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가유서부-725화 (725/858)

제725화

강심설은 엽연채와 운연거로 향해 그곳에서 대화를 나눴다.

반 시진이 지나 청유와 만월이 뛰어 들어왔고, 청유가 말했다.

“보고 왔습니다. 황방이 붙었는데 위에 한참 주절주절 써 놓았는데, 마지막에 갈란군주는 남편을 살해하였으니 사형에 처한다고 분명히 쓰여 있었습니다! 오늘 오시에 형을 집행한다고요!”

강심설은 그제야 크게 숨을 내쉬더니 차갑게 내뱉었다.

“결국 끝났네.”

그녀는 갈란군주가 대리시에 갇힌 이후로도 마음을 좀처럼 놓지 못했었다. 확실한 증거가 있는데도 대리시에서 차일피일 판결을 내리지 않고 미루니, 이는 정선제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단 뜻 아니겠는가.

다행히 끝내 모두 순리대로 정리되었으니 이젠 안심할 수 있을 터였다.

“고마워.”

강심설은 다시 한번 엽연채에게 사의를 전했다.

“별말씀을요, 형님.”

엽연채가 미소로 사양하는데, 밖에서 여종이 들어와 알렸다.

“마님, 어쩐 일인지 준비한 수도壽桃(장수를 축원하는 복숭아 모양의 밀떡)가 조금 모자랍니다.”

그에 강심설이 돌아서며 자신이 가 보겠다고 했다.

“그럼 부탁드릴게요, 형님.”

강심설이 나가고 나자 엽연채가 입을 열었다.

“형님처럼 저도 황제 폐하가 갈란군주를 감싸는 건 아닌지 걱정했어요.”

갈란군주가 시집올 때 이미 군주가 자신들을 향해 돌진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매사에 무심한 주비양까지도 지금 주씨 집안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이 주운환이라고 생각하는 판국에 당사자들이 모를 리가 없잖은가.

하지만 주비양의 말처럼 황제가 허락한 혼인이니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고 대책을 마련할 시간도 부족했다. 그러니 그녀가 시집오기를 기다렸다 천천히 여우 꼬리를 잡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갈란군주의 꼬리는 하나가 아니었다. 주운환을 향한 꼬리 하나, 오일의를 향한 꼬리 하나.

당연히 두 가지를 다 잡아채는 게 좋겠지만, 군주가 일을 벌이지 못해 안달이니 그럴 시간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일단 오일의를 향한 꼬리만 드러내 감옥에 보낸 것이었다.

이후 정선제는 그 일을 덮어 버리려 했지만, 갈란군주가 주운환에게 불리한 일을 했다는 것을 아는 상황이었다. 그에 주운환은 조사에 나서려 했지만, 그 전에 양왕으로부터 서신을 받았다.

「가만히 있어라. 조용히 좋은 소식을 기다리면 된다.」

주운환은 그래서 양왕에게 맡기고 도성 병영 일에 정신을 집중했다.

엽연채가 물었다.

“양왕 전하께서 그 일을 해결하신 건가요?”

“맞습니다.”

주운환은 대답하며 그녀를 자기 무릎에 앉혔다. 그녀 배 속의 아기가 이리저리 움직이자 주운환은 그 위에 손을 대고 즐거워하며 장난쳤다.

“둥글둥글하네.”

엽연채가 살짝 흘겨보았다.

“진지한 이야기 하고 있잖아요!”

“분명 전부 해결하셨을 겁니다. 갈란군주는 사형을 받았고 황제 폐하께서는 당신에게 선물도 내리셨잖아요.”

엽연채는 마음이 놓여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렇게 멀리서 어떻게 도성의 일을 해결한 거죠?”

“저도 궁금하니까 오시면 물어봐요.”

엽연채는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조앵기랑 토자포가 생각나네요.”

* * *

갈란군주의 사형 소식에 도성은 또 한바탕 시끄러워졌다. 소식을 들은 평왕비는 눈앞이 캄캄해져 그대로 쓰러졌다.

그 시각, 대리시의 지하 감옥.

갈란군주가 차가운 바닥에 누워 있는데 바깥에서 발걸음 소리가 울렸다. 갈란군주는 평왕비가 온 줄만 알고 반가워하며 벌떡 일어났는데, 뜻밖에 채결이 앞에 서 있었다.

“채 공공? 채 공공이 어떻게 여길? 설마 금린위의 조사가 끝났나요?”

감옥 문이 열리고 채결이 안으로 들어와 빙그레 웃어 보였다.

“그렇습니다. 진서후 생모인 운 이낭의 신분이 밝혀졌습니다.”

갈란군주는 크게 기뻐했다. 공을 세웠으니 할바마마가 채결을 시켜 자신을 풀어 주려는 것이다!

“감사합니다, 할바마마. 고마워요, 공공…….”

갈란군주는 말을 하다 말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손가락 하나 옴짝달싹 못 하는 가운데 두 눈만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채결을 따라 들어온 어린 환관이 쟁반을 하나 들고 있었는데, 거기에 웬 약사발과 흰 비단이 놓여 있던 것이다. 이건… 어찌 죽을지 선택하란 것 아닌가!

채결은 성지를 꺼내 갈란군주를 향해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읽어 내려갔다.

“황제의 장손녀 작호 갈란. 남편을 살해하고 의붓아들을 독살하려 시도하다니 그 죄가 극악하다. 짐은 이에 책임을 통감하고 몹시 분노하여 군주를 황실 족보에서 축출하고 옥첩玉牒(황족의 계보)에서 제명하며, 군주의 작위를 박탈하고 서민으로 강등하여 사형에 처한다. 독주와 흰 비단 중 하나를 택하여 금일 오시에 사형을 집행한다!”

갈란군주는 머릿속이 새하얘져서 바닥에 주저앉았으나 믿지 못하겠다는 듯 두 눈을 홉뜬 채였다.

“어떻게? 그럴 수가! 할바마마께서 어떻게 내게 사약을! 금린위가 소식을 전한 게 맞아요? 주운환은 운하 고모님의 아들이에요! 양왕과 한패라고요!”

“망언을 멈추십시오! 진서후의 생모는 공주 마마가 아니라 정주 거상의 딸입니다.”

채결이 매섭게 소리쳤다.

“그, 그럴 리가……!”

갈란군주는 눈앞이 빙빙 돌았다. 얼굴이 흰 비단 못지않게 창백해졌으나 채결은 인정을 베풀지 않고 자기 뒤를 가리켰다.

“군주, 하나를 고르십시오. 소인 생각에는 독주가 고통도 적고 체통도 지킬 수 있을 것입니다.”

채결이 말을 마치니 어린 환관이 눈치껏 한 발짝 앞으로 나와 갈란군주에게 쟁반을 내밀었다.

“아아아악! 싫어! 안 돼!”

겁에 질린 갈란군주는 고함을 질러 대며 쟁반을 밀쳤다.

“안 돼!”

와장창 소리와 함께 쟁반이 바닥에 떨어졌고, 그 바람에 독주는 모두 엎어지고 흰 비단도 나풀거리며 바닥에 내려앉았다.

갈란군주는 채결의 옷자락을 꽉 움켜쥔 채 목숨을 구걸했다.

“공공, 내 말을 믿어 줘요! 할바마마가 저를 믿게 도와주세요. 주운환은 양왕과 한패라니까요!”

“방자하다!”

채결은 일갈하며 바닥에 엎어진 독주에 시선을 두었다. 말을 잇는 그의 목소리가 한층 음산했다.

“군주께서 독주가 싫다 하시니 흰 비단만이 남았군요. 소림자!”

“네.”

어린 환관이 땅에 떨어진 흰 비단을 집어 들어 갈란군주의 목에 매었다.

“아악… 크억……!”

갈란군주는 어떻게든 흰 비단에서 도망가려 했지만, 곱게만 자라 닭 한 마리 잡을 힘도 없는 그녀였다. 그녀는 다만 팔다리를 휘저어 대며 고통스럽고 처량하게 울부짖었다.

“아악… 켁……! 언젠가, 그자와 양왕이 이, 땅을… 빼앗… 크으윽……!”

그녀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발버둥 치던 두 다리는 잠시 부르르 떨리더니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군주가 죽자 대리시 사람이 바로 그녀의 시신을 가지고 나가 성 밖의 시체 구덩이에 던져 넣었다. 많은 사람들이 마치 당장에라도 눈을 뜰 것 같은 그녀의 시신을 보고 나서야 그녀의 죽음을 믿었다.

곧 오씨 집안에도 황제의 성지가 도착했다. 대로에서 적모를 구타한 오일봉을 한껏 질책하고 그를 파면했으며, 오씨 집안 사람 중 조정에서 관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도 모조리 파면당해 오씨 일가 모두 힘든 시기를 겪게 되었다.

정선제는 피해자 오 부인에게 금은보화를 하사하고 초일품에 봉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직후에 오일의와 갈란군주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병으로 세상을 떴다. 오 부인은 더 이상 희망도 마음 둘 곳도 없다 싶었는지 벽에 머리를 박고 죽어 버렸다. 그녀는 이튿날 아침 싸늘하게 식은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오씨 집안 사람들은 오 부인 시신을 황야에 내다 버리고 싶었지만 도성의 모두가 지켜보고 있으니 별수 없이 오 부인과 아이의 장례를 성대하게 치르기 위해 바삐 준비했다.

오씨 집안에 성지를 전한 환관은 평왕부로 가고 있었다. 그런데 평왕부 대문도 들어가기 전에 시녀 하나가 울면서 평왕부에서 뛰쳐나왔다.

“왕비 마마가 목을 매어 자결하셨습니다!”

환관은 급히 궁으로 돌아가 이 일을 정선제에게 보고했고, 정선제는 두 눈을 번뜩이더니 알겠다고만 했다.

주운환이 운하의 아들인지 의심하게 된 것은 다 평왕비가 술수를 부렸기 때문이었다. 그녀를 살려 두면 이 일을 이용해서 자신과 주운환의 사이를 또다시 이간질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만약 자신이 주운환이 외손자일까 의심해서 그를 처리하려 했던 것을 평왕비가 입 밖에 낸다면…….

만약 이런 말이 새어 나간다면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어찌 생각할지 모를 일이었다. 그러니 후환을 남겨 두어서는 안 되었다!

갈란군주의 일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백성들은 모두들 깊이 탄식했지만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평왕비는 목을 매어 죽고 오 부인은 머리를 박고 죽었는데 주 부인은? 왜 혼자 아직도 뻔뻔하게 살아 있담!”

진씨는 사람들이 자기더러 죽으라고 욕을 해 대는 것을 듣자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는 듯했다. 당장에 자신도 아무것도 모르는 피해자일 뿐이라는 소문을 퍼뜨렸지만, 세상 사람들은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그들의 저주스런 우스갯소리는 날이 갈수록 더욱 험악해졌다.

황실도 점점 민심을 잃어 갔다. 예전에는 백성들이 황실을 고결하고 대범하며 화려한 곳이라 생각했다.

황실의 위엄은 작년 태자와 묘기화의 사건으로 흔들리기 시작했는데, 이후에는 또 정혼자가 있던 주묘서가 태자와 눈이 맞아 버려 이 둘이 혼인함으로써 서씨 집안 일가가 억울하게 죽은 일이 잇달았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편을 죽인 갈란군주가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상중에 다시 시집을 갔고……. 이렇게 벌어지는 일마다 황실에 어두운 음영을 드리웠다.

황실이 암흑에 싸여 있는 중에 갑자기 새로운 소식이 날아들었다. 태자의 측비가 회임을 했다는 희소식은 어두운 황실에 한 줄기 빛을 가져왔다.

이 소식을 듣자 진씨는 순간 오랜 체증이 내려가고 날개를 단 것 같았다.

정 마마도 오랜만에 환히 웃어 보였다.

“마님, 이렇게 좋은 일이 생겼으니 저희도 측비 마마께 축하드리러 가야지요.”

“당연하지.”

진씨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주종 두 사람이 즐거움을 만끽하기도 전에 녹엽이 들어와 찬물을 확 끼얹었다.

“마님, 청유가 왔습니다.”

진씨와 정 마마의 얼굴이 일시에 굳어졌다. 엽연채 그 돼먹지 못한 것이 또 초를 치는구나!

반면 방 안으로 들어선 청유는 만면에 웃음을 띠고 있었다.

“마님.”

“하하. 청유가 오늘은 어쩐 일로 여기까지 왔니. 셋째 마님이 보냈겠지?”

정 마마는 겨우 선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을 건넸다.

“네. 측비 마마께 기쁜 일이 생겼으니 주인마님이 언제 축하하러 가실지 여쭤보라 하셨습니다. 준비를 해 두시겠다고요.”

진씨는 잠시 말이 없다가 이리 대꾸했다.

“그러잖아도 지금 막 알리려던 참이었다. 내일 가도록 하자고 말을 전하거라.”

“알겠습니다. 저는 이만 돌아가겠습니다.”

청유가 사라지는 모습을 쳐다보는 진씨의 눈빛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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