말씀이 맞습니다. 선조께서는 정말 강녕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제 막 쾌차하셨으니 우선 몸조리를 먼저 하신 후에 정무에 힘쓰셔도 늦지 않습니다. 그러면 폐하도 선조처럼 정력이 왕성하실 것입니다. 어쩌면 고희를 넘기고도 수녀秀女를 간택하셔서 연달아 공주를 두 명 얻으실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주운환이 농담조로 수녀를 언급하며 살짝 웃었다.

수녀? 아이를 더 낳아? 반면 그 말을 들은 정선제는 마음이 확 뜨거워졌다.

“시간이 늦었구나. 그만 돌아가 봐라.”

“예, 소신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주운환이 인사하고 나가자 채결이 들어갔다. 정선제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폐하,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요?”

채결이 웃으며 말을 붙여 오니 정선제는 퍼뜩 정신이 들었다.

“아무것도 아니다.”

정선제는 들고 있던 장계를 모았다.

정선제가 정리를 하는 기색이라 채결은 한숨 놓았다. 요즘 정선제는 자신의 건강을 과시하느라 매일 깊은 밤까지 장계를 처리했고, 그 탓에 채결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돌아가자.”

어서방에서 나온 정선제는 궁에 돌아가 식사를 마친 후 나 의정을 불렀다.

채결과 함께 들어온 나 의정은 정선제의 맥을 잡아 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황제 폐하, 몸조리에 힘쓰셔야 합니다. 조정의 일로 너무 옥체를 혹사하시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정선제는 답답해져 얼굴까지 붉어졌다. 그런 채로 잠시 생각하는 듯하던 정선제가 입을 열었다.

“의정, 짐이 아직 자손을 볼 수 있겠나?”

나 의정의 얼굴이 얼어붙었다. 이 부끄러움도 모르는 노인네! 하지만 의정의 눈이 반짝였다.

“그건… 예전 같으면 어려웠겠지만, 요 몇 년 동안 소신이 새로운 약방을 연구했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보양을 잘하시면 희망이 있습니다.”

정선제는 이 말을 듣더니 뛸 듯이 흥분했다.

“정말이냐?”

“그렇습니다! 하지만 보양을 잘하시는 것이 먼저입니다. 요즘처럼 이렇게 밤을 새우셔서는 어렵습니다.”

정선제는 들을수록 간절해져 고개를 계속 끄덕거렸다.

“그러면 의정이 짐의 몸을 잘 살펴 주게! 오늘은 이만 물러가 보게나.”

나 의정은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허리를 굽혀 다만 예를 취하고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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